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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죽이기? 현실 모르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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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민주노총 죽이기? 현실 모르는 소리!"

[노동절 기념 좌담·下] 새로운 시대 노동운동의 자리는 어디에 있나?

양대 노총은 오랜 시간 서로 다른 길을 가고 있다. 같은 현안을 놓고 같은 목소리를 내면서도 그 거리는 정부와 노동계의 거리보다 더 먼 듯 보인다. 대화와 투쟁이라는 일종의 역할 분담이 암묵적 동의 아래 이뤄진다기보다는, 최근에는 서로의 운동방식을 대놓고 비난하는 모양새다.

올해 노동절을 맞아 <프레시안>이 한국노총 기관지와 공동으로 주최한 좌담에서 최영기 한국노동연구원 석좌연구위원은 양 노총의 한계에 대해 각각 지적했다. 민주노총을 놓고는 "지금까지 한 번도 사회적 타협에 참여해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한국노총에 대해서는 "지도부의 유연한 타협에 조합원의 의사가 제대로 반영되느냐"고 물었다.

윤진호 인하대 교수는 "대화와 투쟁 중 무엇이 옳은지가 아니라 노동조합이 해야 될 일이 무엇인지가 평가의 기준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양대 노총 모두 두 개를 병행하지 못하고 양쪽 극단으로 갔다"고 덧붙였다.

▲최영기 한국노동연구원 석좌연구위원은 양 노총의 한계에 대해 각각 지적했다. 민주노총을 놓고는 "지금까지 한 번도 사회적 타협에 참여해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한국노총에 대해서는 "지도부의 유연한 타협에 조합원의 의사가 제대로 반영되느냐"고 물었다. ⓒ프레시안

최영기 연구위원이 "한국 노동운동은 지금 상당히 큰 구조개혁의 압박에 직면해 있다"고 지적한 이유는 또 있다. 정부의 태도와 경제 위기라는 큰 사회적 요건 외에도 13년 간 유예된 복수노조 허용과 노조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가 내년 다시 시행을 앞두고 있다. 심심치 않게 잊을 만하면 '제3노총' 얘기가 튀어나온다.

참석자들은 대부분 제3노총의 가능성에 대해 회의적 의견을 피력했다. 양대 노총이 서로 다른 영역에서 확고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 비집고 들어가기가 만만치 않다는 논리였다. 윤진호 교수는 "만일 제3노총이 정말 생긴다면 오히려 비정규직 사이에서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서로 다른 길을 가는 양대 노총의 지도부였지만, 박인상 전 한국노총 위원장과 이수호 전 민주노총 위원장은 앞으로 노동운동이 가야할 길을 묻는 질문에 비슷한 답을 내놓았다. 결국 길은 하나였던 것일까?

다음은 지난 21일 국제노동협력원에서 진행된 좌담의 2편이다. (☞ 좌담 1편 보기)

최영기 "민주노총, 지금까지 한 번도 사회적 타협 참여해 책임지지 않았다"

▲ 최영기 한국노동연구원 석좌연구위원. ⓒ프레시안
최영기
: 지난 20년간 양 노총의 운동 방식을 대비해 보면 확연히 구분되는 포인트가 있다. 민주노총은 합법화가 늦어져서 그런 부분도 있겠지만 대정부 투쟁 중심의 운동을 해왔고, 거기에 비해 한국노총은 끊임없이 내부개혁을 하면서 동시에 제도적 참여를 통해 대정부 정책 요구를 관철하려고 해 왔다.

89년도 국민경제사회협의회 참여한 것, 90년도 초반 노경총 임금 합의라든가, '96년도의 노사관계 개혁위원회, '98년도의 노사정 대타협 등 주요 국면에서 항상 참여하고 타협했다. 2000년대 들어서도 근로시간 단축, 비정규직법이라든가 주요한 노동정책 쟁점이 있을 때 항상 정부와 교섭을 하고 타협을 했고, 타협의 책임도 졌다. 타협으로 인한 후폭풍도 굉장히 많았다. 끝에 가서 책임을 져 줘야 하는 부분에서는 책임을 졌다.

민주노총은 거기서 반사이익을 얻기도 했다. 궁극적으로 어느 정도 노동운동이 성숙 단계로 가게 되면 참여를 통해서 타협하고 책임도 져야 한다. 그런데 민주노총은 지금까지 한 번도 사회적 타협에 참여해서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게 아닌가 생각한다. 단 하나의 예외가 98년도 2월달에 사회적 대타협에 참여했다가 대의원대회 폭력사태로 지도부가 물러난 그 때였다고 본다. 그때 기억이 좋지 않아서인지 타협하고 책임을 지는 그 단계를 넘어서지 못한 것이 아닌가 본다

반면에 한국노총은 지도부들이 상당히 유연하게 타협을 하는 대신 조합원들의 의사나 이런 것들이 타협에 제대로 반영이 되느냐하는 지적을 받고 있다. 지도부들이 그런 타협을 통해서 단기적인 조직의 이익을 관철하는데 몰두해서 타협을 너무 쉽게 해주는 것 아니냐 하는 비판이 있다.

타협을 못하는 조직도 문제인 것이고, 타협을 조합원의 전반적인 합의구조 하에서 하지 못하는 것도 문제인 것 같다.

박인상 : 투쟁과 교섭은 동시에 병행하지 않으면 교섭이 될 수가 없다. 교섭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투쟁력이 뒷받침을 해줘야한다. 투쟁 동력은 가동을 하지 않으면 중단되어 버리고 자기들의 업무에 소홀해 졌을 때는 반응을 나타내지 않는다.

한국노총이 최근 들어 '사회개혁적 노동조합주의'를 주창하고 있다. 선배 입장에서 지적을 한다면, 나름대로는 잘 설정했는데 아직 내용과 실천이 굉장히 부족하다. 사회개혁적 운동을 한다면 모든 부분에 대안을 가지고 참여하고 협조하고 지원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하지만 아직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한국노총이 부족하다. 그저 지금 당장 급한 교섭에만 몰두하다 보니 나머지는 간과해버리는 것 같다. 또 선배 입장에서 볼 때 한국노총이 제대로 된 사회 개혁을 하려면 투쟁과 교섭을 병행하면서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는 것을 얘기하고 싶다.

대체적으로 밖에서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뭔가는 미지근하다들 한다. 지금 집행부에서 그런 부분을 짚고 넘어가 주는 것이 좋을 것으로 본다.

이수호 "한때는 '민주노총이 한국노총 투쟁국이냐'는 말도 있었다"

이수호 : 민주노총도 다른 것들은 모두 거부하고 오직 투쟁을 통해서만 하는 것은 아니다. 열려 있는 부분도 있다. 사실 이번에 '노사민정 대타협'이 나왔는데, 실수인지도 모르지만 민주노총에게는 아예 연락도 안 했다. 또 그렇게 모여 사진 찍고 대타협을 했다는 것을 선전하기 바빴지, 실제 어떤 내용을 가지고 진지하게 대화하고 고민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 식은 안 되는 것 아닌가?

대타협을 주도한 것이 정부라고 본다면 이명박 정권은 노동계를 진지하게 파트너로 인정하는 것으로 보기 힘들다. 그저 하나의 보조적인 협조의 대상으로만 여길 뿐이다. 그리고 (노동조합이) 전체 경제를 위해 무조건 희생하고 봉사해야한다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 때문에 앞으로 (이 정부가) 사회 통합을 통해 우리 사회를 변화시키는 데 기여하기는 상당히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그 동안 우리나라 민주화와 노동운동의 과정에서 민주노총은 한국노총과 구별되는 역할을 해 왔다. 한때는 정말 우스운 얘기지만 '우리가 한국노총 투쟁국이냐'는 얘기도 들었다. 우린 열심히 싸우고 있는데, 싸움하다 보면 한국노총이 뭔가 교섭을 하고 있다. 어쨌든 그런 속에서 자기 정체성을 가지고 온 것이다.

그럼 지금은 민주노총이 어떻게 할 것인가. 이명박 정권이라는 묘한 조건 때문에 더더욱 고민이 많다. 어쨌든 지금 지도부가 사회연대노총을 내걸고 대화를 제대로 해보자고 제안하고 있는 점은 중요한 포인트다.

▲ 이수호 전 민주노총 위원장. ⓒ프레시안

최영기 : 이수호 위원장의 얘기를 100% 이해하지만 정부의 태도만 문제 삼아서는 안 될 것 같다. 지난 번 노사민정 타협 때 연락도 안했다고 하는데, 만일 연락을 했으면 민주노총은 그걸 가지고 참여를 진지하게 고민을 했겠나. 그 당시에 민주노총의 분위기는 새 정부 들어서고 나서 어떤 사회적 대화나 노사정위원회 복귀를 아예 거론조차 할 수 없었던 것 아닌가?

실제 정부가 연락을 안 하고 정중하게 초대를 안 한 것은 잘못이지만, 이것이 사회적 대화의 파행을 가져온 원인은 아니라는 것이다. 민주노총이 이명박 정부든 어떤 정부든 요구조건을 내걸고 사회적 대화에 참여를 한다는 태도를 분명히 했음에도 정부가 진지하게 초대를 안 한다면 그것은 정부의 책임이다. 그렇지만 민주노총 스스로가 준비를 안했다면 이것은 일차적인 책임이 민주노총에 있는 것이지 정부에게 있는 것이 아니지 않나?

윤진호 "대화와 투쟁 병행하지 못하고 양 노총이 양 극단으로"

윤진호 : 나는 좀 다른 얘기를 하고 싶다. 사실 대화와 투쟁이 어느 쪽이 옳고 그른지 판단할 수 없다. 대화할 때는 대화하는 것이고 투쟁할 때 투쟁하는 것이다. 반드시 대화는 선이고 투쟁은 아니라는 식으로 입장을 정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과거 환경이 대화보다는 투쟁으로 갈 수 밖에 없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노조가 해야 될 일이 무엇인지가 평가의 기준이 돼야 한다. 만약 노동조합이 해야 할 일이 자기 조직을 유지하고 자기 조합원을 보호하는 것이라고 본다면, 어떤 의미에서는 대화를 선택하는 것이 유리할 수 있다. 실제로도 그랬다. 한국노총이 지금까지 민주노총에 비해서 조직을 잘 꾸려왔던 것도 그래서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노동조합이 거기에 그치지 않고 좀 더 크게, 사회개혁을 목표로 삼는다면 어차피 정부와 부딪힐 수밖에 없다. 정부는 '정치적 입장 아니냐' 또는 '그건 정부의 영역이다'라고 나오는 것이다. 특히 보수적인 정권일수록 더 그렇다. 거기서 부딪힌다고 '대화를 안했다, 투쟁 중심이다'라고 얘기하는 것은 노조의 기능을 너무 제한적으로 보는 것이다. 노조가 본래의 기능을 하기 위해 정부와 싸우다가 손해를 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런 점에서 볼 때 대화를 하더라도 무조건 대화가 아니라 조건이 있다. 좋은 대화와 나쁜 대화가 있다. 노조가 지켜야 할 좋은 대화의 조건은 '절대적으로 자주성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자주성을 훼손하는 대화는 안하는 것이 좋다. 그것은 굴복하고 들어가는 것이다. 다음으로 전투성을 담보로 한 대화여야 한다. 힘이 없으면 대화 과정에서 힘이 빠져 버리기 때문에 상대방이 자기를 낮춰 본다. 물론, 전투성만 가지고 가면 안 된다. 제일 중요한 것은 조직 내부의 민주성이다. 조직과 모든 노동자가 원하는 대화를 해야지, 상층부가 자기의 입신이나 이해관계를 위해서 대화와 타협을 한다면 결국은 조직을 구렁텅이로 빠뜨리는 것이다.

이런 원칙이 지금까지는 지켜지지 않았다. 정부는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려고 하고 있고, 한국노총은 투쟁성이 상당히 약한 대화를 위주로 하고, 민주노총은 대화를 배제한 투쟁을 한다. 두 개를 병행하지 못하고 양쪽 극단으로 갔다.

현재의 상황을 보면 한국노총의 교섭 위주의 전략이 일정부분 성과를 거둔 면이 있다. 그러나 앞에서 말한 세 가지 원칙에 비춰보면 문제가 있다. 현재의 정부는 신자유주의 정부라는 것이 분명한 사실이다. 그 아래서 한국노총이 얼마나 돌파할 수 있고 얼마나 인정을 받을 수 있을까? 상당히 회의적이다. 대등한 교섭을 하면서 자주성을 지킬 수 있는 대화를 하는 것이 가능한 것인지 판단을 내릴 수가 없다. 전혀 불가능 하지는 않고 가능한 부분도 있겠지만 상당히 힘들지 않을까 생각한다.

민주노총은 이보다 좀 더 어렵다. 파업의 관행과 동력 저하, 그러나 교섭의 길은 막혀 있다. 더 답답한 것이 사실이다. 별로 길이 보이지 않는다. 지도부가 결단을 내려 내부 정파 문제가 정리가 좀 돼야 길이 열릴 것으로 본다. 물론 앞서 말한대로 민주노총이 점차 올바른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과거에 목소리가 컸던 부분이 목소리가 줄어들면서 좀 더 건전한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현재의 변화는 바람직하지만, 여러 가지 여건이나 정부의 태도, 경제위기, 양대 노총의 내부적 문제까지 고려해 볼 때 전망은 그리 밝지 못하다.

▲ 윤진호 인하대 교수. ⓒ프레시안

이수호 "혁신의 첫 걸음은 세대 교체…총연맹과 산별노조의 역할 구분해야"

최영기 : OECD국가들과 비교해 봤을 때, OECD 국가의 시간과 한국의 시간이 차이가 있는 것 같다. 80~90년대는 OCED 국가에서 노동운동이 굉장한 위기였다. 그 시기에 한국노동운동은 꽃을 피웠다.

그리고 현재 글로벌 경제위기가 오면서 OECD 국가들의 노동운동은 지난 10년, 15년 간 절치부심, 엄청난 구조개혁을 통해서 회생하는 국면에 들어선 반면, 한국의 노동운동은 그 동안의 좋은 시절에 상당한 힘의 소모를 방치한 채 시간을 보내고 이제 위기를 맞는 상황인 것 같다.

이렇게 봤을 때 한국노동운동은 조만간 또 한번 꽃을 피우기 보다는 지금 상당히 큰 구조개혁의 압박에 직면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물론 정부가 잘해주고 사회적 파트너들이 잘해줘야 하겠지만 지금 여건은 과거보다 훨씬 더 좋지 않은 환경임에 틀림없다. 그런 환경 하에서 노동운동의 구조 혁신의 길이 어떤 식으로 열릴 것인가에 대해, 즉 향후 노동운동의 진로에 대해서 말씀을 해 달라.

이수호 : 어쨌든 지금 민주노총이 굉장히 어렵고 제일 곤란한 지경에 처해 있다. 나는 이 위기를 극복하고 새로 나가지 못하면 주저앉을 수도 있다는 위기의식이 있다. 과감한 혁신을 얘기하는 이유다.

구체적으로는 세대 교체, 특히 활동가와 소위 지도부라고 하는 사람의 교체가 이뤄져야 한다. 80년대 처음 시작할 때 전노협 하던 사람들이 아직도 남아 있다. 회전문 식으로 이리 들어갔다, 저리 나온다. 현장에 복귀도 못하고 자꾸 남아서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한다. 후배들이 새로 진출하고 자라날 공간도 여지도 없다. 안 그래도 젊은 사람이 노동조합 활동이나 노동운동에 소극적인데. 이런 꽉 막혀 있는 현재의 조직을 확 뜯어 고치고 인적 쇄신도 이뤄 내야 한다.

그리고 기업별 노조의 문제점과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산별운동도 어려움에 봉착해 있다. 끊임없는 논쟁을 하면서도 여전히 기업별노조를 벗어나지 못하고 그 관행 속에서 포장만 산별노조로 그럴듯하게 하는 느낌이다. 제대로 된 산별운동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 기업별노조와 산별연맹, 총연맹, 그리고 지역조직이 구체적으로 어떤 위상을 가지고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가 확연하게 드러나야 한다. 총연맹은 그냥 연맹의 연합체로 느슨하면서도 큰 정치적 입장을 밝히면서 전체를 묶어 가는 일을 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은 일일이 연맹의 투쟁, 또는 큰 기업의 투쟁에까지 개입하고 거기 가서 싸우고 있다.

지금 이미 추진되고 있지만, 총연맹 지도부 선출을 전체 조합원의 직접투표로 하는 것이 과연 맞는지도 생각해야 한다. 민주주의가 강조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직선제가 되면 총연맹이 아니라 이른바 단일노조의 형태를 띠고 가는 것이 아닌가라는 문제제기도 있을 수 있다. 이 모든 성격 규명이 분명하게 돼야 한다.

총연맹과 산별의 역할 구분이 분명해 지면, 지금처럼 무조건 총연맹 차원의 총파업만 남발하지는 않을 수 있다. 파업이나 투쟁은 연맹 중심으로 하고, 총연맹이 적절한 지원을 하고 특정 이슈에 대해서 필요할 때 함께하면 된다.

박인상 "대기업노조가 먼저 기득권 버려야 산별이 가능하다"

▲ 박인상 전 한국노총 위원장. ⓒ프레시안
박인상
: 세계 노동조합들은 대체로 유사한 산별은 통합으로 가고 있다. 국제자유노련 등 몇 개의 조직이 지난해 11월 국제노총으로 통합했다. 거기도 조직이 줄어들면서 산별만 살아 있지 조직이 없는 곳이 많기 때문이다. 그 추세를 보면 앞으로 우리나라도 노동조합 자체가 변하지 않으면 따라갈 수 없는 것 아닌가 싶다. 기업별 조직이 계속 유지되면 변화하기 어렵다. 산업별 체제로 간다는 목표가 선다면 그 길을 가기 위해서 각 조직은 어떻게 하나로 묶을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물론 그 과정에서 절대적으로 기득권을 포기하는 것이 중요하다. 단체교섭권과 집행권을 내놓지 않으면 산별이 할 일이 없어져 버린다. 기득권을 버리고 지부가 산별 조직에 귀속될 때 확실하게 산별 조직이 클 수 있다. 그런데 단계적으로 가야 한다. 지금 바로 가자고 하면 어렵다. 대기업노조가 기득권을 포기하지 않는데 중소기업이 무조건 따라갈 수는 없다. 큰 조직이 들어와야 같이 동고동락을 할 수 있는 조직의 틀이 만들어 진다. 한국노총도 그게 잘 안 된다.

이수호 위원장의 인적 쇄신 주장에도 동의한다. 노동조합은 선거에 의해 물갈이가 되지만, 참모진도 새로운 물이 흘러 들어와야 한다. 어느 조직이나 마찬가지다. 사회가 변하고, 여건이 바뀔 때는 노동조합도 정신 차리고 함께 변화하지 않으면 따라갈 수 없다.

윤진호 "경제 위기 후 바뀔 노동시장에 대해 노동조합의 전략이 없다"

윤진호 : 일단은 현재 한국의 노동조합이 상당히 단기적인 시야를 갖고 있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다. 지금 현장이 급박하게 돌아가다 보니 현안 대응하기도 바빠서 그런지는 모르지만 장기적 시각이 부족하다. 지금의 경제위기도 언젠가는 끝난다. 그 이후 경제구조와 산업구조, 노동시장이 모두 달라질 것이다. 그런 변화 속에서 노동조합이 어떻게 하는 것이 효율적인지에 대한 중장기적인 생각을 아직 못하고 있다.

덴마크 노조는 그런 고민을 이미 하고 있다. '언젠가는 경제위기가 끝날 것 아니냐', '경제위기가 끝나면 덴마크는 어떻게 먹고 살아가야 되나'를 노조가 고민하고 있는 것이 놀라웠다. 덴마크는 우리와 비슷하다. 자원도 없고 수출에 의존하고 있다. 그래서 덴마크는 경제위기라 할지라도 인적 자원에 대한 투자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인적 자원을 통해 남들이 못하는 것을 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반면 우리는 장기적 접근이 없다. '정부나 사용자에 대해서 어떻게 할 것인가'와 '노동조합 내부의 구조나 자원배분을 어떻게 할 것인가'로 나눠 생각해볼 수 있다. 우선 첫 번째 문제에서 정부 얘기는 앞에서 많이 얘기했으니, 사용자와의 관계 설정 얘기를 해보자. 민주노총은 사용자를 적대적인 세력으로 설정하고 있다. 물론 기본적으로는 옳다. 우리나라 사용자들이 기본적으로 노조에 대해 부정적이고 어떻게 하면 노조를 약화시킬 것인가를 항상 애쓰고 있으니까 당연하기도 하다. 그렇다 하더라도 너무 단순하고 뻔한 전략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경우에 따라서는 협력 관계도 가능하다. 개별 사용자와 달리 조금 상층부로 올라가서 '총사용자' 정도 되면 전체를 바라보고 미래를 바라보는 시각에서 같이 갈 사람들이 있다. 또 그것이 정부의 노동정책에도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인식의 폭을 넓혀서 정부, 사용자, 그리고 기타 여러 사회단체들과의 관계 설정을 이 시점에서 다시 한 번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

오히려 지금 많이 얘기 돼야 할 것은 내부 구조와 정치다. 그 동안 세계를 휩쓸었던 신자유주의가 지금 굉장한 타격을 받고 있다. 지금 가장 큰 화두는 이와 관련해 어떻게 하면 노동조합의 본래의 기능을 지키면서 올바른 방향으로 갈 수 있는가라고 본다. 말하자면 노동자의 생활과 고용을 지키고 전체 노동자 사회를 개혁시키는 것, 그것은 다름 아니라 수차례 강조했듯 공공성 강화, 보다 구체적으로 얘기하면 교육·의료·복지 등을 통해 소득을 평준화 하는 것이다. 이것이 현재 노동조합의 가장 큰 방향이자 이념이 돼야 한다. 조직 정관이나 사업계획에 좀 더 명백하게 포함시켜야 한다.

하지만 현재의 기업별 구조에서는 도저히 안 될 것이다. 우선은 자기 기업이 중요하니까 어렵다. 보다 집중시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자원의 재배분 문제다. 지금 해야 할 일이 많다. 정책 연구 기능도 강화돼야 하고 조직화 예산도 늘려야 한다. 노조에서 항상 '돈이 없다'고 하는데 사실은 있다. 그 돈이 그런 목적으로 안 쓰일 뿐이다. 밑에 기업별노조가 갖고 있고, 다른 용도로 쓰여져 집중이 안 된다. 지금이 그 구조와 기능을 되돌아보기에 좋은 시점이다.

윤진호 "제3노총? 현실성 없지만 만들어진다면 비정규직 중심될 것"

▲ "바람직한 것은 한 나라에 하나의 노총으로 묶이는 것이 바람직한 제도라고 보고, 언젠가는 그렇게 갈 것이라고 본다. 그런데 중간단계로 제3지대의 새로운 세력들이 결집할 가능성이 있을까? " ⓒ프레시안
최영기
: 노동운동의 위기 이후에 새롭게 변모된 노동운동에 대한 전망을 하기 위해 빼놓을 수 없는 문제가 전임자임금, 복수노조 문제 그리고 최근에 다시 나오고 있는 제3노총 문제다. 물론 바람직한 것은 한 나라에 하나의 노총으로 묶이는 것이 바람직한 제도라고 보고, 언젠가는 그렇게 갈 것이라고 본다. 그런데 중간단계로 제3지대의 새로운 세력들이 결집할 가능성이 있을까? 그리고 제도개선 문제가 13년 동안 유예가 되고 있는데 어떤 식으로 정리될 것으로 보나.

윤진호 : 제3노총 문제는 구체적으로 알지는 못한다. 처음이 아니라 과거에도 나왔던 얘기다. 물론 대부분 다 실패했다.

외국에서 총연맹이 여러 개 생기는 것을 보면, 대부분 정치세력화 즉, 정당을 둘러싼 문제 때문이거나 종교가 달라서다. 일정한 근거가 있다. 그런데 요즘 나오는 제3노총은 그 점에서는 근거가 뭔지 알 수가 없다. 주로 뉴라이트 쪽의 얘기가 들릴 뿐이다. 현재 민주노총이 너무 왼쪽으로 갔다든지 투쟁 중심이라서 새로운 것이 필요하다 등등…. 그런데 바로 그 부분은 한국노총이 이미 잘 메우고 있는 것 아닌가. 만일 한국노총보다 더 오른쪽에 만든다는 것이라면, 자주성과 투쟁성을 포기한 노조 밖에 안 되기 때문에 호응하는 곳이 얼마나 있을지 의문이다. 일부 호응하는 곳이 있을 수는 있지만 하나의 큰 세력이 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오히려 만일 제3노총이 만들어진다면 현재 양대 노총이 못 메워주는 곳이 될 것 같다. 비정규직은 양대 노총이 잘 못 메워주고 있는데 노조에 대한 욕구는 절실하다. 직접 물어보면 '노조 가입하고 싶다'는 답이 굉장히 많다. 물론 고용형태가 불안해서 어렵겠지만, 제3노총이라면 오히려 그쪽이 현실적으로 가능성이 있을 수 있다. 사전에 그런 움직임을 막으려면 양대 노총이 적극적으로 비정규직을 끌어안아야한다.

노조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와 복수노조는 워낙 얘기가 많이 됐다. 복수노조가 허용되면 노조 경쟁시대가 열린다. 하지만 피할 수 없다. 국제노동기구(ILO)에서도 이미 여러 차례 권고한 바 있고 따로 노조를 만들겠다는 데는 굳이 막을 필요가 없다. 큰 혼란도 없으리라 본다. 중요한 것은 교섭 구조다. 교섭 구조에 대한 법률이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혼란이 예상된다. 교섭구조가 바뀌면 정착까지 상당히 기간이 걸릴수밖에 없다. 단순히 법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관행의 문제기 때문에 자칫하면 사용자나 정부가 장난을 칠 가능성도 있다. 얼핏 생각하면 사용자가 더 괴로울 수도 있지만 그 부분은 쉽게 예상이 안 된다. 오히려 비용이 걱정된다. 그러나 원칙적으로는 복수노조로 가야하기 때문에 갈 수 밖에 없다.

전임자 임금 지급 문제를 자꾸 복수노조와 묶어서 얘기하는데 사실 전혀 별개의 문제다. 복수노조 허용은 국제적 기준이지만 전임자 임금 지급을 금지시키는 곳은 세계 어디에도 없다. 오히려 재미있는 예가 프랑스다. 프랑스는 2008년 법을 개정해 노조원이 있는 모든 노조에 유급 전임자를 뒀다. 그 전에는 시간 할애 전임자가 있었는데, 이 법개정으로 풀타임 유급 전임자로 바뀌었다. 다섯 개 노조가 사업장에 들어와 있으면 각 노조마다 최소 1명 이상, 최소 5명의 유급 전임자가 생기는 것이다. 그런 예를 보더라도 노조 전임자에 대한 임금 지급을 금지한다 하더라도 다시 개정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도저히 법리에도 맞지 않기 때문이다.

복수노조, 노조 전임자 임금 문제 "가더라도 이대로는 틀렸다"

▲ "현재 법률에 나와 있는 금지 규정은 잘못된 것이다. 차라리 폐기해버리고 정 안되면 자율 교섭으로 가야 한다." ⓒ프레시안
박인상
: 13년 유예된 복수노조와 전임자 임금은 한 세트로 묶여 있는 것 아닌가. 원래 전임자 인건비 문제를 다루다 보니 복수노조와 연결됐다. 사용자는 복수노조를 허용하면서 전임자 임금까지 줄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만일 전임자 임금 지급이 중단되면 중소기업이 80%를 차지하는 한국노총이 가장 치명적인 상처를 입는다.

현재 법률에 나와 있는 금지 규정은 잘못된 것이다. 차라리 폐기해버리고 정 안되면 자율 교섭으로 가야 한다. 게다가 지금 경제도 어려운데 이대로 시행된다면 우리나라 노동 현장은 크게 요동칠 수밖에 없다.

이수호 : 복수노조는 양날의 칼이다. 혼란을 일으킬 수도 있지만 오히려 제대로 노조 활동을 하게 하는 역할을 제대로 하게 하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 그런데 양대 노총이라는 큰 흐름이 이미 있다. 각각 성격과 정체성이 분명하기 때문에 그 사이에 다른 것이 가능하지 않다. 때문에 큰 혼란이 있을 것으로는 생각하지 않는다.

윤진호 : 미국 등을 볼 때 복수노조가 허용되면 한 가지 문제가 교섭대표권을 둘러싼 갈등이다. 갈등이 심하기 때문에 거기에 노동조합의 에너지가 굉장히 많이 소모된다. 투표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모든 노동조합들이 대표권을 놓고 치열하게 경쟁하고 그 과정에 사용자도 개입을 한다. 미국처럼 3년이나 4년에 한번 씩 단체협약을 체결하면 그나마 괜찮겠지만, 우리나라처럼 2년에 한번 씩 교섭하면 노조는 여기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문제가 많아질 가능성이 있다.

박인상 : 제3노총은 윤 교수 말대로 오래 전부터 나온 얘기다. 민주노총도 한국노총도 아닌 중립지역이 있는 노동조합의 수가 상당한 것으로 안다. 그런데 성향이 뚜렷한 양대 노총이 있는데 과연 무엇을 가지고 제3노총의 깃발을 꽂을 수 있을지 궁금하다. 민주노총에서 탈퇴한 노조위원장 말을 빌리면 한쪽은 너무 정치 파업만 하고 한쪽은 정권에 순종해서 제3노총이 필요하다고 하더라. 참, 이론도 이상하게 붙였다 싶다.

우리 사회에서 노동조합이 파편화되기 시작해 제3노총이 나오면 제4노총이 안 나오리라는 법도 없다. 복수노조가 허용되면 그 기회를 이용해 한번쯤은 판을 뒤흔들어보자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다가 오히려 어느 시점이 되면 다시 통합 얘기가 나올 것이다. 이래서는 서로 다 죽는다, 노동조합의 힘은 없어지고 여기저기 작은 연맹만 살아있어선 안 된다면서. 한 번의 소란은 있을 수 있지만 결국은 통합으로 다시 가게 될 것이다.

최영기 : 그 가능성이 매우 높진 않지만, 무시할 수 있는 정도는 아닌 것 같다. 트렌드를 보면 2000년도에 독립노조, 양노총에 가입하지 않은 조합원수가 4만 명 정도 밖에 안됐는데 2007년 말 기준으로 26만 명으로 늘어났다. 만약에 복수노조 환경으로 간다면 더 늘어날 수 있다.

한국노총 민주노총처럼 딱 짜여진 노총은 아니지만, 느슨한 형태의 독립노조 연대는 가능하다고 본다. 그리고 이걸 기초로 해서 양 노총에 계속 도전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다가 아까 말씀하신대로 이게 무슨 꼴이냐 이러다 보면 제4, 제5 노총도 나올 수 있고 차라리 그즈음에 가서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큰 연합을 모색하자는 얘기도 나올 수 있다.

박인상 : 만일 특정 정당이 이거라도 붙들고 가자고 생각하고 거기에 힘을 주면 어느 시점까지는 굴러갈 수밖에 없는 상황 아닐까?

최영기 :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정치적인 의도를 가지고 들어온다면 뿌리내리기 더 어려운 것 아닌가?

박인상 : 그 순간만큼은 쉽게 어느 선까지는 갈 수 있을 것이다.

윤진호 : 현실은 그렇지 않다. 우선 양 노총이 어차피 기득권을 갖고 있고, 힘이 있기 때문에 새로 노조를 만들더라도 지금은 양내 노총 가운데 어디에 들어갈까를 먼저 생각하게 된다.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은 굉장히 힘들고 엄청난 노력을 쏟아야 한다. 이론적으로야 새로운 노총 얘기가 가능하지만.

박인상 : 전직 국회의원인 모 씨가 제3노총 작업을 오랫동안 추진해 온 것으로 안다.

이수호 : 배일도 전 의원이라고 다들 알고 있다.

최영기 : 공인된 사실이다.

윤진호 : 그 영향력 아래서 진행되는 것이다. 소위 독립노조는 민주노총이나 한국노총 같은 총연맹이 제 역할을 못했기 때문에 가입하나 안하나 큰 영향력이 없다고 생각해서 늘어나는 것이다. '맹비'를 내야 하는데 내지 않아도 별 문제가 없고, 오히려 민주노총에 가입하면 자꾸 '이것 저것 참여하라'는 부담만 내려오니 귀찮은 것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상급단체 없어도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기업 사용자하고 교섭만하면 된다 싶으니 상급단체에서 탈퇴한다. 작업에 의해서 만들어지지 않은 신생노조들은 성격상의 문제도 있고 '조용히 우리끼리 지내자'는 생각이지 '하나의 큰 세력을 만들어 정부와 맞서자'는 생각은 감히 못한다.

복수노조 허용되면 노동계 일대 대혼란 일어날까? "글쎄…"

최영기 : 복수노조가 됐을 때 기존 사업장에서 조직 경쟁이 치열해 질까?

이수호 : 그래서 앞서 양날이란 표현을 쓴 것이다. 삼성 또는 한국노총 산하에 있는 일부 노조, 소위 말하는 '어용노조'의 경우 타격이 심할 수 있다. 캄캄한 곳에서 살고 있는 노동자들이 아직 있다. 그런 곳은 치명적일 수도 있다. 반대로 민주노총 사업장도 굉장히 배타적, 독점적으로 운영 해오고 있는 곳이 있다. 그곳에도 불만을 갖고 있는 조합원이 있을 수 있다.

▲ "캄캄한 곳에서 살고 있는 노동자들이 아직 있다. 그런 곳은 치명적일 수도 있다. 반대로 민주노총 사업장도 굉장히 배타적, 독점적으로 운영 해오고 있는 곳이 있다. 그곳에도 불만을 갖고 있는 조합원이 있을 수 있다." ⓒ프레시안

박인상 : 그것은 굳이 양 노총이 얘기를 하지 않더라도 자생적으로 생길 수밖에 없지 않나. 굳이 양 노총이 조직 경쟁을 벌이지 않아도 내부 사정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다.

이수호 : 민주노총 내에서도 일부에서는 적극적으로 조직 사업을 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기도 한다. 특히 한국노총이 한나라당과 정책연대를 한 것을 놓고 '완전히 맛이 갔다. 파트너로 도저히 안 된다. 깨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복수노조 허용되면 적극적으로 활용할 것이다.

최영기 : 민주노총 내에서 굉장히 고질화된 정파가 복수노조를 기회로 해서 큰 조직적 이탈 가능성은 없나? 오래된 정파 갈등이 어느 순간 민주노동당을 분당시킨 것처럼 정파가 노동조합으로 간판을 바꿔다는 그런 것도 있을 수 있지 않나?

이수호 : 가능성은 있다. 그러나 최근에 진보정당의 분당으로 민주노총 내부가 굉장히 혼란스러웠고, 특히 진보신당 쪽에서 민노당 배타적 지지를 반대하는 세력을 따로 정치세력화하기 위해 노력도 하고 작업도 많이 했다. 그런데 잘 안 된다. 그만큼 한 번 굳어진 구도에 힘이 생기면 새로 한다는 것이 상당히 어렵다. 그동안의 경험을 봐도 그렇다.

박인상 : 한국의 노조 조직률이 10%라는 것을 생각하면 사실 이런 경쟁은 굉장히 무의미하다고 본다. 차라리 미조직 노동자 조직화 작업이 필요하다.

최영기 : 그렇다면 조직률이 높아질까.

박인상 : 예측하기 어렵다. 복수노조 허용 된다고 해도 조직률이 높아진다는 예측은 어렵다.

윤진호 : 자원배분 측면을 보면, 노조가 조직화에 더 많이 자원을 배분할 가능성은 많아진다. 현재 우리나라 노조 조직률의 상승을 가로막는 요인은 노동조합의 문제라기보다 구조적인 문제다. 따라서 그 구조가 깨지지 않는 한 조직률이 아주 급격하게 올라가긴 어렵다. 그렇다고 떨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비정규직이 점차 조직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역시 구조의 변화와 함께 생각해 봐야 한다.

윤진호 "전임자 임금 개혁은 맞지만, 노동조합의 순기능 인정이 전제돼야"

최영기 : 노동조합의 구조적 한계를 계속 지적하는데, 어떻게 보면 지금의 기업별 구조를 온존시키는 큰 힘의 하나가 전임자 제도일 수도 있다. 이것이 기업별 노조의 조직적 안정을 가져오기 때문에 거기에 안주하고 벗어나려 하지 않는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보호라는 측면에서 보면 전임자 제도라는 것을 유지해야 하지만, 지금의 기업별 노조에 갇혀버린 노동운동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전임자 문제를 좀 더 적극적, 능동적, 자주적으로 푸는 노력들도 필요하다.

▲ "원론적으로만 얘기했을 때 사용자로부터 전임자 임금을 받는 것은 당연히 개혁돼야 한다. 다만 현재의 상황에서는 좀 다르다. " ⓒ프레시안
윤진호
: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어쨌든 원론적으로만 얘기했을 때 사용자로부터 전임자 임금을 받는 것은 당연히 개혁돼야 한다. 다만 현재의 상황에서는 좀 다르다. 현재 노조가 하는 기능이 여러 가지인데 기업 내에서 사용자를 대신해서 하는 역할도 있다. 예를 들어 노사협의회 같은 것들인데, 그런 측면에서 당연히 전임자가 있을 수 있다. 물론 큰 틀에서 봤을 때, 노동조합이 스스로 힘으로 전임자의 임금을 해결해야 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앞으로 그렇게 가야된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현 상황을 무시하고 전임자 임금 지급을 금지시켜 버렸다는 것이다.

최영기 : '금지시키는 것이 잘못이다'는 것은 맞는 말이지만, 노동조합의 자주성을 위해서 그리고 재정적 자립을 위해서 노동조합이 스스로 어떻게 하겠다는 대안이 뚜렷이 없다. 법으로 금지하지 말라 하는 것은 하나의 요구인 것이고 그러면 '법으로 금지 안하는 대신, 우리 스스로 재정을 자립하기 위해서 어떻게 하겠다'는 것이 있어야 한다.

노동조합이 지난 13년 동안 전임자 문제에 발목이 잡혀 대정부 대교섭에서 위축돼 왔다고 본다. 오히려 최근에 이영희 장관이 전임자 임금을 원칙대로 하고 지역이나 업종단위로 묶어서 교섭이나 노동조합 기능을 나눠서 하면 될 것 아닌가 하는 얘기를 한다. 정부가 노동조합을 걱정해주는 것 같은, 이런 처지에 있는 것은 노동조합 스스로 이 문제를 어떻게 풀 것인가 중장기 구상이 부족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이수호 : 전교조는 이미 전임자 임금을 우리가 부담해 왔다. 합법화 될 때 이듬해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가 통과될 것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애초부터 그렇게 해 온 것이다. 전교조가 가능했던 이유는 산별 전국단위기 때문이다. 또 전체 조합비를 가지고 중앙에서 관리하면서 적절한 인원으로 전국단위와 지역별로 교섭하도록 돼 있어 가능했다.

물론 못할 것은 없다. 그런데 이미 기업별 관행이 있는데 일시에 바꿔서 과연 가능할까. 국제 관행에 맞는가. 이런 것을 따져보면 '아니다'는 답이 나온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생산성이나 효율성을 따져 봐도 비용을 사용자가 부담하는 것이 낫다. 사용자들도 대체로 이해하고 있다. 정부가 주도해서는 안 된다.

윤진호 : '노동조합의 기능을 어떻게 보느냐'의 문제라고 본다. 노동조합이 사회에서 순기능도 한다고 전제를 하는 한, 어떤 식으로든 노동조합이 유지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정부의 책임이다. 방법은 여러 가지다. 외국의 사례를 보면, 정부가 여러 경로로 노동조합의 재정에 도움을 준다. 사회의 순기능이 되기 때문에 지원하는 것이다. 어떤 지원도 없이 무조건 전임자 임금을 주지 말라고 하면 노조는 퇴로가 없다. 이는 노조의 불행만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순기능 역할이 없어지는 것이다. 장기적으로도 노조 전임자의 임금 문제는 노조의 힘만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노동조합의 순기능을 인정하는 가운데 정부와 사용자가 함께 풀어야 한다.

"다시 길은 원칙과 현장에 있다"

최영기 : 마지막으로 정리해보자. 총연맹 위원장을 지냈고 지금도 계속 활동하고 계신데, 노동운동의 리더십 문제, 특히 내셔널센터의 리더십 문제가 큰 문제인거 같다. 여러 가지 조직적인 문제나 제도적 문제가 있지만 특히 리더십 문제가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 부분에 있어서 혹시 좋은 말씀이 있으시면 해 달라.

이수호 : 어려울 때 일수록 원칙에 충실해야 한다는 얘기를 하고 싶다.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얘기한다면, 이럴 때일수록 민주노조운동의 대의와 원칙을 항상 존중하고 마음에 품고 그러면서 세상을 조금 넓고 길게 보면서 통합의 리더십을 발휘하는 것이 필요하다.

박인상 : 언제든지 제일 좋은 것은 원칙이다. 내셔널센터든, 산별노조든 적어도 노조 간부 입장에서 도덕성은 확실히 지켜야 한다. 내가 여기까지 올라온 것은 조합원의 지지 덕분이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또 현장이 중요하다. 현장과 논의하고 토론하는 과정에서 정책이 마련돼야지 그저 책상 앞에 앉아서 만든 것은 현장이 인정해주지 않는다. 도덕성으로 무장하면서 현장 중심의 조직 운동을 원칙에 의해서 열심히 해달라는 부탁을 하고 싶다.

▲ "다시 노동운동의 길은 원칙과 현장에 있다." ⓒ프레시안

윤진호 : 부패나 성폭력이나 노동조합이 현재 갖고 있는 여러 문제들은 어느 조직이나 있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꾸 확대되는 것은 제 역할을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조합이 스스로 깨닫고 해야 될 일은 크게 보아 두 가지다. 하나는 조합원과 노동대중의 임금, 근로조건을 지키는 것이다. 오늘 얘기가 많이 나왔지만, 비정규직과 중소기업 노동자들 조직 확대가 중요하다. 두 번째는 사회개혁이다. 사회를 전진시키는 핵심 세력으로서 노동조합이 해야 할 역할을 해야 한다. 이 시점에서 다시 한 번 노동조합의 목표나 전략을 중장기적으로 설계해야 한다.

민주노총은 정파 문제가 있고 한국노총은 현장과 간부와의 괴리 문제가 있다. 이 자리에서는 양 노총의 다른 점을 많이 얘기했지만, 실제 조사를 해 보면 현장 조합원은 별로 차이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 무슨 이념을 물어봐도 별 차이가 없다. 그런데 간부들은 분명히 차이가 난다. 이점에서 현장의 목소리가 민주노총은 왼쪽으로 편향되고, 한국노총은 오른쪽으로 편향되는 면이 많이 있다. 조합원들의 뜻, 노동대중의 뜻을 제대로 받아 안는 것이 양 노총이 가야할 길이 아닌가 생각한다.

최영기 : 국가적으로 큰 위기고 노동운동도 큰 위기에 처해 있는 것 같다. 국가의 위기든 노동운동의 위기든 어려움에 처했을 때 진정한 리더십이 발휘될 수 있다고 본다. 새로운 미래를 찾아내는 올바른 리더십을 잘 확립해 나갈 수 있도록 두 분 지도자께서 잘 지도해 줄 것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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