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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율을 어찌하리오"…정부 고민에도 '답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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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환율을 어찌하리오"…정부 고민에도 '답 없어'

전문가들 "기다릴 수밖에"…정부 '기대감 줄이기'로 선회

정부가 진퇴양난에 빠졌다. 환율이 거침없이 치솟고 있기 때문이다. 강하게 시장에 개입해 외환보유고를 소진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환율 고공행진을 넋 놓고 바라보는 것도 곤란하다. 어찌되든 시장의 불안은 더욱 커진다.

정부는 다양한 방법의 시장안정책을 내놓고 있다. 외환시장 직접개입에 나서는 한편 외국인에 대한 비과세 정책을 내놓고 외신의 잇따른 부정적 기사에도 신속히 대응하고 있다.

하지만 시장은 요지부동이다. 악재만 커진다. 외국인의 시선도 여전히 차갑다. 정부는 시장의 신뢰를 잃었다. 전문가들은 '기다리는 게 해법'이라고 말했다. 뾰족한 수가 없다는 뜻이다.

환율이 무서워

최근 외환시장에는 그야말로 '불이 붙었다'. 올해 첫 거래를 1321.0원으로 시작한 원-달러 환율은 3일 마감기준으로 1552.4원까지 올랐다. 두 달 만에 무려 230원이 넘게 상승했다.

3일 환율도 당국의 개입이 없었다면 1600원선이 뚫렸을 지도 모른다는 게 시장의 평가다. 이날 환율은 장 개장과 함께 무섭게 뛰어올라 장중 한 때 1594원까지 치솟았으나 오전 10시가 넘어서며 본격화된 당국 개입으로 전날보다 17.9원 하락 마감했다. 시장 관계자들에 따르면 정부당국은 연 이틀 10억 달러가 넘는 규모의 달러를 시장에 푼 것으로 추정된다.

환율 상승이 무서운 이유는 실물 경제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일단 외국인의 한국에 대한 신뢰도를 떨어뜨린다. 이종우 HMC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외국인이 해외투자를 고려할 경우 지켜보는 대표적 움직임은 두 가지다. 통화가 얼마나 안정적으로 움직이느냐와 은행 시스템이 얼마나 튼튼한지다. 현재 한국은 이 두 가지가 모두 불안하다"고 말했다.

외국인 이탈은 주식·채권 등 증권시장 전반에 불안감을 키우기 마련이다. 이는 자산시장 수익률 하락을 이끌어 투자자금 유입매력도를 떨어뜨린다. 기업의 자금조달 창구가 한창 좁아질 수밖에 없다. 은행이 대출창구를 꽉 막고 있는 상황에 제2금융권을 통한 자금조달마저 어려워진다면 기업은 허리띠를 더 졸라맨다. 이는 곧 실물경기 추가하락의 신호탄이다.

수입물가 상승을 자극하는 것도 환율 상승의 부작용이다. 이는 내수 구매력을 떨어뜨리고 가계 경제를 붕괴시킨다. 통계청이 발표한 '2월 소비자물가동향'에 따르면 지난 달 소비자물가는 전년동월대비 4.1% 상승, 7개월 만에 다시 상승폭을 키우기 시작했다. 그간 환율 상승이 특히 원유수입가격을 높여 물가를 전방위로 압박하는 형국이다.

환율 상승이 수출기업의 가격경쟁력 재고에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최근 경제 위기로 물건을 사줄 선진시장의 구매력이 급격히 감소하는 상황이라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한다.

▲3일 외환당국의 강도높은 개입으로 원-달러 환율은 전날보다 17.9원 떨어진 1552.4원으로 마감했다. 개입 전까지 환율은 전날처럼 급격한 상승세를 이어갔다. ⓒ연합뉴스

정부 대응책 내봤자…

외환 당국은 환율 안정을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지난 달 3일 한국은행은 지난해 10월 미국과 맺은 300억 달러 규모의 통화스왑 만기를 6개월 연장하는 데 성공했다. 지난 달 26일 정부는 달러화 외국환평형기금채권(외평채)을 발행하고 외국인의 국내시장 이자소득에 대해 비과세한다는 내용의 외화유입책을 발표했다.

국내 외화유입 경로를 확대하고 외국인의 투자매력도를 높여 환시장 안정을 위한 '총알' 확보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겠다는 의지다.

일단 통화스왑 연장으로 외환보유고 운용 부담이 조금이나마 줄었다는 게 대세적 평가다. 외국인 투자에 대한 비과세 방침이 나오면서 실제 원화 대비 초강세 기조를 이어가는 일본계 자금의 한국시장 투자문의도 서서히 감지되는 분위기다.

한 외국계은행 관계자는 "일본 내 금융회사에서 한국 채권시장 투자를 고려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원화 약세 기조가 끝난다면 환차익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조치에도 외환시장은 꿈적도 하지 않는다. 외국인은 여전히 불안한 시선으로 한국을 바라보고 있다. 최근 <이코노미스트>, <로이터>, <파이낸셜타임스> 등 주요 외신이 연이어 비관적 논조의 기사를 보도한 게 대표적 사례다. 부정적 시각 해소를 기대하기 난망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했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경제학)는 "지금 환율 급등은 단순히 외환보유고 우려로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다. 한국의 유동성 자체에 우려가 커지고 있다. 외국인의 단기외채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이유"라고 지적했다.

이종우 센터장 역시 "민간의 대응능력에 의구심이 커졌다는 게 문제다. 은행이 자기 신용도로 돈을 빌려오지 못한다"며 "정부가 사실상 부담을 떠안고 있다는 사실이 환율을 더 자극하는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여전히 진행 과정에 있다는 점도 환율이 요동치는 이유다. 정부가 나름대로 대응책을 내놔도 큰 실효성을 거두기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는 얘기다.

시장 신뢰 어디 갔나

전문가들은 한국 정부가 시장의 신뢰를 잃었다는 점 역시 지적한다. 시장이 정부를 못 믿으니 외환시장 추세가 방향을 틀지 못한다는 의미다. 정부가 최근 외신의 보도가 나온 후 곧바로 해명자료를 내놔도 시장에는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게 사실이다.

정운찬 서울대 전 총장은 지난 달 27일 열린 강연회에서 "우리가 좀 덜 정직하다"며 "국내 외환시장에 참여하는 한 외국인은 '각 나라의 경제보고서 중 한국 보고서를 가장 못 믿는다'고 답했다"고 지적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애널리스트는 "지난해 강만수 팀이 시장의 신뢰를 너무 크게 잃었다. 정부가 어떠한 해명자료를 내도 믿기 어렵다는 게 시장의 분위기다. 믿을 구석이 없으니 시장 심리는 더 불안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부가 내놓은 대책 역시 실질적으로는 큰 도움이 되지 못하리라는 목소리가 높다. 외국인에 대한 비과세 방침이 대표적이다.

이 센터장은 "보도용 아니겠느냐. 간단히 말해 외국인에게 세금을 깎아주겠다는 것인데 지금은 이머징마켓에 대한 리스크 우려가 훨씬 크다"며 "리스크보다 훨씬 큰 기대수익이 보장되지 않는 이상 이 정도 대책은 별다른 실효성이 없을 것"이라고 답했다.

전 교수도 "정부가 핫머니의 유출입을 보지 않고 유입만 본 것 같다. 외국인 투자자금에 세금을 매기지 않는다면 외국인 유입뿐만 아니라 유출도 더 쉬워진다"고 언급했다.

마땅한 반전카드 없어

도대체 그렇다면 어떠한 방법을 써야 하나. 정부는 당황하고 있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서울 코엑스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납세자의 날' 행사에서 "(환율을) 불안하게 보면 불안한 것이지만 의연하게 보면 또 그러한 면이 있다"며 환시장 움직임에 대해 두루뭉술하게 넘어갔다.

정부의 고민을 반영한 말이라는 평가다. 외환시장에 적극 개입하자니 외환보유고가 줄어들어 문제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지난해 말 현재 한국의 유동외채비율, 곧 외환보유액에 대한 유동외채 비율은 96.4%에 달한다. 1년 내에 갚아야 할 외채가 외환보유고와 맞먹는 수준에 육박했다는 뜻이다. 유동외채 규모는 외환위기 이후 가장 높은 수준까지 늘어났다.

▲기획재정부가 <파이낸셜타임스> 보도에 대해 내놓은 해명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말 현재 한국의 유동외채비율은 96.4%에 달한다(기획재정부 제공). ⓒ프레시안

그렇다고 환율상승을 마냥 지켜만 볼 수도 없다. 재정부가 연이틀 강도 높은 시장 개입에 나선 이유다. 이 센터장은 "뾰족한 방법이 없으니 결국 돈을 풀어서 불안을 막고 나서는 '원시적인 방법'을 쓴 것 아니겠느냐"며 "워낙 환율 상승 속도가 빨라 정부가 개입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평가했다.

일단 가장 좋은 대응책은 미국과의 통화스왑 규모 자체를 더 늘리는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전 교수는 "결국 외환보유고를 충분히 늘리는 게 유일한 해결책이다. 그런데 경상수지의 지속적인 흑자기조 유지를 기대하기가 쉽지 않다. 미국과의 통화스왑 만기만 연장할 것이 아니라 규모 자체를 늘려 '판돈'을 키워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쉽지는 않아 보인다. 미국 역시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 센터장은 "우리가 하고 싶다고 해서 쉽게 되겠느냐"며 "지금은 환시장 안정을 위한 뾰족한 방법이 없다. 그저 지금의 혼란이 빨리 안정되기만 기대하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답이 없다는 얘기다.

'상반기만 지나면 안정될 것'이라고 큰 소리를 치던 정부 역시 조금씩 현실을 인정하는 듯한 분위기다. 뉴질랜드를 공식 방문 중인 이명박 대통령은 동포간담회에서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마이너스 성장을 하고 있다"며 "이번에는 내년까지 나쁠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하반기 반등'에 대한 일말의 기대감을 서서히 줄여나가기 위한 듯한 '멘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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