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안에서 느릿느릿 움직이는 진수의 몸은 '치료 중'이었다. 중력이 작용하는 땅 위보다 부력이 존재하는 물 안에서 더 움직이기 쉽다는 원리를 이용한 재활 치료다.ⓒ프레시안 |
한국산재의료원 인천 중앙병원 내 아쿠아클리닉 센터의 풍경이다. 인천 중앙병원은 국내 유일하게 수중 재활치료 시설을 갖춘 곳이다. 그 뿐 아니다. 대부분의 병원이 눈에 보이는 상처와 도드라진 증상이 나아지면 퇴원 조치하는 것과 달리 인천 중앙병원은 재활에 많은 공을 쏟고 있음을 병원 구석구석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데 100억 규모의 수중치료 시설을 갖춘 인천 중앙병원은 지난 8월 1일 종합병원에서 전문병원으로 그 등급이 떨어졌다. 정부 정책 때문이다. 6개 산재병원 가운데 5개 병원을 차례로 전문 병원으로 만들어 특화된 진료를 하겠다는 것이 정부 계획이다. 이미 발표된 공기업 선진화 방안에는 근로복지공단과 산재의료원의 통합도 담겼다.
명분은 그럴싸하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의 산재병원에 대한 정책은 한 마디로, 포장과 내용이 다르다. 경영 효율화를 통해 만성적자를 해소한다면서 구조적으로 수익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병원 등급 하락을 밀어붙인다. 특성화를 통해 전문성을 살리겠다면서 정작 의료서비스의 질을 높이는 데 우선적인 인력 충원은커녕 가뜩이나 적은 사람만 더 줄이겠다는 태세다.
의료서비스 제공의 주체가 국가라는 당연한 원칙을 뒤로하고라도, 이명박 대통령이 그토록 강조해 마지않는 '산업 역군'을 홀대하는 사회, 지난 12일 찾은 인천 중앙병원은 벌써부터 그 '폐해'를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다.
"재활 시설은 최고급, 인력은 최하위…더 많이 치료해줄 수 있는데"
1:1 진료를 받는 진수의 옆, 길이 25m의 수영장에는 10여 명의 환자들이 함께 수중 치료를 받고 있다. 그들의 치료를 담당하는 수중재활사 신민선(가명) 씨는 "계단을 오르내리는 일이나 다리를 벌리는 일 등 환자들이 땅 위에서는 못하던 일도 물속에서는 가능하다"며 "심지어 물 안에서 걷는 것만으로도 근력 강화 운동이 된다"고 설명했다.
혼자서 걷는 것이 가능한 환자들은 매일 30분 씩 이처럼 '그룹 치료'를 받는다. 진수처럼 1:1 치료가 필요한 중증환자는 일주일에 3번 정도 수중 치료를 받을 수 있다. 전국 어느 병원에서도 받을 수 없는 치료다.
▲혼자서 걷는 것이 가능한 환자들은 매일 30분 씩 이처럼 '그룹 치료'를 받는다. 진수처럼 1:1 치료가 필요한 중증환자는 일주일에 3번 정도 수중 치료를 받을 수 있다. 전국 어느 병원에서도 받을 수 없는 치료다.ⓒ프레시안 |
100억 원을 들여 지난해 11월 아쿠아클리닉 센터가 처음 문을 연 이후 신 씨는 "한쪽이 모두 마비된 '편마비' 환자가 오랜 수중 치료 끝에 25m 레일을 4바퀴나 수영으로 도는 것도 봤다"고 했다. 목소리에 자랑스러움이 묻어났다. 그런데 신 씨는 아쉬움이 많다. "환자들에게 더 많은 혜택이 갈 수 있는데 그러기에는 인력이 너무 부족하다"기 때문이다. 100억 규모의 시설에 수중 재활 치료사는 겨우 3명, 입원환자는 그나마 많이 줄어 400명이다. 이 가운데 무려 70%가 산재환자다.
아쿠아클리닉 옆의 재활치료실도 마찬가지다. 대부분 기계를 통해 물리치료를 해주는 다른 병원과 달리 인천 중앙병원은 물리치료사가 직접 살과 살을 맞대고 손으로 치료를 해준다. 환자마다 아픈 부위가 다른 탓에 치료 과정도 다르다. 굳은 근육을 풀어주고 잘 안 움직이는 부위는 움직임을 도와준다.
▲ 환자들은 직접 자신의 상태를 확인해가며 몸을 만져주는 물리치료사를 통해 신체의 치료 외에 마음도 풀려간다. 물리치료는 당장 효과가 드러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적절한 시점에 꼭 필요한 물리치료를 받은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은 이후 후유증에서 하늘과 땅 차이"라는 것이 물리치료사의 공통된 얘기다.ⓒ프레시안 |
"자, 이렇게 하면 어제보다 오늘 더 아프세요? 그럼 지금은요?"
환자들은 직접 자신의 상태를 확인해가며 몸을 만져주는 물리치료사를 통해 신체의 치료 외에 마음도 풀려간다. 물리치료는 당장 효과가 드러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적절한 시점에 꼭 필요한 물리치료를 받은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은 이후 후유증에서 하늘과 땅 차이"라는 것이 물리치료사의 공통된 얘기다.
재활 치료를 전문화하려면 인력 충원이 절대적인 이유다. 지금은 모두가 하루에 한 번 밖에 받지 못하지만, 인력이 늘면 환자마다 하루 2번도 가능하다. 물리치료사가 직접 탁구, 배드민턴 등을 환자와 치면서 운동 시켜주는 치료 역시 시간과 대상이 늘어날 수 있다. 하지만 물리치료사 이영희(가명) 씨는 "손을 훨씬 많이 가는데 사람이 너무 적다"고 하소연했다.
부족한 것은 물리치료사 뿐 아니다. 특히 산재의료원은 비슷한 급의 다른 병원에 비해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 노조의 주장이다. 인천중앙병원의 의사는 모두 28명, 간호 등급도 6~7등급으로 너무 낮다. 열악한 환경 등 다양한 이유가 있는데 정부는 오히려 더 인력을 줄이려는 태세다.
"무조건 종합병원 딱지부터 떼라?…'산재의료서비스'철학은 어디에?"
▲ 지난 8월 1일 종합병원에서 1차 진료병원으로 바뀌는 과정 역시 '전문병원으로의 업그레이드'가 아니라 '다운 그레이드'였다. 그것도 후유증만 가득했다.ⓒ프레시안 |
그런데 이 치과에서 일하는 의사는 인천중앙병원 소속이 아니다. 입원 환자도 치과 진료를 받으려면 접수도 수납도 따로 해야 한다. 병원이 치과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정부 정책에 밀려 치과를 결국 외부 의원에 임대하는 것으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의료법 위반 소지마저 있다. 때문에 병원이 "치과 임대를 위해 이 공간을 '근린생활시설'로 지정했다"는 것이 노조의 설명이다.
고급 인력의 유출도 우려된다. 중앙병원의 등급 하락 이후 방사선과 의사가 사직서를 냈고, 이후 15일 동안이나 의사를 구하지 못해 엑스레이 촬영조차 외부 병원과의 협진을 통해 해야 했다. 간호사 역시 마찬가지다. 이직을 하더라도 종합병원 경력은 인정되지만, 전문병원 경력은 호봉에 반영되지 않기 때문이다.
김연숙 보건의료노조 인천중앙병원지회장이 "우리야말로 산재의료원의 특성을 살린 전문화를 원하지만, 지금 정부의 정책은 문제가 많다"고 얘기하는 것은 그래서다. 전문 병원이 되려면 일단 여러 과가 모두 존재하는 '백화점식' 종합병원 딱지부터 떼야한다는 주장이야말로 "관료의 탁상 행정의 전형"이라는 얘기다. 김 지회장은 "오히려 진료기능 하락으로 병원의 경쟁력마저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없애고 다운그레이드' 했더니 경영수지 되려 악화…전시행정의 극치"
산재의료서비스에 대한 장기적 철학의 부재가 그 출발점이지만, 그 종착점은 더 심한 재정 적자일 것이라는 추정까지 나온다. 병원의 등급이 하락하면 각종 가산율도 감소하고, 입원료도 8%나 줄어들기 때문이다. 진찰료도 초진찰료는 10.2%, 재진찰료는 13.7%가 감소한다.
보건의료노조 김형식 정책국장은 "인천중앙병원의 경우 등급 조정 이후 2007년 대비 3억2300여만 원에 이르는 수익 감소가 초래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김형식 국장은 "정부 안대로 6개 종합병원 가운데 5개를 1차 전문병원으로 특화할 경우 행위료 74억 원 손실이 발생해 정부의 이른바 '경영 효율화'에도 역행한다"고 주장했다.
가천의대 임준 교수도 "경영효율성은 재활전문화와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고 오히려 현 적자를 더 악화시킬 것"이라고 말한다. 임 교수는 "제대로 된 재활전문화는 많은 인력과 재원이 필요한데 수입은 턱없이 낮기 때문에 상당한 수준의 적자가 지속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정부의 주장과 달리 "경영효율성은 재활전문화와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고 오히려 현 적자를 더 악화시킬 것"이라는 것이 전문가의 견해다. ⓒ프레시안 |
"산재 진료 가능 병원이 4000개? 환자를 돈으로 보는 병원에서 재활 못 한다"
이런 저런 우려에도 노동부는 문제없다는 입장이다. "산재환자 지정 병원이 4000개에 달하는데 뭐가 문제냐"는 것이다. 반면 반대쪽은 "환자를 돈으로 보는 병원에서는 재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다"고 맞서고 있다.
▲ 산재 환자의 경우 '사회 복귀'를 전제로 한 재활 치료가 어느 환자보다 필수적이다. 인천중앙병원이 환자들에게 컴퓨터, 원예, 전통공예, 미술 등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자연 재활을 돕는 것도 그 일환이다.ⓒ프레시안 |
김연숙 지회장은 "산재 환자 입장에서 보면 산재의료원이 아닌 일반 병원은 모두 산재환자를 돈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같은 소화제라도, 소변줄이라도 그 비용을 공단으로부터 받을 수 있는 것이 있고 없는 것이 있다. 김 지회장은 "우리는 이를 모두 챙겨 산재환자 개인 부담을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해 애쓰지만 일반병원은 전혀 그런 배려가 전혀 없다"고 말했다.
"일반 병원도 환자를 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치료와 재활을 우선으로 고민한다면 산재의료원이 존재할 필요조차 없다. 하지만 지금 한국 사회는 아니다. 전문화와 특성화에 반대하지 않지만, 지금의 정책이 걱정스러운 것은 그래서다. 이번 계기로 오히려 산재병원의 목적과 방향에 대한 사회적 토론이 이뤄졌으면 좋겠다. 취약계층에게 꼭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야말로 정부의 존립 목적 아닌가."
병원을 나서는 길, 그저 열심히 일했을 뿐인데 어느 날 갑자기 휠체어에 앉아 어렵게 몸을 움직일 수밖에 없게 된 그들의 뒷모습이 더 안타까웠던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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