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 법안이 '연내 발의' 자체에 의의를 둘 것이라면 큰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직권상정을 위한 정비용'으로 보이는 법안들도 적지 않은 것이 문제라는 지적이다.
한나라, 3일 동안 법안 94건 발의
26일 국회 의안과에는 무려 51건의 법률 제·개정안이 접수됐는데, 이중 27건이 한나라당 의원들이 발의한 법안이었다. 자유선진당 이상민 의원이 14건, 민주당 주승용, 이춘석, 문학진 의원 등이 8건, 창조한국당 문국현 의원이 1건, 친박연대 양정례 의원이 1건을 접수했다.
휴일인 25일을 제외하고 24일에도 34건, 23일에는 33건이 접수됐는데 총 67건 중 한나라당 의원들이 발의한 법안이 56건이었다. 23~26일 사이에 정부가 발의한 법안은 '소음·진동규제법 개정안' 단 1건이다.
의석수를 감안할 때 172석이라는 압도적 의석을 지닌 한나라당 의원들의 법안 발의 건수가 많은 것이라고 볼 수 있으나, 현재 상황이 '평시(平時)가 아닌 전시(戰時)' 상황이라는 점에서 '직권상정'을 전제로 한 법안 발의라는 의심을 사고 있다.
민주 "직권상정 위한 '법안 스크린' 결과"
민주당이 "한나라당 국토해양위 위원들의 간담회 결과"라고 주장하며 내놓은 문건에는 "졸속처리라는 비난과 부담을 고스란히 지게 되므로, 정부에서 전적으로 책임지고 미리 조문을 꼼꼼하게 스크린해야 함"이라고 적혀 있다. 민주당은 이를 "한나라당이 직권상정을 위해 법안 수정을 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보건복지위원회의 민주당 백원우 간사는 지난 24일 발의된 "복지위 쟁점 법안 7건 중 4건이 재발의 됐다"며 "국토해양위의 문건처럼 직권상정을 위해 법안을 수정해 다시 올린 것"이라며 반발했다.
또한 '금산분리 완화'와 관련해 정무위 소속인 한나라당 공성진, 박종희 의원은 지난 11월 24일 각각 '금융지주회사법'과 '은행법' 개정안을 내놓았으나 한 달 만인 12월 24일 원안을 철회하고 수정한 개정안을 다시 제출했다.
▲ 공성진 의원은 11월24일 발의한 금융지주회사법 개정안을 철회하고 24일 다시 발의했다. (국회 홈페이지 발췌) |
한나라당이 제출한 '비슷한 법'들을 종합한 법률도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윤상현 의원이 26일 대표발의한 '북한인권법'이다.
윤 의원의 '북한인권법'은 통일부에 '북한인권자문위원회'(제5조)를 외교통상부에는 '북한인권대사'(제7조)를 두게 하는 한편, "북한의 인권침해 사례와 그 증거를 체계적으로 수집·기록·보존을 위해" 국가인권위원회에 '북한인권기록보존소'(제10조)를 두게 하고 인권위로 하여금 북한 인권실태를 조사해 국회에 보고서를 제출(제11조)하도록 하고 있다.
북한인권법은 또 "정부는 북한주민지원과 북한주민인권증진 관련 민간단체의 활동을 적극 지원하도록 하고, 민간단체에 대해 그 활동에 필요한 경비의 전부 또는 일부를 보조할 수 있도록 한다(제14조)"고 규정해 '대북 삐라'에 대한 정부 자금 지원 길을 열어두기도 했다.
이미 지난 7월 한나라당 황우여 의원이 '북한인권법안'을, 황진하 의원이 '북한인권증진법안'을 각각 제출했었는데, 윤 의원의 이번에 낸 북한인권법은 '종합판'이 격인 것이다. 윤 의원은 "황우여 의원과 황진하 의원이 발의한 북한인권법의 내용을 종합적으로 아우르는 법안"이라고 설명했다.
연말 처리 강행하면 '발의 1주일'도 못 채워
한나라당은 처리 법안을 이번 주말까지 정한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재발의' 혹은 '종합 발의'된 법안들은 처리 법안으로 분류될 가능성이 높아 '졸속' 논란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24일 발의된 금산분리 완화와 같은 법안은 한나라당이 양보할 가능성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현행 국회법 제59조에는 "위원회는 발의 또는 제출된 법률안이 그 위원회에 회부된 후 일부개정법률안의 경우 15일, 제정법률안 및 전부개정법률안의 경우 20일을 경과하지 아니한 때에는 이를 의사일정으로 상정할 수 없다"고 규정돼 있다.
같은 조항에 "다만, 긴급하고 불가피한 사유로 위원회의 의결이 있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고 단서조항을 붙이고 있지만, 국회법 정신은 15~20일의 숙려기간을 둔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만약 한나라당이 '31일 이내 강행 처리'를 관철시킨다면 결국 대부분의 주요 법안이 국회법상의 숙려기간을 거치지 않은채 '단서조항'에 의해 '졸속' 처리했다는 비난을 면키 어려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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