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 주고 약 준다'는 말이 딱 맞을 것 같다.
정세균 민주당 대표가 갹출하자고 했다. 국회의원들의 세비 10%를 반납해 서민과 중산층 지원에 보태자고 했다. 국회의원 세비 총액이 279억 2100만원이니까 10%를 반납하면 27억 9210만원이 된다. 서민과 중산층 지원에 보태봤자 티도 안 날 금액이다.
100만개를 만들 수 있다고 했다. 정부가 감세하려는 20조 원을 투입하면 연봉 2000만 원짜리 일자리 100만개를 창출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정부의 감세 기조를 제대로 꺾지 못했다. 정부의 감세 기조를 효과적으로 꺾었다면 세비 반납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효과를 끌어낼 수 있었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 종부세 과세기준을 지키지도 못했고 그렇다고 세율을 지킨 것도 아니다.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세비 10%를 반납하자는 건 쇼다. 정부의 감세 기조를 꺾지 못한 건 직무유기다. 종합하면, 제 일은 하지 않고 엉뚱한 데서 생색내려는 행위다. 염장 지른 다음에 파스 붙여주는 행위다.
이쯤 해 두자. 말해봤자 입만 아플 것 같다.
정세균 대표가 자평했다. 한나라당과의 합의를 두고 "점수로 매기면 79점 정도"라고 했다. 자신 또한 합의 내용에 만족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혹평할 건 아니라고 했다. 그러면서 덧붙였다. "선명하게 싸우다가 장렬하게 전사하는 것은 운동에서 하는 일로, 정치에선 성과가 1번"이라고 했다.
사고 구조가 다르다. 79점이란 채점 결과를 도출한 평가기준이 해괴할뿐더러 정치와 운동을 이분법으로 가르는 사고법 또한 기묘하다. 일반적인 사고 구조로는 도통 헤아릴 수 없는 발상과 논리다.
이 점만 짚자. 정세균 대표가 신주단지 모시듯 하는 '성과'에는 당장 손에 쥐는 떡만 있는 게 아니라는 점을 확인하자.
노무현 정부 시절 얘기다. 열린우리당이 사학법을 개정했을 때의 일이다. 박근혜 의원이 한나라당 대표로 있을 때의 상황이다.
밀어붙였다. 사학법을 재개정해야 한다며 한나라당이 장외로 뛰쳐나갔다. 엄동설한에 두 달 넘게 장외를 돌면서 집회를 열었고 사람을 불러모았다. '성과'는 없었다. 두 달이 넘는 장외투쟁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은 사학법 재개정을 관철시키지 못했고 새로 원내대표가 된 이재오 당시 의원은 '철군'을 결정했다.
정세균 대표의 사고 구조에 따르면 박근혜 당시 대표와 한나라당은 어리석은 일을 저질렀다. 정치를 하지 않고 운동을 했다. 선명하게 싸우다가 장렬하게 전사했다. 동상에 걸리기 일보직전에 빈손을 호호 불며 국회에 복귀했다.
하지만 안다. 모두가 안다. 한나라당의 장외투쟁이 결코 빈수레가 아니었음을 민주당도 알고 정세균 대표도 안다.
각을 세웠고 세력을 결집했다. 사학법을 고리로 노무현 정부와의 전선을 구축했고 그 전선에 기독교계 등이 동참하도록 유도했다. 이 때 뿌린 씨앗이 나중에 얼마나 큰 정치적 성과를 거뒀는지는 굳이 재론할 필요가 없다. 이 때 그러모은 세력은 뉴라이트의 기반이 됐고 한나라당 정권 탈환의 자양분이 됐다.
오해할지 모르겠다. 이런 '사례연구'를 정책은 팽개치고 정치에 골몰하라는 주장으로 받아들일지 모르겠다. 그게 아니다. 싸우고 싸워도 안 돼서 '철군'을 하는 일이 있더라도 일관성은 유지하라는 말이다. 모든 상임위 활동을 보이콧 하겠다고 기세를 올리다가 하루도 안 돼 아무 이유 없이 고개 숙이는 망측한 모습은 연출하지 말란 말이다.
무능하다는 말은 하지 않으련다. 그렇게 평하는 것 자체가 호사스럽다. 무능은 의지를 전제 한 개념이다. 의지는 있으나 전략이 서툴러, 능력이 모자라 성취해내지 못할 때 쓰는 말이다.
정세균 대표(나아가 민주당 지도부)는 무능한 사람이 아니다. 그는 능력이 없는 게 아니라 의지가 없는 사람이다. 싸울 의지, 선명하게 싸울 의지가 없는 사람이다.
더 간단하게 말하면 다른 사람이다. 이전 야당 지도부와는, 그나마 민주당에 대한 일말의 기대를 풀지 않고 있는 국민과는 사고구조가 완연히 다른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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