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웃고 넘기기에는 너무 엄청난 일이었다.”
“침묵이 강요된 상태에서 노동이 이뤄지고 있다.”
“모멸감이 너무 들었다.”
“법과 정의가 살아있다고 할 수 있나.”
12일 인권단체 활동가들은 LG칼텍스정유(현 GS 칼텍스)의 노동자 인권탄압 실태 고발 기자회견에서 이같은 말을 쏟아냈다. 지난해 파업 당시 ‘고임금 노동자들의 배부른 투쟁’이라는 원치 않은 오명을 뒤집어 쓴 LG 칼텍스 노조에 가해진 사측의 인권탄압의 실상은 어떤 수준이었길래 인권단체 활동가들은 ‘격분’의 언어를 쏟아내었을까?
***인권단체, LG칼텍스정유 인권탄압 고발..."문상마저 금지됐다"**
안국동 느티나무까페에서 인권운동사랑방, 평화인권연대 등 인권단체들은 LG칼텍스정유 해고자들과 함께 사측의 인권탄압의 세세한 내용들을 공개했다. 지난해 파업 이후 LG칼텍스 사측의 노조 탄압과 인권유린은 간간히 전해져왔지만, ‘배부른 노동자들의 불가피할 결말’이라는 대중적 정서 때문에 제대로 공론화되지 못했다.
신범식 해고노동자 복직투쟁위원회 위원장에 따르면, 사측의 인권탄압은 철저하게 노조 탄압 혹은 길들이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예컨대 사측은 해고자와 전화통화해서 만나는 것을 보고할 경우 인사상 가산점수를 준다고 했거나, 9인의 구속자 면회나 구속자 가족들과의 접촉을 금지했다. 또한 구속자 돕기 기금조성을 위한 일일 주점에 참석하는 것은 물론 금지사항이고, 노동관계법상 보장돼 있는 해고자의 노조 출입마저도 소지품 검사 및 몸 수색을 거쳐야만 했다.
신 위원장이 전한 인권 탄압 사례 중 충격적인 내용은 해고자 가족이 상을 당했지만, 사측은 문상을 금지 했고, 나아가 노조 홈페이지에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고 글을 쓴 조합원을 추적해 불이익을 협박을 가한 대목이다.
신 위원장은 “해고자를 돕겠다는 조합원들이 은행구좌에 입금하는 것을 꺼리고, 입금하더라도 자신의 이름을 밝혀주지 말아달라고 말한다”며 “감시와 불이익의 공포에 조합원들은 ‘침묵’속에 노동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방송 출연이 해고 사유"**
한편 이날 기자회견에는 지난해 12월 시사프로그램 KBS ‘시사투나잇’에 출연했다는 이유로 해고된 이병만씨도 참석했다. 이씨는 해고를 결정했던 ‘징계위원회’ 회의 상황을 전했다.
이씨에 따르면, 이씨는 지난 12월23일 발표된 징계 사유와 명단에 ‘추가사유가 있다’는 이유로 제외된 이후 2월경 다시 소집된 징계위원회에서 ‘시사투나잇’에 출연한 사실을 확인한 뒤 해고 결정을 내렸다. 당시 사측이 이씨에 보낸 '해고 결정문'에는 해고 사유로 '시사투나잇 출연, 업무방해 및 명예훼손'이라고 적시돼 있다.
지난해 12월16일 ‘시사투나잇’은 이씨의 인터뷰를 통해 “파업 이후 복귀한 조합원들에게 회사가 업무 지시를 내리지 않고 제품 창고나 컨테이너 박스에 장기간 걸쳐 대기시키는 등 인권침해와 노동탄압을 자행하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시사투나잇’은 이병만씨 포함 인터뷰에 응한 4명의 노동자가 해고된 사실을 사후 인지 한 뒤 지난달 9일 “입을 함부로 놀리지 말라, 엉뚱한 해고”라는 제목을 통한 방송에서 해고 과정을 집중 보도한 후, 진행자 박장범씨의 말을 빌려 “시사투나잇이 이씨의 복직을 위해 노력을 하겠다”고 LG칼텍스정유 측에 강한 유감의 뜻을 표하기도 했다.
이병만씨는 이와관련 “방송출연당시 모자이크 처리, 음성변조를 했지만, 군대시절 다친 손가락 상처가 화면에 잠깐 잡히는 바람에 사측이 인지한 것 같다”며 “징계위 위원들이 손가락을 내보이라고 하더니 결국 해고 결정을 했다”고 말했다.
이씨는 이어 “평소에도 콤플렉스이던 다친 손가락을 징계위위원들에게 전시하 듯 내보일 때는 심각한 모멸감 마저 느꼈다”며 “아내는 손가락만 아니라면 해고되지 않았을 것이라며 분통을 터뜨리더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노동부-경찰 수수방관이 인권탄압 조장했다"**
한편 LG칼텍스정유의 인권탄압 등을 진상조사 활동을 펼쳤던 정당·시민단체 관계자들은 노동부와 경찰의 불성실한 조사활동이 사측의 인권탄압을 조장했다는 주장을 제기했다.
이준상 ‘LG정유 인권탄압 범시민대책위원회’ 위원장(민주노동당 여수 지구당위원장)은 “지역사회에 들려오는 인권탄압 실태는 상상 이상이었다”며 “지역사회는 불매운동까지 펼치며 압박을 가했지만, 대화요구조차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 위원장은 “일방적 노조 무력화, 탄압은 위법을 저지르지 않으면 불가능하다”며 “하지만 노동사무소와 경찰은 위법사실에 대해 사법처리해야 하지만, 회사 말만 듣고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법원 역시 사측의 제소사항을 대부분 받아들여 김성곤 위원장 등에 3년 징역 실형을 내렸다”며 “파렴치범, 악질 사범이 아닌데도 실형 선고는 불가능한 형량”이라고 덧붙였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