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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6 남성, 비열하거나 비굴하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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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6 남성, 비열하거나 비굴하거나

[이슈 인 시네마] 불륜치정극 <나의 친구, 그의 아내> 리뷰

<나의 친구, 그의 아내>에서 주요 축을 이루는 세 인물은 노동자 부부와 지식인이라는 명확한 계급성을 드러낸다. 게다가 이들의 상호의존적이면서도 계급적대적인 관계가 지나치리만치 섬세한 디테일을 통해 선명하게 그려진다. 어떻게든 계급성을 지우고 탈정치적인 척을 하기 위해 지나치게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근래 대다수의 한국영화들과 정반대의 모습이다.

서울 명문대의 운동권 출신으로 현재 잘 나가는 외환딜러인 예준은 그 누구보다 자본주의의 적자생존과 경쟁의 법칙을 몸으로 완벽하게 체득했다. 한 마디로 '변절한 386'의 전형이라 할 만하다. 직장동료 누구와도 원만하게 지내지 못하는 그는 재문-지숙 부부를 후원하고 그들 아이의 이름으로 '민혁'(민중혁명) 혹은 '예니'(칼 맑스의 아내)를 제시할 만큼 가깝게 지낸다. 그에게는 재문 부부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마지막 남은 양심 한 조각을 달래는 방편이다. 한편 재문(박희순)은 공항 레스토랑의 요리사로 일하고 지숙(홍소희)은 동네에서 작은 미용실을 운영한다. 지문은 군복무 시절 '나이도 같은데 너나 나는 평등하다'던 예준의 첫 말을 잊지 못해 그와 절친한 친구가 되었다. 지숙 역시 물심양면으로 자신의 가정을 보살펴주고 여러 가지 편의를 제공해주는 예준이 고맙다. 이들의 관계는 영화의 첫머리, 재문과 지숙의 결혼식 장면에서부터 제시된다. 신랑 들러리였던 예준은 신랑과 거의 동등한 위치에 서 있고, 카메라는 신랑 신부와 신랑 들러리였던 예준의 모습까지 함께 한 화면에 꽉 차게 담는다. 나중에 지숙이 재문에게 "나보다도 예준 씨와 더 꼭 붙어있더라"라고 투정부릴 정도다.

그러나 예준과 이들 부부의 관계는 동등한 친구의 관계가 아니다. 재문은 부인과 사랑을 나누던 순간에도 예준의 전화를 받자마자 그가 있다는 포장마차로 나간다. 함께 술을 마시다가도 예준의 차를 빼달라고 전화가 오면 차 키를 들고 나가는 건 재문이다. 그리고 이들 부부의 아들은 예준이 지어준 이름대로 '민혁'이란 이름을 갖게 된다. 재문의 고백에 의하면 그는 예준을 무려 '존경'하는데, 이는 군대에서 처음 만나 말을 트고 친구가 되었을 때 예준이 재문에게 [철학에세이]를 줬기 때문이다. [철학에세이]는 90년대 초중반까지도 운동권 입문 학습서로 신입생들에게 널리 읽혔던 책이다. 그렇기에 영화에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난 후 이어지는 일련의 사건들, 그러니까 재문과 지숙의 관계가 깨지고 지숙을 둘러싼 두 남자의 삼각관계가 되는 것은 단순히 여자 하나를 둘러싼 치정게임이라기보다는 돈과 권력이 개입된 계급적대, 나아가 계급 전쟁에 가깝다. 그런데 이 영화가 흥미로운 것은, 이런 구도에서 보통은 철저하게 '대상'으로만 위치지어지는 여자가 오히려 관계의 주도권을 갖게 된다는 점이다.


▲ 나의 친구, 그의 아내

영화의 초반, 지숙은 재문의 아내로 예준의 권력범위 안에 존재하며 그에게 간접적으로 종속돼 있지만 예준의 도움으로 미국 유학을 다녀와 고급 헤어샵을 차리며 '미용사'에서 '헤어 스타일리스트'로 계급 상승을 하게 된다. 이후 그녀는 예준과 관계를 맺으면서 일견 예준에게 직접적으로 종속되는 듯 보이고, 이들의 정사씬 역시 예준의 폭력적인 권력의 우위를 반영하는 듯 보인다. 그러나 한순간에 관계가 바뀌는 것은 지숙이 예준의 비밀을 알게 되면서다.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났을 때 재문이 자신의 경제적 후원자를 잃게 될 위험을 두려워 해 스스로 예준에게 종속되는 길을 선택했던 것과 달리, 지숙은 제힘으로 재문을 찾아내고 예준을 미용실로 불러내 모종의 복수를 가함으로써 그에게 대항한다. 계급과 젠더가 충돌했을 때 일어날 수 있는 권력의 복잡다단한 양상이 영화의 후반부에 폭발적으로 드러난다. 남자들은 비열하거나 비굴하지만 그녀는 그렇지 않다. 그렇기에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영화의 그 모든 사건들을 겪고 난 뒤 최후의 승자는 재문도, 예준도 아닌 바로 지숙이다. 그녀가 모든 관계의 주도권자다. 게다가 그녀는 새로운 아이를 임신한 상태다.

<나의 친구, 그의 아내>는 피로한 일상을 잠시 잊고 생활에 활력을 줄 만한 종류의, 마음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영화는 결코 아니다. 영화가 묘사하고 있는 인물들 역시 나이는 30대 초중반으로 보이지만, 지금은 40대가 된 386들이 아직 30대 초중반이던 시절의 특징들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이들이 갖는 상징성은 물론 세세한 디테일들까지 그렇다. 만약 영화가 살짝 시대착오적으로 느껴지거나 낯선 친숙함이 강하게 드러난다면 바로 이런 부분들 때문일 것이다. 게다가 11억 가량의 저예산으로 만들어진 만큼 다른 일반적인 상업영화들의 '고운 때깔'을 드러내지도 않는다. 감독의 두 번째 연출작인 만큼 때때로 편집이 덜컹거리기도 한다. 그러나 이 영화는 386 출신의 감독이 가장 처절하게 써내려간 386들에 대한 비판이란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자본주의가 심화되고 그 안에서 길을 잃으면서 타락한, 어린 생명 하나를 제대로 지켜내지 못했던 자신 세대에 대한 통렬한 비난이다. 2006년에 만들어진 이 영화가 이제야 겨우 (그나마 소규모로) 개봉할 수 있었던 것도, 그럼에도 올해 개봉한 영화 중에서 가장 중요한 영화 중 한 편인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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