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내 허기가 모기 발톱만큼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내 허기가 모기 발톱만큼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법률가들이 밥을 굶는 이유] 내가 느낀 법과 제도의 높은 벽

법률가들이 '릴레이 단식'을 하고 있다. 비정규직법과 최저임금법 등 정부가 밀어붙이는 노동관계법을 막기 위해서다. 단식에 들어가며 이들은 "법률가는 법률의 정함에 따라 사회관계를 인식하고 행동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고 밝혔다. <프레시안>은 일주일에 두 번, '사회적 정의와 양심'을 위해 단식에 참여한 법률가들의 글을 싣는다.

지난 20일, "법은 사람을 살리는 것이어야 합니다"라는 피켓을 들고 점심 시간 1시간 동안 1인 시위를 했다. 그렇다. 법은 사람을 살리는 것이어야 한다. 그런데 과연 그런가. 생각이 꼬리를 물면서 사무실에 찾아왔던 많은 사람들을 생각했다.

회사 소유의 레미콘 차량을 운전하는 나이 지긋한 50대 기사님이 있었다. 어쨌거나 자기 소유의 차량을 가지고 있는 지입차주들과 달리 이 분은 회사 차량을 정해진 시간에 운전하는 기사일 뿐이었다. 새벽에 레미콘 공장으로 출근해서 차를 타고 저녁에 공장에 차량을 주차하고 퇴근했다. 회사는 도급계약서를 쓰고 이 분에게 사업자등록증을 내 주었다. 명색이 "사장"인 기사님은 자신의 세무를 대행하는 세무사의 얼굴도 몰랐다. 그러다가 회사와 사소한 문제가 생겼고 회사는 이 분과의 도급계약을 해지했고 부당해고 구제신청에 이르게 되었다. 지노위와 중노위에서 위원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회사가 잘못했다고 했다. 하지만 결론은 "근로자가 아니므로" 각하였다.

신참노무사였던 시절, "가능성이 높다, 해보자"고 그 분을 설득했었다. "사람을 살리지 않는" 법과 제도의 높은 벽을 처음으로 절감했던 순간이었다.

▲ 공인노무사 조제희 씨. ⓒ프레시안

퇴직금에 관한 상담을 많이 하게 된다. 언제부터인지, 퇴직금을 "합법적으로" 주지 않는 것이 유행이 되었다. 1년 단위로 계약을 갱신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물론 상당수 영세사업장의 말뿐인 정규직 노동자들에게도 퇴직금이란 "퇴직"을 대비한 보장수단이 아니라 1년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지급되는 일종의 "대체 상여금"으로 변질된 지 오래다. 퇴직연금제니 뭐니 하면서 1500만 노동자의 퇴직금을 민간 금융시장에 내맡기는 방식이 아니라(더구나 지금은 전 세계적인 금융위기의 시대가 아닌가.) 노동자들의 실질적인 퇴직 대책으로서 퇴직금이 보장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야 하는 것 아닌가.

무수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비정규직법을 강행하면서 정부가 목청 높여 홍보한 비정규직 차별시정제도는 시행 2년차인 지금 썰렁하기만 하다. 차별 인정률이 5%도 안 되는 상황에서, 가까스로 인정되더라도 기껏 석달 치 임금차액을 주고 끝내버리는(그동안 과연 그 노동자의 고용은 계속 유지될 수 있을까?) 제도 운용의 현실에서 내가 무슨 배짱으로 차별시정 신청을 해보자고 내담자에게 제안할 수 있을까?

어쨌든 간에 법은 사람을 살리는 것이어야 한다. 지금의 법이 사람을 살리지 못하고 있다면 사람을 살릴 수 있도록 법을 다시 만드는 것이 정답이다. 하루 밥을 굶고 한 시간 피켓을 들고 서 있는 작은 수고가 법을 다시 만드는 데 모기 발톱만큼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잠깐의 허기와 땡볕은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