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는 심각한 민주주의의 위기를 경험하고 있다. 이대로 간다면 머지않아 친일과 독재의 역사가 온전히 되풀이되고 말 것 같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의 독재를 끝내고 민주화의 길을 연 것은 1987년의 6월 항쟁이었다. 6월 항쟁은 1987년 6월 10일에 시작되었다. 그것을 기념해서 매년 기념행사가 열린다. 전두환과 그 일당이 여전히 엄청난 호사와 권력을 누리고 있는 가운데 열리는 6월 항쟁 기념행사는 우리의 민주화가 '취약한 민주화'라는 사실을 웅변적으로 증명해준다.
친일과 독재에 뿌리를 둔 '보수 세력'은 6월 항쟁을 그야말로 증오한다. 그러나 '보수 세력'이라고 해도 대놓고 민주주의에 반대하거나 6월 항쟁을 무시할 수는 없다. 그래서 그 대신에 '보수 세력'은 6월 항쟁의 의미를 훼손하거나 변형하려고 한다. 이명박 대통령의 6·10 기념사도 그 한 예가 될 것이다.
그는 "민주주의가 열어놓은 정치 공간에 실용보다 이념, 그리고 집단 이기주의가 앞서는 일들이 종종 벌어지고 있다",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법을 어기고 폭력을 행사하는 모습도 우리가 애써 이룩한 민주주의를 왜곡하고 있다"고 말했다. 도대체 이것은 누구에 대해 퍼붓는 비난인가? '빨갱이 병'에 걸려서 폭력을 일삼는 '보수 세력'에 대한 비난인가? 쇠몽둥이로 무장하고 시민들에게 무차별적으로 폭력을 휘두르는 경찰에 대한 비난인가?
아닐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6·10 기념사는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의 문제를 지적하고 바로잡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거리로 나선 수많은 시민들에 대해 퍼붓는 비난일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애써 이룩한 민주주의를 왜곡하고 있다'는 주장이 특히 눈길을 끈다. '우리'는 도대체 '누구'인가? 이명박 대통령이 민주주의를 위해 애쓴 사람인가?
그는 민주주의를 위해 애쓴 사람들을 '빈둥빈둥 놀면서 혜택을 입은 사람들'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리고 그는 이제 본격적으로 민주주의를 왜곡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지 않은가? 이런 상황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은 독재에 대한 우려를 밝혔다. 이에 대해 한승수 총리는 민주국가라며 맞섰다. 그러나 그는 전두환의 국보위 위원 출신이 아닌가? 그가 과연 민주주의에 대해 말할 자격이 있는가?
'보수 세력'은 김대중 전 대통령은 '빨갱이'로, 노무현 전 대통령은 '뇌물범'으로 낙인찍기로 작정한 것 같다. 이렇게 해야 자신들의 권력 기반을 다지고 언제까지나 권력을 장악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로 말미암아 시민들이 사실을 알게 되자 '보수 세력'은 '빨갱이' 노래에 이어서 '뇌물범' 노래로 전국을 시끄럽게 하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잘못된 검찰의 수사에 맞서서 목숨을 버리자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은 깊은 애도의 뜻을 밝혔다. 그러나 '보수 세력'의 속내는 아주 다른 것 같다. 그들의 발언으로 그들의 속내를 잘 알 수 있다.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의 속내는 과연 여기서 얼마나 다른가?
한나라당의 주성영 의원은 이미 여러 차례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사람이다. '촛불'에 대한 그의 황당한 비난은 '대구 밤 문화'에 대한 불쾌한 기억을 다시금 떠올리게 하기도 했다. 그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에 대해서도 엄청난 주장을 했다. BBK 수사와 관련된 '검찰에 대한 업보', 막부시대 사무라이에 빗댄 '무모한 승부수'로 비난한 것이다. 정말 해도 너무 한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주성영 의원은 4일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피의 사실 공표 문제는 국민의 알권리하고 직결돼 있다"면서 "이명박 대통령 당선 전 BBK 김경준 씨 문제를 놓고 되짚어 보면 노 전 대통령이 검찰 수사에 대해서 불평을 토로하고 왜 이런 수사를 강하게 하지 않느냐는 쪽으로 얘기한 것으로 국민들은 받아들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주 의원은 이어 "그때는 여당인 민주당 쪽에서 왜 수사를 지지부진하게 하느냐, 수사한 내용을 왜 국민 앞에 밝히지 않느냐고 했다"면서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하면, 노무현 전 대통령이 BBK 수사에서 한 검찰에 대한 그러한 업보로 이번 일이 이뤄진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노컷뉴스>, 2009년 6월 4일, 이재기 기자)
한나라당 주성영 의원은 9일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와 관련, "일국의 최고 권력자를 지낸 사람이 가족들이 부정한 돈을 받은 게 부끄러워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며 "이는 자신만의 도피일 뿐이고 지극히 개인적인 냉혹하고 무모한 승부수일 뿐"이라고 말했다.
주 의원은 이날 자신의 홈페이지에 `국민은 민주당과 진보진영의 위선을 알게 됐다'는 제목의 글을 올려 "노 전 대통령은 조국을 위해 자신을 던지고 적의 흉탄에 숨진 이순신 장군이 아니다"며 "막부시대 사무라이도 아니고 이 얼마나 두렵고 잔혹한 선택인가"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2009년 6월 10일, 정윤섭 기자)
이명박 대통령의 측근인 김대식 민주평통 사무처장은 대학 교수들의 시국 선언을 강력히 비난하고 나섰다. 그에게는 민주주의의 위기를 우려하는 대학 교수들의 시국 선언이 한갓 '정치적 반전'을 노린 행태로만 보이는 모양이다. 더욱이 그는 이 발언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을 '뇌물범'으로 명확히 규정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측근들이 모두 이런 사람들이라면 이명박 대통령이 현실을 올바로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김대식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민주평통) 사무처장이 5일 "현재 대한민국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정치적 반전 기폭제로 삼으려는 세력들이 있다"면서 최근 서울대 등 일부 대학교수들의 잇따른 시국 선언을 비판했다.
김 처장은 이날 제주 KAL호텔에서 열리는 전국대학교 학생처장협의회 하계 세미나에 앞서 미리 배포한 발언문에서 "이 시대의 지성인 서울대 교수들이 노 전 대통령 사건의 실체적 진실은 은폐하고, 도덕적 판단도 하지 않은 채 현 정권을 공격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라면서 이같이 밝혔다. 김 처장은 이어 "노 전 대통령은 다른 전직 대통령에 비해서는 적다지만 엄청난 검은 돈을 받고 국민들을 실망시켰다"고 주장했다. (<문화일보>, 2009년 6월 5일, 신보영 기자)
한국의 민주화가 '포위된 민주화'로서 '취약한 민주화'일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아주 잘 보여주는 사건이 일어났다. 한나라당의 강연회에서 송대성 세종연구소 소장이라는 자가 강연이랍시고 그야말로 '보수 세력'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주장을 했던 것이다. 그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조문한 수백만 명의 시민들을 격렬히 비난했을 뿐만 아니라 아예 '애미 애비'라는 비속어까지 써가며 거칠게 욕설을 퍼부었다.
송대성 세종연구소 소장은 강연을 시작하면서 대뜸 "내가 잘 아는 분이 전국에서 수백만 명이 조문했다는 얘기를 듣고 도대체 이게 무슨 현상인가 싶어 덕수궁 담 옆에 의자를 놓고 이틀에 걸쳐 하루 4시간씩 치밀하게 봤다"고 운을 뗐다. 송 소장은 이어 "검은 옷 입은 한 사람이 한바퀴 돌고 또 돌고 해서 5번씩 돌더라. 지 애미 애비가 돌아가셨어도 그렇게 할까라고 그러더라"고 말했다. 그는 또 "봉하 마을에 하루에 20만 명이 왔다는데 40인용 버스로 따지면 5000대가 오는 것"이라며 "작은 골짜기가 어떻게 되겠냐"고도 했다. (<한국일보>, 2009년 6월 5일, 박민식 기자)
김동길 연대 명예교수도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사실 그는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자살하거나 감옥에 가야 한다고 주장했던 사람이다. 결국 노무현 전 대통령이 죽었고, 수백만 명의 시민들이 조문을 했다. 그는 이것이 너무나 못마땅했다. 그래서 '노 씨 분향소'를 철거하고 시민들을 강력히 진압해야 한다는 글을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렸다. 겉으로는 노신사 차림을 하고 있어도 이보다 더 험악할 수가 없다.
김동길 연세대학교 명예교수가 6일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글을 통해 "무법천지가 돼도 그대로 내버려 두는 게 민주정치이냐"며 "분통이 터지기 일보직전이다"고 밝혔다. (…) 김 교수는 또 "서울시청 앞 잔디밭에는 군중이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것이 정부의 방침이라면 아무도 못 들어가게 해야죠. 대한문 앞에 설치된 죽은 노 씨 분향소를 경찰이 철거하기로 했으면 철거해야죠. 치안을 위해 일선에 나선 경찰이 두들겨 맞는 것을 그대로 보고만 있습니까.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경찰청장에게 도의적 책임을 지고 물러나게 하는 나라, 누가 목숨을 걸고 이런 나라를 지키려 하겠습니까"라고 덧붙였다.
김 명예교수는 앞서 지난 1일에도 홈페이지를 통해 "부정과 비리에 연루돼 검찰의 조사를 받던 전직 대통령이 자살한 그 순간부터 성자가 되는 그런 나라가 지구상에 어디에 있겠는가"라는 발언을 한 바 있다.
이보다 앞서 노 전 대통령 투신 서거 전에는 "(노 전 대통령은) 국민에게 사과하는 의미에서 자살을 하거나 재판을 받고 감옥에 가는 수밖에 없겠다"는 글을 올려 많은 논란을 일으켰다. (<아시아경제>, 2009년 6월 6일, 조인경 기자)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도 노무현 전 대통령을 대단히 싫어한 사람이다. 그는 이천의 냉동 창고에서 화재가 나서 많은 사람들이 죽었을 때도 노무현 전 대통령 때문이라고 주장해서 시민들의 비판을 받았었다. 당시 이천시장, 경기도지사, 이천의 국회의원이 모두 한나라당이었다.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정치 보복'에 대한 의혹을 정면으로 부인하고 '포괄적 뇌물 수수'에 관한 검찰의 수사는 정당했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8일 열린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한나라당과 민주당 원내대표가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수사 책임과 국정조사 요구 등을 놓고 격돌했다.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가 정치 보복으로 인한 것이라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다'며 "처음부터 기획된 것이 아니라 박연차 사건에 대해 노무현 정권 말기부터 첩보에 의해 수사를 하다가 (노 전 대통령 관련) 비리 의혹이 터진 것"이라고 말했다.
안 원내대표는 "600만 불 수수가 포괄적 뇌물 수수 아닌가 하는 부분은 검찰의 정당한 수사"라며 "이명박 정부의 정치적 보복이고, 대통령이 사죄해야 한다는 것은 서거를 정략적으로 이용하는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오마이뉴스>, 2009년 6월 9일, 안홍기 기자)
이런 주장들에서 우리는 '보수 세력'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를 전혀 슬퍼하지 않고 있으며, 그를 '뇌물범'으로 명확히 규정하고 있다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 '보수 세력'에게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조문은 작년의 촛불 집회처럼 선동과 괴담에 속은 바보들이 벌이는 정치 쑈인 것이다. 검찰의 참으로 황당한 수사결과 발표는 이런 '보수 세력'의 의지를 이해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12일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의 수사 결과 발표로, 지난해 7월 태광실업에 대한 세무조사로부터 시작된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과 그를 둘러싼 로비 의혹 수사가 막을 내렸다.
이날 검찰의 수사 결과 발표는 노 전 대통령 서거 뒤 쏟아진 비난에 대해 해명하는 성격이 강했다. 13쪽짜리 발표문 중 5쪽이 여기에 할애됐다. 하지만 검찰의 책임을 조금이라도 인정하는 내용은 단 한 줄도 찾아볼 수 없었다. 검찰은 우선 노 전 대통령 사건을 내사 종결(공소권 없음) 처리했다고 밝히며, "사생활 공개나 명예훼손 우려가 높다"는 이유로 구체적 증거 관계는 공개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다만 이번 사건에 관한 역사적 진실은 수사기록에 남겨 보존된다"고 했다. 또 박 전 회장이 640만달러를 노 전 대통령에게 건넨 혐의도 함께 내사 종결 결정을 했다.
하지만 검찰은 "박 전 회장의 자백과 이를 뒷받침하는 관련자 진술과 송금자료 등 제반 증거에 의하면 피의 사실은 인정된다"고 강조했다. 박 전 회장을 통해 결국 노 전 대통령의 뇌물수수 사실도 인정된다는 수사팀의 입장을 우회적 방식으로 분명히 한 것이다. (<한겨레>, 2009년 6월 12, 석진환 기자)
검찰은 노무현 전 대통령을 결국 '뇌물범'으로 규정했다. 그렇다면 정말 이 나라는 큰 문제를 안고 있는 나라가 아닐 수 없다. 도대체 어느 나라가 '뇌물범'의 장례를 '국민장'으로 치른다는 말인가? 이명박 대통령은 '뇌물범'의 장례를 국민장으로 치르고 조문한 것에 대해 국민에게 즉각 해명하고 사과해야 할 것이다. 아무런 증거도 제시하지 않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뇌물범'으로 규정함으로써 검찰은 노무현 전 대통령을 '확인 사살'하고 말았다. 검찰은 이토록 무도한 '확인 사살'을 감행할 수 있도록 한 증거를 즉각 공개해야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확인 사살'까지 해 놓고도 증거를 공개하지 않는다면, 검찰은 '정치 보복'을 위한 '청부 수사'를 했다는 비판을 언제까지고 받게 될 것이다. 2009년 6월 12일은 '정치 검찰의 날'로 역사에 남을 것이다.
전두환의 호사와 노무현의 죽음이 극명하게 대비되는 6월 항쟁 22주년이었다. 학살과 부패의 원흉은 여전히 엄청난 호사와 권력을 누리고 있는 데 그의 문제를 가장 명확하게 밝혔던 정치인은 절벽에서 몸을 던져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 나라의 기형성을 이보다 더 극명하게 보여주는 대비는 없을 것이다.
'보수 세력'은 전두환에 대해서는 찬가를, 노무현에 대해서는 망가를 부른다. 이보다 '보수 세력'의 문제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은 없을 것이다. 도대체 왜 '뇌물범'의 장례를 '국민장'으로 치렀는가? 검찰은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에게 따져야 한다. 그리고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은 이 잘못에 대해 즉각 국민에게 해명하고 사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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