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이 이처럼 낮은 전망치를 내놓은 주요 국내 원인은 상반기 큰 폭으로 떨어지는 설비투자 증가율이다. 또 내년 상반기 고용도 최악의 사태를 빚어 경제 성장을 발목을 잡게 되리라는 게 한은의 예상이다. 해외 경제 하강으로 수출 역시 최악의 한 해를 보일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한은은 이미 올해 4분기 들어 한국 경제가 침체 궤도에 본격 진입했다고 진단했다. 지금의 전망치 역시 '베이스 시나리오'에 불과하다고 밝혀, 상황에 따라 추가 조정이 가능하다고 전했다.
하반기 마이너스 성장, 상반기 마이너스 성장 겨우 면해
12일 한은은 '2009년 경제전망'을 발표하며 내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올해(3.7%)보다 크게 하락한 2.0%에 머물 것으로 전망했다. 기획재정부 등 정부기관은 물론 주요 국책 연구기관이 내놓은 경제전망보다 훨씬 낮은 수준이다.
보다 충격적인 전망은 올해 4분기 한국경제가 전기대비 마이너스 1.6% 성장할 것이라는 점이다. 이미 한국경제가 침체(Recession)에 들어갔다는 뜻으로, 국내외 주요 연구기관이 내년 초가 돼야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할 것이라고 내다본 것보다 더 빨리 경기가 하강하고 있다고 한은이 판단한 것이다.
내년 상반기 역시 비관적이다. 내년 상반기 한국 경제는 전년동기대비 0.6% 성장세를 기록하는 데 그칠 것이라는 게 한은의 전망이다. 다만 하반기 들어서는 3.3% 증가로 바닥 탈출을 시도할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올해 하반기가 워낙 부진했던만큼 전체 경제성장 기조로 놓고 보면 여전히 바닥권 탈출 시도로 해석하는 게 맞아 보인다.
수출 무너지고 내수도 실종…IT버블 붕괴 후 최악
▲김재천 한국은행 조사국장이 12일 한은 기자실에서 '2009년 경제전망'을 발표하고 있다. ⓒ뉴시스 |
먼저 수출을 보면 내년 상품수출액이 4000억 달러에 그쳐 올해(4260억 달러)보다 6.1% 줄어들 것이라고 한은은 내다봤다. 상품수출 성장률이 연간 기준으로 마이너스를 기록하는 것은 지난 2001년 IT버블 붕괴 당시 -12.7%를 기록한 후 8년 만에 처음이다.
수출이 성장하지 못하고 과거로 회귀하는 주된 까닭은 세계 경기침체다. 한은은 내년 세계 경제성장률이 1.9%에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 미국(-1.0%)과 일본(-0.5%), 유로(-0.8%) 등 세계 주요 선진국이 모두 마이너스 성장한 데 따른 여파가 미친 것이다.
국내수요가 급격하게 위축함에 따라 내년 민간소비 증가율 역시 0.8%를 기록하는 데 그쳐 올해(1.5%)의 절반 수준에 그칠 것으로 한은은 내다봤다. 경기부진으로 경제주체들의 실질소득이 감소세로 돌아선 데다 중산층 가계를 짓누르는 가계부채 증가세가 멈추지 않아 소비를 위축시키기 때문이다.
다만 올해 45억 달러가량 적자를 기록했던 경상수지는 내년 220억 달러 내외의 흑자를 기록할 것이라고 한은은 진단했다. 수출이 감소함에도 불구하고 국내수요 위축으로 수입은 더 크게 감소하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유가하락도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게 한은의 판단이다.
투자 실종, 고용 '파국'
내수와 수출이 모두 급감함에 따라 기업 등 주요 투자주체의 설비투자증가율은 -3.8%에 그쳐 2001년(-9.0%) 이후 최악의 한 해를 보일 것으로 한은은 예상했다. 설비투자증가율이 마이너스를 기록한 것은 통계가 집계된 후 세 번째다. 내년과 2001년 이전에는 외환위기 여파가 미쳤던 지난 1998년 -42.3%를 기록한 바 있다.
외환위기 당시와 IT버블 붕괴 당시는 기업들의 과잉설비 투자도 문제의 한 요인이었다. 하지만 이 시기를 지나며 기업의 투자는 과거보다 보수화됐다. 내년 설비투자 감소는 과잉투자 문제가 걷힌 상태에서 경기 하강효과가 절대적 요인이다.
고용시장 분위기는 '최악'이라는 말이 끊이지 않는 올해보다 더 암울할 것으로 보인다. 한은은 내년 취업자수 증가규모가 4만 명 내외에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 올해보다 10만여 명이나 줄어든 수치며 마이너스를 기록한 지난 2003년 이후 가장 나쁜 수준이다. 내년 상반기의 경우 올해보다 4만 명의 실업자가 더 늘어나며 하반기 들어서야 11만 명이 새 일자리를 찾을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일자리가 급격하게 줄어드는 까닭은 결국 경기 침체 여파로 기업들의 적극적인 구조조정이 행해지기 때문이다. 수요 자체가 없어 설비투자도 마이너스를 보이는 마당에 자본재보다 폐기가 쉬운 고용부문 구조조정에 기업이 돌입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그나마 올해보다 유일하게 낙관적인 전망치는 물가였다. 한은이 전망한 내년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3.0% 내외로 금년(4.7%)보다 큰 폭으로 떨어졌다. 올해 상반기 원자재값이 워낙 큰 폭으로 올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가계의 피부에는 크게 와닿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한은 전망에 따르면 석유류를 제외한 공업제품가격과 서비스요금은 상대적으로 높은 오름세를 지속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한은은 근원인플레이션율은 소비자물가 상승률보다 높은 3.5% 내외를 기록할 것으로 내다봤다.
"더 나빠질 수 있어"…이번 발표는 '베이스 시나리오'
한은은 이번 경제전망 발표가 확정된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김재천 한은 조사국장은 "변수가 워낙 많아 전망이 매우 어려운 상태"라며 "오늘 발표한 것은 세계 경제가 1.9% 성장한다는 전제를 바탕으로 한 '베이스 시나리오'이기 때문에 전제가 변한다면 결과도 다시 바뀐다"고 말했다.
다시 말하면 세계 경제성장률이 당초 예상보다 더 나빠진다면 국내 경제성장률도 더 비관적으로 조정할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다. 한은과 달리 세계은행(World Bank)는 내년 세계 경제성장률이 1%에 못 미칠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다.
한은은 다만 비관적인 전망이 팽배해지는 것은 극도로 꺼리는 모습을 보였다. 김 조사국장은 "비관적으로 본다면 더 조정이 가능하지만 '몇 퍼센트다'라고 숫자로 말씀드리기는 어렵다. 세계가 마이너스로 간다면 우리도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말씀만 드린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발표에 앞서 전날 한은 금통위는 기준금리를 한꺼번에 1%포인트 끌어내리며 3%로 결정했다. 경제전망 조사가 금통위 개최 이전에 마무리됐음을 가정할 때 한은이 이처럼 큰 폭의 기준금리 인하를 결정한 이유는 올해 하반기와 내년 상반기가 최악의 모습을 보일 것으로 예측한 결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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