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지 강행 처리를 시사하는 한나라당에 대한 비난만이 아니다. 양대 노총은 "민주당 안팎에서도 미디어법과 비정규직법을 맞바꾸려는 의도가 감지된다"며 민주당에도 맹공을 퍼부었다. "'5인 연석회의에서 조건 없이 얘기해 보자'더니 민주당마저 유예로 가닥을 잡아가고 있다"는 이유다.
이들의 강한 반발에 추미애 국회 환경노동위원장은 "5인 연석회의에서 합의안이 나오지 않으면 정부안도, 한나라당안도 상정할 수 없다"고 분명히 했다. 한나라당이 유예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이날 마지막으로 열리는 5인 연석회의에서 극적 타결 가능성은 없다. 환노위를 통과하지 않을 경우, 남은 길은 김형오 국회의장이 직권 상정뿐이다.
"회의 중에 '합의설' 유포…유예되면 그 책임은 3당 모두 져야할 것"
양대 노총은 이날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연석회의가 진행되는 내내 근거 없는 '합의설'이 언론을 통해 유포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일이 계속해서 벌어지고 있다"며 "법 시행 유예를 전제로 만들어진 5인 연석회의라면 아예 참가하지도 않았을 것이며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라고 선을 그었다.
양대 노총은 또 "여야 3당이 유예를 고집해 5인 연석회의가 파탄나고 법 시행이 유예될 경우 그 책임은 모두 여야 3당에게 돌아갈 것"이라며 "여야 3당의 정치적 성과는 될 수 있을지 몰라도 비정규직에게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는 최악의 결정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장석춘 위원장은 "(한나라당이 강행 처리하면) 정책연대도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 비정규직법을 놓고 양대 노총이 26일 "시행 유예를 전제로 한 '5인 연석회의'를 정치권이 정략적으로 이용하고 있다"며 "유예는 절대 안 된다"고 밝혔다. ⓒ뉴시스 |
양 노총은 시행을 유예하고 정규직 전환 지원금을 대폭 늘리는 방식은 "논리 모순"이라는 입장이다. 임성규 위원장은 "시행이 유예돼 정규직 전환 의무가 사라지는 판에 전환 지원금이 무슨 필요가 있냐"고 말했다.
양 노총은 일단 이날 열리는 마지막 회의에는 참여한다는 방침이다. 유예가 전제되지 않는다면 계속 논의를 이어갈 뜻도 있음을 피력했다. 장석춘 위원장은 "어떤 상황에서도 유예는 결코 동의할 수 없다"며 "일단 시행해 보고 연말까지 기간을 두고 제대로 된 보호 방안을 다시 논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추미애 "5자 합의안 아니면 어떤 안도 상정 불가능"
이들은 기자회견에 이어 △기간제한 폐지 및 사용사유제한 도입 △정규직 전환 의무 비율 도입 △차별시정제도 개혁 △정규직화 전환 기금 대폭 확대 등을 요지로 하는 공동 요구안을 추미애 환경노동위원장에게 전달했다.
이 자리에서 추미애 위원장은 "5인 연석회의를 시작하며 3당은 국민과 노동계에게 '합의가 도출되야 통과시킨다'고 약속한 것"이라며 합의 없이는 환노위 상정은 없음을 분명히 했다. 추 위원장은 특히 한나라당에 대해 "정부안보다 더 후퇴된 3년 유예안을 당론으로 정해놓고 2년이면 대타협 아니냐는 것은 장난치는 것"이라고 맹비난했다.
추 위원장은 "미디어법과 비정규직법은 우리 사회의 방향이 어디로 가는지를 결정짓는 터닝 포인트"라며 "두 법을 다 지켜내야 한다는 뜻을 민주당 지도부에게 전달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4년 만의 양대 노총 공동 행보…MB가 화해시켰다 양대 노총의 이 같은 공동 행보는 4년 만이다. 지난 2005년 4월 당시 이수호 민주노총 위원장과 이용득 한국노총 위원장이 국회 앞에서 공동 단식 농성을 한 이후 양 노총의 위원장이 처음으로 공동 기자 회견을 연 것. 이유도 똑같다. 4년 전에도 두 위원장의 단식 농성이라는 초유의 사태의 배경은 비정규직법이었다. 4년 후 다시 양 노총 위원장이 한 자리에 앉은 것도 비정규직법 때문이다. 4년 전에는 정부 주도로 비정규직법을 처음 만드는 과정에서 노동계 입장이 전혀 반영되지 않아 양 노총이 '물리력'의 일환으로 단식 농성 카드를 꺼내들었다. 당시 노동계는 △사용사유 제한 도입 △노조의 차별시정 신청권 부여 등을 요구했었다. 두 위원장의 단식 이후에도 총파업, 철야 농성 등 같은 길을 가던 양대 노총은 그해 11월 한국노총이 대폭 물러선 최종안을 독자 제시하면서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한국노총은 최종안에서 사용 사유 제한을 포기하고 2년 사용 기간 후 정규직으로 간주하는 '고용 의제' 조항을 내놓았다. 민주노총은 "이 안은 절대 안 된다"는 입장을 즉각 밝히며 한국노총과 사실상 이별을 선언했다. 그리고 이듬해인 2006년 정부가 주도한 노사관계 법·제도 선진화 방안(로드맵)을 놓고 양 노총은 끝내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3년 넘는 시간 동안 밀고 당기기를 거듭하던 노·사·정 논의 끝에 9월 한국노총과 경총, 대한상공회의소, 노동부 등이 합의안에 서명을 했다. 민주노총은 이 합의를 "야합"이라고 규정했고, 이용득 위원장이 민주노총 조합원으로부터 폭행을 당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끝내 이 로드맵은 그해 12월 국회를 통과했다. 그리로 상대방에 대한 비방 기조를 이어 가던 양 노총이 다시 한 번 갈라선 것은 한국노총이 2007년 대선 직전 한나라당과 정책연대를 체결하고 이명박 지지 선언을 하면서였다. 민주노총은 "노동자 조직으로서 자기 정체성을 스스로 부정했다"고 비난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1년 6개월 동안 양 노총은 현 정부의 '비즈니스 프렌들리' 정책에 대해 비슷한 우려를 표명해 왔지만 한 자리에 마주 앉기엔 그간의 감정의 골이 너무 깊었다. 그러나 정부와 경영계의 최저임금제 삭감 시도와 당정의 비정규직법 강행 의지 등이 그 깊은 불신의 늪에서 양 노총을 끌어올린 셈이다. 양 노총은 전날 최저임금위원회의 마지막 전원회의에서도 삭감안을 고수한 경영계에 대해 공동 성명을 통해 "가장 낮은 곳에서 일하는 저임금 노동자의 생존을 위협하는 미증유의 폭거에 할 말을 잊었다"고 비난했다. 임성규 위원장은 이날 "앞으로도 양대 노총이 사안별로 뜻을 같이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일단 양 노총의 공조는 시급한 현안인 최저임금과 비정규직법의 행방이 결론 날 때까지는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비정규직법이 지나가도 복수노조와 노조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 문제가 있는 만큼 양 노총의 공조는 최소한 연말까지는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그러나 야3당이 끝내 '비정규직법 유예'를 고집하며 그 외 다른 부분에서 노동계 입장을 적극 반영할 경우 양 노총의 대응이 달라질 가능성도 여전히 존재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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