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유일한 잘못은 가진 것 없이 꿈을 가진 것"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유일한 잘못은 가진 것 없이 꿈을 가진 것"

[화제의 책] <여기 사람이 있다-대한민국 개발 잔혹사, 철거민의 삶>

유순분 씨는 경기도 광명 6동 철거민으로 남편과 딸 둘을 두고 있다. 어릴 때는 경기도 시흥시 계수리에 살다가 고등학교 2학년 때 지금 살고 있는 광명시로 이사를 왔다. 횟수로 따진다면 37년을 살아온 셈.

350만 원에 산 무허가 판잣집에서 두 딸을 대학교까지 보낸 유 씨였다. 하지만 어느 날 느닷없이 재개발 통지가 나오더니 "너희가 사는 곳은 불법 건물이니까 여태 산 것만도 고맙게 생각하고 나가라"며 살던 광명 6동 일대를 철거하기 시작했다. 2007년 3월이었다. 조합에서는 공탁금으로 2000만 원을 주겠다고 했지만 그 돈으로 어디 가서 살수도 없기에 못나간다고 버텼다.

결국 지난해 11월 유 씨가 잠깐 집을 비운 사이 집은 강제 철거됐다. 유 씨는 이후 지금까지 광명 6동 도로변에서 천막을 짓고 기거하고 있다. 이곳도 언제 철거할지 몰라 살림 집기는 차에 넣어 두고 잠만 잔다.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유 씨가 선택한 마지막 길이었다.

<여기 사람이 있다-대한민국 개발 잔혹사, 철거민의 삶>(연정 외 14인 지음·삶이 보이는 창 펴냄)은 유 씨처럼 하루아침에 집을 잃고 길바닥에 내던져진 철거민들의 슬픔과 분노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 <여기 사람이 있다>(연정 외 14인 지음·삶이 보이는 창 펴냄). ⓒ프레시안
용산 참사, 잊혀진 일이 될 수 없는 현재 진행형의 일

용산 참사가 일어난 지 벌써 두 달이 훌쩍 넘었다. 그토록 떠들던 언론도 잠잠해졌다. 참사가 발생했던 용산 4구역은 얼마 전부터 다시 공사를 재개했다.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도리어 이 지역 재개발 조합은 용산참사로 사업이 지연돼 손해를 입었다며 지난 9일 철거민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유가족 5명을 포함한 철거민 20명을 상대로 8억7000만 원을 요구한 것.

대부분의 이들에게 시작부터 '남의 일'이었던 용산 참사는 이젠 기억 속에서 '잊혀진 일'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여기 사람이 있다>를 읽다보면 용산 참사는 서울과 수도권 곳곳에서 '잊혀진 일'이 될 수 없는 현재 진행형이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개발 반대 안한다. 다만 내가 살아갈 수 있는 길만이라도 열어주길"

용산 4구역에서 식당일을 15년간 해온 최순경 씨는 식당 옆에 있는 작은 방에서 생활을 해왔다. 식당은 보증금 3000만 원에 월세 80만 원이었다. 하지만 IMF 때 월세를 못 내 보증금은 절반으로 깍였다. 식당을 하기 위해 초기 비용으로 6500만 원이 들었다. 그 중 대출을 5000만 원 받았고 지금은 갚지 못한 원금이 3000만 원 남았다. 가게의 평수는 10평. 방 한 칸짜리 집은 3평 정도다.

새벽 3시에도 일어나고 4시에도 일어났다. 주로 밤 10시나 되어야 문을 닫았다. 식당은 하루도 쉬지 않는 연중무휴였다. 5급 장애인인 그는 나름대로 열심히 산다고 자부하며 살아왔다.

그러다 이곳에 개발 바람이 불어왔다. 처음에는 암담했고, 그 다음 진행 과정은 황당했고, 결과는 처참했다.

처음 개발한다고 할 때만 해도 그는 뭐가 뭔지도 몰랐다. 조합에서는 평가금액을 자기네들 맘대로 평가해놓고 종이 한 장 던져주고 나가라고 닥달만 했다. '임대주택도 없다, 상가는 너희한테는 해당사항 없다, 거기서 나온 평가 금액 2000만 원 받고 나가라'라고 했을 뿐이었다. 너무 억울했다. 여기서 십년 넘게 자리 잡고, 잘 살지는 못했어도 평범한 시민으로서 즐겁게 살아왔는데 이런 일을 당하다 보니 눈물 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는 거창한 것을 요구한 게 아니다. 개발을 반대하지도 않았다. 다만 개발을 하되 자신이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달라고 했을 뿐이다. 금전 관계에 대해선 일언반구 말한 적 없었다. 하지만 그의 일터이자 집은 강제철거 됐고 이후 거처를 옮기면서 생활하다가 지금은 용산 참사 분향소 옆에 마련된 비닐하우스에서 지내고 있다.

▲ 용산 참사 현장에 마련된 분향소. ⓒ프레시안

책 속의 주인공인 철거민들, 바로 우리 옆집 이웃들이자 미래의 우리들

그처럼 하루아침에 길거리로 내몰린 철거민들의 이야기가 열다섯 명 작가의 꼼꼼한 기록을 거쳐 책으로 나왔다. 그들은 먼 곳에 있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바로 우리 옆에서 미용실을 하고 세탁소를 하는 평범한 소시민들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들은 '투사'가 되어 머리를 삭발하고, 천막 농성을 했다. 심지어 건물 옥상에 망루를 짓고 올라가 절규했다.

30년 동안 성남에서 살아온 박명순 씨는 "철거민이 되고 나서야 철거민이 어떤 상황인지를 알게 됐다"고 털어놨다. 10년 넘게 평범하게 미용실을 꾸려왔던 그로서는 이런 자신의 처지를 상상도 하지 못했다.

서울시 풍동에 세들어 산지 4년 만에 철거민이 된 성낙경 씨는 "철거민이 되고 싶어서 되는 사람은 없다. 자기 의지와는 무관하게 일어나는 일이다"고 말했다. '언젠가 당신도 철거민이 될 수 있다'는 일종의 경고와 마찬가지이다.

유일한 잘못은 가진 것도 없으면서 터무니없는 꿈을 포기하지 않는 것

어느 날 철거민이 되고, 심지어 공권력에 의해 죽음에 이른 사람들. 책의 필자는 "이들이 저지른 유일한 잘못은 가진 것도 없으면서 이 땅에서 터무니없는 꿈을 품고 희망을 끝내 포기하지 않은 것뿐"이라고 설명했다.

"저도 처음엔 인생 계획이 있었죠. 내 집, 내 가게도 장만하고 할 그럴 계획이요. 근데 살다 보니까 계획대로 안 되더라고요. 중간중간에 일이 막 터지니까, 그냥 간신히 먹고사는 정도만 되는 거죠. 왜냐면 이만큼 모아 놓으면 벌써 집값은 또 훌쩍 뛰어 있으니까. 대출 끼고 뭐 끼고 해도 안되는 거죠. 진짜 그냥 밥 먹고 생활하는 곳인데 평생을 벌어도 못 산다는게…."

용산에서 7년간 일한 도서대출점과 세들어 살던 집이 하루 아침에 없어진 박선영 씨의 말이다. 그의 말처럼 소박한 집 한 채를 갖는 건 한국 사회에서 여전히 힘들다. 아니 집 한 채는 고사하고 가족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공간조차 사람들은 '꿈'이라 한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