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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가 자청해 밥 굶는 까닭은?

법률가들, '비정규법·최저임금법 개악 반대' 릴레이 단식 돌입

법률가들이 릴레이 단식에 나섰다. "법이 '그림의 떡'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민주주의법학연구회 등 4개 법률 단체들은 27일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비정규직법과 최저임금법의 개악을 저지하기 위해 국회 앞에서 무기한 1인 시위 및 릴레이 단식을 시작한다"고 밝혔다.

"2년 전, 다 알고도 막지 못했던 것 반성하며…"

"법률가는 법률의 정함에 따라 사회관계를 인식하고 그에 따라 행동해야 하는 의무를 진다. 그러나 그것보다 우선하는 우리의 의무는 인간사회의 윤리와 보호받아야 할 가치에 대해 사회적 정의와 양심이 가리키는 방향을 향해 목숨을 아끼지 않고 투쟁해야 한다는 것이다."

법 제정 2년 만에 다시 나온 비정규직법 개정 논란에 법률가들이 직접 몸을 던지는 이유였다.

이들은 현재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개정안이 "'비정규직의 함정'을 더 깊고 단단하게 만들어 수많은 근로자를 비정규직으로 만들고, 법을 위반한 사용자에게 노동법적 책임을 면하게 해주려는 조치"라고 보고 있다.

정부는 대량실업을 막고 비정규직의 고용 안정을 위해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입장이지만, 법률가들은 고용 안정과는 상관이 없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이들 단체는 "사용 기간을 4년으로 연장하더라도 그것이 곧 4년 동안 고용해야 한다는 의무 조항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사용자가 4년 동안 '자유롭게' 쓸 수 있는 것일 뿐 해고할 수 없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기간 연장은 사용자가 법의 틀 안에서 안정적으로 비정규직을 사용할 수 있게 돼 기존 정규직 일자리도 비정규직으로 바뀔 가능성도 있다"고 이들은 내다봤다.

논란을 의식한 듯 최근 한나라당은 4년 연장 대신 4년 유예 카드를 들고 나왔다. 그러나 강문대 변호사(민변 노동위)는 "이 정부 내에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없다는 얘기"라며 비판했다. 사실상 마찬가지라는 얘기다.

차별시정제도와 관련해서도 이들은 "정부의 개정안은 근본적인 대책이 되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신청 기한을 1년으로 연장하고 노동조합에도 차별 시정 신청권이 부여되지 않는 한, '그림의 떡'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 법률단체들은 현재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비정규직법 개정안이 "'비정규직의 함정'을 더 깊고 단단하게 만들어 수많은 근로자를 비정규직으로 만들고, 법을 위반한 사용자에게 노동법적 책임을 면하게 해주려는 조치"라고 보고 있다.ⓒ프레시안

"2년 전엔 '근거 없는 우려'라더니 똑같은 말을 하는 노동부"

이날 공동행동을 시작하며 이들은 여러 차례 2년 전을 얘기했다.

비정규직 관련법이 오랜 진통 끝에 국회에서 통과될 때, 이들은 현재 법만으로는 비정규직의 고용 안정을 보장할 수 없다고 주장했었다. 2년 후에 대량실업이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이었다.

당시 이들이 내놓은 대안은 '비정규직을 사용할 수 있는 사유를 제한하자'는 것이었지만 경영계의 강한 반대에 부딪혀 실현되지 못했다. 물론 당시 노동부도 '비정규직의 고용 계약이 모두 다른 만큼 대량 실업 가능성은 없다'고 경영계의 편을 들었었다.

그런데 2년 후 정부는 '100만 실업대란'을 얘기하는 것이다. 법률가들이 "기막히다"고 얘기하는 것은 그래서다.

이들 단체는 노동부의 말대로 현행법이 비정규직의 고용 안정 등 진정한 보호 대책으로 작용할 수 있게 되려면, △사용 사유 제한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명문화 △원청의 사용자성 인정 등이 포함되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단식 외에도 한나라당을 비롯한 정당과의 면담을 요청하고 비정규직법과 최저임금법의 개정을 주제로 토론회를 여는 등 본격적인 움직임에 나설 계획이다. 국회에서 다시 한 번 비정규직법을 놓고 격돌할 것으로 예상되는 6월에 맞춰 '올바른 법 개정과 근로의 권리 실현을 위한 법률가 선언'도 준비 중이다.

"법 도움 받으려다 법 때문에 해고"…이병훈 노무사가 보름 간 단식한 까닭

법률인들이 '단식'이라는 공동행동에 나서게 된 것은 노동인권실현을위한노무사모임 이병훈 대표의 단식 영향이 컸다. 그는 지난 13일부터 "금호타이어 비정규직 노동자 2명을 실업자로 만든 책임이 모두 나에게 있다"며 단식 농성을 해 왔다.

지난 20일 해고된 금호타이어 곡성공장에서 일하던 2명의 파견노동자 때문이다. 이병훈 노무사가 이들의 사연을 들은 것은 지난해 7월. "정규직과 똑같은 일을 하는데 임금은 반도 안 되는" 이들의 위임을 받아 이 노무사는 노동위원회에 차별시정 신청을 했다.

그리고 9개월 뒤, 이들은 해고 통보서를 받았다. 전남지노위가 이 사건에 대해 "임금이나 교통비, 학자금 등 복리후생비에서 차별을 받고 있다"며 시정명령을 내린 것도 해고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광주노동청이 금호타이어를 향해 "이들을 직접고용하라"고 명령한 것도 의미가 없었다.

금호타이어는 지노위와 노동청의 결정을 수용하는 대신 이들이 담당하던 포장 파트 자체를 외주화했다. 이들이 소속돼 있던 도급업체 성원피티는 문을 닫아버렸고, 새로 도급계약을 맺은 업체는 이들에 대해 고용승계 의무가 없다고 버텼다. 현행법으로는 이들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법에 정해진 대로 보호를 받으려다 법의 허점으로 난데없이 해고된 이들에 대해 이병훈 노무사는 "파견법이 파견 노동자를 보호한다는 정부의 얘기가 거짓말인 줄 알면서도 2명의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참고 지내라고 말하지 않고 차별시정 신청을 하게 한 내가 잘못했다"며 단식을 시작했다.

이병훈 노무사를 이날 서울 여의도 국회 앞 법률단체 기자회견 자리에서 만났다.

▲ 노동인권실현을위한노무사모임 이병훈 대표는 지난 13일부터 "금호타이어 비정규직 노동자 2명을 실업자로 만든 책임이 모두 나에게 있다"며 단식 농성을 해 왔다.ⓒ프레시안
- 단식을 하게 된 이유는?


"금호타이어 사례에서 보듯이 법이 비정규직을 보호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이미 2년 전에 예측했었다. 차별 시정 명령을 받았지만, 그 명령은 허공 속에 메아리칠 뿐 2명의 비정규직은 실업자로 전락하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2년 전에 내가 몸으로 움직여 제대로 막지 못한 책임을 통감한다."

- 금호타이어가 직접 고용 명령 및 차별시정 명령을 거부한 이유는 무엇일까?

"사실 2004년에 금호타이어는 불법파견 시정 명령을 받고 350명을 직접 고용으로 전환했다. 이번 사건도 다른 파견 노동자에게까지 영향을 미칠까 걱정하는 것 같다. 2명 외의 나머지 200여 명의 희망의 싹을 자르려는 것이다."

- 나머지 비정규직도 불법파견 소지가 있나?

"금호타이어에 비정규직이 있는 파트는 3개다. 그 가운데 이번에 차별시정 신청을 한 2명은 포장 파트에서 일했다. 포장 파트는 2명이 정규직, 2명이 비정규직이었다. 나머지 2파트는 검사와 글라인딩인데, 검사 파트는 1층은 정규직 2층은 비정규직이고 글라인딩 파트도 광주공장은 정규직, 곡성공장은 비정규직이 담당한다. 모두 불법파견 소지가 있지만 나머지 2개 파트에 대해서는 노동부가 불법파견이 아니라고 한다."

- 이들이 해고된 뒤 그들이 담당하던 업무는 어떻게 됐나?

"금호타이어가 포장 파트 자체를 외주화해 버렸다. 최근에 회사에서 2명 중 한 사람에게 찾아가 차별시정 신청을 취하하면 하청업체로라도 복직시켜주겠다고 회유하고 있다."

- "'법의 보호'가 새빨간 거짓말임을 알면서도 차별시정 신청을 하게 만든 책임"을 얘기했는데?

"수많은 사례를 볼 때, 파견 근로자가 2년이 지나도 직접 고용될 가능성은 거의 없고 차별시정 신청을 하면 외려 계약해지나 용역해지로 실업자가 될 것이라는 점을 알면서도 설마설마 했었다. 금호타이어는 비정규직도 조합원이고, 고용승계를 해주게 돼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업체를 바꾸면서 해고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하고 차별시정신청 위임을 받아 사건을 진행했다. 그런데 역시나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이번 사건을 겪으면서 역시나 법이 비정규직 보호를 위한 최소한의 장치가 아니라, 사용자의 권리만 인정하기 위한 장치라는 것을 다시 깨달았다."

- 단식하면서 느낀 점은?

"그동안 법률가로서 문제점을 지적했지만 그들의 고통을 내가 직접 느끼진 못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물론 단식의 고통보다 실업자에 놓인 이들이 겪어야 할 고통이 몇백 배는 더 클 것이다.

애초에 단식을 시작할 때 2가지 이유가 있었다. 비정규직의 고통을 호소하는 것이 하나였고, 나 개인에 대한 반성의 의미도 있었다. 법이 잘못됐으면서도 내 행동으로 막지 못한 것에 대한 죄책감이었다. 단식을 통해 나를 돌아보게 됐다."

이 노무사는 이날 오후 단식을 정리했다. 그의 뒤를 이어 다른 동료 법률가들이 "법률인의 양심과 책임"을 위해 릴레이 단식에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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