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은 주목한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다음달 2일 청와대 오찬모임에서 어떤 얘기를 할지 신경을 곤두세운다.
부질없다. 과한 관심이다. 박근혜 전 대표는 말하지 않는다. 더 정확히 말하면 할 말이 없다.
참석자가 20명이 넘는 자리에서 말을 하면 얼마나 하겠느냐고 내다보기에 이렇게 진단하는 게 아니다. 박근혜 전 대표의 말은 늘 짧았다. 길어야 두세 문장이었다. 발언 기회와 시간은 관건이 되지 못한다.
중요한 건 계제다. 박근혜 전 대표는 지금 말할 계제가 아니다.
박근혜 전 대표가 입에 올릴 수 있는 현안은 두 가지다. '용산 참사'와 '쟁점법안'이다. 하지만 이미 말했다. '쟁점법안'에 대해서는 "국민에게 고통과 실망을 안겨주고 있다"고 했다. '용산 참사'에 대해서는 "너무 빨리 진압에 들어간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그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비참하게 목숨을 빼앗긴 것이 비통하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렇게 말해놓곤 수습에 나섰다. 박근혜계 의원들이 나서 '쟁점법안' 자체가 아니라 처리절차를 지적한 것이라고 해명했고, 경찰의 조기·과잉진압에 대해선 말한 바 없다고 부인했다.
여기서 알 수 있다. 박근혜 전 대표는 선을 넘으려 하지 않는다. 싸우되 전면전은 피한다. 제동을 거는 것으로 싸움의 목적을 한정하고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으로 싸움의 성과를 갈음한다.
박근혜 전 대표의 이런 행보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건 타이밍이다. 발언 파장을 극대화할 수 있는 타이밍, 발언 명분을 극대화할 수 있는 타이밍이다.
이게 포인트다. 박근혜 전 대표의 '말정치'를 좌우하는 건 타이밍인데, 그 타이밍을 좌우하는 건 박근혜 전 대표의 몫이 아니다. 그건 주어지는 것이다. 주어진 조건과 형세의 흐름에 맞춰 박근혜 전 대표는 타이밍을 골라잡을 뿐이다.
박근혜 전 대표가 말할 계제가 아니라는 얘기가 이래서 나온다. 박근혜 전 대표에겐 아직 '2차 발언'을 할 조건이 주어지지 않았다.
박근혜 전 대표가 문제 삼은 '쟁점법안'의 처리절차는 일단 해소됐다. 여야가 '쟁점법안' 처리 방향에 합의해 도장까지 찍었다. 그 뒤 달라진 건 없다. 2차 입법전쟁은 아직 개시도 하지 않았다. 박근혜 전 대표가 '쟁점법안'에 대해 '2차발언'을 하려면 다시 공방이 벌어져야 한다.
박근혜 전 대표가 비판한 것으로 '알려진' 경찰의 조기·과잉진압 부분은 확정되지 않았다. 검찰이 다음달 초에 수사결과를 발표한다고 하는데 그 시점이 청와대 오찬모임 이후다. 박근혜 전 대표가 '용산 참사'에 대해 '2차 발언'을 하려면 검찰의 수사결과에 대한 여론판정이 먼저 내려져야 한다.
달리 해석할 필요가 없다. 박근혜 전 대표가 청와대 오찬모임에 참석하는 배경을 과도하게 의미 부여할 필요가 없다. 책잡히지 않기 위해서라고 해석하면 된다. 제한전의 관건인 수위 조절을 위해 '의무 방어전'을 하는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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