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핵심 간부의 성폭력 사건으로 지도부가 불명예스러운 총사퇴를 했다. 이번 사건은 그 발생부터 이후 처리 과정까지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줬다. 지도부는 물러났지만, 그것이 이번 사태가 드러낸 민주노총의 위기까지 정리해주지는 않는다. 이번 사건은 민주노총의 문제가 안팎으로 심각함을 대외적으로 확인을 시켰기 때문이다. 이른바 '노동운동의 위기' 논의를 통해 수차례 지적됐듯이 민주노총이 한국의 진보 진영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염두에 둘 때, 이런 상황은 노동운동은 물론 한국 사회의 미래를 위해서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프레시안>은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해법을 모색하고자 연속 인터뷰를 진행한다. 민주노총에 애정을 갖고 있는 대표적인 전·현직 노동운동가를 만나 20년 민주노조운동 역사를 딛고 다시 일어설 민주노총의 '미래'에 대한 의견을 들었다. 첫 인터뷰는 김금수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명예이사장과 진행했다. 심상정 진보신당 공동대표, 이수호 민주노동당 최고위원 및 민주노총 지도위원, 하부영 전 민주노총 울산본부장, 이남신 이랜드일반노조 위원장 직무대행, 정인열 코스콤 비정규직지부 부지부장과의 인터뷰가 이어진다. <편집자> |
"권위 회복이 '앞으로 잘 하겠습니다'로 되는 것은 아니다."
민주노조운동 20년의 역사를 고스란히 지켜 본 김금수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명예이사장은 단호했다. 그것은 이번 사건 자체가 "개인적인 것이 문제가 아니라 노동운동의 작풍이 정도에서 벗어나고 기반이 균열되거나 붕괴된 상태에서 비롯된 결과"이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종합적인 위기가 폭발한 것이라는 얘기다. "이념 없는 파벌 투쟁", "훼손된 지도력", 총파업이라는 반복되는 "거짓말"이 모두 민주노총의 끝없는 추락의 이유로 꼽혔다.
김금수 이사장은 "더 근본적인 원인은 전략적 목표의 부재"라고 했다. 대체, 지금의 노동운동이 지향하는 한국 사회의 미래란 어떤 모습인지, 기본적인 기조와 노선이 없다는 지적이었다. 모두가 합의하는 지향이 없으니, "정치 노선도, 투쟁 노선도, 대중 노선도 구체적인 그림이 없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김 이사장은 "단순히 성폭행 사건에 대한 투명한 처리만으로는 이번 고비를 넘기기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당연히 지도부 총사퇴, 비대위 구성, 보궐 선거로 이어지는 달력의 일정표만으로도 위기가 극복될 리 없다.
▲ 민주노조운동 20년의 역사를 고스란히 지켜 본 김금수 이사장은 단호했다. 그것은 이번 성폭력 사건 자체가 "개인적인 것이 문제가 아니라 노동운동의 작풍이 정도에서 벗어나고 기반이 균열되거나 붕괴된 상태에서 비롯된 결과"기 때문이다. ⓒ프레시안 |
김 이사장은 오래 전부터 누적된 민주노조운동의 위기에 대한 진지한 성찰의 기회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5년 전만 해도 동의하지 않았으나 지금은 민주노총의 누구도 추락을 부정하지 않는다"며 "쉽게 결론 내리려는 성급한 생각을 접고 진지한 물음부터 다시 떠올려 보자"고 말했다.
대체 어디서부터 구멍이 뚫렸는지를 이번 기회에 차분히 점검해보자는 조언이었다. 당장 현장에서 쏟아지는 고용에 대한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서도, 이미 잘려나가고 있는 비정규직 등 미조직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도 "미래에 대한 구체적인 그림"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제가 어렵고 고용이 불안하니 조합원들이 스스로 싸우지 않겠냐"는 일각의 예측에 대해서도 "천만에"라며 고개를 저었다. 외부의 조건에 기대기보다 내부부터 탄탄히 해야 한다는 오래된 진리를 강조하던 김 이사장의 마지막 말은 의미심장했다.
"어떤 이는 지지도가 떨어지면 그 정권은 고목이라고 하지만, 고목도 누군가가 밀어야 넘어간다. 바람 분다고 고목이 스스로 넘어가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다음은 지난 12일 서울 서대문구 한국노동사회연구소에서 박인규 <프레시안> 대표가 진행한 인터뷰 전문이다.
"성폭력 사태, 노동운동의 기반과 토대 붕괴돼 발생한 것"
▲"이번 사태가 민주노총으로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노동운동 전체의 일그러진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참담한 심정이다." ⓒ프레시안 |
김금수 : 이번 사태가 민주노총으로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노동운동 전체의 일그러진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참담한 심정이다. 개인적인 행태로 치부할 수도 있지만, 좀 더 고민을 넓혀보면 노동운동의 작풍, 풍토가 정도에서 벗어난 결과가 아닌가 싶다. 운동의 원칙, 사회적 신뢰, 활동 방식, 사회적·정치적 권위 등 노동운동의 토대와 기반 자체가 이미 균열됐거나 더 심하게 말하면 붕괴된 상태에서 나온 결과란 얘기다. 당사자들은 섭섭하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단순히 개인적인 문제는 아니다.
프레시안 : 일부에서는 진보 진영 자체가 성 문제에 철저하지 못하다는 얘기도 있다. 더욱이 가해자가 조직강화특위 위원장인 것도 기막히지만, 사건 이후 민주노총의 처리 과정도 석연치 않는 구석이 있다.
김금수 : 운동권에 대한 일반의 기대가 너무 커서 반사적인 부분도 있을 것이다. 밖에서 할 수 있는 얘기는 아니지만, 민주노총이 그것을 비밀리에 해결하려는 과정에서 주관적인 관점도 많이 들어갔고 시기적으로도 늦었다. 어쨌든 결과를 놓고 보면 처리 절차가 아주 잘못됐다. 여러 사정이 있더라도 그것이 결과를 정당화해 주는 것은 아니다.
프레시안 : 피해자 측은 민주노총이 '이명박 정권 아래서 싸워야 한다'는 이유로 사건을 적당히 무마하려 했다고 주장한다.
김금수 : 그것이 전부는 아닐 것이다. 여러 얘기를 하는 중에 하나의 설득 이유로 썼을 것 같긴 하지만, 무조건 참으라는 뜻을 아니었으리라 생각한다. 그 말만 부각된 측면이 강하다.
"성폭력 이후 민주노총? 힘겨운 고비들이 아직 많이 남았다"
프레시안 : 어쨌든 이 사건으로 민주노총 지도부가 총사퇴했고 비대위가 구성됐다. 진상조사단이 따로 구성됐고 오는 4월 8일 이전에 보궐선거를 치러야 한다. 앞으로 민주노총은 어떻게 될까?
김금수 : 4월 전 보궐선거와 올해 말 직선제 선거라는 일정은 전 조직적인 결의가 없는 한 그대로 진행될 것이다. 물론 그 안에 규약을 개정해 4월 보궐 선거의 임기를 늘리거나 간선제로 할 수도 있지만 그건 별도의 조치가 필요하다. 이 일정이 언뜻 보면 단순한 것 같지만, 순탄하지만은 않다. 힘겨운 고비들이 있을 것이다.
제일 큰 문제는 직선제다. 이미 많은 우려가 나오고 있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 총연맹 위원장 선거를 직선으로 뽑냐'는 주장도 있고, '반드시 직선제가 민주적이냐'는 반론도 있다. 또 직선제 과정에서 고의가 아닐지라도 사무적인 착오 때문에 소송이 붙는 사례도 연맹에서 왕왕 있었다. 정파가 단순할 때는 괜찮지만 지금처럼 복잡한 상황에서는 직선제가 대표성을 강화하기보다는 갈등을 부추기는 작용을 할 가능성이 높다.
이 사건과 관련해서도 상당히 많은 과제가 남았다. 우선 지도부의 신뢰와 권위를 회복해야 한다. 말은 쉽지만 민주노총은 파벌이 심각해 쉽지 않다. 지금 민주노총 내부에는 이념은 없고 파벌만 존재하고 있는데, 당장 해결하긴 어렵겠지만 기본적인 방향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이번 사건 이전부터 노동운동이 어려웠던 것은 그런 이유다. 또 이번 사건이 조직 운영 체계나 원칙이 잘못된 데서 비롯된 것이라고 본다면 더 그렇다.
더불어 올해 봄철 투쟁에 있어 그 역량에 맞는 전술과 투쟁력 배치 문제가 피해갈 수 없는 과제다. 이런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지 않으면 절차만 가지고는 좀처럼 이번 고비를 넘기기 어려울 것이다.
"민주노총의 추락, 전략적 목표의 부재가 근본적 원인"
프레시안 : 그 이전부터 민주노총이 위기, 문제라는 말은 많았다. 조직적 힘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번 사건으로 도덕적 권위까지 떨어지게 됐다. 민주노총이 지난 20년 동안 점점 추락해 온 원인을 어디에 있을까?
김금수 : 모든 조직은 관료화될 수 있는 속성을 기본적으로 안고 있다. 민주노총은 80만의 거대한 조직이니 더 그럴 수 있다. 노동조합은 다른 조직과 또 다른 특수성도 있다. 대중 조직이면서 또 계급 조직이기 때문이다. 노동자의 권익 대변을 기본 임무로 하는데, 구성원의 직종도 다양하고, 사상과 신조, 지지 정당도 스펙트럼이 넓다. 그래서 더 분열의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다. 게다가 노동자의 권익을 대변하는 집단이니 더 그렇다. 분열의 가능성이 높은 만큼 민주주의와 대중 노선을 잘 결합해 실현해야 한다. 그 원칙이 흔들리거나 활동 방식 등의 기반이 흔들리면 관료화되고 권력화되기 쉽다.
프레시안 : 민주노총이 올해 할 일이 굉장히 많을 때다. 그런데 이번 사건으로 사회 전체에서 노동계의 권위가 추락한 상태다. 어떻게 추슬러 나갈 것인가가 제일 중요한 일이다.
김금수 : 5년 전에 내가 '민주노총이 추락하고 있다'고 했을 때는 동의하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내부적으로도 위기라는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추락이다, 침체다'라는 것은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학계에서는 이를 두고 정체성의 위기다, 연대성의 위기다, 공공성이나 계급 대표성의 위기다 등 여러 진단을 하는데 나는 그보다 더 근본적인 원인은 전략적 목표의 부재에 있다고 본다.
다른 나라의 노동운동은 21세기를 맞이하면서 각기 나름 새로운 노선과 기조를 설정했다. 그러나 우리나라 노동운동은 이념과 노선 그리고 운동 기조를 설정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노총은 몇 년 전부터 '사회개혁적 노동조합운동'을 얘기하고 있지만 실제 내용이 없다. 민주노총은 단병호 위원장 시절에 외부 전문가까지 참여하는 '노동운동 전략 위원회'를 통해 1년 간 고민해 내놓은 것이 '사회변혁적 노동운동'이라는 전략이었다. 그런데 그마저도 각 정파 간 의견이 분분해 대의원대회에서 보고조차 못했다. 결국 민주노총은 지금까지도 공식적으로 설정된 전략 목표가 없는 셈이다.
▲ "다른 나라의 노동운동은 21세기를 맞이하면서 각기 나름 새로운 노선과 기조를 설정했다. 그러나 우리나라 노동운동은 없다." ⓒ프레시안 |
"정치도 투쟁도, 심지어 대중 노선도 구체적인 것이 없다"
프레시안 : 민주노총의 지도부와 간부, 조합원이 함께 합의하고 지향하는 공동의 전략 목표가 없다는 말인가?
김금수 : 없다. 전략 목표란 바꿔 말하면 이념과 노선이고 좀 더 구체적으로는 조직 노선, 투쟁 노선, 정치 노선이다. 조직 노선은 산별노조로 가는 것이라면 '어떻게?'가 있어야 한다. 투쟁 노선도 매번 '총파업'만 외칠 것이 아니라 전술도 있고 유연성도 있어야 한다. 예컨대 제도와 정책을 개혁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할 것인가. 민주노총은 노정 교섭을 얘기하지만 정부는 거부할 것이 뻔하다. 그렇다면 사회적 대화기구에 들어갈 것인가 말 것인가. 안 들어간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대안이 있어야 하는데 없다.
정치 노선도 마찬가지다. 민주노동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만 할 것이 아니다. 노동자 중심의 정당을 만들려면 실제 많이 들어가야 하는데, 전체 조합원 80만 가운데 민노당 당원은 4만 명 수준이다. 그래놓고 노동자 중심의 정당을 강조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늘릴 것인가를 모색해야 한다.
대중 노선도 그렇다. 위원장이 6개월 동안 현장 대장정을 한다고 그것이 대중 노선의 실천은 아니다. 현장을 돌더라도 안을 가지고 돌아야 한다. 조직을 어떻게 확대할 것인가, 민노당 당원을 어떻게 늘릴 것인가, 비정규직 조직화 방법을 찾아보자 등의 안을 가지고 현장을 순방해야 했다.
프레시안 : 전략적 목표가 없다는 말은 달리 말하면 지향 없이 헤맸다는 얘기가 된다.
김금수 : 그렇다. 최소한 '민주노총은 10년 후 한국 사회는 이런 모습이 되야 한다', '민주노총의 미래는 이렇다'는 것이 있어야 하는데 없다. 구체적인 상이 없다는 얘기다. 최소한 지금이라도 미래에 대한 구체적인 그림을 그려야 한다.
"이명박 정권에 대해서조차 통일된 성격 규정이 안 된다"
프레시안 : 그렇지만 경제가 어렵고 현장은 당장 일자리 지키기가 중요하다는 반론도 있을 수 있다.
김금수 : 그것은 일상적인 투쟁의 하나다. 노선이나 이념과는 관계없다.
오히려 그 다음 과제는 현재 시스템에 대한 성격 규정이다. 신자유주의는 이미 끝났고 새로운 체제가 와야 한다고들 하는데, 그 본질인 국가독점자본주의에 대한 얘기는 별로 없다. 국가독점자본주의란 국가 권력과 독점 자본의 권력이 단일한 메카니즘인데 신자유주의란 그것의 하나의 방편이고 정책일 뿐인 것이다. 그런데 그런 얘기는 전혀 안 된다.
이명박 정권에 대해서조차 성격 규정이 안 되고 있다. 이석행 위원장은 '반독재 국민전선'을 얘기했지만, 이 정권이 독재냐 파쇼냐 권위주의 정권이냐에 대해 통일된 의견이 없다. 민주노총 뿐 아니라 전체 진보 진영이 마찬가지다. 다들 제각각 의견이 다르다. 대응이라는 것은 당연히 성격에 따라 오는 것인데 성격 규정이 안 되니 대응책이 안 나온다.
프레시안 : 그런 문제는 단순히 노동운동만의 책임은 아니지 않나? 학계라든가 정치권에서 이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와 논의가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김금수 : 당장은 안 되도 노동운동이 모색을 해야 한다. 민주노총은 민주노총대로, 진보연대는 그대로, 또 학계는 학계대로 책임이 있다. 그런데 지금은 모두가 경제 위기에 대한 고민만 하지 근본적인 논의를 하지 않고 있다.
"권위 회복, 헛소리부터 안 해야 한다"
프레시안 : 근본적인 논의가 중요하고 시급하지만 이번 사건으로 인해 우선은 민주노총 내부 자체혁신의 중요성이 부각된 듯하다.
김금수 : 지금은 성급하게 결론 내릴 생각을 하지 말라는 말을 먼저 하고 싶다. 성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진지한 물음부터 떠올려 보자. 지도부만 하는 것이 아니라 20~30개의 물음표를 만들어 일선 활동가들 전체에게 토론을 붙여 보자.
예를 들어, 조직율이 왜 10% 대인가? 왜 양대 노총 공조는 안 되는 것인가? 산별노조는 왜 이름뿐인가? 정책과 제도 개혁을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나? 총파업을 해야 할까, 대화 기구에 들어가야 할까? 조합원은 왜 민노당에 안 들어갈까? 진보 전당이 갈라진 이유는 무엇인가? 6개월 내지 1년이 걸리더라도 최소한 연맹 대의원이나 지역본부 대의원만이라도 토론해 보자는 얘기다.
사실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은 이미 다 나와 있다. 그래도 토론을 하다 보면 산별에 따라, 지역에 따라 조금씩 다른 의견이 나올 수도 있다. 또 지도부가 전혀 생각지 못한 얘기도 나온다. 현장에서 올라오는 그런 얘기가 일종의 대중 노선의 집약이다.
권위 회복도 '우리 앞으로 잘하겠습니다'로 되는 것이 아니다. 헛소리부터 안 해야 한다. 매번 총파업 한다고 말만 하고 총파업은 하지도 못하는 상황이지 않나. 매번 10만 명이 모인다고 큰 소리 치는데 5만 명도 모아본 적이 없다. 집행부가 노사정위원회 들어가자고 하는데 40명이 단상에 올라가면 물거품이 된다. 그러면 조직 권위가 떨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혁신이 안 되는 이유? 다들 자리 욕심이 강해서"
프레시안 : 혁신이 안 되는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김금수 : 자리에 욕심이 강하기 때문이다. 원칙이란 천재의 머릿속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200~300년 동안 투쟁하는 과정에서 나온 결론이 바로 원칙이다. 유럽에서 1848년 첫 시가전이 등장했을 때 3000명이 죽고, 1871년 파리 꼬뮌 때는 정부 통계 1만5000명, 이쪽에서는 3만 명이 죽었다. 그런 참담한 투쟁을 거치면서 나온 보편의 원칙에 대해서 요즘은 공부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
지금은 할 수 있는 것부터 해야 한다. 공기업이든 사기업이든 똑같이 강도 높은 구조조정 압력이 들어올 텐데 노조의 일상 활동이나 내부 동력이 다 죽은 상태에서 조합원은 절대 싸우지 않는다. 앞장서면 손해 본다는 인식이 퍼지면 노조가 투쟁하겠다고 해도 조합원이 믿지 않는다.
부서별로 현장 돌아가는 것을 일주일에 한 번씩 대의원이 파악하고 집행부는 산업계 동향과 경영 내용을 파악해야 한다. 조합원 생각은 어떤지 먼저 알고, 그 다음에 파벌에 관계없이 공유하고 연합할 지점도 고민해야 한다. 연맹도 마찬가지다.
프레시안 : 민주노총의 추락은 바닥을 친 것일까?
김금수 : 사실 성폭행 사건 나기 전, 이석행 위원장 체포 때부터 민주노총의 지도력이 너무 훼손돼 있었다. 그러나 얼마 전 만난 전직 위원장들 가운데 일부는 '더 내려가야 깨닫지 않겠나, 지금 얘기 듣겠나'고 하더라.
변명을 하자면 끝도 없다. '비정규, 영세 노동자는 조직 자체가 어렵다'거나 '산별노조로 전환한 것만으로도 얼마나 잘 했나'거나 '조합원이 이기적이어서 잘 움직이지를 않는다'는 등. 원인은 위에 있다. 노조 집행부가 일상 활동은 안 하면서 조합원만 이기적이라고 자꾸 얘기해선 안 된다.
이명박 정부 1년 차였던 작년과 올해는 또 다를 것이다. 정파들이 또 다시 위원장 자리에 연연해서는 안 된다. 하겠다는 사람 주면 된다.
"경제가 어려우니 조합원이 스스로 거리로 나온다? 천만에"
프레시안 : 경제 위기에 겹쳐 이명박 정부가 노정 관계에 어두운 그림을 드리우는 핵심 이유 중 하나다. 이번 사건이 노정 관계에 미칠 영향은 어떨까?
김금수 : 타협의 여지가 없다고 본다. 정부는 민주노총을 '반 이명박 세력'으로 본다. 진영옥 전 위원장 직무대행이 일정한 조건이 되면 '노사민정 비상대책기구' 참여 용의가 있다고 했다가 내부적으로도 파장이 엄청 일었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은 개별 기업 단위의 임단협보다 전 사회적인 정책과 제도의 개혁이 더 중요한 때라는 점이다. 임단협은 조직 노동자, 해당 사업장 노동자만 해당되지만 정책과 제도는 전체 계급적인 것이다. 법률의 한 조항을 바꾸는 것이 엄청나게 중요하다. 그 자체에 만족하면 개량인 것이지만 그것을 발판으로 변혁을 이룰 수도 있다.
그런데 민주노총 일부 세력은 '사회적 대화'에 들어가는 것 자체가 개량이라고 얘기한다. 그러면서 오로지 총파업만을 얘기한다. 총파업 쉬운 것 아니다. 100년 역사상 총파업은 10번도 안 된다. 밖에서 투쟁을 하면서 노사정 교섭이나 대화를 통해 정부나 사용자가 내놓은 안이 잘못됐다는 걸 폭로하고 이쪽 요구를 천명하기 위해서라도 대화를 해야 한다.
우리는 대화 의지가 있지만 지금 노사정위원회는 민주성과 독립성이 없으니 개편하자, 우리는 하겠다는데 왜 너희는 안 하냐, 이렇게 오히려 공세적으로 나갈 수 있는데도 자꾸 '들러리니 안 된다'고만 한다. 그러니 더 정부에서는 '저 친구들은 밖에서만 노는 사람들이지 안에 들어올 사람이 아니'라고 보는 것이다.
프레시안 : 사회적 대화 참여 문제는 이수호 집행부 시절 엄청나게 내부적으로 갈등을 일으키기도 했었다. 최근에는 그 때문에 어느 쪽에서도 선뜻 그 얘기를 꺼내지 못하는 듯하다.
김금수 : 대화가 바로 교섭이다. 현장에서는 그간의 경험으로 '교섭으로 100%를 못 따낸다 할지라도 교섭 자체를 노조가 기피하는 것이 더 손해 아니냐'는 생각이 있다. 그런데 그런 요구를 위에서 다 무시했다. 이수호 집행부 때 대의원대회에서 표결에 붙이면 60~70%는 노사정위 참여를 선택했을 것이다.
사실 노무현 정부 때나 김대중 정부 때 개혁을 못한 것은 여러 원인이 있지만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관료의 보수성이다. 그것을 저지할 수 있는 방법의 하나가 대통령과의 직접 거래였다. 그런데 (노사정위 불참으로 민주노총이) 그런 기회를 놓쳤다.
이명박 정권 하에서는 이미 노정관계가 정상으로 굴러갈 수 없는 상태다. 민주노총도 그렇고, 정부는 더하다. 특히 민주노총은 투쟁할 수 있는 충분한 체제를 갖추지 못하고 있다. 대중조직은 한 번 패배 의식에 젖으면 동력을 끌어올리기가 쉽지 않다.
▲"이명박 대통령이 안 받을 수 있지만 민주노총이 먼저 '대화하자'고 요구할 필요가 있다." ⓒ프레시안 |
"고목도 밀어야 넘어간다"
프레시안 : 참모 구성 뿐 아니라 이명박 대통령 본인도 노동문제에는 관심이 없는 것 같다.
김금수 : 대통령의 관심은 치안과 경제에만 있다. 결국 옛날로 돌아가는 셈이다. 오히려 민주노총에서 도전해주길 바랄 수도 있다. 1997년 총파업 수준이 아닌 다음에야 좋은 공격 거리가 된다. '경제도 어려운데 또 파업' 운운 하면서.
그래서 더 내부적으로 다툴 때가 아니다. 정파를 떠나 함께 워크샵도 하고 토론도 해야 한다. 당장 엄청난 투쟁력이 나오진 못해도 조합원들은 예민하니까 '저 사람들이 정신 좀 차렸나'는 반응은 나올 것이다.
어떤 이는 지지도가 떨어지면 그 정권은 고목이라고 하지만, 고목도 누군가가 밀어야 넘어간다. 바람 분다고 고목이 스스로 넘어가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이제 이 땅의 노동운동이 신뢰와 권위를 회복하고 과감한 내부 혁신을 단행하면서 대중노선을 관철시킴과 동시에 전략목표를 정립해 나가야만 한다.
프레시안 : 긴 시간 얘기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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