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너무 많은 기업 체질 개선 전략이 쏟아지다보니 정작 기업들은 제대로 된 혁신을 하지 못하고 있다. '상시 (인력) 구조 조정'으로 대표되는 제너럴일렉트릭(GE)의 잭 웰치식 혁신만을 본뜨는 기업이 대부분인 게 현실이다.
경영 컨설턴트는 이런 기업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다. 정말 개선해야 할 곳은 어디이고, 이를 어떤 방식으로 추진할지 등을 3자의 입장에서 해결해주기 때문이다. 이들의 손아귀에 기업 노동자들의 일자리 여부, 대졸 취업 준비생의 입사 가능 여부, 기업의 미래 전략방향이 걸려있는 셈이다.
'경영 컨설팅'이라는 키워드를 연재하는 박천석 FM컨설팅 전무이사는 컨설턴트를 의사에 비유한다. 사람이 건강을 지키기 위해 의사를 찾듯, 기업에도 컨설턴트는 꼭 필요한 존재라는 뜻이다.
박 이사에게 컨설턴트의 입장에서 한국 정부를 컨설팅해달라고 물었다. 그는 지도자 한 명이 들어온다고 조직이 하던 일이 완전히 바뀌는 것은 좋지 않다고 말했다. 소통 또한 혁신을 위한 중요한 재료라고 답했다.
박 이사는 LG전자와 LG필립스LCD(현 LG디스플레이)의 혁신팀에서 기업 혁신을 처음 접했다. 이후 2000년 6월, 일본능률협회에 합류하면서 전문 컨설턴트로 이력을 시작했다. 지난 2004년부터 2006년 사이에는 동부그룹의 혁신을 위해 임원을 맡기도 했다. 다음은 그와의 인터뷰 전문.
▲박천석 FM컨설팅 전무이사. ⓒ프레시안 |
키워드 가이드는 예방주사
프레시안 : 왜 안정적인 대기업에서 나오셨나요?
박천석 : LG그룹 입사 당시는 연구개발 부서에 있었어요. 그런데 1년 지나서 사내에 혁신활동 붐이 일었는데, 당시 태스크포스팀(TFT)에 합류하게 되면서 혁신과 인연을 맺게 됐습니다. 일하다 보니 기업의 내부를 변화시키는 게 굉장한 매력이 있더라고요. '기왕 이 일과 인연을 맺은 건데 많은 기업을 바꿔보자' 싶어서 본격적으로 컨설턴트로 나서게 됐죠.
지금까지 열두 개 기업 정도와 일을 했습니다. 대부분 중견 기업급 이상이었습니다. 물론 다 만족스러운 성과가 나온 건 아니죠. 두산인프라코어와는 지금도 일을 하고 있습니다.
프레시안 : 지금도 이렇게 현업에서 바쁘게 뛰시는데 따로 시간을 내서 키워드 가이더로 나서신 이유가 있나요?
박천석 : 그 동안 컨설팅을 해오다 보니 아쉬웠던 게 몇 가지 있어요. 대부분 기업은 컨설턴트를 찾으면서도 정작 컨설팅을 받을 준비조차 안 된 경우가 많거든요. 또 제가 변화를 시도했음에도 원하던 만큼 결과가 안 나온 부분도 있고요. 그런 소감을 현장에 계신 분들에게 보다 잘 알려드리기 위해서죠. 앞으로 혁신 활동을 할 기업들에게 미리 예방주사를 놓아드리는 격이라 생각하면 되겠네요.
프레시안 : 피드백이 오나요?
박천석 : 대부분 '잘 읽고 있다' '고맙다' 이런 글들이 많습니다. 물론 불만도 있고요. 많은 분들이 '조금 더 구체적인 사례들을 담아달라'는 요청들을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공개해도 되겠다 싶은 정보는 최대한 많이 담으려고 합니다.
다만 이해를 해주셔야 할 게 있어요. 기업 내부 정보들을 아무래도 많이 공개하기가 어렵습니다. 최대한 많은 정보를 오픈하려고 하지만 다 알려드리진 못합니다. 이해해 주세요.
"혁신하는 기업은 위기에도 잘 대응"
프레시안 : 그런데 혁신 활동을 한다고 다 성과가 잘 나오나요? 요즘처럼 예기치 않은 어려움이 닥칠 때는 제대로 대응하기 어려울 수도 있을 텐데요.
박천석 : 혁신의 결과가 곧 경영 성과입니다. 요즘 경제 위기처럼 예기치 않은 외적 변수가 발생하면 물론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그 동안 혁신 문화가 축적된 기업들은 실적을 잘 내고 있어요. 경영 환경에 큰 변화가 온다손 치더라도 혁신 기업은 다릅니다.
프레시안 : 이제는 기업 분위기만 봐도 '이 회사는 잘 되겠구나'는 느낌이 바로 올 것 같은데요? 물론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고.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주시면 좋겠습니다.
박천석 : 그건 곤란한데…. (웃음) 아무래도 고객의 정보를 함부로 알려드리기는 조심스러우니까요. 예를 딱 두 가지 들게요. 기업명은 공개하지 않겠습니다.
먼저 A 전자회사인데요, 이 회사 경영자는 회사의 문제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 분이었어요. 그래서 어떤 부분을 손대면 조직의 성과가 확실히 나오겠다는 것도 잘 알고 계셨고요. 당연히 성과도 잘 나왔죠. 제가 이 회사 프로젝트를 1년 반 정도 했는데, 이 사이에 조직 생산성이 40% 정도 향상됐습니다.
반대의 경우도 물론 있죠. 모 재벌그룹 계열사 B라고 하죠. 이 회사는 컨설팅을 받고 싶다는 생각(needs)도 딱히 없었는데 그룹 차원에서 '우리도 뭔가 하긴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시가 내려온 경우에요. 프로젝트마다 사사건건 '그렇게 해도 과연 되겠어요?' 하는 식으로 방해만 놓더군요. 이 회사는 성과가 10%도 안 나왔어요. 컨설팅이 없어도 정상적으로 성장하는 기업 어디나 낼 수 있는 정도의 수준이죠.
프레시안 : B 회사 같은 사례가 많나요?
박천석 : 한국에서 아직은 혁신이 제대로 자리를 못 잡았어요. 남들이 하는 기법이나 유행하는 방법을 무작정 따라하고 보는 사례가 많죠. 혁신을 구조 조정으로 착각하고, 조금 해보다 금방 매너리즘에 빠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식스시그마가 한창 유행할 때 우리나라 대기업 대부분이 이 방식을 도입했는데요, 실제 성과로 연결된 건 10%도 안 됩니다. 직원들은 피로감을 느끼고 반발심만 가지죠.
한 가지 사례를 더 들죠. 역시 모 재벌그룹의 얘기인데요, 이 회사의 차기 대표가 식스시그마를 일부 계열사에 적용하기로 했어요. 그러니까 전 계열사가 자기 회사의 특성 같은 건 고려하지도 않고 다 따라하더군요. 기업 혁신이라는 게 돈이 한두 푼 드는 것도 아닌데…. 문제가 있죠.
CEO가 중요한 이유
프레시안 : 최고경영자(CEO)의 역할이 굉장히 중요할 듯 합니다. 성공하는 CEO와 실패하는 CEO에 대해 글을 쓰셨는데요, 대표적인 사례를 꼽아주시지요.
ⓒ프레시안 |
만나본 분들 중에서는 손욱 농심 회장을 꼽고 싶어요. 이론적으로 탁월할 뿐만 아니라 이를 실행하는 추진력도 뛰어나시죠. 음식료 사업의 특성상 획기적인 움직임을 보여주진 않았지만 내부의 변화 관리를 굉장히 잘 하십니다. 물론 회사 내부에는 일부 문제도 있겠지만요.
반면 모 그룹은 최고 경영자의 욕심 때문에 그룹 전체가 심각한 유동성 위기에 처했습니다. 대규모 구조 조정을 준비하고 있지요. 회사 이름은 밝히지 않겠습니다. (웃음)
프레시안 : 혁신의 성공을 위해서는 사내에 혁신 문화를 심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하셨지요. CEO가 중요한 이유도 이 때문인가요? CEO는 어떻게 조직을 이끌어야 합니까?
박천석 : CEO가 조직을 만들 때는 자기 생각을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을 혁신팀장으로 앉혀야 합니다. 그래야 경영자의 혁신 마인드가 임직원들에게도 잘 전달되고, 이게 곧 상호 간의 소통으로 발전하거든요. 그런데 대부분 기업이 이렇게 하지 않지요. 토론이 조직 내에 일어나지 않는다면 기업의 문화에 혁신이 정착되지 않습니다.
국가 혁신? 국민과 소통부터
프레시안 : '소통'이란 말이 나오니 자연스럽게 국가 경영으로 생각이 연결되네요. 최근 정부와 국민 간에도 의사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많으니까요. 정부는 국민과 원활한 소통을 위해 어떤 요소를 갖춰야 할까요?
박천석 : 기업이든 국가 경영이든 소통의 중요성은 같다고 봐요. 원만한 조직 내 소통을 위해 최고 지도자는 세 가지 사안을 지켜야 합니다.
먼저, 자기가 모든 일을 다 하려고 하면 안 됩니다. 지도자가 아무리 역량이 뛰어나도 만능이 될 수는 없죠. 이 때문에 참모가 있는 겁니다. 지도자는 적절한 조언가를 찾아서, 그의 조언을 올바르게 들을 줄 알아야 합니다.
다음으로, 나름대로 추진하고자 하는 혁신의 방법론을 통일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무리 목표가 좋다 하더라도 방법론에 있어서는 사람들의 생각이 다를 수 있거든요. 지도자의 말과 조직원의 말이 다르면 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죠. 서로가 할 수 있는 약속을 확실히 잘 잡아놓는 게 중요합니다.
마지막으로 성과가 났을 때는 과감히 조직원을 칭찬해줄 줄 알아야 합니다. 반대로 맡은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은 때로 퇴출시키기도 해야죠. 자기가 아무리 아끼는 부하라 하더라도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결단을 내릴 리더십을 갖춰야 합니다.
정부가 받아야 할 컨설팅은?
프레시안 : 마지막 질문입니다. 최근 정부 리더십의 실종과 함께 우리 사회의 가장 큰 화두가 이른바 '녹색 성장'으로 대변되는 소비 체질 개선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를 위해서도 혁신 활동이 이뤄져야겠지요. 만약 박 이사께서 정부의 혁신을 위해 프로젝트를 맡으신다면 어떻게 컨설팅해주고 싶으세요?
박천석 : 일단 정부가 가진 문제를 정확히 파악해야겠죠. 그리고 파악한 문제를 정확히 알려주는 게 제가 할 일입니다. 그래야 나라의 주인인 국민부터 대통령-참모-국회의원 등에 이르기까지 같은 문제의식을 가질 수 있으니까요.
아마 여러 가지 문제가 동시에 제기될 텐데요. 국민들이 느끼는 가장 시급한 문제부터 해결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국민이 느끼는 우선 순위와 대통령이 생각하는 우선 순위가 다를 수 있을 텐데, 그때 대통령이 관심을 가진 문제부터 해결하려 해선 안 되겠죠.
과제가 결정되면 이를 해결해야 할 텐데요. 해결을 위한 전제 조건과 제약 조건 등을 모두 고려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여당의 정책 뒷받침은 전제 조건이 될 테고, 야당의 견제는 제약 조건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런데 전제 조건만 생각하고 제약 조건을 무시해버리면 일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습니다. 예상하지 못한 또 다른 난관에 부딪힐 가능성이 높고, 이 경우 정책 대응이 제대로 되지 않는 현상이 생깁니다.
정부든 기업이든, 이런 태도 때문에 예산을 낭비하는 일이 많이 생기죠. 최고 권력자가 '(제약 조건은) 무시하고 그냥 해'라고 밀어붙여버리면 당장 혁신 활동은 추진되겠지만 그게 정착은 안 될 겁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완성한 과제가 있다면 이를 철저히 사후 추적(팔로업)하는 것입니다. 이미 끝난 일이라고 신경을 끄면 안 돼요. 정부 예를 들자면, 이전 정부가 해놓은 일은 무조건 무시해버리고 새로 하는 일만 신경 쓰면 일이 어려워집니다. 과거의 사례에서 배울 건 배우고 반성할 건 반성하는 자세가 필요하죠.
프레시안 : 모범적인 사례가 있을까요?
박천석 : 잭 웰치 전 회장이 요즘 들어 비판의 대상이 되고는 있지만, 그래도 GE가 이런 내부 팔로업 문화를 잘 구축했죠. CEO가 누가 들어오든 관계없이 회사는 잘 굴러가도록 만든 원동력입니다.
기업이든 국가든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CEO나 대통령 하나로 인해 조직 전체가 흔들려서는 곤란하죠. 새로 들어온 사람이라고 해서 국가의 일을 정부의 일로 이해하면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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