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8일을 끝으로 세계 최고의 대중음악 페스티벌로 불리는 '2009 글래스톤베리 현대 예술 페스티벌'이 막을 내렸습니다. 유럽 기행을 떠난 대중음악평론가 김작가는 파리를 떠난 후 곧바로 올해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 바로 가기 :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이란?)을 닷새에 걸쳐 참관했습니다. 현지에서 인터넷 연결이 되지 않았던 관계로 페스티벌이 끝난 지금, 런던으로 돌아온 김작가가 글래스톤베리의 뜨거웠던 여름을 총 여섯 차례에 걸쳐 전달합니다. <편집자주> |
24일 11시, 런던에 도착했을 때는 그야말로 막막할 뿐이었다. 한달여를 끌고 다녀야 하는 거대한 트렁크를 가지고 글래스톤베리까지 간다는 건 미친 짓. 진작 짐을 맡길 숙소를 잡아놨어야 한다는 생각을 킹스톤 역에 도착해서야 했기 때문이다. 미리 정보를 뽑아온 한인 민박집에 전화를 돌려봤지만 모두 예약이 다 차있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런던에서 글래스톤베리로 떠나는 코치(버스. 지하철은 '튜브'라 한다) 시간은 오후 6시 반. 그 때까지 숙소를 예약하고 짐을 맡기지 않으면 뭐랄까, 5일 내내 평생 바위를 끄는 시지프스의 심정을 제대로 느낄 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나 여행의 맛이란 역시 모든 문제가 어떻게든 해결된다는 데 있다. 어찌 어찌 다른 민박 번호를 알아내어 연락을 했다. 예약이 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았다. 만세. 짐도 미리 맡겨둘 수 있다고 했다. 브라보. 게다가 위치도 빅토리아 코치 스테이션 바로 옆이라고 한다.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튜브를 탈까 버스를 탈까 고민하다가 버스를 타기로 했다. 런던을 느끼고 싶었다. 파리의 첫 인상과 런던의 첫 인상의 차이를 알고 싶었다. 결론은 파리의 승리. 공기는 탁했고 먼지는 많았다. 길은 좁고 거리는 번잡했다. 적어도 킹스톤에서 빅토리아까지 가는 길은 그랬다. 뭔가 억압된 느낌이랄까. 파리가 '좋았던 시절'을 그대로 잡아두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하고 있다면 런던은 좋았거나 말거나, 우리는 지금을 산다는 기분이었다. 과거의 흔적을 위해 지금이 희생하는 게 파리의 시간이라면 과거와 지금이 되는 대로 섞여서 런던의 시간은 흘러간다. 반나절의 런던 체류가 준 인상이다. 글래스톤베리가 끝난 후 일주일 정도 런던에 머물면 또 달라질 것이다. 그 때는 런던이 파리를 이길지도 모른다. 아니, 우열이 아닌 차이를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빅토리아 코치 스테이션에서 글래스톤베리 행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 원시로 돌아가기 위해 문명을 이용한다. ⓒ김작가 |
빅토리아 스테이션 옆의 빅토리아 코치 스테이션. 글래스톤베리행 버스가 떠나는 곳이다. 6시 반에 버스가 출발하건만 한 시간 전부터 이미 수백명이 줄을 서 있었다. 워낙 많은 인파가 몰리는 글래스톤베리이니만큼 버스도 대규모로 증편되고 일찍 와서 줄을 선 사람들이 먼저 온 버스를 타고 글래스톤베리로 갈 수 있다. 우리는 8시에야 버스를 탈 수 있었다. 티켓에 찍힌 6시 30분이라는 시간이 무색했다. 다른 사람들도 그랬을테지만 아무도 불평하거나 지루해하지 않았다. 글래스톤베리란 본래 그런가 보다. 일상의 엄정한 질서가 파편처럼 흩어지는 초월의 시공간인가 보다. 그러기에 버스에 시동이 걸림과 동시에, 차안에 탄 사람들은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으리라. 간다. 꿈의 글래스톤베리로. 간다. 마음의 유토피아로.
버스는 국도를 달리고 또 달렸다. 한적하디 한적한 영국의 시골길을 3시간 반 동안 달렸다. 설레는 마음도 잠시, 졸다 깨다를 반복할 때 쯤 버스 안에 다시 환호성이 울려 퍼졌다. 칠흑같은 어둠속에 길디 긴 선을 이루고 있는 램프의 행렬. 글래스톤베리에 온 것이다. 십여대의 버스에서 텐트와 온갖 캠핑 장비로 중무장한 사람들이 쏟아졌다.
빅 레드 게이트라 불리는 공식 입구에서 티켓을 제시한 후 팔찌를 발급받았다. 금색 천에 검정색으로 'Glastonbury Festival 2009 Of Contemporary Performing Arts'라 새겨진 이 팔찌가 앞으로 나흘간 이 곳의 주민이 됐음을 확인해주는 신분증이 될터이다. 그리고 캠핑존으로 이동. 길고 또 길게 늘어진 전선줄에 매달린 많고 또 많은 전등이 이 시골 농장의 밤을 적당히 밝혀줬다.
서울서 빌려온 텐트는, 텐트라고 하기엔 남루했다. 다행히도 밤은 맑았지만 과연 이 움막같은 텐트로 며칠을 버틸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다. 게다가 설치를 위한 부품도 모자랐다. 맥가이버가 된 심정으로 임기응변 끝에 간신히 텐트를 쳤다. 파리에서 해저 터널을 건너 런던으로 건너와 20킬로그램이 넘는 트렁크를 끌고 민박에 짐을 맡긴 후 3시간 반을 버스를 타고 글래스톤베리에 도착해서 한 밤중에 렌턴도 없이 텐트를 친 하루. 몸은 크립톤 광석처럼 무거웠고 마음은 흥건히 젖은 수건처럼 축축했다. 버스 안에서의 함성도, 도착했을 때 버스 앞에서 빛나던 글래스톤베리라는 간판도,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주긴 역부족이었다. 미끄러지듯 잠들었다.
▲버스는 글래스톤베리로 15만 명을 실어나른다. ⓒ김작가 |
새벽, 자명종이라도 울리듯 텐트 위를 후두둑, 하는 소리가 덮쳤다. 비가 오고 있었다. 여기 온게 과연 잘한 선택일까, 데카르트와 맞장을 떠도 지지 않을 만큼의 근본적 회의가 엄습했다. 공연은 금요일부터 시작하건만, 수요일부터 캠핑 존을 여는 이 오만함은 도대체 무엇인가. 라인업을 발표하기도 전에 진작 예매를 시작하는 주제에 15만장의 티켓을 며칠만에 팔아치우는 이 자신감은 또한 무엇인가.
이왕 깬 김에 음악이나 좀 들으려 CDP에 파리에서 산 월드 뮤직 음반을 걸고 플레이 버튼을 눌렀다. 배터리가 없었다. 짜증이 밀려왔다. 담배를 물고 라이터를 켰다. 가스가 모두 떨어져 있었다. 어쩐지, 그 동안 나답지 않게 너무나 순탄한 여행이었어. 시간을 딱 하루만 되돌릴 수 있다면 파리에 그냥 짱박혀 있을 텐데. 아무 것도 예상할 수 없고, 아무 것도 보이지 않으며, 아무 것도 들리지 않기에 답답함은 쌓여만 갔다. 그러거나 말거나, 비는 계속 후두둑 후두둑 텐트를 때렸다. 그 사이로 근처 텐트에서 욕망의 고체 연료에 불을 붙인 청춘남녀의 신음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유토피아를 꿈꾸며 먼 길을 달려왔건만 현실은 디스토피아. 총체적으로 곤란한 글래스톤베리의 첫 밤이었다.
▲경제 위기가 와도, 선거로 골치가 아파도, 글래스톤베리는 올해도 열린다. 가장 뜨거운 여름을 앞두고. ⓒ로이터=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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