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같은 학교 예술대에 다니는 박영미(가명) 씨는 학과 수업 중 사용되는 선반 기계의 축이 흔들리는 것이 무서웠다. 일초에 수백, 수천 번 회전하는 축에 달려 있는 작업 작품이 튕겨 나올까 걱정이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선 위험을 무릅쓸 수밖에 없었다. 결국 사단이 났다. 갑자기 흔들거리며 회전하던 축에서 작품 조각이 튄 것이다. 조각은 그의 코를 향했고 그는 코뼈가 부러졌다.
노후한 실습 시설 탓에 예술대 학생의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위의 두 사례는 피해 사실을 적극적으로 알린 일부일 뿐이다. 대부분 예술대 학생들이 다른 학과에 비해 훨씬 많은 등록금을 내고 있지만 정작 '더 높은 처우'는커녕 제대로 된 실습 시설도 갖추진 못한 환경에서 생활해야 하는 실정이다.
▲ 공예품을 만들고 있는 예술대 학생들. 그들은 다른 단과대 학생보다 더 많은 등록금을 내지만, 노후 시설 때문에 늘 사고의 위험을 안고 있다. ⓒ연합뉴스 |
그러나 예술대 학생들이 느끼는 현실은 다르다. 전국 18개 대학 예술대 학생회로 구성된 전국예술계열대학생연합(준)이 2008년 7개 학교 예술대 학생 1261명을 상대로 설문조사한 결과 '등록금을 낸 만큼 실험·실습 등의 지원으로 돌려받고 있느냐'는 질문에 87.2%가 '부족하다'고 답했다. 실제 예술대 학생들은 인문사회대보다 190만 원가량 등록금을 더 많이 내지만, 배당되는 실험·실습비는 평균 11만4000원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전국예술계열대학생연합은 27일 서울 세종로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학교는 실습 지원을 빌미로 타 계열에 비해 높은 등록금을 책정하지만 정작 이는 '실습 지원을 많이 해 줄 것이다'는 사회적 통념을 이용해 부당한 등록금 수입을 챙기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높은 등록금, 노후된 실습 시설…실습비 차액은 11만 원에 불과
김성은 전국예술계열대학생연합 의장(중앙대 예술대 부학생회장)은 예술대 학생들이 얼마나 열악한 환경에서 수업하고 있는지를 설명했다. 그는 "공예학과의 경우 대부분 1970~80년대 기자재들을 사용하고 있다"며 "이것들은 다루기가 매우 위험해 1, 2학년들에겐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고 상황을 설명했다.
그는 "조소학과의 경우 작업을 하면 미세먼지 및 유해물질이 다량 발생한다"며 "하지만 방진 마스크 미비로 그냥 숨을 쉬고 있는 실정"이라고 밝혔다. 결국 방진 마스크는 개인 비용으로 충당하는 상황이다. 이렇게 드는 비용이 한두 푼이 아니다. 전국예술계열대학생연합에 따르면 과제와 작품 발표 등을 위해 부담하는 개인 비용은 연평균 125만 원이라고 밝혔다.
김 의장은 "예술대 학생이라고 하면 돈이 많을 거라고 하지만 실제로 돈이 많은 학생은 극소수"라며 "많은 학생들이 학자금을 융자받고 있을 뿐더러 과제 재료 준비를 위해 미대 입시 학원 강사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학교에서는 이런 상황을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의장은 "2009년에 우리 학교의 경우 예술대가 다른 단과 대학에 비해 4.8%나 올랐다"며 "하지만 학교에서는 이에 대한 구체적인 대답을 회피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공계열 학생들은 자신들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덧붙였다. 박재균 이공계열 교육대책위 추진위원장(고려대 부총학생회장)은 "수학과나 다른 이론 수업을 하는 학과의 경우에도 이공계라는 이유로 더 많은 등록금을 낸다"며 "하지만 대학교에서는 그 이유에 대해 누구도 답을 해주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전국예술계열대학생연합은 "예체능 계열 대학생들은 높은 등록금, 열악한 학교 환경 속에서 이중, 삼중의 고통을 겪고 있다"며 "이를 규명할 수 있는 근거 자료 제출을 교육부에 요청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이날 등록금 계열별 차등 책정 근거 자료 정보 공개 청구를 교육부에 공식 요청하기로 했으며, 이를 근거로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소, 부당 거래 행위 판정을 받아내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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