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금융권에 따르면 43개 주채무계열(대기업 그룹) 중 금호아시아나·동부·동양메이저·애경·GM대우·대한전선·대주·하이닉스·유진 등 9개 그룹이 재무구조개선 약정 대상으로 선정됐다.
마감시한인 지난달 31일까지 금호아시아나그룹을 제외한 8개 대기업이 주채권은행과 약정을 체결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금호 측은 추가 협상을 진행 중이다. 재무구조 개선 대상에서는 제외됐으나 항공계열사를 보유한 A그룹과 중공업그룹으로 성장한 B그룹 역시 유동성 확보를 위한 자구책 마련에 들어간 상태다.
매물 쏟아질 듯
당초 시장에서 유동성 불안 기업으로 거론되던 곳들이 전부 포함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들 그룹들은 앞으로 핵심 계열사·보유 부지·유휴설비 등을 매각해 유동성을 확충하게 된다.
알짜 회사가 줄줄이 시장에 나올 것으로 보인다. 동부메탈·동부저축은행 등이 매물로 이미 확정됐거나 거론되는 상황이고, 동양생명보험 등 일부 금융사 지분 역시 거래 대상이 됐다. 여러 공장부지도 시장에 대형 매물로 속속 나오고 있다.
현재 산업은행이 주거래은행인 동부그룹과 외환은행이 주거래은행인 하이닉스 등은 최대 1조3000억 원 수준의 유동성을 확보할 방침이며 다른 그룹 역시 유동성 확보 계획이 이미 세워졌다는 평가다.
증권사 매각을 철회한 유진그룹은 다른 계열사를 매각해 차입금을 상환키로 했다. 본사의 파산이 임박한 GM대우는 미국 정부의 처리 결과에 따라 추후 구체적인 내용을 확정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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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의 가장 큰 관심은 아직 재무구조 개선약정을 맺지 않은 금호아시아나그룹에 쏠린다. 상황에 따라서는 초대형 매물인 대우건설을 인수한 지 불과 3년 만에 다시 토해낼 가능성마저 배재하기 어렵다.
금융권에 따르면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주채권은행인 산은은 재무구조 개선 방안으로 그룹 측에 '대우건설 매각 후 재매입 우선권 부여' 카드를 제시했다. 매각 가격은 현 주가 수준인 주당 1만3000원 선으로 인수 당시 가격(주당 2만6200원)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관련기사 : 대우건설, 다시 인수합병 시장에 나오나)
산은이 문제 삼은 부분은 대우건설 주가가 현 상태를 유지할 경우 올 연말 4조 원이 넘는 풋백옵션 비용 문제를 금호아시아나그룹이 떠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올 하반기에 만기가 돌아오는 채무는 대우건설 풋백옵션 외에도 약 2조 원 선에 달한다고 금융권은 추산한다. 산은 측은 그룹이 이처럼 막대한 비용을 대우건설 매각 이외의 방법으로는 장만할 수 없으리라 보고 있다.
반면 금호아시아나그룹은 금호생명과 서울고속버스터미널 지분 약 38%를 처분하고 자산유동화증권(ABS), 신주인수권부사채(BW), 교환사채(EB) 등을 발행하는 데 더해 새 재무적 투자자(FI)를 모집해 대우건설 풋백옵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금호아시아나그룹 관계자는 "제3자 FI를 유치하는 방향으로 산은과 협의 중"이라며 "산은이 제시한 대우건설 매각 가격은 터무니 없이 낮아 오히려 큰 리스크를 떠안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룹 측은 또 다른 알짜 매각 대상으로 거론된 대한통운 역시 "(매각은) 전혀 고려한 적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당장은 추가로 나올 곳 없어…이행 상황이 문제"
이처럼 동시다발적으로 대형 매물이 시장에 풀린 적은 흔치 않다. 시장에서는 한동안 지나치게 활발했던 인수합병(M&A) 후폭풍이 경제위기와 맞물려 나온 것으로 보고 있다.
한 금융권 고위관계자는 "이전 M&A 시장에서 늘어난 재무적 부담이 쌓인 결과"라며 "이전에는 기업들이 살아서 움직이는 상황이라 채권단으로서도 구조조정을 요구하기 어려웠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구조조정) 적기라고 본다"고 했다.
그는 "다만 한동안은 추가로 매물이 나올 가능성은 높지 않을 것"이라며 "앞으로 경제의 변화 추이를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앞으로 시장의 관심은 두 부문에 쏠릴 것으로 보인다. 하나는 '나오는 매물을 누가 먹을 것이냐'이며 다른 하나는 '구조조정이 얼마나 성실히 이행되느냐'는 의문이다. 우선 이번 구조조정으로 인해 재계 순위가 다시금 지각변동을 일으킬 수 있다. 구조조정에 나서는 기업은 몸집을 줄일 수밖에 없는 반면, 그 동안 체력을 비축해둔 기업은 알짜 회사를 사들일 기회를 맞기 때문이다.
실제 인수합병 시장에서는 포스코와 SK 등 내부유보율이 높은 회사가 이번 시장에 큰 손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포스코는 이미 대한전선그룹의 대한ST 인수를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상태며, 물류회사와 조선회사 인수도 고려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SK그룹은 금융업 진출을 오래 전부터 타진하고 있다는 업계의 평가가 끊이지 않는다.
구조조정의 이행 여부는 정부 당국이 직접 주채권은행을 쥐어짤 가능성이 높다. 복수의 금융정책·감독 당국 관계자 말을 종합하면 "주채권은행이 보고해오는 상황을 분기별로 체크할 것"이며 "주채권은행이 기업의 구조조정을 독려하지 않는다면 단계적 조치를 취하는 것도 고려할 수" 있다.
진동수 금융위원장은 지난 28일 한 언론사 주최 간담회에서 "기업 구조조정에 시간이 더 걸리면 국민 경제에 시스템 리스크가 될 수 있다"며 "기업재무개선지원단을 중심으로 은행의 구조조정 추진 상황을 점검하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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