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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면 지방MBC 다 죽어요"

[김종배의 it] 미디어도 경제논리로 접근? 정글을 만들지!

1.

늦은 밤이었습니다. 휴대전화가 울리더군요. 평소 알고 지내던 지방MBC 기자였습니다.

첫마디가 비명에 가까웠습니다.

"이러면 지방MBC는 다 죽어요."

뜨악했습니다. MBC를 민영화하면 지방MBC가 죽는다?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MBC가 민영화(이 기자는 민영화가 아니라 사영화라고 했습니다) 되는 최악의 경우를 상정하더라도 지방MBC가 죽을 일은 별로 발생하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MBC를 인수하는 쪽에서 응당 MBC의 자산을 모두 인수할 것이고 서울MBC가 갖고 있는 지방MBC 지분(대부분이 50% 이상입니다)도 함께 인수할 텐데 죽기는 왜 죽는다는 말인지 도통 이해할 길이 없었습니다.

오늘 아침 일찍 제가 전화를 걸었습니다. 도대체 무슨 말이냐고 꼬치꼬치 캐물었습니다.

이 기자는 두 가지 말을 환기시키더군요. 미디어 정책을 경제논리로 접근하라는 이명박 대통령의 언급, 그리고 미디어 규제를 풀면 고용창출 효과가 크다는 방송통신위와 한나라당의 주장이었습니다. 전자는 무서운 말이고, 후자는 턱도 없는 말이라고 했습니다.

이 기자의 우려 섞인 전망은 이랬습니다.
▲ ⓒ프레시안

2.

한나라당이 한국방송광고공사(코바코)가 독점해 왔던 방송 광고 영업권을 풀려고 합니다. 코바코 외에 민영 미디어렙을 도입하려고 합니다. 경쟁체제를 구축하겠다는 취지입니다.

이러면 존립기반이 취약해집니다. 코바코의 연계판매로 최소한의 광고를 판매할 수 있었던 기반이 무너져 버립니다. CBS나 EBS와 같은 방송사뿐만 아니라 지방 방송사까지 타격을 입게 됩니다. 로컬 프로그램은 지방 방송사가 별도로 광고를 수주해야 하는데 이게 사실상 어려워지기 때문입니다.

코바코와 민영 미디어렙이 경쟁구도를 형성하면 군소 방송 지원 차원에서 행해지던 광고 연계판매는 사실상 불가능해집니다. 시청률에 따라 광고가 판매될 게 뻔합니다. 이런 구조에서는 지방 방송사가 광고를 원활히 수주할 수 없습니다. 시청률 경쟁에서 결코 이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한나라당이 법 개정을 밀어붙여도 어쩔 수 없습니다. 헌법재판소가 코바코의 방송 광고 독점영업권에 대해 이미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터라 뭐라 할 수가 없습니다.

문제는 그 다음입니다. 민영 미디어렙 도입으로 지방 방송사의 경영 기반이 취약해진 상태에서 민영화까지 이뤄지면 끔찍한 일이 벌어집니다. MBC를 인수한 재벌 등이 경제 논리를 앞세우면 이중고에 시달리게 됩니다. 지역문화 창달이나 지방행정기관 감시와 같은 지방MBC의 존재이유를 인정하는 차원에서 지원을 팍팍 해줄 리 만무합니다. 전국 방송의 경우 서울 MBC가 나눠주는 '네트 수신료'를 깎지 않으면 다행입니다.

이것만이 아닙니다. 경제논리가 득세하면 광고 수주 격감으로 자립기반을 상실한 지방MBC에 인력감축을 강제할 것이 뻔합니다. 가뜩이나 방송 제작인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마른 수건 짜내기 식의 인력감축을 요구할 것이 자명합니다. '미디어산업 활성화→고용 창출'을 주장하는 방송통신위나 한나라당의 주장과는 영 딴판의 결과가 빚어지게 됩니다.

최종적인 귀착점은 공익성 쇠퇴입니다. 지방MBC 역시 시청률 올리기에 혈안이 되고, 더불어 사회공익적 프로그램은 등한시 됩니다. 이건 선택이 아니라 숙명이 됩니다.

이렇게 죽어갑니다. 지방MBC는 방송으로서의 존재 이유가 쇠퇴하면서 자립은 둘째 치고 생존에 목을 거는 정글로 변해갑니다.

3.

지방MBC 기자에게 되물었습니다. 광역화가 대안이 될 수 있지 않겠냐고, 민영화와는 상관없이 광역화로 가야 하는 것 아니냐고 되물었습니다. 한 도에 서너 개의 지방 방송사가 있는 건 분명 문제 아니냐고 되물었습니다.

이 기자가 그러더군요. 받아들일 수 있다고, 프로그램 질 향상을 전제로 한 광역화라면 받아들일 수 있다고,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광역화에도 경제논리가 스며들게 분명하다고 했습니다. 컨텐츠 경쟁력을 전제로 해놓고 필요인력을 산출하는 방식이 아니라 경영수지를 전제로 필수인력만 남기는 식의 광역화가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딱히 반박할 수가 없더군요. 개인적으로 지방방송사 광역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온 터라 어떤 식으로든 반박의 여지를 찾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습니다. 공영·공익적 관점에서의 광역화와는 성질이 전혀 다른, 경제적 관점에서의 광역화가 몰고 올 악영향을 부인할 수가 없었습니다.

4.

얼추 얘기가 마무리될 무렵 이 기자가 급하게 전화를 끊더군요. 아침 9시에 열리는 파업 집회에 참여해야 한다면서 이런 말을 던지곤 전화를 끊었습니다.

"제가 1996년에 입사했는데 지금까지 구조조정을 세 번 겪었어요. 입사 당시 100여명이던 정규직 사원이 지금은 60여명으로 줄었습니다. 한 번 생각해보세요. 지금까지가 이랬는데 사영화 돼 경제논리가 득세하면 어떻게 되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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