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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 바이러스>의 기적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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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 바이러스>의 기적은 없었다"

국립오페라합창단 끝내 해체…"규정 하나 바꾸는 게 그렇게 어렵나?"

"야, 이제 진짜 3시간 30분 남았다."

한 남성 단원이 웃으며 말했다. "전원 해고 말이야"라는 그의 다음 말이 이어지는 데는 불과 몇 초의 시간이 흘렀을 뿐이지만, 방금 전까지 얼굴 한 가득 미소를 머금고 '축배의 노래', '푸르른 바람아', '꽃 파는 아가씨' 등을 불렀던 단원들의 표정은 이미 진작에 그 말의 뜻을 알아채고 굳어진 뒤였다.

3월 31일. 짧게는 2년, 길게는 7년간 그들이 몸담아 온 국립오페라합창단이 정식으로 해체된 날이었다. 42명의 합창단에게는 날벼락 같은 해고의 날이기도 했다.

현직 합창단원으로서 가진 그들의 마지막 공연은 겨울 기운이 제법 남아 있는 서울역 앞 광장에서 열린 '오페라합창단 해체 철회를 위한 촛불 음악회'였다. 대통령이 바뀐 뒤 내려온 이소영 단장이 '합창단 해체'를 언급한 지 3개월 여가 흘렀고, 국립오페라 합창단은 이날 "대한민국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2년 이상 단원 29명까지 3월 31일부로 전원 거리로

▲ 3월 31일. 그들은 짧게는 2년, 길게는 7년을 몸담아 온 국립오페라합창단이 정식으로 해체된 날이었다. 42명의 합창단에게는 날벼락 같은 해고의 날이기도 했다. ⓒ프레시안
지난해 12월 이소영 단장이 "규정에 없는 합창단을 운영할 수 없다"며 해체를 통보한 이후 많은 사람들이 오페라합창단의 존속을 요구해 왔다. 한양대 명예교수인 성악가 박수길, 나영수 국립합창단 음악감독 등 음악인을 포함해 1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이들의 외로운 싸움을 지원했다.

그러나 문화체육관광부와 이소영 단장은 "국립오페라단이 그동안 규정에도 없이 임의로 합창단을 운영해 온 것인데 국립예술기관 및 단체는 규정과 원칙에 따라 운영되야 한다"며 합창단 해체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끝내 지난해 12월 31일 이미 해고된 2년 미만 근무 단원 13명에 이어 이날 29명의 합창단이 모두 일자리를 잃었다.

베이스를 맡은 막내 단원인 노시진(29) 씨는 "황당합니다.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화가 납니다"라고 말했다. 노 씨는 "최저임금도 못 되는 월급을 받으면서도 무대에 서는 것 자체를 행복해 하며 '상임화' 약속을 믿고 지냈는데 이제 와서 해체한다니 억울하다"고 했다.

이 단장과 정부는 '규정 때문'이라고 했지만, 노 씨는 "규정 하나 바꾸는 건 어렵고 나가서 합창단을 새로 만드는 것은 쉬운 일이냐"고 따져 물었다. 국립오페라 합창단의 해체가 사회적 논란이 되자 문화체육관광부는 "비영리단체로 하여금 정부의 '사회적 일자리 창출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해 합창단을 운영할 예정"이라고 밝힌 바 있다. 외부에 합창단을 만들 테니 그쪽으로 가면 되지 않냐는 주장이다.

그러나 단원들은 "대안이 아니"라며 반발하고 있다. 이 단장이 언급하는 '코리안오페라콰이어'가 기존 단원 전원의 고용을 승계하는지에 대해서도 이 단장은 "오디션을 거쳐야 한다"는 입장이어서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규정 때문에 새 합창단 만들어 가라? 7년 간 쌓은 노하우는?"

"어차피 합창단이 필요하다면, 그 돈으로 지금 합창단을 운영하면 되지 않냐"는 지적도 나온다.

최소영(30) 씨도 "규정을 바꾸면 되는 문제일 뿐, 중요한 것은 사람 아니냐"고 말했다. 최 씨는 "2002년 이후 300회 공연을 거치면서 마스터한 작품만 26편인데 7년간 쌓아 온 노하우와 열정은 어떻게 하란 말이냐"며 억울해 했다.

최 씨는 "국립이 아니라면 그 어디에서 (오페라에) 투자를 하려고 하겠냐"며 "그러고도 문화 선진국을 꿈꾸는 것은 억지"라고 강조했다.

▲ 최소영(30) 씨는 "규정을 바꾸면 되는 문자일 뿐, 중요한 것은 사람 아니냐"고 말했다. 최 씨는 "2002년 이후 300회 공연을 거치면서 마스터한 작품만 26편인데 7년 간 쌓아 온 노하우와 열정은 어떻게 하란 말이냐"며 억울해 했다. ⓒ프레시안

"이소영 단장, 동생에게 섭외 맡기고 업무 추진비 과다 사용" 도덕성 시비도

이런 가운데 이소영 단장의 도덕성 시비마저 불거지고 있다. 민주당 최문순 의원실에 따르면, 이 단장은 친동생이 근무하는 회사 'MCM 유럽'에 출연자 섭외를 맡기는 등 부적절한 행위를 했다.

최 의원실은 또 이 단장이 외국인 연출과 스태프, 출연자에 대한 일비를 부활시키는 방법으로 과도한 비용을 지출했다고 지적했다. "MCM 유럽에 대한 '퍼주기 계약' 아니냐"는 의혹이다.

이 단장의 부적절한 인사는 해체된 합창단도 지적해 온 부분이다. 민주노총 공공노조 국립오페라단지부 조남은 지부장은 "상임단원인 지휘자, 준주연급 성악가, 연출 감독, 무대 감독 등도 이 단장이 온 뒤 모두 해촉됐고 그 자리를 이 단장의 가까운 사람들이 모두 차지했다"며 "단장이 바뀐다고 상임 단원까지 자르는 것은 이전에는 없던 일"이라고 비판했다.

최 의원실은 "이 단장이 월 95만 원으로 책정된 단장의 업무 추진비를 두 배 넘게 사용하는 등 도덕적 해이가 상당하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 단장 측은 "터무니없는 음해"라는 입장이다. 이 단장은 "판공비는 월 단위가 아닌 1년에 걸쳐 정산되는 것"인 만큼 1, 2월만 가지고 문제 삼을 수 없으며 "수준 높은 작품을 올리기 위해 MCM 유럽을 이용한 것일 뿐 여동생과는 관계가 없다"고 반박했다.

"조만간 시립합창단들과 '오페라합창단 해체 철회' 공동 음악회 연다"

전 오페라합창단원들은 1일부터 '출근 투쟁'을 시작한다. 문화관광부와 국회 앞 1인 시위와 더불어 문화예술인 등 전문가들과 함께 토론회도 준비 중이다.

이달 말이나 5월 초엔 전국의 시립합창단과 함께하는 음악회도 열린다. 조남은 지부장은 "현 정부의 문화예술 철학을 보여주는 오페라합창단의 '운명'이 또 다른 합창단에게도 불안감을 주고 있어 많은 시립합창단이 참여 의사를 밝히고 있다"고 말했다.

비싼 레슨비를 들여가며 노래를 배워, 비록 최저임금도 못 받아도 무대에 서는 기쁨으로 아르바이트를 해 가며 합창단원으로 사는 것이 즐거웠다는 이들은 "노래하기 위해" 오늘도 거리에 서 있다.

▲ 비싼 레슨비를 들여가며 노래를 배워, 비록 최저임금도 못 받아도 무대에 서는 기쁨으로 아르바이트를 해 가며 합창단원으로 사는 것이 즐거웠다는 이들은 "노래하기 위해" 거리에 서 있다. ⓒ프레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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