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장 민주주의의 이상
제1절 단일안건정치의 함정
민주주의가 무엇인지를 물으면 교과서적인 답은 잘 준비되어 있다. 그리스어 데모스(demos, 인민)와 크라토스(kratos, 지배)의 합성어가 어원이라는 둥, 고대 아테네에서 민주주의가 시작되었다는 둥, 링컨이 "인민의, 인민에 의한, 인민을 위한 정부"라고 요체를 정리했다는 따위의 답은 고등학생이라도 웬만하면 외우고 있을 것이고, 때로는 중학생 중에서도 알고 있을 학생이 상당수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인민의 정부라는 것이 무엇인가? 인민에 의한 정부라는 것은 무엇이며, 인민을 위한 정부라는 것은 또 무엇인가?
링컨의 문구로부터 어떤 실천적인 지침을 구하려는 사람은 그 문구가 민주주의를 향한 구체적인 프로그램을 가리키기보다는 일차적으로 남북전쟁의 상처를 치유하려는 수사였음을 명심해야 한다. 링컨의 게티스버그 연설은 민주주의가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해명한 정치이론이 아니라, 연방에서 탈퇴하겠다는 세력을 반란으로 간주하고 무력으로 진압해야 한다는 입장을 인민의 이름으로 정당화하는 연설이었다. 게티스버그는 1863년 7월에 치열한 공방전 끝에 남군의 공세를 북군이 저지하는 데 성공한 곳이다. 쌍방 약 5만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고 사망자는 약 9000명이었는데, 가매장 상태였거나 아니면 그냥 버려진 시신들을 처리하기 위해 국립묘지가 건설되고 있었다. 국립묘지 건설을 추진한 주최 측에서 기공식 날짜를 11월 19일로 잡고 링컨을 초대한 것인데, 링컨은 일년 후 1864년 11월에 있을 선거에서 질지 모른다고 염려하던 상태였다.
▲ 링컨. |
따라서 "인민의 인민에 의한 인민을 위한 정부는 결코 지구상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한 링컨의 문구는 민주주의 정부가 갖춰야 할 요건을 치밀하게 따져서 밝히는 분석적인 탐구의 결과가 아니라, 자기편이 민주주의라는 선언에 해당한다. 이를 지적하는 까닭은 남군편이 민주주의일 수도 있다는 이의를 제기하기 위함이 아니라, 링컨의 문구는 애당초 민주주의에 관한 표준적 정의라기보다는 정치인이 전쟁동원을 위해 사용한 수사임을 밝히기 위함이다. 링컨의 어법은 북군이 단순히 북부만이 아니라 미합중국, 즉 탈퇴를 시도하는 남부를 포함한 "인민"을 대표한다는 전제를 바탕에 깔고 있다. 그러나 북부와 남부가 서로 싸우고 있는 현장에서 왜 남군에 동조하는 의견은 "인민의 의사"에서 배제되어 진압 당하는 것이 마땅한 것일까? 인민의 일부를 배제하고, 나머지 일부의 의사만이 "인민의 의사"로 앙양되는 변환이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링컨의 문구를 민주주의의 정의로 받아들이려는 사람은 거기서 "인민"이 무엇을 가리키는지에 관해 링컨이 남겨둔 여백을 스스로 채워 넣어야 하며, 아울러 링컨조차도 전쟁이 아니었다면 "인민"이라는 단어를 저렇게 일방적으로는 사용할 수 없었으리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 박정희. |
박정희 시절에는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이라는 표현을 통해서 정부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곧 정신병자 또는 반역자로 몰았다. 이런 방식의 어법이야말로 이치를 도외시하고 그냥 상대를 적대시하는 몰지각을 반영한다. 링컨의 시대는 누가 지각이 있는지, 어떤 노선이 "인민의" 노선인지를 둘러싸고 결판을 내기 위해 기어이 전쟁이 터져버린 후였기 때문에, 일방적인 어법이 정치적으로 불가피했다. 박정희는 어릴 때부터 줄곧 "위기"의 시대를 살았고, 또 "위기"를 세뇌하는 풍토에서 교육을 받아서, 항상 "위기감"에 쪼들려서 살아야만 했다. 항상 전쟁하듯 생각하고 행동했기 때문에, 반대를 용납할 수 있는 여유가 애당초 심성 안에 자리 잡을 여지가 없었던 것이다.
오늘날 한국인더러 링컨과 남군 사이에서 편을 들라면 링컨 편이 대부분일 것이다. 박정희에게 반대한 사람들이 "몰지각"했는지를 물으면 의견이 갈릴 것이다. 기어이 편을 들자면, 나는 링컨은 지지하지만 박정희는 지지할 수 없다. 경제개발이야 서둘러 할 필요가 있었겠지만, 전태일을 분신으로 내몰지 않았다고 경제개발이 지장을 받아야 할 이유를 도무지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런 실질적인 평가들은 현재의 주제가 아니다. 현재의 주제는 누가 어느 편을 지지하든 말든, 링컨이 박정희보다 지지를 더 받든 말든, 링컨의 어법이나 박정희의 어법이나 일방적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는 점이다. 자기가 "인민"의 편이고 따라서 자기가 "옳다"는 주장을 저런 식의 수사적인 문구에 담아서 표현한 것이다.
링컨은 동서양에서 공히 신념을 가진 정치인의 모범적인 사례로 칭송을 받는다. 박정희도 추종자들에게는 전형적으로 신념의 정치인이다. 링컨은 반란군을 무력으로 진압했고, 박정희는 반대자를 무력으로 억압했다. 링컨은 노예해방이 절체절명의 과제였고, 박정희에게는 가난에서 벗어나는 것이 필생의 소원이었다. 그런데 우리 역사는 이처럼 하나의 구호로 요약되는 목적을 위해 몸을 바친 인물들을 제법 많이 가지고 있다. 김구, 안중근, 윤봉길, 류관순 등은 조국의 자존과 광복이 최고의 목표였고, 이순신은 왜적 격퇴가 최고의 목표였다. 그리고 우리는 이런 사람들을 모두 위인으로 존경한다.
그런데 어떤 목적에 목숨만 바친다면, 일생 동안 또는 적어도 어른이 된 다음부터는 줄곧 한 가지 목표만 추구한다면 신념의 화신이자 위인이 되는 것일까? 무슨 목표든 한 가지만 붙들고 흔들리지 않으면 곧 신념이 되어 다른 사람들에게 모범이 되는 것일까? 고집쟁이, 벽창호, 독선, 독재, 아집, 전제, 전횡과 같은 단어들과 신념이란 결국 같은 내용을 두고 맘에 들면 신념이라고 부르고, 맘에 안 들면 독선이라고 부르는 것일까?
제4부에서 상세하게 논의하겠지만, 이순신이 보인 행태에서 우리가 신념을 읽어낸다는 것은 거의 모든 경우 후견지명에 의존하는 결과이다. 존 스튜어트 밀의 표현을 빌려 말하면, 신념의 소유자 이순신이라는 이미지는 우리 대부분에게 "주입된 의견"(received opinion)에 해당하는 것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 그리고 임진왜란이 한창 벌어지고 있을 때, 그의 편을 들어주는 사람이 조정에서 다수가 아니었던 것을 두고, 만약 내가 그 때 거기 있었다면 이순신 편을 들어줬을 것처럼 생각하기가 쉽지만, 그런 확신은 순전히 임진왜란의 결말을 알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결말이 어떻게 날지 전혀 모르는 상황에서 이순신의 편을 들 사람은 지금 우리가 현재의 후견지명이 없이 16세기 조선에서 살고 있다고 하면 우리 중에도 몇 명 되지 않을 것이다.
이순신이나 링컨에서 김구나 박정희까지 한 가지 목표를 세우고 매진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 때문에 사람들은 초지일관이라든지, 변하지 않는 마음을 덕목으로 여기고, 입장변화를 배신이나 변절 또는 신념부족으로 매도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목표가 처음에 잘못 설정된 경우에도 초지일관 밀고 나가야 하는가? 이에 관해서는 간디와 타고르 사이에 좋은 예화가 있다.
타고르가 샨티니케탄에 세운 학교를 간디가 방문했는데, 한 여인이 간디에게 휘호를 부탁했다. 간디는 그 여인의 공책에 "절대로 성급하게 약속하지 말라. 한번 약속했으면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하니까"라고 써줬다. 나중에 타고르가 여인의 공책에서 간디의 휘호를 보고는, 그 아래에 "잘못으로 판명되면 약속일랑 내던져버려라"고 썼다. 링컨이나 김구, 또는 그 밖에 어떤 누구를 위인으로 평가하고 본받을 만하다고 여겨야 한다면, 그것은 그들이 달성했거나 추구한 가치가 덕스럽기 때문이라는 점이 우선이어야 하고, 그들이 불굴의 의지력을 발휘했다는 사실은 부수적이어야 한다. 왜냐하면 히틀러나 스탈린, 김일성, 나폴레옹, 닉슨, 전두환, 기타 등등, 강한 의지력의 소유자였지만 인류에게 덕보다는 해를 끼쳤다고 봐야할 정치인들은 무수히 많기 때문이다. 영화 <양들의 침묵> 그리고 <한니발>에 나오는 한니발 렉터야말로 불굴의 의지력 그 자체가 아닌가!
링컨이나 김구에게 어떤 다른 선택의 여지가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접어두고, 그들이 한 모든 정치적 판단과 행위가 설사 다 옳았다고 쳐주더라도, 그들의 배타적이고 독선적인 입장은 자체로 정당한 것일 수는 없고 오로지 사정을 감안해서 어쩔 수 없었다는 차원에서만 정당해질 수 있는 것이 된다. 남부에게 노예해방을 설득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었더라면 링컨의 강경책은 그만큼 불필요한 아집의 요소가 섞이는 것이고, 테러 말고 다른 수단으로 조선민족의 억울한 사정을 풀 수 있는 길이 있었더라면 김구의 테러리즘은 불필요한 증오의 표현이 되는 것이다. 현대 세계에서 일반적으로 링컨의 결단을 찬양한다는 것은 곧 당시에 설득의 가능성은 없었다는 판정이 되는 것이고, 현대 한국인 다수가 김구의 테러리즘을 정당하다고 여긴다는 것은 곧 다른 길이 없었다고 보는 것과 같은 셈이다.
그런데 단일안건정치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보이는 행태는 사정상의 필연성 여부에는 크게 개의치 않고, 초지일관 하나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불굴의 의지력에 초점을 집중하는 경향을 보인다. 생태주의 쪽으로는 새만금간척반대, 대운하반대, 천성산 터널 반대를 위한 삼보일배라든지 단식과 같은 경우가 그렇고, 남북관계 쪽으로는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 동안 줄기차고 끈질기게 남북화해정책을 "퍼주기"라고 낙인찍고 공격한 행태가 그렇다.
우리사회에서 스스로 진보진영에 속하는 사람이라면 전자의 반대에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고, 후자의 반대는 냉전사고의 산물이라고 폄하하기가 쉽겠지만, 보수진영에 속하는 사람은 정확히 정반대로 생각할 것이다. 이런 경우야말로 지금까지 살펴온 것처럼, 어떤 행동노선이 내용상으로 옳은가 그른가를 묻게 되면 바로 평면적 합리성이 서로 부딪힐 수밖에 없는 지점에 해당한다. 하지만 개별적인 행위자로서는 각자가 옳다고 믿는 바대로 자신의 의사를 표명하는 것이 당연하고 정당하다. 다시 말해 문정현 신부든 지율 스님이든 아니면 조갑제든 지만원이든,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목표를 향해 초지일관 또는 심지어 막무가내로 의지력을 발휘하더라도, 폭력을 사용하지 않는 한 의견의 표명 자체를 잘못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문제는 그처럼 불굴의 의지력과 결합된 정책노선들이 서로 부딪힐 때 어떻게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인가이다. 무력충돌은 가장 쉽고 간단한 해결방식 중 하나지만, 정치가 기능하지 못할 때 저절로 벌어지는 일이기 때문에 특별히 신경 써서 고안하거나 추구할 원칙은 못 된다. 바람직한 정치의 방식에 관해 사람들이 뭔가 주의를 기울인다는 것은 무력충돌 말고 어떤 다른 방식이 있지 않을까 바라는 마음 때문인 것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제3부에서 줄곧 주장해왔듯이, 서로 다른 지향 사이에 설득이나 양보는 발생하지 않고, 동시에 무력충돌을 통해 교착을 깨뜨리기도 바라지 않는다면, 모종의 평화적인 절차를 통한 해결 말고는 다른 길이 없다.
만약 정치체제 안에 타이 브레이크의 절차가 관습적으로 어느 정도 정착되어 있는 상태라면, 각 개인이 나름대로 자신에게 이익 또는 인민에게 이익이라고 생각되는 정책을 초지일관 불굴의 의지로 주장하고 추구하더라도 자체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절차가 확립되어 있지 않고, 절차에 의한 해결이라는 입체적 정치적 합리성이 인민의 정치의식에 충분히 배어있지도 않은 상태라면, 초지일관이라는 태도는 사회세력 간의 무력충돌을 초래하기가 아주 쉬울 것이다.
한국의 정치사회는 아직 갈등의 평화적 해결이라는 절차주의적 원리가 충분히 자리잡지 못한 상태이다. 그러므로 사회개선을 위한 관심은 예컨대 환경보존이나 부동산 가격안정 등등의 구체적인 정책적 의제를 추구하는 동시에 체제 차원의 기본규칙을 확립하는 문제도 소홀히 할 수 없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 보수파는 두말 할 필요도 없고, 진보파라고 자처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정치적 경쟁의 규칙이라는 입체적 합리성에 깊은 관심을 기울이는 경우를 보기가 어렵다. 자기 생각을 (사실은 생각이라고 불러줄 정도로 심화되지도 못한 피상적 구호 수준의 언표를) 한번 정한 다음에는 막무가내로 집착하는 행태가 보수에서나 진보에서나 공히 사실상 거의 모든 정치적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에서 드러나는 특징이다.
자칫 망각 속에 묻혀 버릴지도 모르는 의제를 사람들에게 알린다는 차원에서는 단식이나 삼보일배뿐만 아니라, 분신자살이나 테러리즘이 효과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경우가 세상에는 분명히 있다. 전태일이나 윤봉길만이 아니라, 지구상 수많은 종교와 민족에서 순교자 또는 순국자로 추앙하는 사람들은 다 개인적인 차원보다는 뭔가 높은 목적을 위해 극단적인 방식으로 몸을 바친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들이 옳은 일을 했다고 한다면 그것은 오직 성과 또는 목표에 가치가 있기 때문인 것이고, 같은 성과나 목표를 위해 덜 폭력적인 방식이 가능했더라면 그처럼 극단적인 방식은 정당화될 수 없었을 것이다. 다시 말해, 세상이 좀더 개명되었던지, 그들의 투쟁 상대가 좀더 관용적이었다고 가정하면, 그들의 극단적인 희생은 자체로 야만이 되기가 쉬웠을 것이다.
단일안건정치(single interest politics)는 이런 점들을 분별하지 않는다. 예컨대 그린피스 행동대원은 핵폐기물 수송을 막기 위해 자기 몸을 수송선에 묶기도 하고, 미국의 낙태반대론자들은 모든 정치인에 관한 선악평가를 오로지 낙태에 관한 입장만으로 판별한다. 이런 행태들도 분명히 정당한 정치적 의사의 표현이며, 어떤 의미에서는 이런 방식의 완강한 의사표현이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중요한 요소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와 같은 단일안건정치는 특정 의제에 사회적 관심을 환기하려는 목적, 다시 말해 기본적으로 선동가적인 정치에는 어울린다고 할 수 있지만, 경합하는 의제를 선별하고 선별된 의제에 관해 사회적 합의가 최대화될 수 있는 방향으로 정책을 결정하는 등, 해결의 정치에는 전혀 어울리지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사회에서는 보수에서나 진보에서나 의견이 있다면 곧 단일안건정치의 선동가처럼 막무가내로 끝까지 고집을 하는 바람에, 소통과 설득과 타협을 통한 해결의 정치는 싹도 트지 못하는 사정이 조선이나 일제강점기는 물론이고, 민주공화국을 표방하고 있는 대한민국 시대에도 계속되고 있다. 보수파는 본래 권력지향적, 서열지향적, 집단지향적, 위신지향적인 성향을 가지기 때문에, 이치보다 의지를 중시하는 것이 어떤 면에서는 차라리 일관적이다. 따라서 소통과 설득과 타협의 정치를 선보이고 실행할 주체는 아무래도 진보파가 되어야 하는데, 대한민국의 정치사는 진보파야말로 이치보다 의지를 중요시할 수밖에 없었던 까닭으로 가득 차 있다. 독재에 항거하기 위해서는, 부당한 권력에게 대항하기 위해서는 이치보다 뚝심이 필수요건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은 전면적으로 인정을 해야 한다. 즉, 과거에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은 온전히 수용되어야 한다. 그러고 나서 지금부터도 계속 그래야 하는지를 물어야 한다. 막무가내 뚝심으로 밀어붙이는 단일안건형 정치를 일부 선동가들만이 아니라 진보세력 대부분이 추구할 때, 과연 한국의 정치가 어떤 면에서 개선될 것인지를 개선을 원하는 사람들이라면 심각하게 자문해 봐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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