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의 물 정책을 슬로건으로 정의하면 '선 삽질, 후 대책 마련' 정도라 할 수 있다. 대통령 선거 당시부터 부르짖던 '대운하'가 그렇고 대운하가 아니라고 우기고 있는 '4대강 정비 사업'이 또 그렇다. 정부는 한국이 물 부족 국가이며, 수자원 이용에 각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지만, 정작 그 노력의 방향은 4대강 파괴요, 건설자본을 위한 토목공사이다. 3월 22일 세계 물의 날을 맞아 정부의 황당무계한 수자원 정책을 돌아본다.
정부는 대운하 사업이 시민들의 반발에 부딪히자 경제위기 대책이자 수자원 보호 대책이라며 4대강 정비 사업을 내놓았다. 잠깐 먼저 대운하 건설 논란을 떠올려보자. 대운하 건설은 환경파괴 여부, 경제적 효율성, 과학적 타당성 등 여러 지점에서 논란이 되었지만, 시민들에게 핵심은 대운하에서 지금처럼 각종 용수를 취수할 수 있을 것인가 여부였다.
정부 스스로도 밝혔지만 대운하를 건설하면 낙동강 전체와 한강 중하류는 모두 용수로는 사용이 불가능했다. 논란이 계속되자 한반도 대운하 위원회는 이러한 우려에 대해 한강 팔당 지역은 북한강으로 취수원을 이동하고 낙동강은 기존 댐과 신규 댐을 묶는 댐 네트워크로 취수원을 이동하면 된다고 대책을 내놓았다. 하지만 이러한 계획마저도 대부분의 관련 전문가들에게 (심지어 정부를 지지하는 학자들에게조차) 황당무계한 계획으로 치부되며 논쟁은 마무리되었다. 대운하는 취소된 듯 보였다.
그런데, 역시 불도저 이명박은 시민들이 반대한다고 포기할 위인은 아니었다. 건설사 사장 출신 이명박에게는 예전부터 언제나 있어왔던, 시민들의 반대여론은 단지 '떼'를 쓰는 것으로 보일 뿐이었다. 작년 11월, 경제위기에 따른 정부 투자 필요성을 이유로 다시 대운하와 거의 차이가 없는 '4대강 정비사업'을 들고 나왔다.
이미 여러 언론을 통해서도 보도되었지만, 현재 4대강 정비사업과 대운하의 차이는 단 하나이다. 바로 낙동강과 남한강의 연결 여부이다. 다시 말하면 4대강 정비사업을 하다가, 수 십 Km에 불과한 낙동강과 남한강을 뚫어버리면 된다는 것이다. 새만금 사업 등의 정부 사업을 통해서 알 수 있듯이 적당히 공사하다가 시간이 흐르면 '이제 와서 사업을 무로 돌릴 수 없다'는 이유로 정부 사업은 강행된다.
▲ 한반도대운하를 반대하는 현수막을 들고 있는 모습. (사진 출처: 민중 언론 참세상) |
진보진영에서 4대강 정비사업이 대운하라고 줄기차게 주장해왔지만 정부는 그래도 아니라고 우기니, 다른 증거를 보자. 정부의 말처럼 4대강 정비 사업이 대운하가 아니라 말 그대로 '정비'를 하는 사업이라면, 그래서 수질을 개선하고 홍수범람 등에 대비하는 사업이라면, 낙동강에서, 그리고 팔당호에서 그대로 물을 취수하여 사용해도 아무 문제가 없다.
오히려 정부가 스스로의 투자 효용에 대해 선전하기 위해서 스스로 나서서 시민들의 수돗물 불안을 해소해 주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현재 낙동강 일대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은 전혀 그렇지 않다.
낙동강 중하류에서 취수를 하는 부산시는 현재 정부 계획에 따라 취수원을 진주에 있는 남강댐으로 이동하려 하고 있다. 작년 11월에 발표한 정부 사업은 타당성에 대한 검토는 고사하고, 부산시의 취수원 이동으로 남강댐에서의 취수와 홍수 대책에 영향을 받는 해당 지자체와도 협의하지 않았다. 정부는 약 3조원 가까이 들여 남강댐의 수위를 높이고, 남강댐에서 부산까지 백 킬로미터가 넘는 거리는 상수도 관으로 연결하겠다고 하는데, 이러할 경우 홍수 시 남강댐이 방류를 하면 진주시 일부와 사천시 일부가 잠길 가능성이 크다. 이에 대한 대책은 물론 없다.
낙동강 중상류에서 취수를 하는 대구시는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되면서부터 '대운하'에 따른 취수원 이동을 준비해 왔다. 취수원 이동 계획은 대운하를 하지 않겠다는 정부 발표 이후 잠시 중단되었지만, 정부의 4대강 정비 사업을 계기로 다시 탄력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홍준표 원내 대표까지 대구시를 친히 방문하여 대구시 취수원을 이동하도록 범정부 차원에서 협조하겠다고 했으니, 대구시는 저 멀리 150Km 넘어에 있는 안동댐으로 취수원 변경을 다시 검토하고 있다. 바로 앞에 멀쩡한 상수원을 놔두고 40리 너머에서 물을 퍼오겠다는 발상은 세계에서도 그 유래를 찾기 힘들다. 심지어 이 계획은 이미 작년 가을에 과학적으로, 경제적으로 타당성에 문제가 있음을 여러 연구소에서 밝히기도 한 내용이다.
▲ 대운하에 반대하며 낙동강변을 도보순례하고 있는 모습. (사진 출처: 민중언론 참세상) |
낙동강에서 마치 무엇인가에 쫓기듯이 이렇게 취수원을 이동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답은 한 가지 밖에 없다. 바로 4대강 정비 사업이 대운하사업이기 때문이다. 사실 몇 몇 지자체에게 이러한 사실은 이제 비밀도 아니다. 경상도 지자체들이 최근 발표한 '낙동강 르네상스' 계획에 따르면 낙동강에는 각종 놀이시설과 뱃길, 그리고 터미널이 건설된다.
낙동강을 취수원으로 이용하기를 포기한다면 그 결과는 경상도, 더 나아가서는 대한민국의 물 재앙으로 이어질 것이다. 경상도 지역은 전체 용수의 절반 이상을 낙동강에서 취수하여 사용하고 있다. '취수원 낙동강'을 포기한다는 의미는 현재 낙동강 일대의 댐을 두 배로 늘려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환경 재앙이다.
생태계 파괴는 물론이거니와 수몰로 인한 대규모 이재민이 발생할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댐만으로 미래에 용수를 공급할 수 없다. 댐을 지으면 인입 물이 줄어 낙동강 물이 마르게 되고, 낙동강 물을 유지하기 위해 또 용수 유지용 댐을 지어야 한다. 댐에서 사고라도 생기는 날이면 경상도 일대는 급수가 중단되는 사태를 맞이할 수 있다. 태백지역의 가뭄으로 인한 급수 제한 사태에서 볼 수 있듯이 댐으로 획일화된 용수 공급 체계는 기후 변화에 대한 대응력을 하락시킨다. 하천수, 지하수, 계곡수 등의 다양한 수원을 이용하지 않음으로 인해 관리 역시 소홀해지고, 더 나아가 각종 개발로 오염되어 사용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실제 태백은 강원도에서 댐 의존도가 가장 높은 지역이었다. 강원도 평균은 10% 정도인데 반해 태백은 70% 이상을 댐에 의존하였다. 그리고 최악으로 다시는 낙동강을 다시 되살릴 수 없다. 취수원이 이동하면, 상수원 보호구역이 해제되고, 그 자리에는 각종 오폐수를 발생시키는 시설들이 들어선다.
낙동강 정비사업은 녹색뉴딜이 아니라 회색 디스토피아일 뿐이다.
(이 글은 주간인권신문 <인권오름>에도 실렸습니다. <인권오름> 기사들은 정보공유라이선스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정보공유라이선스에 대해 알려면, http://www.freeuse.or.kr 을 찾아가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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