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하다. 타이밍이 절묘하고 내용이 적절하다. 세무조사 무마 로비에 대한 검찰의 사실상 무혐의 결정을 공증하는 것으로 한상률 전 국세청장의 말처럼 유효적절한 건 없다.
한상률 전 국세청장의 주장에 따르면 추부길 전 비서관은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이상득·정두언 한나라당 의원에게 전화 몇 통 걸어 생색만 냈을 뿐 로비 종착점 근처엔 가지도 않았다. 이쯤 되면 '실패한 로비'로만 규정할 게 아니다. '사기극'이란 규정도 추가해야 한다. 2억원이나 받았으면서도 돈값을 못 했으니 신의성실의 원칙을 어긴 셈이다.
이명박 대통령에 직보할 필요도 없었다. 추부길 전 비서관은 물론 이상득 의원 등도 일절 접촉이 없었다고 하지 않는가. 여권 인사가 연루됐다고 꿈에도 생각지 못한 한상률 전 국세청장이 굳이 남의 눈을 의식할 필요가 있었겠는가. 계통을 무시하면서까지 보안에 신경 쓸 까닭이 있었겠는가.
한상률 전 국세청장의 주장은 마침표다. 검찰을 향한 '편파수사' 비난을 잠재우는 유효타다. 그의 주장이 진실이라면 그렇다.
▲ ⓒ한국일보 |
근데 걸린다. 한 마디가 귓전을 맴돈다. "(만약 독대했더라도 그것은)형식에 불과하다"고 했다. 주목하자. 이 말은 "독대는 있었다"를 전제하는 것이다. 독대 사실을 부인하는 게 아니라 독대 의미를 축소하는 말이다. 왜 했을까? "독대는 없었다"는 앞말을 갉아먹는 말을 왜 덧붙였을까?
이렇게 보니 새롭게 다가온다. 적잖이 나왔다. 한상률 전 국세청장이 이명박 대통령과 독대해 세무조사 결과를 직보했다는 보도가 '조선일보'를 비롯한 여러 매체에 실렸고, 정동기 민정수석이 국세청 간부에게 강하게 항의했다는 보도도 있었다.
하지만 없었다. 한상률 전 국세청장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이 같은 보도는 모두 '오보'인데도 청와대가 해당 언론사에 항의와 함께 정정을 요구했다는 소식은 어디에서도 들리지 않았다.
납득할 수 없는 대목이다. 검찰이 노무현 전 대통령과 관련된 의혹을 집중적으로 캐고, 시간대별로 언론이 중계보도를 하는데도 청와대는 노코멘트로 일관하고 있다. 수사는 검찰이 알아서 할 일이라며 한 발 뒤로 빼고 있다. 경계하기 때문이다. 검찰 수사에 청와대의 의지가 투영됐다는 오해를 살까봐,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는 청와대의 입김이 작용한 정치수사라는 비판을 살까봐 경계하기 때문이다.
호응하지 않는다. 검찰 수사에 대한 청와대의 태도와, '독대' 보도에 대한 청와대의 태도가 상응하지 않는다. 검찰 수사에 대해 노코멘트로 일관하면서까지 경계심을 늦추지 않는 청와대라면 응당 대응했어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이 밀실에서 국세청의 세무조사, 나아가 검찰의 수사를 사실상 조율한 것으로 몰아간 언론 보도에 강력히 대응했어야 한다.
왜 그랬을까? 청와대는 왜 대응하지 않았을까? 이게 포인트다. "(만약 독대했더라도 그것은)형식에 불과하다"는 한상률 전 국세청장의 첨언을 곱씹게 만드는 줄기다.
이렇게 보자. 한상률 전 국세청장의 독대 관련 주장이 거짓이라면 어떨까? 실제로 이명박 대통령에게 직보했다면 어떨까? 그런 행위의 배면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
달리 볼 방법이 없다. 세무조사 무마 로비(또는 검은 돈 수수)에 연루된 인사가 청와대 민정수석실 선에서 컨트롤해도 되는 '잔챙이' 급은 아니었으며, 이 같은 사실을 한상률 전 국세청장도 인지하고 있었다고 보지 않을 수 없다.
그가 누굴까? 단정할 수 없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게 알 수 있다. 최소한 추부길 전 비서관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당시 그는 청와대를 떠나 있었다. 더구나 검찰의 '박연차 수사' 초기에 앞줄에서 사법처리를 받았다. '대어'는 아니었던 것이다.
한상률 전 국세청장의 주장은 완결점이 아니다. 현 여권 인사 연루설에 마침표를 찍는 결정적 발언이 아니다. 오히려 의혹을 증폭시키는 발언이다. 검찰의 수사 시발점을 알리는 신호다.
소환 조사해야 한다. 한상률 전 국세청장 스스로 "검찰이 부르면 소환에 응하겠다"고 하니까 회피할 이유가 없다. 검찰청사로 불러 한 점 의혹 없이 모든 걸 털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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