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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의 '盧 전 대통령 수사', 무엇이 문제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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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검찰의 '盧 전 대통령 수사', 무엇이 문제였나?

피의사실 공표해 망신주기, 시간끌며 벼랑끝 내몰기

지난달 10일 경 형형색색의 '빨대' 한 상자가 "검찰 수사에 방해가 된 빨대를 찾을 수 있기 바란다"는 내용의 편지와 함께 대검 중수부에 소포로 배달됐다. 노 전 대통령과 가족, 주변인사들에 대한 확인되지 않은 의혹이 검찰발 기사로 언론을 통해 무작위로 유포되자 이에 항의하는 경북의 한 시민이 보낸 것이다.

지난 4월 23일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이 노무현 전 대통령 부부에게 1억원 상당의 명품시계 2개를 선물했다는 보도가 나오자 홍만표 대검수사기획관은 "만일 검찰이 그런 사실을 흘렸다면 인간적으로 형편없는 사람이다. 나쁜 빨대"라며 유출자 색출을 공언했다. 그러나 유출자 색출은 커녕 이후 한 방송사는 "권 여사가 노 전 대통령 회갑 선물로 받은 1억원 짜리 명품시계 두개를 논두렁에 버렸다고 진술했다"고 보도했다.

또한 노 전 대통령 측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딸 정연 씨가 미국 뉴저지주의 고급 아파트를 계약과 관련해 "계약서를 찢어버렸다"는 진술이 보도되는 등 검찰 수사는 실시간으로 생중계됐다. 이미 사실로 굳어 이상, 노 전 대통령 측의 해명은 설 자리가 없었다.

이런 보도가 나오기 전, 검사 출신으로 법무부장관을 지낸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조차 "검찰이 단정적인 발표를 하고 필요하면 더 해야지 당사자의 진술이 자꾸 뒤집히는 경향이 있어 검찰 수사에 신뢰성이 떨어진다"면서 "이런 수사방식은 처음봤다"고 '브리핑 수사방식'에 대한 위험성을 경고했다.

피의사실 공표, 이번에는 단죄 되나?

민주당이 2일 이인규 중수부장, 홍만표 수사기획관, 우병우 중수1과장을 피의사실공표 혐의로 검찰에 고발함으로써 검찰의 사법적 책임이 도마에 올랐다.

현행 형법 제126조에는 "검찰, 경찰, 기타 범죄수사에 관한 직무를 행하는 자 또는 이를 감독하거나 보조하는 자가 그 직무를 행함에 당하여 지득한 피의사실을 공판청구 전에 공표한 때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한다"고 명백히 규정돼 있다.

그러나 국민적 관심도가 높은 주요 사건인 경우 '국민의 알권리' 차원에서 수사 전개 상황을 수시로 브리핑하는 것이 관례였고 대법원도 이를 어느 정도 인정하고 있다. 특히 피의자가 공인인 경우 피의사실 공표에 대한 허용치는 더욱 높았다. 노 전 대통령에 대한 '브리핑 수사방식'의 폭력성에 대한 지적에 대한 일각의 반론 중에는 노 전 대통령이 공인이라는 점을 강조하기도 한다.

그러나 피의자가 공인이라고 할지라도 수사 내용 발표는 수사가 진척돼 의심의 여지 없는 확증을 확보 했을 때에 국한된다는 게 법조계의 시각이다. 대법원의 판례는 이를 뒷받침한다.

대법원은 헌법의 '무죄추정의 원칙', 형법 제126조 등을 근거로 "피의사실 공표행위는 공권력에 의한 수사결과를 바탕으로 한 것으로 국민들에게 그 내용이 진실이라는 강한 신뢰를 부여함은 물론 그로 인해 피의자나 피해자 나아가 그 주변 인물들에 대해 치명적인 피해를 가할 수도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수사기관의 발표는 원칙적으로 일반 국민들의 정당한 관심의 대상이 되는 사항에 관해 객관적이고 충분한 증거나 자료를 바탕으로 한 사실 발표에 한정돼야 한다"고 단서를 달았다.

대법원은 또 "무죄추정의 원칙에 반해 유죄를 속단하게 할 우려가 있는 표현이나 추측 또는 예단을 불러일으킬 우려가 있는 표현을 피하는 등 그 내용이나 표현 방법에 대해도 유념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검찰은 노 전 대통령을 소환한 4월 30일에도 "노 전 대통령의 혐의사실을 소명할 자료가 충분하고 필요한 조사는 이뤄졌다"는 등 일반 사람들에게 노 전 대통령의 유죄를 확신토록 할만한 브리핑을 했다.

이에 따라 과연 노 전 대통령의 서거라는 충격적 사건과 직접적 관련이 있는 검찰의 피의사실 공표 행위가 처벌될지 관심이다. 하지만 민주당 최문순 의원이 법무부로부터 제출 받아 2일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5년간 피의사실공표 혐의로 검찰의 기소가 이뤄진 사례는 단 한 건도 없었다.

2005년부터 2009년 4월까지 총 116건의 피의사실공표 관련 고소·고발 등 사건 접수가 있었지만 36건이 '혐의없음', 28건이 '각하' 등의 결정을 받았을 뿐 기소는 물론 자체 징계처분을 받은 사실도 전혀 없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피의사실공표에 관한 검찰의 기소가 거의 없었다는 것은 대법원 판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형법 제126조에 관한 대법원 판례가 3건 등록이 돼 있는데 모두 민사상 손해배상청구 소송에 대한 판결이었다.

▲ 5월 1일 새벽 검찰 소환 조사 뒤 웃으며 귀가하고 있는 故 노무현 전 대통령. ⓒ연합뉴스
盧 소환조사 후 20여일 간 무얼했나?

노 전 대통령 서거의 또다른 원인으로는 검찰이 소환조사 뒤 20여일이 넘도록 노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 불구속을 결정하지 못한 점이 지목된다. 그 사이 언론에는 지속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피의사실이 흘러나와 전직 대통령을 망신주는 행태가 반복됐다. 이것이 노 전 대통령의 비극적 결단의 한 배경이라는 비난 여론을 감안할 때 이 기간 검찰의 모호한 태도의 배경은 반드시 밝혀내야 할 부분이다.

표면적으로는 정연 씨의 주택구입 자금 의혹 등 새롭게 불거진 의혹이 있어 이에 대한 수사를 진행하느라 검찰이 신병처리를 미룬 것으로 알려졌으나, 노 전 대통령의 혐의를 입증할만한 '확실한 물증'을 확보하지 못해 시간을 끌었다는 게 정설이다.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소환 조사 직후 검찰이 금방 신병 처리 여부를 결정할 것처럼 하더니 3주간이나 결정을 미룬 이유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는 것이다.

지난달 7~8일 "국정원이 검찰에 노 전 대통령 불구속을 종용했다"는 <조선일보>의 보도도 새롭게 주목된다. 이 때는 노 전 대통령이 검찰에 소환된 지 일주일이 지난 시점으로, 검찰의 시간끌기가 서서히 도마에 오르던 때였다.

<조선일보>는 5월 7일 검찰 관계자들의 말을 빌어 원세훈 국정원장이 극비리에 국정원 직원을 검찰 고위 관계자에게 보내 "국정원장의 뜻"이라며 "노 전 대통령에게 구속영장을 청구하지 말고 불구속 기소하는 선에서 신병처리를 마무리 짓는 게 좋지 않겠느냐"고 했다고 보도했다.

보도가 나간 직후 국정원은 "사실무근"이라고 펄펄 뛰었지만, <조선일보>는 다음 날 바로 "원세훈 국정원장이 부하 직원을 시켜 노 전 대통령에 대한 불구속 기소 메시지를 전한 대상은 이인규 대검 중수부장인 것으로 전해졌다"며 재반박했고, 날짜도 4월 21일로 특정하는 등 사실관계 입증에 자신감을 보였다.

이와 같은 보도 내용이 만약 사실이라면, 국정원은 불구속 기소 메시지를 보냈고 수사팀 등 검찰은 구속 기소 주장으로 맞서면서 결론이 유보됐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이처럼 검찰의 시간끌기에 권력기관 내부의 갈등과 청와대의 입장이 뒤엉킨 배경이 있었다면, '표적 수사'의 종착점을 둘러싼 권력기관 내의 혼선이 노 전 대통령을 벼랑끝으로 내몰았다는 얘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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