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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훈 시장의 '창의도시'? '막장 개발'만 난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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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오세훈 시장의 '창의도시'? '막장 개발'만 난무"

[토론회] "난개발 막고 공동체 살찌워야 문화 발전"

한 달이 넘게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는 용산사태의 근본 원인은 군사작전식 철거정책, 나아가 철거 빌미를 제공하는 도심 개발정책에 있다. 아파트 신축, 도심 재개발 사업, 새 인프라 구축 사업 등은 모두 옛 것을 최대한 빨리 쓸어 없애고 '보기에 번듯한' 새 건물을 지어야만 한다는 조급함을 끌어안고 있었다.

이름은 바뀌었다. 하지만 철학은 바뀌지 않았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 당시는 '뉴타운'이 바람을 일으켰다. 방점은 '뉴(new)'에 찍혔다. 청계천·재개발·시청광장의 근본 철학이 그랬다. 오세훈 시장 역시 마찬가지다. 문화를 내걸었으나 핵심 철학은 기존 건물을 갈아엎고 새 건물을 짓는다는 데서 과거 정책과 다를 바 없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파크(DDP)·아트팩토리·용산 국제업무지구, 보다 큰 규모로는 한강르네상스 프로젝트 등도 결국은 개발정책을 포장한 수식어에 다름 아니다.

서울시의 이러한 개발정책에 많은 시민단체·활동가 등은 우려를 표한다. 문화를 내걸었으되 실체는 오히려 문화를 죽이는 정책이라는 게 이유다. 나아가 기존 문화공간을 가꿔오던 거주민을 철저하게 수탈하는 정책이라고 비판한다.

이같은 맥락에서 '문화'를 내걸었던 오세훈 시장은 정작 '환경미화'에 급급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문화연대와 <프레시안>은 서울시의 도시문화 정책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토론회를 지난 20일 공동주최했다. 이날 토론회에는 △김현우 진보신당 정책위원 △유의선 빈민대책회의 공동집행위원장 △김윤이 한국도시연구소 연구원 △이원재 문화연대 사무처장이 참여했으며,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가 사회를 맡았다.

▲토론회는 지난 20일 문화연대 회의실에서 약 두 시간 동안 진행됐다. ⓒ프레시안

문화정책, 비전은 없고 파괴만 있어

토론 참가자들은 서울시 도시문화 정책의 가장 큰 문제로 비전이 없고 개발논리만 있다는 점을 꼽았다. 도시 전체의 모습을 장기간에 걸쳐 가꿔나갈 밑그림이 없다보니 무차별 개발정책만이 시행되고 있다는 얘기다. 이는 곧 용산에서처럼 많은 철거민이 발생하는 부작용을 낳는다.

이원재 사무처장은 "당장 아트팩토리가 추진되는 문래동을 볼 필요가 있다. 많은 예술가가 터를 잡고 있고 시에서는 아트팩토리 사업을 추진하지만 한편으로는 그곳도 이미 개발 예정지"라며 "도시개발정책에 대한 마스터플랜이 없다보니 공업단지 개발 정책과 시가 내건 '문화'개발 정책이 충돌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윤이 한국도시연구소 연구원. ⓒ프레시안
김윤이 연구원 역시 청계천 사업을 예로 들며 시가 추진하는 개발정책의 근시안성을 비판했다. 그는 "청계천 상인들은 시 정책에 따라 동남권 유통단지로 이주했다. 하지만 시 정책으로 그곳에 살던 비닐하우스촌 사람들은 또 갈 곳 없이 쫓겨나게 됐다"며 "중앙과 지방의 정책이 다르고 보건복지가족부와 국토해양부 입장 등도 다르다. 담당 부처 가치마저 조율되지 않은 정책이 어떻게 창의적일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김현우 정책위원은 "서울시의 문화 정책은 한 마디로 '녹색 파시즘'이다. '창의문화도시', '디자인 서울' 등의 캐치프레이즈는 과거 압축성장시기의 소수를 희생하는 속도전 문화를 오히려 가속화하고 있다"며 "삶의 조건이나 개개인의 상황 등이 가지는 다양성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결과의 다양성만을 우선시하고 있다. 그 '결과의 다양성'마저 멋있고 큰 건물을 짓겠다는 것에 불과하다"고 평가했다.

시민참여 없는 창의도시는 결국 '막개발'

이러한 서울시 문화정책의 파괴성은 결국 지역 주민을 공격하는 수단이 될 수밖에 없다고 참가자들은 지적했다.

유의선 집행위원장은 "서울시가 집에서부터 노점, 지하상가까지 모조리 갈아엎고 있다. 알맹이 포장을 어떻게 하든 그 안의 주체는 철저하게 배제하는 방식을 일관하고 있다"며 "주체, 곧 지역주민의 권리를 어떻게 복원할지를 고민해야 서울시가 추진하는 문화, 곧 개발정책에 진짜 문화가 깃들 수 있다. 문화를 살리는 것은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이처럼 시민이 배제되는 개발정책은 결과적으로 시의 문화를 더욱 죽이고 있다고 참가자들은 평가했다. 도시 문화개발이 가져야 할 새로운 철학, 기존 문화를 지켜야 하는 당위성이 모두 사라지기 때문이다.

참가자들은 특히 외국의 사례를 인용하면서 외국 재개발 사업의 핵심 철학은 고려하지 않고 개발 결과물만을 벤치마킹하는 것이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대표적인 사례로 자주 언급되는 일본 롯폰기 힐즈 재개발의 경우, 시공사가 지역 주민 설득에만 십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는 사례는 거론되지 않는 게 현실이다.

▲이원재 문화연대 사무처장. ⓒ프레시안
이 사무처장은 "외국의 경우 도심 재개발 사업은 대부분이 재생 프로그램 하에 이뤄진다. 런던의 템즈강 생태 복원이 대표적이다. 파리의 경우 까르푸와 같은 대형 유통마켓 진입을 막는다. 고유 문화를 파괴하기 때문"이라며 "반대로 서울은 과밀도 도시에 '디자인'을 핑계로 개발논리를 들이댈 뿐이다. 디자인이 환경미화 사업으로 전락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사실 난개발 정책은 비단 오세훈 시장만의 문제가 아니다. 짧게는 이명박 대통령의 시장 재임시절 정책부터 이런 비판이 나왔지만 길게는 한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철학이 바로 난개발이었다.

이처럼 수십 년에 걸친 난개발 결과 서울은 시가 내건 '창의력'을 잃은 도시가 됐다고 참가자들은 입을 모았다. 주민이 잃은 창의력은 결국 난개발에 대한 대안을 잃게 한 주요인이 됐다고 그들은 지적했다. '창의도시'를 말하는 시의 난개발이 결과적으로 지역 주민을 배제하고 철저히 자본논리로 개발이 이뤄지게 하는 근본 요인이라는 얘기다.

이 사무처장은 "이태원 인근에 사는데 이태원은 서울에서도 가장 오래된 다문화 지역인데도 지역이 스스로 부가가치를 생산할 수 있는 최소 수준의 커뮤니티마저 생성되지 않았다"라며 "오세훈 시장이 내건 '창의도시'는 주민이 가진 삶의 질감이 켜켜이 쌓여야만 발현될 수 있는데 서울은 오랜 난개발로 그와 같은 감수성을 잃었다"고 했다.

난개발 막을 진짜 대안은 결국 공동체

따라서 난개발을 미화한 '창의도시'식 파괴를 막을 대안은 결국 난개발로 사라진 공동체를 복원하는 것밖에 없다는데 참가자들은 의견을 같이 했다.

▲김현우 진보신당 정책위원. ⓒ프레시안
김 정책위원은 "서울시의 문화를 제대로 살릴 수 있는 길은 두 가지라고 본다. 하나는 공동체 형성이고 다른 하나는 서울시의 미래 청사진을 제대로 그리는 것"이라며 "다기한 이해 당사자 모임을 만들어야 하고 이를 위해 지역민이 자유롭게 의견을 표출할 수 있는 공간을 곳곳에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사무처장 역시 "생활 단위에서 문화를 살려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한 길은 결국 커뮤니티를 복원하는 것이다. 단체가 만들어져야 문화행정을 제대로 감시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유 집행위원장도 "소통하는 공간이 중요하다. 지역운동의 고민을 장기적 과제로 살려내야 용산 문제와 같은 시의 공간환경 정책에 대응하는 힘이 생긴다"고 했다.

김 연구원은 "연구소 차원에서 과거 작은 마을 만들기와 같은 공동체 연대를 계획한 적 있다. 이제는 이를 도시개발과 정비사업 등에 대한 대안 차원에서 지속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다양한 차원에서 민간 자발적 모델을 창출해야 할 때"라고 설명했다.

이동연 교수는 이날 토론회를 마무리하면서 시민 공동체 힘이 문화로 포장한 시의 난개발 정책을 어떻게 감시할 수 있는가를 독일에서의 생생한 사례를 통해 설명했다.

▲유의선 빈민대책회의 공동집행위원장(오른쪽). 왼쪽은 사회를 맡은 이동연 한예종 교수. ⓒ프레시안
"3년 전 독일 뮌헨에 간 적이 있다. 개선문에서 3~4㎞ 정도 떨어진 곳에 50층 높이의 뮌헨트레이드센터가 있는데 시에서 일방적으로 추진한 계획이라 문제가 됐다. 문화공간을 즐기던 시민들이 '사색을 방해했다'는 이유로 시장을 고발했다. 이성적 시민과 합리적인 행정가가 있어야 한국에서와 같은 격한 충돌을 막을 수 있고 시의 문화를 살려나갈 수 있다. 발전적 고민을 시에서도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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