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건 전 국정원장이 결국 전주 완산갑에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다. 이에 따라 전주 지역에서 치러지는 2곳의 선거는 '민주당 대 무소속' 대결로 치러지게 됐다. 만약 이들이 동반당선될 경우 범민주당의 세력 재편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무소속 연대'? 정동영-신건 다른 셈법
신 전 원장은 15일 오후 선관위에 후보 등록을 마쳤다. 당초 전북도의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공식 출마 선을을 할 예정이었으나, 실무상의 이유로 공식 기자회견은 16일 오전으로 연기했다.
정 전 장관 측은 신 전 후보와의 '무소속 연대설'을 부인하고 있지만, 정 전 장관과 교감이 있었다는 것은 거의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진다. 당사자인 신 전 원장이 정 전 장관 측과 여러 번 접촉했다고 밝혔다. 옆동네에 출마한 '정동영 바람'을 최대한 등에 업으려는 계산으로 읽힌다.
그러나 정동영 전 장관 측은 '그런 일 없다'고 딱 잡아뗀다. '복당'을 전제로 탈당한 마당에 민주당 선거에 재를 뿌리는 일을 한 것으로 비쳐지는 게 부담스러워서다.
민주당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덕진과 함께 완산갑마저 신건 후보에게 패할 경우 치명상을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전주 시민들의 높은 정치 의식을 믿는다"며 민주당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신건 전 원장의 출마는 정 전 장관에게 대한 민주당의 반감을 자극시켰다. 당권파도 비주류도 아닌 한 초선 의원은 "지도부도 매몰찼지만 정 전 장관이 너무 멀리간 것 같다"며 "이렇게 싸워서야 나중에 다시 어깨동무 할 수 있겠느냐"고 안타까워했다.
지도부는 더 강경하다. 신 전 원장과의 교감설에 대해 핵심 관계자는 "옷을 바꿔 입어도 민주당의 피가 흐르고 있다더니 결국은 배신의 피가 흐르고 있나보다"라며 "둘 다 당선될 가능성이 있지만, 당선돼도 정치적으로 식물인간이 될 것"이라고 험담했다.
'호남 자민련'으로 가나?
선거 후 판도 변화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정 전 장관이 신건 전 원장의 무소속 출마를 부추긴 게 기정사실화 된 이상 정 전 장관과 민주당 지도부의 앙금은 더욱 깊어졌다. 적어도 정세균 체제에서의 복당은 불가능하다고 봐도 무방하다.
정가에서는 두 가지 예상 시나리오가 나온다. 하나는 정 전 장관이 독자적 신당을 창당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최대한 몸을 낮추고 있다가 민주당의 세력 구도 개편을 추동하며 복당을 하는 것이다. 이런 방법들이 타산이 맞지 않으면 무소속으로 남아 민주당 내부를 거중 조정하는 방법도 가능하다.
하지만 어느쪽이건 본질은 똑같다. 전북을 중심으로 호남권에 영향력을 확대해 나가는 '근거지 다지기', 즉 '호남 자민련'으로 가는 길이라는 것이다.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의 행적을 되짚어 보면 정 전 장관의 행보가 좀 더 쉽게 예상된다.
한나라당을 뛰쳐나간 이 총재는 충청권 지역기반이 튼튼한 자유선진당을 창당하고 이어진 총선에서 수도권 출마 여론을 뿌리치면서까지 충남 예산에 출마했다. 충청도를 교두보로 재기의 발판을 다진 것이다.
정 전 장관도 2010년 지방선거를 대비해 호남권을 장악하면 수도권 중심의 정세균 체제를 공중분해시킬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올 법하다. 이를 발판으로 민주당을 재장악, 차기 대선까지도 노려보는 수순이다.
그러나 호남의 중심축인 전남권이 정 전 의장의 계획에 호응할지 미지수이고, 그의 정치 행보를 보는 여론의 곱지 않은 시선이 가장 큰 문제다.
민주당의 한 중진 인사는 "수많은 분열과 통합을 거쳐 오는 동안 아무리 지지고 볶고 싸워도 집안을 쪼개거나 다른 살림을 차려서는 절대 안 된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며 "정세균 체제가 어려움을 겪어도 정 전 장관을 따라가거나 당 자체를 깰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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