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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1% 부자의 "서민" vs 빈자의 "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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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1% 부자의 "서민" vs 빈자의 "서민"

[홍성태의 '세상 읽기'] 정말 '서민 정책'이 필요하다

'4대강 죽이기 마스터플랜'을 발표한 1주일 뒤인 지난 6월 15일 이명박 대통령은 자신의 라디오 홍보 방송에서 여느 때처럼 우리를 놀라게 하는 발언들을 했다. 특히 "언론에 투영된 의견이나 시중의 여론도 경청하고 있습니다"는 발언은 우리를 몹시 놀라게 했다.

정말로 그렇다면 미디어 악법, 비정규직 악법, 4대강 죽이기 사업을 강행하지 않아야 옳지 않을까? 참담한 용산 참사에 대해 진즉에 사과하고 보상을 마쳤어야 하지 않을까? 여론을 경청하고 있다면서 '불통'을 고집하는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 그가 말하는 언론은 오직 '조·중·동'이고, 시중은 사실 '최시중'을 뜻하는 것일까?

그런데 6월 15일의 라디오 방송에서 우리를 가장 놀라게 한 발언은 "지금까지도 서민 정책에 가장 큰 신경을 써 왔습니다만 앞으로도 더욱 그렇게 할 것입니다"는 발언이었다. 이 말 때문에 갑자기 '서민'이라는 말이 큰 의미를 갖고 널리 회자되기에 이르렀다. 그가 말하는 서민은 대체 누구를 가리키는 것일까? 이명박 대통령이 과연 "서민 정책에 가장 큰 신경을 써 왔다"고 말할 수 있을까? 종합부동산세를 무력화하고 양도세를 완화하는 등의 '부자 감세'를 거침없이 강행한 한편, 두부세나 '죄악세'를 신설하는 등의 '서민 증세'를 강행하는 것이 '서민 정책'인가? 그가 말하는 서민과 실제 서민은 아주 다르지 않을까?

'서민(庶民)'이라는 말에서 '서'는 '많은'을 뜻하고, '민'은 '보통 사람'을 뜻한다. 따라서 말 그대로 하자면 '서민'은 '많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서민'은 그냥 '많은 사람'을 뜻하지 않는다. 국어사전에서 '서민'은 '아무 벼슬이나 신분적 특권을 갖지 못한 일반 사람', '경제적으로 중류 이하의 넉넉지 못한 생활을 하는 사람'으로 정의된다. 대체로 '서민'은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하층'에 속하는 사람을 뜻하는 것이다. 전근대사회에서는 이렇게 '하층'에 속하는 사람이 사회 구성원의 다수를 차지했다. 예컨대 조선에서 양반은 전체 구성원의 20%에 불과했다. 80%는 '서민'이었다.

오늘날 우리는 조선시대와는 크게 다른 사회에서 살고 있다. 오늘날 우리는 정치적으로는 모든 사람이 주권자인 민주사회에서 살고 있고, 경제적으로는 세계 10위권의 부를 누리는 풍요사회에서 살고 있다. 서민과 연관해 말하자면, 우리는 조선시대와는 달리 서민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지 않은 사회에서 살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서민은 존재한다.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하층'에 속하는 사람들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적지 않다. 서민이 많은 사회는 불평등이 큰 사회라고 할 수 있다. 양적으로 평가하기 쉬운 소득과 자산을 기준으로 보아서 오늘날 한국에서 서민은 전체 구성원의 30%를 넘는다.

오늘날 한국은 중산층이 60% 정도의 비중을 차지하는 '중산층 사회'이다. 그러나 중산층은 너무 많아서 상중하로 나누어 볼 필요가 있는데, 하층은 빠르게 서민으로 추락하고 있으며, 중층도 그렇게 될 위험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한국은 '중산층 사회'에서 '서민 사회'로 변모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되는 가장 근원적인 원인은 고용의 불안정화이다. 도무지 줄어들지 않는 비정규직이 문제의 핵심인 것이다. 정부의 통계로도 비정규직은 530만 명을 넘고, 더 믿을만한 통계에 따르자면 비정규직은 이미 850만 명을 넘는다. 비정규직을 줄이지 않는다면, '중산층 사회' 한국은 조만간 파탄이 나고 말 것이다.

비정규직이 한국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지구적 차원의 경쟁이 일상화된 지구화 시대에 고용의 유연화와 비정규직의 증가는 불가피한 면이 있다. 그러나 경북대의 이정우 교수는 한국의 비정규직은 '악성'이라고 지적한다. 서구와 달리 한국의 비정규직은 시간직이 아니라 '한시직'이며, 노동권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임금 차별도 극히 심하기 때문이다. 서구에서 비정규직은 다소 불안정한 근무 형태를 뜻한다면, 한국에서 비정규직은 한마디로 '노예'에 가까운 것이다. 이런 비정규직 문제를 더욱 악화시키는 비정규직 유예 정책을 강행하면서 '서민 정책'을 운운하는 것은 정말이지 너무나 잘못된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은 '4대강 죽이기'를 대표적인 '서민 정책'이라고 주장하는 것 같다. 경제를 활성화하고 고용을 늘려서 서민의 생활을 윤택하게 한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토건업의 산업 효과, 고용 효과, 체류 효과는 모두 크지 않다. 산을 없애고, 강을 없애고, 들을 없애고, 갯벌을 없애는 것으로 이 나라가 부유해지는가? 국토를 파괴하면 수출이 늘고 국부가 느는가? 그저 막대한 혈세를 탕진하고 소중한 국토를 파괴할 뿐이다. 이득을 보는 것은 한 줌의 토건족과 투기꾼뿐이다. 이 나라가 진정 부유해지고자 한다면, 막대한 혈세를 복지와 문화와 기술의 증진에 써야 한다.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은 30조 원이 넘는 막대한 혈세를 불과 2년 반 동안에 '4대강 죽이기'에 탕진하겠다고 한다. 이것이 '서민 정책'이라고 한다면, 그 실체는 결코 '서민 보호 정책'이 아니라 그저 '서민 양산 정책'이요 '서민 파탄 정책'일 뿐이다. 병적으로 비대한 토건업에 발목을 단단히 잡힌 한국 경제는 조만간 주저앉고 말 것이며, 그 결과 중산층은 60%에서 30%로 줄어들고 서민층은 30%에서 60%로 늘어나고 말 것이다. 여기서 나아가 우리의 식수원인 4대강이 죽어 버려서 서민층은 물조차 제대로 쓰지 못하게 될 것이다. 이 와중에 토건족과 투기꾼은 물의 상품화를 적극 추진해서 떼돈을 벌 것이다.

정말 '서민 정책'이 필요하다. 그것은 '서민 양산 정책'이나 '서민 파탄 정책'이 아니라 '서민 보호 정책'이어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은 '한반도 대운하'에 14조 9000억 원이 필요하며, 이 돈은 모두 민간 자본으로 유치할 수 있다고 호언장담했었다. 그런데 이제 규모가 그보다 훨씬 작은 '4대강 죽이기'를 강행하면서 모두 혈세로 30조 원이 넘게 필요하다고 한다. 어떻게 이렇게 크게 바뀔 수 있는가? 30조 원의 혈세를 기껏 2년 반 동안 고작 수만 명의 '삽질 비정규직'이나 만들어낼 '4대강 죽이기'에 쓰는 것이 아니라 복지, 문화, 기술에 써야 한다. 강을 죽이고 경제를 죽이는 정책이 아니라 강을 살리고 경제를 살리는 정책에 우리의 혈세를 써야 한다.

▲ 지난 6월 25일 재래 시장을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 이날 이 대통령의 '서민 행보'는 역설적으로 이 대통령이 서민을 전혀 모른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청와대

사실 이명박 대통령은 서민에 대해 전혀 모르는 것 같다. 6월 25일 그가 '서민 행보'를 한다면서 이문동 시장을 방문해서 남긴 동영상은 아마도 '전설'로 길이 남을 것이다. 그는 '야, 뻥튀기 사 먹어라', '노점상들이 이야기할 데라도 있으니 세상이 좋아졌잖아', '마트를 못 들어오게 하면 정부가 헌법소원에서 패한다', '시장 상인들이 인터넷 직거래를 해야 한다'는 등의 여러 놀라운 말을 남겼다. 더욱이 그는 반말로 시종일관해서 시민들을 더욱 더 분노하게 했다. 그는 일찍이 20대 후반에 정주영 전 회장의 눈에 들어 평생을 최고위층과 최고부자 속에서 살았다. 이런 사람이 서민을 잘 알고 받들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마도 잘못일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공식적으로 360억 원대의 자산가였다. 그 정도면 1% 부자가 아니라 0.0001% 부자에 해당할 것이다. 재단을 설립해서 내놓은 재산을 빼고도 그는 여전히 90억 원대의 부자인데, 사실 한국에서 30억 원대만 보유해도 1% 부자에 들고도 남는다. 이명박 대통령은 그냥 부자가 아니라 어마어마한 부자였던 것이다. 그의 주위에 서민은 없고 '강부자'가 득실대는 것은 아주 당연할 것이다. 그가 서민이 아니라 '강부자'를 위한 정책을 강행하는 것도 그저 당연할 것이다. 재산과 정책의 면에서 그는 확실히 '강부자'의 대표로 보인다. 그가 진정 '서민 정책'을 펴고자 한다면 이런 사실을 깊이 반성해야 할 것이다.

한국에서 서민은 계층적 의미를 넘어서는 문화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서민은 단순히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하층'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착하게 열심히 살면서 이 나라를 근간에서 지탱하는 사람들을 뜻한다. '선진화'는 서민을 보호하고 중산층을 배양하며 자연을 보호하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참된 서민 정책'은 명확하다. 토건족과 투기꾼이 망하고, 자연을 지키며 착하게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흥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세상은 어느덧 안드로메다 저편으로 사라지고 있는 것 같다. 가지 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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