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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질 사업주' 될 것을 선동하는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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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질 사업주' 될 것을 선동하는 정부"

[법률가들이 밥을 굶는 이유] 9년 전 나의 첫 의뢰인, 그리고 변하지 않은 것

지금부터 약 9년 전인 2000년 6월 경, 나는 한 파견 노동자를 만났다. 그 파견 노동자는 자신의 머리에 "파견철폐"라는 네 글자를 새기고 있었다.(실제로 그는 "파견법 철폐"라는 글자를 새기고 싶었으나 머리가 작아 네 글자밖에 새길 수 없었다고 한다.)

그와 동료 노동자들이 장기간 일해 왔던 방송국에서 해고된 것은 바로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 시행된 지 2년이 다 되어갔기 때문이었다. 당시 방송국은 "파견법 제6조 제3항 때문에 2년 이상 파견 노동자를 계속 사용하게 되면 방송국(사용사업주)이 직접 고용하여야 하므로 파견법이 시행된 후 2년이 되는 2000년 7월 1일이 되기 전 그동안 계속 사용해왔던 파견 노동자를 전부 해고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었다.

바로 "파견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법" 때문에 보호를 받아야 할 파견 노동자들이 무더기로 해고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해고된 파견 노동자들은 방송국을 상대로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제기하였고, 내가 노무사로서 맡게 된 첫 의뢰인들이 되었다. 당시 나와 의뢰인들은 노동위원회의 한 공익위원으로부터 "파견법 6조 3항이 적용되는 2년이 되기 전에 회사가 파견노동자들을 해고하는 것은 노동위원회로서는 어쩔 수 없다. 국회(!)에서 파견법을 이렇게 만들었으니 따지고 싶으면 국회로 가라!"는 충고 아닌 충고를 들어야 했다.

결국 나의 첫 사건은 패소로 끝이 났다. 그러나 그 파견노동자는 해고와 패소에도 굴하지 않고 노동조합을 결성한 후 자신과 같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발생되지 않도록 끈질기게 싸웠다. 결국 2004년 7월 그를 해고했던 방송국에 끝내 복직했다. 그는 복직된 이후에도 지금까지 비정규직 철폐를 위해 투쟁하고 있다. 나의 첫 의뢰인이었던 그 파견 노동자가 바로 "필승 주봉희!"라는 다큐멘터리로 유명한 방송사비정규직노조 주봉희 위원장이었다.

시간이 흘러 2006년 경, 비정규직은 우리 사회에서 더욱 확대되었다.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사회적 문제가 되었고, 우리 사회는 소위 비정규직법 제정을 둘러싼 여러 가지 논란으로 뜨거웠다. 당시 민주노총과 진보정당은 비정규직을 사용할 수 있는 사유를 제한하고 상시적으로 필요한 업무에 대하여 "상시고용의 원칙"과 "직접고용의 원칙"을 명확히 하자고 요구했지만 당시 정부와 기성 정당들은(지금의 한나라당과 민주당 모두가) 들어주지 않았다. 그저 사용자에게 비정규직을 자유롭게 사용하도록 허용하되 단지 그 사용기간을 2년으로 제한하고 비정규직 차별시정제도를 형식적으로 도입한 현재의 비정규직법은 그렇게 통과됐다.

그 당시 노동계는 파견법의 전례를 언급하며 "사용기간 만을 제한할 경우 2년 주기로 비정규직들은 주기적으로 해고될 수밖에 없다"며 근본적인 대책마련과 함께 비정규직법 재개정을 주장했다. 그러나 정부는 소위 "선의(善意)의 사용자!"를 주장하면서 "앞으로 2009년 7월에 많은 기업들이 해고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인식이다. 기업들도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이 없어지기 시작하면 굳이 노동자 교체에 소요되는 비용을 감수하기보다는 숙련된 비정규직을 정규직화 해서 계속 사용할 것"이라고 노동계의 비판을 일축한 바 있다.

▲ 배동산 노무사. ⓒ프레시안

그리고 또 시간이 흘러 2009년 6월의 오늘, 우리는 비정규직법 시행 2년을 앞두고 있다. 정부와 한나라당은 비정규직법 시행을 2년 앞둔 지금 법을 개정하여 비정규직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늘리지 않는다면, 또는 비정규직법의 시행시기를 유예하여 비정규직을 자유롭게 사용하게 하지 않는다면 비정규직들의 대량실업이 발생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심지어 "해고대란! 해고폭탄!"과 같은 자극적인 표현까지 서슴지 않는다.

그런데 그 정부와 여당은 비정규직법이 통과된 이후 2년여 동안 과연 무엇을 하였던가? 비정규직법을 통과시키기 위해 "선의(善意)의 사용자"를 주장하였던 정부가 지난 2년 여 동안 "사용자들을 착하게 만들기 위하여" 어떤 노력을 하였던가? 시간이 흘러서 기억이 나지 않기 때문일까? 지금 정부와 여당은 불과 2년여 만에 "악의(惡意)의 사용자" 때문에 비정규직법을 개악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아니, 오히려 정부는 기업들에게 "악의(惡意)의 사용자가 될 것"을 선동하고 있다.

시간은 많이 흘렀다. 나도 많은 것을 잊고 지내고 있었고, 9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노동법(勞動法)이라는 것을 붙들고 노무사로서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하루 단식을 하고, 또 국회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면서 들고 있었던 "법(法)은 사람을 살리는 것이어야 합니다!"라는 문구가 9년 전 나의 첫 의뢰인들이 느꼈을 절망감과 겹쳐지면서 나에겐 너무나 무겁게 다가온다.

- 잠자리에 들면서 행복한 상상을 해 보았다. '4대강 살리기'에 소요되는 22조 원이면 정부가 얘기하는 '실업이 예상되는 100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1인당 2200만 원씩 돌아가는데, 그 돈이면 비정규직 모두 정규직화하고 질 좋은 일자리 많이 만들 수 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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