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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될 거야, 아마? 잘 될 거야, 우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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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될 거야, 아마? 잘 될 거야, 우린!"

[법률가들이 밥을 굶는 이유] 암담한 현실에 대한 시 한 수

법률가들이 '릴레이 단식'을 하고 있다. 비정규직법과 최저임금법 등 정부가 밀어붙이는 노동관계법을 막기 위해서다. 단식에 들어가며 이들은 "법률가는 법률의 정함에 따라 사회관계를 인식하고 행동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고 밝혔다. <프레시안>은 일주일에 두 번, '사회적 정의와 양심'을 위해 단식에 참여한 법률가들의 글을 싣는다.

마음속부터 씁쓸해져오는 "안 될 거야, 아마" 시리즈가 대유행이다.

비정규직법, 최저임금법의 올바른 개정을 위한 법률가 공동행동에 동참해 지난 18일 정오 국회 정문 앞에서 진행한 1인 시위 얘기를 하려니, 느닷없이 '안 될 거야' 시리즈부터 생각났던 것은 지금 상황에 딱 맞아떨어져서다.

이 시리즈는 음악 다큐멘터리에 등장한 인디밴드 인터뷰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인터뷰 동영상에서 나루토 아저씨라는 별명까지 얻은 그 가수는 자조 섞인 목소리로 본인이 나루토라는 만화를 보고 느낀 점을 아주 덤덤하게 내뱉는다.

"내가 나루토를 보면서 느낀 게… XX 열심히 안하면 안 될 것 같아, 근데 우린 열심히 안하잖아. 우린 안 될 거야 아마…."

이 시리즈의 특징은 처음 접하면 '뭐야, 자기 입으로 막 우린 안 된대'하면서 웃어 제끼다가 어느 순간 급 우울해진다는 것이다. 누리꾼들이 덧붙인 패러디 시리즈들을 읽어 내려가자면 내가 지금 잘 안 되고 있는 이유들이 떠올라서다.

"내가 요즘 09 애들 보면서 느낀 게, 열심히 공부를 안 하면 안 될 것 같아. 근데 우린 열심히 안하잖아. 우린 안 될 거야. 아마."

"내가 지금 독일어 과제를 하고 있는데, 그거 보니까 독일에서 몇년 살아야겠더라고. 그런데 난 대충 살잖아…. 난 안 될 거야. 아마."


이 패러디는 아마도 대학생들이 만든 것 같다. 20대들이 폭발적으로 자기 블로그에 하나씩 이 시리즈를 패러디해서 글을 올리는 현상의 밑바닥에는 일종의 '패배 의식'이 깔려 있다. '내가 가진 것은 이것뿐인데, 내가 취직할 수 있겠어? 내가 뭘 더 할 수 있겠어.'

소리 내어 말하기 무서운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아예 대놓고 써놓고는, 같이 웃어버리는 식이다. 88만원 세대, 20대들에게 야망을 가지라고 말하는 것은 선배로서 너무 염치없는 일일까.

이어서 재미로 읽어보는 어청수 전 경찰청장 버전과 이명박 대통령 버전도 있다.

"내가 요즘 로봇수사대 K캅스를 보고 있는데, 느낀 것이 xx 열심히 시민들을 위해야 할 거 같아. 그런데 우린 열심히 패버리잖아? 우린 안 될 거야, 아마."

"내가 요새 대통령을 하고 있는데 느낀 게, 내가 대통령을 하면 안 될 거 같아. 그런데 내가 대통령이잖아, 우리나라는 안 될 거야, 아마."


▲ 대학 졸업 무렵 친구도 나도, 비정규직이 뭔지도 모르고 그저 대기업 취직했다고 좋아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이제는 맞선 자리가 들어오면 그 사람이 정규직이 맞는지부터 묻는 세상이다. ⓒ프레시안
나는 96학번이다. 대학 졸업 무렵 나는 병아리 고시생이 되었고, 친구들은 은행권에 1년 계약직이라는 조건을 달고 취업을 했다. '이게 전하고 똑같은 거래', '1년 지나면 다시 1년 계약하는 거래', '응, 근데 그럼 그냥 계약하면 되지 왜 1년 단위로 계약서를 다시 써야 된대?' … 친구도 나도, 비정규직이 뭔지도 모르고 그저 대기업 취직했다고 좋아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이제는 맞선 자리가 들어오면 그 사람이 정규직이 맞는지부터 묻는 세상이다. 묻는 이유에 대해 나루토 아저씨라면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살다보면 집도 사고 애들 교육도 해야 하잖아. 비정규직이면 안 될 것 같아… 그런데 너는 비정규직이잖아, 안 될 거야 아마.'

그러나 누군들 비정규직으로 취업하고 싶어 가는가 말이다. 취업은 해야 하는데 기간제나 파견직으로라도 가야만 하는 것이 현실이다. 분명히 사장 말 한마디에 일감이 날아가는 노동자인 건 알지만, '너는 택배 사업자니까 노동3권도 없다'는 것이 말도 안 되는 주장이라는 것도 알지만, 그러면서도 그런 조건의 노동 속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는 것이 바로 지금의 현실이다.

1일 단식을 하느라 국회 정문 앞에 서 있는데 잔디밭 너머 국회 본관의 동그란 돔 지붕이 그렇게 미울 수가 없다. 비정규직 관련법을 없애자고 법률가들은 릴레이 시위를 이어가는데 국민이 만들어준 170석 다수여당은 저 안에서 오히려 비정규직 사용 기간을 늘리자고 한다. 야당들이 토론테이블에 앉는다고 해도 형식적인 토론 끝에는 이탈자 없는 여당 대표 결정대로의 몰표 표결만 있을 것일 테다. 토론 테이블에 앉지 않고 막을 방법은 점거 밖에 없고, 그나마 그 카드는 지난달에 다 썼다.

암담한 현실은 언제 바뀔지 참 갈 길이 멀어 나도 한 수 지어본다.

"내가 지난 MB악법 통과 과정 보면서 느낀 게, 열심히 하지 않으면 다 통과되어 버릴 것 같아. 그런데 우린 열심히 하잖아, 잘 될 거야 우린."

역시 이 시리즈의 묘미는 자조와 비관에 있어서 바꾸니 재미가 없다만, 그저 다 잘되었으면 좋겠다. 평등한 세상 만들자. 사람끼리 괴물이 되지 말자. 서로 밟아서 잘 살려고 하지 말자.

적어도 평등이 제도로 보장되는 세상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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