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물연대와 대한통운은 전날 밤 늦게까지 최종 협상을 벌였지만 결렬됐다. 마지막 걸림돌은 합의서 서명 주체로 화물연대를 인정할 것인지 여부였다. 당초 원인이 됐던 대한통운의 계약 해지된 택배 기사 문제는 손쉽게 의견 접근을 이뤘다. 그러나 화물연대와 함께 나란히 서명하는 것에 대한 대한통운의 부담과 '그건 안 된다'는 노조의 원칙이 부딪히며 결렬된 것.
결국 특수고용 노동자의 노동3권 보장 여부가 이번 사태 해결의 최대 걸림돌이 된 셈이다. 특수고용자의 노동권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현 정부의 정책 기조라는 점에서, "파업을 부추긴 정부의 책임"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 화물연대와 대한통운은 10일 밤 늦게까지 최종 협상을 벌였지만 합의를 이루지 못했다. 마지막 걸림돌은 합의서 서명 주체로 화물연대를 인정할 것인지 여부였다. ⓒ뉴시스 |
"내용 합의 다 해놓고 '화물연대'는 안 된다며 결렬?"
당초 화물연대의 핵심 요구 사항은 계약 해지된 대한통운 택배기사들의 복직이었다. 이는 고 박종태 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유기도 했다. 여기에 덧붙여 화물연대는 △노동기본권 보장 △화물연대 인정 △노동 탄압 중단 △운송료 삭감 중단 등의 요구 사항을 내걸었다.
양 측은 10일 있었던 협상에서 첫 번째 요구 사항에서는 어느 정도 합의를 이룬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정작 걸림돌은 엉뚱한 데서 나왔다.
대한통운 측은 총파업 첫 날인 11일 "회사는 개인택배사업자의 원직 복귀를 보장했다"며 "화물연대가 일개 기업 차원에서 해결할 수 없는 특수고용직 문제, 화물연대 인정 등 정치적인 차원의 요구를 확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교섭 주체로 화물연대를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대신 대한통운은 "계약해지자 대표를 서명 주체로 하자"고 말했다.
그러나 화물연대 역시 물러설 수 없는 부분이었다. 화물연대의 존립 여부가 달려 있는 상징적 사건이기 때문이다. 화물연대는 "그동안 14번의 교섭에서 서명 주체를 놓고 대립해 왔다"며 "대한통운이 화물연대와 대화하면서 서명 주체로 인정하지 않는 것은 대한통운 이름을 한국통운이라고 바꾸라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비판했다.
"전에는 우리랑 단협도 해놓고…MB가 뒤에 있다"
특수고용 노동자의 노동기본권 보장 문제는 오래된 논쟁 거리다. 형식상 개인사업자라 하더라도 실제로는 회사에 속한 노동자로 봐야 하며, 따라서 노동권을 보장해줘야 한다는 것이 노동계 주장이다. 그러나 재계는 '절대 안 된다'는 입장이다.
이처럼 그간 화물연대와 건설노조 가운데 레미콘 기사 등 일부의 조합원 자격을 놓고 늘 정부와 노동계가 대립해 왔다. 그러나 당장 법으로 노동3권을 보장해주겠다는 약속을 하라는 것도 아닌데, 합의서 서명자의 이름을 놓고 최종 합의가 결렬된 사태는 초유의 일이다.
화물연대가 "대한통운이 과거에 화물연대와 단체협약을 맺은 바 있음에도 이제와 서명 주체로 인정 못하겠다는 것은 국토해양부 등 정치적 배후를 등에 업은 억지"라고 주장한 까닭이다.
실제 7년 넘게 사실상의 노조로 활동해 온 화물연대가 그 존재 자체에 위협을 느끼기 시작한 것은 현 정부 들어서다. 노동부는 지난해 말 화물차 노동자는 개인사업자라며 노동조합 자격이 없으니 시정하라는 명령을 한 바 있다. 화물연대를 배제하지 않으면 상급단체인 운수노조까지 불법 노조로 규정하겠다고 '협박'하기도 했다. 화물연대의 '의혹'은 그런 점에서 설득력이 있다.
민주노총(위원장 임성규)도 이날 성명을 내고 "대한통운이 화물연대를 교섭 주체로 인정하지 않는 데는 이명박 정부의 반 노동정책이 작용하고 있다"며 "끊임없이 특수고용 노동자의 노동기본권을 부정해 온 정부 때문에 합의서에 '화물연대' 네 글자를 못 넣겠다며 노동자를 파업으로 내몬 것"이라고 비판했다.
▲ 화물연대는 사태가 해결되지 않으면 오는 13일 전 조합원 상경 투쟁을 벌일 계획이다. ⓒ뉴시스 |
정부, 속사정은 '모르쇠'하고 '엄정 대처'만 되풀이
이런 속사정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점잖게 '엄정 대처' 입장만을 되풀이했다. 검찰은 김달식 본부장 등 주요 간부를 체포해 구속한다는 방침이다. 정부도 참여하는 사람에게 유가보조금 지급을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국토해양부는 그러면서도 현재까지 별다른 운송 차질은 없다고 밝혔다. 화물연대 추산 결과 4000명의 조합원이 첫날 파업에 참여했지만, 비조합원 가운데 참여자가 그리 많지 않은 탓으로 해석된다. 화물연대는 사태가 해결되지 않으면 오는 13일 전 조합원 상경 투쟁을 벌일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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