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투자에 대한 정부의 의지는 여전하다. 오히려 비판자들에게 묻는다. 늘어나는 국민연금기금을 쌓아둘 수만은 없는 일 아니냐고? 맞는 말이다. 무모하게 주식투자를 확대하는 것도 문제지만 마냥 주식투자 반대만을 외치는 것도 공허하다. 대안은 어디에 있는가?
국민연금기금 수익률 제로의 교훈, '그들은' 배웠을까?
지난 해 국민연금기금 수익률이 제로를 기록했다. 다른 나라 연기금들이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한 것에 비하면 다행스러운 일이다. 적자를 면한 건 주식에서 19조 원을 까먹었으나 연말에 잇달은 금리 인하로 채권평가액이 크게 올라 채권에서 19조 원 수익을 올린 덕택이다. 시장에서 손실을 입었으나 '정책적' 금리 조정으로 만들어진 결과이다.
제로 수익률의 교훈은 무엇인가? 이는 국민연금기금의 주식 비중이 그리 높지 않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경제위기가 길어지고 주식시장의 불안정성이 커가는 상황에서 국민연금기금이 무리하게 주식투자에 나서는 것이 적절치 않다는 경고이다.
과연 정부와 연금공단이 이 교훈을 배웠을까? 아래 말을 들으면 그럴 것 같다.
"상대적으로 국민연금이 굉장히 선방했다. 국민이 땀 흘려 모은 돈을 지켜 보람을 느낀다. 세계 주요 연기금이 주식시장에서 철저히 깨지는 동안 국민연금은 안정성 위주로 주식 비중을 줄이고 채권 중심 운용을 하다 보니 다행스러운 성과가 나왔다." (<연합뉴스>, "박해춘 연금공단 이사장 인터뷰" 2009. 3. 4)
연금공단 이사장의 말이다. 작년 7월 취임 기자간담회에서 앞으로 '주식투자 비중을 40%까지 늘려나가겠다'고 호기를 부렸던 사람이다. 청와대 방문 이후 무리한 주식 매입을 주도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받는 인물이다. 나서지 말아야 할 사람의 자화자찬이어서 황당하지만 어찌되었든 마음을 고쳐 먹었다면 다행이다.
그런데 아니었다. 25일 기금운용계획 변경을 통해 이들이 여전히 주식투자 확대를 고집하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연금공단, 주식투자 재량권을 더 부여받다!
▲ 연금공단이 정치적 독립성을 유지하고 있다고 믿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이명박 대통령의 측근 중 한 사람이었던 박해춘 이사장이 주식 비중을 공격적으로 늘리는 것도 독자적 판단이 아닐 것이라고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사진은 지난 2008년 10월 국회에 출석해 답변하고 있는 박 이사장. ⓒ뉴시스 |
작년말 국민연금기금 중 국내주식 비중은 12%이다. 올해 국내주식 목표는 17%로 올려 잡혀 있다. 연금공단이 부여된 허용범위 ±5%를 감안하면 올해 국내주식 투자 비중은 12~22%(17±5%)가 된다. 외통수는 주가가 1100선 이하로 내려갈 경우 발생한다. 주식 평가액이 낮아지므로 국민연금기금 중 국내주식 비중 12%도 자동으로 내려가고, 연금공단은 이 하한선을 지키기 위해 무조건 주식을 사야한다. 따라서 국민연금기금을 외통수에서 구출하려면 하한선 12%를 낮추어야 하고, 이를 위해선 올해 목표 비중 17%가 하향 조정돼야 한다.
올해 들어 얼마전까지 주가는 불안한 경계를 넘나들었다. 1000선에 육박했던 3월초에는 12% 하한선이 깨지는 상황도 발생했다. 연금공단은 적극적으로 주식 매입에 나서야 했다. 결국 25일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가 외통수에서 벗어나기 위한 카드를 내놓았다. 그런데 카드의 내용이 이상하다.
애초 예상되었던 정상적인 방안은, 예를 들면, 국내주식 목표비중을 17%에서 15%로 낮추어 허용범위 ±5%를 감안한 투자 범위를 10~20%(15±5%)로 하향 조정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기금운용위원회가 내놓은 카드는 목표비중을 손대지 않고 연금공단에게 허용범위를 ±5%에서 ±7로 늘려 주었다. 이제 연금공단은 국내주식 비중을 기존 12~22% (17±5%)에서 보다 확대된 10~24% (15±7%) 사이에서 선택할 수 있게 되었다.
지금까지 국내주식에서 허용범위가 ±5%를 넘어본 적이 없다. 이 선을 넘으면 집행조직인 연금공단의 재량 범위가 너무 커 의사결정자인 기금운용위원회의 권한이 훼손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연금공단의 힘이 막강해 진 것이다.
한국에서 연금공단이 정치적으로 독립성을 유지하고 있다고 믿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25일 결정으로 국민연금기금에 대한 정부의 지배력은 강화되었다. 작년 주식투자 손실의 교훈은 어느새 사라지고 주식투자 활성화를 위한 길은 더 열렸다. '이명박 대통령 임기 내 주식투자 비중 40%'라는 목표가 여전히 살아 있는 것이다.
대안을 찾아서: 국민연금기금의 사회적 투자
국민연금기금이 외통수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허용범위를 늘리는 꼼수가 아니라 목표비중을 낮추는 정도를 걸어야 한다. 그러면 국내주식의 목표비중을 줄인다면 그만큼은 어디에서 운용되어야 할까? 필자와 같은 주식투자 비판론자들이 대답해야할 차례다.
공적연기금에서 채권 중심 투자원칙은 여전히 중요하다. 올해 국민연금기금의 국내채권 목표비중은 69%로 작년 78%에 비해 낮게 설정되었다. 주식 비중을 확대하는 만큼 채권 비중이 줄어 든 것이다. 올해 채권 목표비중을 조금만 늘리면 국내주식 하향분은 소화될 수 있다. 가장 손쉬운 방법이다.
하지만 여기서 머물러선 부족하다. 국민연금기금의 새로운 투자처를 개발하는 근본적인 작업이 요구된다. 기금의 성장 속도를 감안하면 마냥 채권에만 의존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에 사회적 투자를 제안한다.
사회적 투자는 기존의 수익성 중심의 재무적 투자와 구별되는 사회적 가치를 존중하는 기금운용전략을 말한다. 여기에는 사회책임투자(SRI)와 사회서비스 직접투자가 있다.
사회책임투자는 재무적 가치뿐만 환경, 사회, 지배구조(ESG: Environment, Social, Governacne) 등 비재무적 요소를 감안해 기업에 투자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미 해외에서는 주요한 투자 흐름으로 커가고 있고 사회책임투자지수도 개발되어 있다.
사회서비스 직접투자는 기업에 대한 주식 지분투자를 넘어 직접 인프라에 투자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나라처럼 사회서비스시설이 부족한 곳에서 특히 중요하다.
최근 일자리 대란을 맞아 사회서비스 부문이 중요하게 떠오르고 있다. 사회서비스 일자리가 외국에 비해 백만개 이상 부족하다. 민간부문에서 일자리 창출이 구조적으로 어려운 상황이어서 일자리 해결을 위한 정책방향은 명확히 제시된 셈이다. 국민연금기금이 국가와 계약을 맺어 임대료 형태의 수익을 보상받는 '임대형 민간투자사업(BTL)' 방식이 활용될 수 있다. 국민연금기금이 가입자에게 벌이는 사업임을 감안하면 수익률은 국채 수준 혹은 다소 낮게 정해져도 용인될 것으로 기대된다.
보육·요양인프라에 투자하자
▲ 국민연금기금이 사회적 투자에 나선다면 우리사회에서 가장 절박한 사회서비스인 보육, 요앙 시설이 적절하다. ⓒ뉴시스 |
보육의 경우 우리나라 0~5세 영유아 274만 명 중 105만 명만이 시설을 이용하고 있다. 부모들이 선호하는 국공립시설 이용자는 12만 명으로 전체 영유아의 4%에 불과하다. 최근 연구를 참고하면, 국민연금기금이 공공 보육시설를 짖는다면 7조5000억원으로 영유아의 60%가 공보육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 16만 개의 괜찮은 일자리도 만들어 진다.
요양서비스도 현재 수혜를 받는 노인 수가 3%도안되고 시설도 모두 민간에 내맡겨져 있다. 장기요양서비스가 필요한 노인 비율이 12%에 이른다. 이들이 모두 요양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도록 공적 요양시설이 조성돼야 한다. 국민연금기금이 2.5조원을 투자하면 가능하다. 이곳에서 28만명의 일자리도 기대된다(요양시설 6.5만명, 재가서비스 21.6만명).
금융시장 부양수단에서 서민연금경제 밑거름으로
국민연금의 주인은 가입자들이다. 정부와 연금공단에 요구하자. 더 이상 주식투자 확대를 고집하지 말아야 한다. 올해 국민연금기금이 처한 외통수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국내주식의 목표비중을 낮추어야 한다. 그리고 국민연금기금을 금융시장의 부양수단이 아니라 사회서비스와 일자리를 만들어가는 서민연금경제의 밑거름으로 키워 나가야 한다. 이것이 한국사회가 직면한 일자리 부족, 복지 빈곤을 푸는 길이며, 국민연금의 대안운용처를 개발하는 하나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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