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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경제 살리기? 있는 사람들만 쪼개 먹기 바쁘지"

[르포] 최저임금법 개정이 생존권 위협인 이유

세계경제가 대공황 이후 최악의 경기침체를 겪고 있다. 대외의존도가 큰 한국경제가 위기를 비껴가긴 힘들다. 그래서 이명박 정부는 연일 대응책을 발표하고 있다. 수십조에 달하는 돈을 풀어 경제를 살리겠다고 한다. 정부 정책에는 '빈틈'이 존재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지만, 친기업 정책을 우선하고 있는 이명박 정부에서 그 '빈틈'은 유난히 커 보인다. 현 정부 정책은 이미 한계 상황에 도달해 있는 서민들의 삶에서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을까. 이 간격을 좁히기 위해선 먼저 이들의 일상에 '현미경'을 들이댈 필요가 있다. 이런 문제의식으로 먼저 최저임금법 개정 문제를 살펴봤다. 편집자

서울의 한 지하철역에서 청소 일을 맡고 있는 박연자(61) 씨. 그의 일터에서 집까지 거리는 걸어서 3분이 채 되지 않는다. 요즘 같이 추운 겨울, 이 짧은 퇴근길에도 그의 몸은 꽁꽁 언다. 새벽 6시, 그는 온 몸에 세제와 먼지와 물을 뒤집어 쓴 채 고된 일을 마친다. 젖은 채로 돌아온 집은 냉골이다.

그의 한 평 남짓한 쪽방에 기자가 찾아간 날도 그가 내온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찐 고구마는 유난히 빨리 식었다. 찬 기운에 그의 말을 받아 적던 기자의 손마디는 이내 뻑뻑해졌다.

최저임금 깎아 일자리 늘린다고?

"최저임금을 삭감해 일자리를 늘리겠다고? 최저임금을 깎으면 최저임금 받으면서 일하던 사람들은 몇 개씩 일자리를 구해야 한다. 나를 봐도 알지 않나. 최저임금에서 20-30만 원 정도 올려주면 다른 일 하지 않고도 먹고 살 수 있는데, 그 돈이 모자라 일자리를 찾아 헤맨다."

그는 정부와 여당이 추진하고 있는 최저임금법 개정안에 대해 분개했다. 정치인들과 관료들이 최저임금을 받고 사는 이들의 생활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고 한탄했다. "내가 뛰어내려 막을 수만 있다면 여의도 국회의 뚱그런 냄비 꼭대기에서 뛰어 내리고 싶은 심정"이라고도 했다.

한나라당 김성조 의원 등이 발의한 최저임금법 개정안에 따르면, 지역과 연령에 따라 최저임금을 차등으로 지급하고, 수습기간을 6개월로 연장하며, 사용자가 노동자의 숙식비를 최저임금에서 제할 수 있다. 이 개정안이 통과되면 박 씨와 같은 60세 이상의 고령자는 최저임금을 삭감당할 수 있게 된다. 국가인권위원회는 3일 이같은 최저임금법 개정안에 대해 "저임금 근로자를 보호하고 최소한의 생계를 확보하는 차원에서 타당하지 않다"며 재검토를 권고했지만, 노동부는 5일 "우리나라 최저임금 수준이 낮지 않다"며 굽히지 않고 있다.

"최저임금을 삭감하면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는 게 정부와 한나라당이 내세운 명분이다. 하지만 박 씨의 일상은 정부와 한나라당의 주장이 얼마나 현실과 유리된 것임을 보여준다.

▲ 박 씨가 살고 있는 쪽방촌 골목. 20개의 쪽방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골목이 두 개 연달아 있다. ⓒ프레시안
그는 역에 밤 9시에 출근해 다음날 새벽 6시에 퇴근한다. 처음에는 낮에 일하다가 야근 수당이 붙어 임금이 더 많은 야간조로 바꿨다. 그리고 노인 일자리 지원 사업으로 오후 2시부터 6시까지 한강시민공원의 화장실 청소를 한다. 또 틈틈이 끼니때마다 장애인 도시락 배달을 한다. 쉬기는커녕 하루에 잠자는 시간이 2-3시간에 불과하다.

그가 벌어들이는 한달 수입은 160여만 원. 장애인 도시락 배달일로 받는 30만 원은 한끼 당 3000원 꼴인데 식재료를 마련하기도 빠듯한 비용이라고 한다. 그는 돈이 목적이 아니라 형편이 어려워지기 전에 오랫동안 해온 장애인 봉사 활동을 계속 하고 싶어 이 일을 한다고 말했다.

빚과 병든 몸, 저소득층 고령자들의 공통점

박 씨가 유독 어려운 이유는 '빚' 때문이다. 사업을 하던 친구의 빚보증을 섰는데, 6년 전 그 친구가 사고로 죽는 바람에 1억 원이 넘는 빚을 고스란히 떠 안았다. 남편은 이혼을 요구했고, 갑자기 거액을 빚을 진 여성 가장이 된 그는 막 대학생이 된 아들과 함께 전남에서 서울로 거처를 옮겼다. 빚을 갚을 돈을 벌기 위해서다. 지금도 한 달에 90만 원은 빚을 갚는데 쓰인다.

빚 말고도 그를 괴롭히는 게 있다. '병든 몸'이다. 그는 지난 2007년 5월 지하철 철로를 청소하다가 감전 사고를 당했다.

그가 하고 있는 지하철역 청소는 흔히 생각하는 화장실 청소, 역사 청소가 전부가 아니다. 야간작업은 지하철 운행이 끝난 뒤 선로 청소를 한다. 철로와 철로 사이의 콘트리트 바닥은 60kg이 넘는 기계를 이용해 세제를 뿌리고 바닥을 고르게 정리하고 물로 닦아낸다. 철로는 고압선이 든 호스를 사용해 기름때를 제거한다. 고령의 여성들이 하기엔 힘이 많이 들고 위험한 일이다. 역설적으로 고령의 여성들이 하니까 대수롭지 않은 일로 여겨진다. 나이 든 여성 노동자 3명이 그 많은 일을 나눠한다고 한다.

박 씨는 당시 사고로 왼쪽 팔이 탈골되고 주변 근육과 신경이 훼손됐다. 그러나 그해 11월 4일까지 산업재해 판정을 못 받아 치료도 제대로 못 했다. 산재 판정을 받고 나서야 수술을 받았다. 수술 이후에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회사에서는 산재 치료기간 동안 임금의 70%가 지급된다면서 은근히 그가 나오지 않기를 바랐지만 한 푼이 아쉬운 그의 입장에선 일을 그만 둘 수 없었다.

그러니 몸이 안 아플 수가 없다. 몸이 아프면 돈이 들어간다. 수술 이후 정상 근무를 하면서 들어가는 병원비는 고스란히 그의 부담이었다. 고장난 몸으로 고된 육체노동을 계속하니 일주일에도 한두번은 한의원에 가서 침을 맞아야 통증이 가라앉는다. 그는 병원비 때문에 주위 사람들에게 또 빚을 500만 원 가량 지게 됐다고 한다.

대물림되는 가난, 강요 당한 자포자기

빚에, 병원비에, 방세로 한 달에 10만 원을 내고 나면 그의 수중에 남는 돈은 50만 원이 채 되지 않는다. 또 치솟는 물가는 국민임대주택이라도 신청해볼 요량으로 다달이 붓던 청약부금마저 낼 수 없게 만들었다. 지난 7월 이후로 월 10만 원의 청약부금도 내지 못할 형편이 됐다. 없는 사람들에게 겨울은 여러모로 고통스런 계절이다. 낡고 허름한 집은 찬바람을 막아주지 못하고, 엉성한 난방시설은 '연료를 잡아먹는 하마'다. 그는 겨울이 되면서 가계부 쓰는 것마저 포기했다고 한다. 형편이 조금이라도 더 나아질 것이란 '기대'마저 버린지 오래다.

이런 '희망을 말하기 힘든 삶'은 그의 동료들도 별반 다르지 않다고 한다. 더구나 경제위기의 여파로 밀어 닥치고 있는 감봉, 감원 바람은 노동자들의 어깨를 더욱 무겁게 만들고 있다.

"지금 현장에서는 다 떨고 있지. 그러면서 일 하다가도 언제 잘릴지 모르니까 의욕들이 없다. 장화 신고 해야하는 일들을 막 슬리퍼 신고 하고…. 다들 자포자기 상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버티는 이유는 '가족' 때문이다. 하지만 '대물림되는 가난'은 그를 가장 힘들게 한다. 대학생이던 아들은 집안 형편이 어려워지면서 군대를 갔고 제대했지만 등록금이 없어 복학하지 못했다. 결국 일반 대학보다 등록금이 훨씬 싼 디지털대학으로 학교를 옮겼다고 한다. 아들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다가 포기하고 현재 한 자전거 전문점에서 일하고 있다.

"마음이 아파서 한달에 월급이 얼마인지 물어보지도 못 한다. 참 착하고 똑똑한 아이인데 엄마를 잘못 만나 이렇게 고생하는구나 싶어서."

'경제 살리기'? '서민 살리기'는 아니더라

▲ 지난 12월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 가락시장을 '깜짝 방문'해 화제를 모았었다. 하지만 실질적인 정책으로 연결되지 않는 대통령의 서민들에 대한 관심과 애정 표현은 정치적 '쇼'로 끝나고 만다. ⓒ프레시안
"그나마 나라도 되니까, 여기저기 많이 다니니까, 일자리를 여러 개 구할 수 있지. 일도 못 구해봐. 더 어렵지. 서민을 살리는 것은 경제가 아니다. 지금 정부가 경제가 위기라면서, 경제를 살리겠다면서 있는 사람들 쪼개먹기 바쁘지 않냐. 서민을 위해서라면 복지에 신경 써 달라."


"경제가 어려운데 저소득층을 위해 정부가 가장 우선해야할 정책이 무엇이냐"고 묻자 그가 답했다. 서민들의 생활은 경제 호황기 때도 어려웠다. "일자리가 최고의 복지"라면서 아무리 일자리를 쪼개도 일자리가 없는 이들은 항상 있게 마련이다. 이명박 정부는 그럴싸한 명분을 내세우지만 결국 '일자리'와 '복지' 둘 다 실패하고 있다. 두 개, 세 개를 확보해야만 먹고 살 수 있는 일자리만 만들어 낸다고 한다. 또 정부는 2009년 예산안에서 복지재정 중 법적으로 의무화되지 않은 복지재정 지출액은 한 푼도 늘리지 않았다.

6일 정부는 4년간 50조 원을 들여 4대강 정비 사업 등 '녹색 뉴딜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비록 96%가 건설노무직이기 하지만 96만 개의 일자리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은 "일반 복지지출의 경우 남는 게 없는 반면 녹색사업을 통해 SOC 투자지출을 하면 발전의 동력이 되는 것이 남기 때문에 일반적 복지지출 보다 배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주장했다. 현 정부 경제수장은 '복지=낭비'라는 인식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복지 재정을 늘리는 것에는 인색하지만 토목건설에는 아낌 없이 돈을 쏟아붓고 있다. 이 돈은 결국 대형 건설사들에게 돌아갈 것이다.

인터뷰를 앞두고 박 씨는 무슨 얘기를 할까 고민하다가 자기가 살아온 삶을 한번 정리해봤다며 장문의 글을 기자에게 전달해줬다. 편지지 6장에 꼭꼭 눌러쓴 글에는 이런 내용들이 담겨 있었다.

"어느날 갑자기 노령자들 임금 삭감이니, 정년 단축이니, 나이 먹으면 밥도 적게 먹고 가족은 국가에서 책임져 주나요. 먼저 가족을 책임지는 정부를 준비해 놓고 임금 삭감하세요. 지금 병원 가면 40% 이상이 노인 환자입니다. 우린 죽을 만큼 아파야 병원 갑니다.

제발 끈기있고 강한 어머니들에게 슬프고 기운 빠지는 소리 좀 그만 하세요. 수고 한다고 격려하고 등 두들겨줘도 노동자들은 힘이 듭니다.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 월급 깎으려고 하지 말고 정치인들 월급 30%만 덜 받고 일하는 나이 먹은 노동자들의 '건강유지비'를 좀 챙겨주세요.

병들어서 퇴직하면 또 다시 국가가 그들을 책임져야 하니까 미리 건강할 때 건강 챙기도록 도와주세요."


박 씨도, 기자도 나누고 싶은 얘기가 많이 남았지만, 오후 2시 그의 출근 시간에 쫓겨 인터뷰를 마칠 수 밖에 없었다. 이날 그는 인터뷰 때문에 거의 한숨도 못 자고 일하러 가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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