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교과서 정치와 소외 - 2008년 촛불의 반성
제3절 저항적 연대의 한계
앞 절의 말미에서 나는 미국산 소고기 반대 촛불시위에 제노포비아에서 비롯된 폐쇄적인 권력숭배의 경향이 있었다고 말했다. 내가 가리킨 제노포비아에는 분명 외세에 대한 무조건적 혐오라는 의미가 일부 섞였지만 그 부분은 제5부의 논제로 미루고, 여기서는 무엇보다도 불확실성에 대한 생래적 거부감을 뜻한다. 그런데 이것이 어떻게 권력숭배로 이어지는지는 해명이 필요할 것이다.
생소한 상대는 익숙한 상대보다 약간이나마 더 거북하고, 불확실한 대상은 확실한 대상보다 약간이나마 더 신경이 쓰이는 것은 폐쇄적인 성향이든 개방적인 성향이든 상관없이 인지상정일 것이다. 그러나 개방적인 성향의 사람이라면 약간 더 거북하고 약간 더 신경이 쓰이는 부담을 지불하더라도, 새로운 상대를 알고 사귀고 가능하면 서로 도움이 될 길을 찾으려고 노력할 것이다. 따라서 만약 새롭고 불확실하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혁신과 변화를 거부해버린다면 곧 폐쇄적인 태도, 즉 극단적인 보수성에 해당하는 것은 반론의 여지가 없다.
겉으로만 보면 미국산 소고기 수입에 반대한 것은 이런 형태의 폐쇄성과 다르다고 생각될 수 있다. 어쨌든 거기에 아무리 작더라도 위험요소가 있는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앞 절에서도 지적한 바와 같이, 2008년에 수십만 명의 시위대가 염려한 것은 사실 거기에 실제로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그 작은 위험요소가 전부는 아니었다. 변형 크로이츠펠트-야콥 병이 발견된 이래 전세계에 168건의 발병 사례가 확인되었다는 정도의 위험이라면 누가 봐도 촛불시위는 과잉반응이 된다. 윤평중의 논평이 그렇고, 정명훈이 보였다는(「충격, 지휘자 정명훈, "미국에 구걸하더니 이제와 촛불"」) 신경질적인 반응도 위험도와 촛불시위 사이에 비례가 안 맞는다는 인식에서 나온 것이 틀림없다. 하지만 촛불을 밝히게 만든 염려와 공포의 본질은 그것이 아니다. 소고기를 먹는 데 머나먼 요인들까지 성가시게 신경을 써야 하게 된 상황, 변형 크로이츠펠트-야콥 병이니 전염성 해면뇌증이니 프리온 질병이니 생소하고 이해할 수 없는 병명들 자체가 불러일으키는 짜증과 두려움, 이 모든 이야기들을 어디까지 믿고 어디서부터 믿지 말아야 할지가 분간이 안 된다는 무력감 등이 공포를 구성한 주 원인인 것이다. 불가해한 상황이 닥쳐왔을 때, 상황 자체의 존재를 부인함으로써 불쾌한 상태를 없애보려고 한 것이다.
▲ ⓒ프레시안 |
이는 주관성 안에 국한되어 있는 합리성에 따라 주관성 밖에 있는 상황을 통제하고 재단하려는 시도에 해당한다. 자기가 이해할 수 있는 세계의 모습을 표준으로 삼고, 자기가 이해할 수 없는 요소들은 그 세계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힘으로 막아보겠다는 전제자의 심성인 것이다. 여기서 다시 겉으로만 보면 기세와 힘의 대결이 유일하고 불가피할 것처럼 보인다. 어쨌거나 미국산 소고기가 한국의 경내로 들어오느냐 마느냐를 둘러싼 줄다리기라고 보이기 때문이다. 이런 줄다리기를 힘으로 결정하지 않으면 어떤 다른 길이 있겠는가?
미국산 소고기가 들어오느냐 마느냐는 물론 양자택일의 문제고, 다분히 기세와 힘이 작용해서 결정될 수밖에 없다는 데까지는 인정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소고기 하나 먹는데 파푸아 뉴기니 원주민의 식인 풍습까지 결부될 수 있는 상황, 자연은 선이고 인공은 악이기 쉽다는 이분법의 경계가 자꾸만 복잡해지고 무너지는 것 같은 상황, 확실한 줄만 알았던 일들에 불가해하고 불확실한 요소들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이 섞여있음을 번번이 깨달아야 하는 상황은 그렇지가 않다. 이것은 그야말로 한 나라가 국경을 봉쇄한다고 해서 막아질 수 있는 일도 아니고, 받아들이거나 안 받아들이거나를 양자택일로 결정한다고 그대로 되는 일도 아니다. 이것은 권력의 문제가 아니라 의견과 공론과 사고방식의 문제인데다가, 사실 우리가 그동안 받아들인 서양 근대문명의 핵심에 도사리고 있는 요체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육골분이 아니더라도 이미 이 세상의 초식동물들이 옛날과 같은 초식만 할 수는 없게 되어있다. 설사 방목을 하더라도 그들이 뜯어먹는 풀에는 제초제와 살충제가 묻어있고, 겨울철이든 여름철이든 필요할 수 있는 보조 사료는 전통사회의 건초가 아니라 현대 바이오테크놀로지에 의한 소산이다. 식물이든 가축이든 어패류 양식이든 성장촉진제는 안 쓰이는 곳이 없다. 문익점이 목화씨를 고려로 훔쳐와 재배한 것이나, 모래땅에 금작화를 심어 밭으로 일군 플랑드르 지방의 농민들이나, 가축 사료에 성장촉진제를 섞는 일은 모두 자연을 인공적으로 개조한다는 점에서 똑같은 혁신이다. 접붙이기를 통한 품종개량이나 유전자조작을 통한 품종개량이 한 쪽은 자연친화적이고 다른 쪽은 자연배반적이라고 구분될 수는 없는 것이다.
따라서 익숙함을 고수하기 위해 혁신 자체를 거부하는 태도를 버리고, 주어진 혁신의 결과 예상되는 부작용이 무엇인지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진보와 개선을 추구하는 태도로서 일관적이다. 그런데 부작용 중에는 예상한 부작용보다는 예상하지 못한 부작용이 항상 더욱 심각하다. 평면적 합리성만을 고집한다면, 예상하지 못한 부작용을 모두 예상할 수 있는 범위 안으로 편입해서 완벽하게 문제가 해결되리라고 기대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예상하지 못한 부작용이란 항상, 준비를 철저히 하지 못해서 발생하기보다는 준비를 아무리 완벽하게 해도 예상하지 못한 대목들이 항상 남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미지(未知)의 영역을 다 기지(旣知)의 영역에 담겠다는 발상은 단순히 유한성과 무한성의 개념적 차이를 이해하지 못한 무지일 뿐이다. 모든 수의 집합이 유한 집합일 수 있다고 우기거나, 가장 큰 자연수를 확정할 수 있다고 우기면 곤란하지 않겠는가? 종전까지 미지에 속하던 요소 일부를 기지라는 용기 안에 담을 수는 있다. 그러나 그 결과 미지의 분량이 줄어드는 것은 전혀 아니다. 기지의 용기 안에 담긴 지식의 양이 많아질수록, 미지의 영역 또한 점점 광활해지고 풍성해지는 것이다.
기지와 미지의 사이에 유한과 무한의 사이와 같은 본질적 차이가 있음을 이해한다면, 예상하지 못한 부작용에 대처할 최선의 방책은 대상을 통제하기 보다는 우리의 마음을 관리하는 데서 나올 수밖에 없음을 깨달을 수 있다. 불확실성 자체를 부인하고 배척한다는 것은 결국 모든 혁신 자체를 거부하는 폐쇄성이고, 불확실성을 관리한다는 것은 우리의 태도와 관계되는 일임을 깨달을 수 있다. 다시 말해 어느 정도의 불확실성을 언제 감수할 것인지를 우리가 결정해야 한다는 얘기다.
어떤 의미에서는 촛불시위대야말로 "우리가 결정한다"고 외친 셈이라고 볼 수 있다. 틀림없이 맞는 소리고 그래서 나는 시위의 취지에 동감하지 않지만, 시위 자체는 무제한으로 허용해야 한다고 보았다. 이 연재에서 표현의 자유에 대한 강조는 좀 지루할 정도로 자주 주창한 바가 있다. 그런데 이런 경우 "우리"는 대단히 여러 가지 뜻을 가질 수 있고, 또 시간과 사정이 바뀜에 따라 변화가 무상하다.
개인의 경우 소고기를 사먹을 때 어느 정도의 위험부담을 감수할지 본인이 결정한다. 이명박이 당시에 "싫으면 안 먹으면 될 거 아니냐"고 해서 불길에 기름을 부었지만, 말 자체는 썩 틀린 말이 아니다. 이런 차원에서 촛불시위대는 "먹기 싫다"는 의사를 표현했고, 원산지 표시가 보나마나 제대로 잘 안 될 제도적 환경에서 일단 수입되고 나면 싫다고 안 먹을 수 없게 되기 때문에 대통령의 경박한 대꾸에 더욱 분통을 터뜨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산 소고기에 대한 거부감이 인민의 의사를 대변했다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인민의 의사를 어떻게 측정할 것인지는 정치학과 역사학과 철학에서 골치 아픈 논란거리 중 하나기 때문에 여기서 파고들어도 최종적인 정답에 별 도움은 안 된다. 단, "인민의 의사"라는 문구의 언저리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는 간략하게나마 보일 필요가 있다.
우선 2007년 12월에 이명박을 대통령으로 뽑은 민의가 있다. 유효투표 대비 48.7%, 전체유권자 대비 30.5%였지만, 일등당선제라고 하는 제도적 절차에 따라 이것은 다수 또는 주류의 의사라는 자격을 일단 갖추기에 손색이 없다. 한편 촛불시위가 한창일 때, 미국산 소고기 수입에 관해 재협상이 필요하다는 여론은 78.2%(한겨레-리서치플러스, 2008. 5. 24), 81.2%(조선일보-갤럽, 5.31), 80.5%(SBS-TNS, 6. 1), 79.1%(MBC, 6. 1)로 나타났다. 그렇지만 정부의 반응은 재협상 대신에 "추가협상"에서 그쳤다. 취임 100일을 맞아(2008. 5. 27-28) 사회여론연구소가 실시한 전문가 여론조사에서는 "이대통령 국정운영 잘못하고 있다"가 96%, "한국정치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가 86.6%로 나왔다. CBS-리얼미터 조사에 따르면 2008년 6월 3-4일 16.9%까지 내려 갔던 국정수행 지지도는 그 후 서서히 상승해서 2008년 12월 17일에는 32.6%까지 회복되었다.
우리 먹거리는 "우리가 결정한다"고 할 때, 이 가운데 어떤 우리가 그 결정의 주체일까? 선거에서 이명박을 지지한 48.7%인가, 2008년 5월말에 소고기 재협상을 주장한 80%인가? 이명박은 이런 반대에도 꿋꿋이 버티고 있는데, 야간옥외집회 금지조항에 대해 위헌심사를 제청한 판사는 사표를 냈다. 미네르바는 구속되고, 용산참사 이후로도 별다른 "제도개선" 없이 재개발은 강행되며, 브로커에게 알선료를 주고 사건수임을 받아 두달 만에 13억원을 벌었다가 변호사법 위반으로 구속된 전력이 있는 인하대교수 이재교가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위원회 위원으로 위촉되었지만, 이런 와중에서도 정부에 대한 지지는 30% 이상을 유지한다. 정부의 구체적인 정책에 불만을 가지는 국민이 80%가 넘는데 정부가 정책을 바꾸지 않더라도, 선거로 뽑힌 정권인 만큼 정책에 반대한 80%가 그대로 정권타도에 나서지는 않는다. 불만은 어느 정도 분풀이를 하고 나면 진정이 되는데다가, 사실 정책이라는 것들을 어떻게 바꿔야 똑떨어진 묘안이 될지 확신하는 국민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이 점은 저항적 연대를 통해서 어떤 새로운 체제를 구성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준다. 이는 특히 대한민국의 현대 정치사에서 매우 심중한 의미를 가진다. 일제에 저항한 인민의 소원이 1945년에 이루어지자마자 바로 그 인민은 격심한 가치혼란을 겪어야 했고, 민족은 두 동강이 났으며, 양쪽에서 공히 "민주주의"라는 수사가 유행했지만 실상은 독재가 들어섰다. 1960년 4월혁명은 이듬해 군사쿠데타를 위한 예고편 노릇으로 전락해버렸고, 1987년 6월항쟁의 직접적인 귀결은 노태우의 당선이었을 뿐이다. 그리고 1970년대 "민주투사"중 한 명이었던 김영삼은 민정당과 손을 잡고 대통령이 된다. 대한민국은 1948년 정부수립 이래 한순간도 "민주공화국"이라는 간판을 내린 적이 없는데, 인민이 묵종할 때는 물론이고 인민이 떨치고 일어나 주권을 선언한 시기에도 경제적 문화적 군사적 제도적 권력을 사실상 독점한 집단의 지위가 흔들린 적이 없다.
일부 급진파를 자처하는 철부지들이 주장했듯이 촛불의 여세를 몰아 정권타도까지 실제로 성사되었다면 어땠을까? 해방정국, 1960년, 1987년 등, 인민주권이 가장 선명하게 발휘된 결정적인 국면에서도 독재자를 내쫓았을 뿐, 민주사회의 삶의 구체적 질서가 무엇이어야 하는지에 관해 명확한 의지를 표명하지 못한 인민이 2008년의 촛불시위 때는 그 비슷한 것을 가지고 있었을까? 노무현 정부 때 맘껏 표현의 자유를 누리며 중구난방으로 서로 손가락질하기에 바빴던 진보진영이 촛불의 동력을 하나의 물꼬로 통합하는 정치적 지도력을 조성해낼 수 있었을까? 내 대답은 확고한 "아니오"다.
촛불시위에서 한국정치의 미래에 관한 장엄한 희망을 보는 것까지는 특별히 나무랄 일이 아니다. 희망은 언제나 선이고, 시민들이 자신의 의사를 표현한다는 것은 민주주의를 위한 기본 바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산 소고기 반대로 나타난 의사들이 대체로 진보적인 지향성을 가진다고 해석하려면 "진보"라는 말에 무수한 유보조건들을 달아야 한다. 지금까지 논의했듯이 불확실성에 대한 습성화된 제노포비아라는 차원에서는 촛불시위야말로 가장 보수적인 태도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호원대학교의 서유석 교수는 "촛불을 지핀 학생과 시민의 절대 다수가 여전히 박정희를 우리 민족 최대의 지도자로 꼽는 어지러운 현실"에 주의를 환기했다 (「촛불이 요구하는 '성찰'」, 『시대와 철학』, 19:2, 2008, 278쪽). "제도정치, 대의정치, 계급정치, 아날로그 정치, 욕망정치"에서 "생활정치, 참여정치, 인정정치, 디지털 정치, 가치정치"(「촛불집회와 세계화의 정치」, 『촛불집회와 한국사회: 과제와 전망. 한국정치사회학회 특별 심포지움 발표논문집』)로의 전환을 촛불에서 읽는다고 하는 연세대학교 김호기 교수의 수사가 풍부한 상상력이라기보다는 허황한 작문에 가까운 까닭이 그 때문이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바뀐 변화는 분명히 문화적 도덕적 정치적 함의를 가진다. 광우병 논란 국면에서 인터넷이라는 디지털 인프라가 커다란 영향을 미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제도/대의정치에서 생활/참여정치로 바뀐다는 도식은 제도와 생활의 연관, 참여와 대의의 연관을 무시하는 무별주의적 구호일 뿐이다. 하지만 김호기의 가장 중요한 오류는 욕망과 가치의 이분법이다.
이런 이분법이 일반적으로 얼마나 유치한 발상인지는 이미 앞 제2부 제3장에서 논의했다. 여기서는 미국산 소고기 반대가 어떤 욕망과 어떤 가치를 표상하는지에 주목해서 따져보자. 촛불시위는 나름대로 합리적인 이유에서 나왔는데, 동시에 그 합리성은 미지의 영역을 우선 두려워하고 보는 정서로 구성되며, 불쾌한 상대를 힘으로 무질러보려는 권력숭배가 섞여 있다고 나는 말했다. 이런 내 말이 맞는다면, 이런 정서 또는 주관적 합리성은 진보적인 지향성과는 부합하기보다 어긋나는 방향의 욕망이라고 봐야 한다. 이런 면을 따지지 않고 "욕망의 정치에서 가치의 정치로" 따위 선동가들이 좋아할 만한 표어 짓기가 지식인 사이에 만연하는 것은, 바로 촛불시위처럼 예상치 못한 사태에서 나온 빛이 민족주의, 자본주의, 자유주의, 마르크스주의, 도덕주의, 낭만주의 등에 비쳐서 다양한 각도로 반사할 때, 거기서 나오는 무지개와 같은 찰나적인 매력을 상징의 문구로 담아보려는 시인 흉내 때문이다.
하지만 시적 감수성은 정치에 반드시 필요하지만 결코 충분조건은 못 된다. 첩첩산중에서 길을 잃었을 때 시인의 마음은 희망을 지키는 데 도움이 되지만, 어떤 등성이를 어떻게 넘고 어떤 골짜기를 어떻게 지나 어떤 지점에서 하룻밤을 묵을지는 지극히 냉혹한 관찰과 논리가 절대로 필요하다. 촛불시위가 생활과 참여를 표상한다면 바로 그만큼 그것은 욕망의 표출이다. 거기에 가치가 들어있다면 그 가치는 마땅히 욕망을 근거로 삼아 발전하는 가치이지 욕망을 대체하는 가치일 수는 없다.
여고생이 정부에 강력하게 항의할 권리를 자각하고, 젊은 엄마들이 유모차를 끌고 시위에 합세할 정도로 평화의 관념이 확대된 것은 정치적 자유주의라는 관점에서 고무적이다. 그러나 정치적 자유주의란 곧 절차적 민주주의의 다른 말로서, 미국산 소고기에 찬성할 자유처럼 반대할 자유도 허용해야 한다는 것이지, 세계화를 어떻게 보고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에 관해 남달리 밝은 선견지명으로 인도할 비밀통로는 전혀 아니다.
촛불 시위에 참여한 시민들이 가진 욕망은 결코 한 가지 목표를 지향한 것이 아님은, 거기에 참여하지 않은 시민들이 결코 한 가지 목표를 지향한 것이 아님과 같다. 촛불시위는 기본적으로 불만의 표출이었을 뿐, 그 불만의 과녁이 구체적으로 무엇이었는지는 사람에 따라 달랐다. 과녁 자체가 불투명했던 사람도 많고, 과녁이 여럿이었던 사람도 많았다. 종전 같으면 가만있었을 사람들이 욕망을 표출하기 시작했다는 의의는 있지만, 그런 욕망들이 본질적으로 진보정치의 동력과 친화적이라고 보는 것은 아전인수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욕망들을 명료하게 식별하고 정제해서 진보정치의 동력으로 조직할 과제가 진보를 자처하는 지식인 및 활동가들의 몫으로 떨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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