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 심야 교습 금지가 백지화되었다. 지난 4월말,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의 폭탄 발언이 있고 난 후 내가 속한 단체에서는 환영 성명서도 냈다. 누가 먼저 시작해서 이 문제가 가시화됐든 간에 이번 논란을 통해 오랫동안 끌어온 학원 심야 교습이 중단되기를 내심 기대를 했었는데 당정이 자율화를 이유로 무산시켜 매우 유감스럽다. 다른 건 몰라도 학생들의 인권, 건강권등을 생각하면 일부 부작용이 있더라도 학원 영업 시간을 제한했어야 하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은 큰 실수를 한 것이다. 학원 이해관계자보다는 학부모의 의견을 들어야했다. 학부모 대부분 학원 교습시간 연장을 반대하고 있다. 차라리 정부가 학원 시간을 적절하게 규제하고 실효성있게 단속하기를 속으로 바란 사람들도 많다.
학원 심야 교습 문제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고 지난 2000년대 초부터 2~3년 주기로 논란이 되어왔다. 한나라당이 밝혔듯 "여론조사를 해보면 국민의 70%가 심야교습 금지에 찬성하고 있다"지만 서울시의회 교육분과의 한나라당 의원들은 잊을 만하면 24시간 학원 개방을 주장해왔다. 학생들의 건강과 미래교육을 저당잡히고 학원업자 손을 들어준 것이다.
정부와 한나라당은 "획일적 규제는 바람직하지 않다"며 겉으로는 자율 정책 기조를 내세우지만 교육의 본질이 지켜지는 가운데 자율성, 다양성, 기회확대가 되어야지 어린 학생들이 밤늦게까지 학원에서 대학 입시, 문제풀이 기계로 만드는 것을 자율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시장의 자율만을 존중한다는 뜻이다. 이렇듯 세부적인 사교육비 줄이기 항목에서는 미래기획위원회와 견해차가 있어 위원장 면담 요청을 했으나 성사되지 못했다.
언론에 오르내리는 교육실세 3인방, 곽승준 위원장, 이주호 차관, 정두언 의원에게 묻고 싶다. 학원 문제를 둘러싼 당정청 간 견해차를 어떻게 좁힐 것이며, 사교육비를 어떻게 줄일 생각이며 학교마다 수억 원씩 예산을 퍼붓는 학교 학원화 정책, 서열화 정책으로 사교육비는 진짜 줄어들 것으로 생각하느냐고 묻고 싶다.
솔직히 지금 일부 학교는 방과후 프로그램 때문에 돈이 넘쳐난다. 사교육비를 줄이는 것보다 더욱 중요한 일은 학생을 교육의 중심에 놓은 것인데 지금 그들의 정책에 학생들이 존재하는 것인가? 고등학생은 야간자율학습, 0교시뿐 아니라 밤늦게까지 학원 수강하느라 척추가 휘거나 밤 1~2시에 잠자리에 들고 있다.
중학생은 35년만에 부활된 고교시험, 즉 특목고, 공립형자율고, 자립형사립고 중 대학가기 유리한 고교에 진학하려 학원가를 배회하고 있다. 초등학생 역시 국제중과 영어 몰입 교육의 열풍에 휩쓸리고 있다. 사교육비가 절대 줄어들 수 없는 상황이다. 지금도 한국 학생들의 학업 시간은 세계 최장이다.
경기도교육청의 확고한 의지
이번 학원 교습 시간 규제 백지화가 미칠 영향은 적지 않다. 우선 심야 학원 수강을 당연시하는 풍조를 낳을 것이다. 자칫하면 24시간 학원 영업 시간을 요구하는 지역도 생길 수 있다. 일부에서는 각 시도에서 조례로 규제하고 있지만 전국에 그 많은 학원을 다 규제하기는 것은 처음부터 무리가 있었다는 지적도 있다. 맞는 말이다. 다만 이번 심야 교습 금지는 사회가 가이드라인을 정해주고 일반 시민들과 학생 학부모가 그 틀안에서 사고하고 양육하도록 한다는데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규제의 실효성에 대해서도 논란이 있다. 서울 강남 지역만 해도 학원이 수백 군데인데 단속 인력은 1~2명 정도에 불과해 규제 자체가 불가능한 현실이었다. 다행히 정부가 심야 학원 교습 금지를 반대했지만 각 시도가 학원의 설립·운영 및 과외 교습에 관한 조례를 정할 수 있어 지역마다 다르다. 현재 서울시의 학원 교습은 5시에서 22시까지 가능하고. 경기도의 경우 학원의 교습시간은 초등학생은 밤 10시, 중학생은 밤 11시, 고등학생은 자정까지로 제한되어 있다. 그런데 경기도교육청은 오는 2학기부터 심야 학원 교습을 제한하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한다. 그나마 다행이다.
▲ 학원 심야 교습 금지 정책이 좌초되는 현실은 한국의 교육 개혁이 얼마나 힘든지를 단적으로 보여준 일이다. 이른바 '교육 실세' 3인방에게 묻는다. 당신들은 교육 개혁을 할 의사가 있는가? ⓒ뉴시스 |
학원의 심야 교습을 억지로 규제하면 심야 교육 수요가 새벽이나 주말로 옮겨 가고 고액 과외가 더욱 성행할 것이라는 주장도 이번 학원 심야 교습 제한을 백지화시키는 데 한몫 했다. 이른바 '얼리버드론'이다. 아침에 등교하기 전 학원 수강과 밤샘 학원 등 수요가 있을것이다. 특히 개인과외도 살아날 것으로 생각한다. 이러한 것은 학원 심야 영업을 금지해서 나타나는 현상이라기보다 현재 한국 대학입시에 모든 학생이 올인하므로 남들보다 한 시간이라도 더 공부한 학생들이 유리하다는 강박감과 고정관념에서 생기는 현상이다.
자율과 다양성이 '본때'가 나려면 학벌 문제부터 손대야
경쟁 사회 속에서 학교가 100% 교육의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학원의 도움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는 주장도 있다. 학교의 역할, 공교육의 역할에 대해 불신을 갖는 학부모들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학교에서 교육을 통해 문제풀이 교육 뿐 아니라 창의성과 잠재력과 민주시민교육, 소통력 등을 갖추어야한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지만 당장 학교에 그러한 것들을 요구하는 학부모들은 거의 없다. 대학 측에서 주입식 암기 교육위주의 시험 점수라는 한 가지 잣대로 학생을 선발하기 때문에 생긴 현상이다. 결국, 문제풀이교육에 미흡한 학교에 화살이 가게 된다. 꼬리가 몸통을 잡아 흔드는 꼴이다.
최근 정부는 공교육 강화를 위해 교과 교실을 만든다고 한다. 늦었지만 필요한 일이다. 이러한 노력들이 얼마나 실효를 거둘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명박 정부가 사교육비 줄이기에 노력하는 점은 인정한다. 그러나 학교 학원화 교육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특히 고등학교까지 무상교육이 되는 마당에 학교에 학원비를 내는 문제, 방과후까지 문제풀이에 올인하여 학력의 개념을 왜곡시키는 것으로는 21세기를 대비할 수 없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서는 학생 개개인이 존중되고 자기주도적 학습이 중시되어야 한다. 이런 교육이 중심이 되어야 학교 교육은 학원교육과 차별성이 있어 비로서 경쟁할 수 있다. 새 정부가 아무리 특목고 입시개선이 추진하고 영리기관의 학교내 영업등에 대해 공청회를 열어 의견수렴을 거친다하더라도 학원 교육의 아류가 되어서는 학부모들의 관심을 학교로 돌아오게 할 수 없다. 특히나 대학 서열 문제와 밥벌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교육은 현재로서는 관심을 받지못한다.
그러니 힘있는 한나라당, 이제라도 늦지 않았으니 이 문제에 눈을 돌려 한국 사회의 고질병인 학벌 문제에 손대어 역사에 길이 남는 정부가 되어주길 바란다. 언론에 오르내리는 실세 3인방, 곽승준 위원장, 이주호 차관, 정두언 의원 역시 명실상부한 실세가 되려면 한국 사회 뜨거운 감자인 학벌문제에 손대야 한다. 이를 외면한 교육 개혁은 변죽만을 울릴뿐이다. 학벌 문제를 포함해 교육문제를 해결할 사회적 합의를 만들고 학생 개개인이 교육의 주체가 되어 자기주도적 학습을 통해 민주시민의식과 소통능력, 잠재력과 창의력이 중심이 된 21세기 학력을 기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자율과 다양성을 본때가 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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