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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상 시상식에 제작자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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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상 시상식에 제작자는 없다

[오동진의 영화갤러리]

소지섭과 강지환은 그러려니 했다. 다른 사람들보다 부모 생각이 많이 났을 것이다. 애인이나 가까운 사람들을 언급하느라도 바빴을 것이다. 하지만 이윤기 감독만큼은 다를 줄 알았다. 하늘에 감사하고, 부모님께 감사하고, 누구누구에게 감사한 건 이미 잘 알겠는데 인사말 끝자락에 자신이 영화를 만들 수 있도록, 판을 만들어 준 제작자에 대한 얘기가 나올 줄 알았다. 하지만 이윤기 감독마저도 제작자를 언급하지 않았다. 이윤기 감독이 이랬을진대 다른 사람들이야 어땠겠는가. 영화를 기획한 후 투자를 완성하고 험난한 프로덕션 과정을 거쳐, 더 험난한 배급 싸움 끝에 극장에서 관객들을 만나기까지 그 노고를 함께 해 온 제작자에 대해 그 누구도 치하의 얘기를 하지 않았다. 그 누구도 제작자와는 영광을 함께 나누려 하고 싶어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시상식 생중계를 담당한 방송사의 실수도 사실은 실수가 아닌 것처럼 보였다. 작품상 후보 발표를 한다고 하면 그 작품을 만든 제작자의 얼굴이 화면에 떠야 할 터이다. 하지만 작품상 후보임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주인공 얼굴, 곧 배우 얼굴을 내보냈다. 이걸 할리우드 아카데미 시상식에 대입하면, <더 리더 – 책 읽어주는 남자>가 작품상 후보에 올랐는데 그 후보를 발표할 때 와인스타인 형제 제작자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케이트 윈슬렛 얼굴을 화면에 잡는 꼴이 된다. 아마도 아카데미에서 그랬다면 난리가 나도 한참 난리가 났을 것이다. 작품상은 제작자의 것이니까. 그런데도 한국의 영화상 시상식에서는 작품상 발표에서조차 제작자의 얼굴이 지워진다. 제작자의 흔적과 존재가 싹 지워진다.

영화는 영화감독만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영화배우들만으로도 만들어질 수 없다. 이들에 앞서 반드시 있어야 하는 존재가 바로 제작자다. 영화의 모든 것을 기획하고, 모든 것의 비용을 대며, 모든 것의 책임을 지는 사람이 제작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수익을 가장 적게 가져 가는 사람도 제작자다. 반대로 영화가 손해를 봤을 때는 자기 돈을 가장 많이 갖다가 메워야 하는 사람도 제작자다. <미녀는 괴로워>가 600억이 넘는 매출을 올렸음에도 불구하고 제작자가 가져갔던 자기 몫(혹은 제작회사 몫)은 총 11억원에 불과했다. 그나마 원작이 됐던 일본 만화의 출판사 측에 인센티브를 주는 등 차떼고 포떼고 난 후 남은 돈은 겨우 6억 원이었다는 얘기까지를 듣게 되면 차라리 실소가 터진다. <미녀는 괴로워>는 무려 7년간 디벨롭된 끝에 제작이 된 영화다. 7년동안 고생고생해서 번 돈이 6억이라면 (남들은 수십억을 가져갈 때) 이건 뭐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얘기가 된다. 같은 제작자가 만든 <마린 보이> 경우도 얘기를 듣고 나면 한숨과 걱정이 앞서게 된다. 이 제작자는 <마린 보이>의 초과 제작비도 개인적으로 떠안다 못해 살고 있던 집까지 저당을 잡힌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게 해서 흥행이라도 됐으면 좋으련만 안타깝게도 <마린 보이>는 80만 선에서 그쳤다. 이 영화의 흥행 BEP는 220만이었다. 이 제작자의 고단한 삶은, 생각하기조차 싫다.

▲ 미녀는 괴로워

하지만 아무도 제작자에 대해 고마워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프로덕션이 끝나기도 전에 스탭들을 포함해 여기저기서 잔금들을 요구하기 일쑤다. 당신이 망하든 말든, 당신이 쪼들리든 말든,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니까 줘야 할 돈이라면 어디서 갖다 대서든 달라고 하는 것이다. 이거야 말로 잔혹의 드라마가 아닐 수 없다.

제작자는 돈만 아는 사업가인가. 아니면 예술가인가. 둘 중 하나가 될 수도 있고 아무 것도 안될 수도 있다. 요즘의 경향으로 보면 둘 다 아닌 것으로 보인다. 요즘엔 제작자를 봉으로 본다. 봉. 돈 대주고 뺨대주는 봉. 참 안타까운 일이다.
(*이 글은 영화주간지 무비위크에 실린 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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