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야쿠르트 왔어요…웃지만 웃는 게 아니에요"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야쿠르트 왔어요…웃지만 웃는 게 아니에요"

[벼랑 끝에 선 여성들③] 야쿠르트 아줌마

지난 10일은 한국야쿠르트가 창업한 지 40년이 되는 날이었다. 1969년 5월 10일 창업한 한국야쿠르트는 2008년 매출 1조 원을 달성했다. 이 기업의 대표 상품 야쿠르트는 하루 평균 250만 병이 팔리는 히트 상품이다. 이렇게 한국야쿠르트가 잘 나가는 데 기여한 '1등 공신'이 이른바 '야쿠르트 아줌마'라는 걸 부인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야쿠르트 아줌마 박미영(가명·50) 씨. 박 씨는 근심이 크다. 본사에서 얼마 전 출시한 신상품을 한 달 안에 200개를 판매하라고 지시했기 때문이다. 그는 "요즘 같은 불경기에 고객들이 야쿠르트를 끊지 않고 먹는 것만으로도 고마운데 거기에 더해서 신상품까지 팔아야 하니 막막하다"고 한숨을 쉬었다.

박 씨는 요즘 할당량을 채우고자 이를 악물고 판촉 활동에 열심이다. 야쿠르트 배달 때문에 매일 방문하는 사무실, 가정집에 기회만 닿으면 신상품을 홍보한다. 새로운 고객을 찾고자 다른 사무실, 가정집도 일일이 방문한다. 그러나 결과는 신통치 않다. 그는 "다들 힘든데, 당연한 일"이라고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다.

경제 위기로 배달 중단 요구 늘어

실제로 박 씨가 맡는 지역에서 배달 중단 요구는 하루가 다르게 늘고 있다. 어느 날 갑자기 야쿠르트를 받던 사무실이 없어지는 경우도 있다. 그는 "한 달 5만 원 안팎의 소비도 가계에 부담이 될 것"이라며 "실제로 한국야쿠르트 전체도 2008년 하반기부터 주문 가구 수가 줄고 있다"고 설명했다.

배달을 통해 야쿠르트 제품을 구매하는 고객 수는 지난해 10월 258만9000명에서 11월 253만4000명, 12월 239만7000명으로 꾸준히 감소했다. 2009년 1월 야쿠르트 주문 가구 수도 238만 명으로 전달보다 1만7000명 줄었다. 야쿠르트를 판 수수료로 월급을 받는 박 씨의 가슴은 새까맣게 타들어갈 수밖에 없다.

야쿠르트 한 개를 팔면 판매가의 24%가 박 씨의 이익으로 떨어진다. 대략 한 달에 150만 원 정도가 수입이다. 하지만 요즘 같은 경우엔 이것도 제대로 받기 어렵다. 할당된 신상품을 제대로 판매하지 못하면 자비를 들여서 사야하는 경우도 생긴다. 그는 "이번엔 꼭 할당된 신상품을 다 팔 것"이라고 강조했다.

▲ "야쿠르트 왔어요" 늘 웃는 '야쿠르트 아줌마'들. 그러나 그들의 삶도 팍팍하기는 마찬가지다. ⓒ프레시안(자료 사진)

야쿠르트 한 병에 새겨진 고통

30종류가 넘는 제품을 노란색 리어카로 배달하는 것도 여간 힘든 게 아니다. 땀을 비오듯 흘리는 여름에는 소금물을 마시면서 버틴다. 겨울에는 리어카를 끌고 가다 빙판이 된 비탈길에서 미끄러져 뼈를 다치기도 했다. 그는 한동안 침을 맞으면서도 여전히 배달을 해야 했다.

학교, 사무실은 10시 이전에 야쿠르트를 배달해야 하기 때문에 새벽 5시에 출근한다. 오후 1시께 배달을 마치고 퇴근하지만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 추가로 일을 하기도 한다. 결국 하루 10시간 가까이 무거운 리어카를 끌고 다니는 셈이다. 그는 "그렇다보니 팔이 아파 늘 파스를 붙이고 다닌다"며 어깨를 두드렸다.

마음의 상처는 몸이 힘든 것보다 더 큰 고통이다. 판촉 활동을 하러 사무실에 들어갈 때는 경비원이 '잡상인 출입 금지'라며 제재를 하기 일쑤다. 가정집의 경우도 대부분 잡상인 취급하며 문도 열어주지 않는다. 이젠 익숙해질 만도 한데, 이럴 때마다 귀 끝까지 빨개진다. 그는 "모멸감은 쉽게 익숙해지는 게 아니"라고 말했다.

"작년에 그만두려 했으나 경제 위기 때문에 아직도…"

박 씨는 올해 10년째 야쿠르트 아줌마다. 항상 새벽에 나가다보니 애들 아침 한 번 제대로 챙겨준 적이 없다. 고등학교 3학년인 딸이 집에 오는 것도 보지 못한다. 밤늦게 귀가하는 딸을 기다리다 자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루 종일 혹사당한 심신이 늦은 밤까지 버티지 못하는 것이다.

박 씨는 올해 야쿠르트 배달을 그만두려고 했다. 아이가 고3이 되니 챙겨야 할 게 많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시 찾아온 경제 위기가 그의 발목을 붙잡았다. "아이 학원비라도 대기 위해선 일을 할 수 밖에 없지 않느냐. 아이에게 미안하지만 그래도 당분간은 이 일을 할 수 밖에 없을 거 같다."

야쿠르트 아줌마 박 씨는 오늘도 리어카를 끈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