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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구조조정 위기 속 비정규직 껴안은 빛나는 연대"

KB국민은행노조, '무기 계약직 5000명 조합원으로'

잔업·특근 중단, 감산 등 외환 위기 때의 구조 조정 공포가 온 사회를 휩쓸고 있는 가운데 금융산업노동조합 KB국민은행지부가 비정규직 5000명을 조합원으로 받아들이기로 결정해 주목을 받고 있다.

이번 결정은 금융 산업에서 가장 큰 기업이 전체 조합원 찬반 투표를 통해 이뤄진 것. 정규직 가운데 무려 88%가 비정규직을 조합원으로 받아들이는 것에 찬성했다. 무기 계약직 전환으로 고용을 보장받은 사람은 이번 노조 가입을 통해 차별 해소의 길마저 얻은 셈이다. 국민은행은 근속 3년 이상이 되면 자동으로 무기 계약직으로 전환하기로 노사가 합의했기 때문에 현재 기간제 비정규직 3000명의 노조 가입도 단계적으로 가능해진다.

전문가는 "산업별 노동조합의 경험 속에 오랜 시간 비정규직 문제의 단계적 해결을 고민해 온 연대의 결실"이라고 평가했다. 또 다른 전문가는 "국민은행노조의 결정은 10년 전처럼 고용 조정으로 경제 위기를 넘기는 것을 노조가 더 이상 받아들일 수 없다는 단호한 시그널"이라고 분석했다.

전 조합원 찬반투표…88%가 '비정규직도 조합원으로!'

국민은행지부는 1일 지난 11월 27일 전체 조합원 1만4569명을 대상으로 찬반 투표를 벌인 결과, 88.8%의 투표율에 87.56%의 찬성률(1만1340명)을 보였다고 밝혔다. 반대는 1508명으로 11.7%에 불과했다.

새롭게 노조 가입 자격을 얻게 되는 무기 계약직은 모두 5006명이다. 유강현 국민은행지부장은 "다음 주 중으로 전국 1339개 분회에서 노조 가입 원서를 접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국민은행은 지난 2005년 6월말 기준으로 정규직 대비 비정규직 비율이 45.66%에 달해 외환 위기 이후 가장 큰 폭으로 비정규직이 늘어난 대표적인 은행이다. 다른 은행과 비교해서도 비정규직 규모가 가장 큰 사업장이다. 지난 2006년 국민은행의 비정규직 규모는 1만1010명으로 두 번째로 많은 우리은행(4455명)과 비교해서도 2배 수준이었다.

그런 국민은행이 가장 먼저 비정규직을 조합원으로 받아들이기로 스스로 결정한 것이다. 이미 우리은행이 지난 2006년 3000여 명의 비정규직을 별도의 직군을 만드는 '직군 분리제' 방식으로 정규직 전환을 시킨 뒤 조합원으로 받아들인 사례가 있지만, 이는 먼저 정규직 전환 후에 노조에 가입한 것이라는 점에서 국민은행지부와는 차이가 있다.

▲ 금융산업노동조합 KB국민은행지부가 비정규직 5000명을 조합원으로 받아들이기로 결정해 주목을 받고 있다. ⓒ뉴시스

조합원으로 우선 끌어안고 임단협에서 '하위 직군화' 요구

무기 계약직이 조합원 자격을 얻는 것은 강력한 비정규직 보호 장치가 될 수 있다. 일단 조합원이 되면, 노동조합이 이들의 고용을 정규직의 고용과 똑같이 고민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 노동조합은 정규직과 비정규직 차별 해소를 놓고도 힘을 쏟을 수밖에 없다.

유강현 지부장이 "최근 불어닥친 경제 위기의 파장이 얼마나 깊고 클지 모르는 암울한 환경 속에서도 KB국민은행지부 조합원들이 향후 불어닥칠 구조 조정 가능성에 맞서 '노동자의 연대와 나눔'을 실천했다는 데 의의가 크다"고 자평한 것은 이런 사정 때문이다.

유 지부장은 이어서 "이미 국민은행은 노사 합의를 통해 지난 2004년부터 매년 정규직 임금 인상률의 2배 수준을 비정규직에 적용하고 대부분의 복지 항목을 정규직과 동의하게 적용하는 등 차별 해소를 위해 노력해 왔다"며 이번 조치가 이런 노력을 더욱더 가속화하리라고 전망했다.

당장 국민은행지부는 올해 임단협을 통해 무기 계약직을 '하위 직군화'하는 방식으로 정규직 전환해 줄 것을 사측에 요구할 계획이다. 현행 4직급 체계에 새로운 직군을 신설해 기존 정규직과 동일한 인사보수 체계를 적용하자는 제안이다.

김성희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은 "하위 직군제는 승진에서 까다로운 절차가 있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임금 및 승진 체계가 완전히 분리되는 분리 직군제나 차별 해소에 별다른 대책 없이 고용 안정에만 머물 수도 있는 무기 계약직화보다는 낫다"고 평가했다.

"하루 아침에 된 것 아니다"…4년간의 노력의 결실

대규모 사업장 정규직 조합원의 '비정규직 껴안기'는 하루 아침에 가능했던 일은 아니었다. 유강현 지부장은 이번 투표 결과를 가능케 한 원동력을 묻는 질문에 "4년 전부터 회사 및 조합원을 상대로 꾸준히 준비해 왔다"고 말했다.

지난 2007년 비정규직법 시행에 앞서 자체 노사 합의를 통해 3년 이상 근무한 기간제 5000명의 무기 계약직 전환을 받아내고, 3년 미만 근무자의 경우도 단계적으로 무기 계약직 전환을 하기로 한 것도 그런 노력의 일환이었다.

최근에는 조합원 총투표를 준비하며 홍보 및 교육 사업의 일환으로 비정규직과 정규직 총 1만 명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실시하기도 했다. 그 결과 "상시 업무는 정규직으로 채용해야 한다"는 데 비정규직은 72%, 정규직은 71.4%가 찬성 의사를 피력했다.

파트 타임이라도 원하는 사람 있다고?…정규직 못해서 비정규직 됐다"

국민은행지부가 지난 4월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는 현재 정부가 진행하고 있는 비정규직법 개정 방향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정부는 '비정규직 사용을 줄여야 한다'는 노동계 요구에 "파트 타임으로라도 일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많다"는 주장을 펴며 일자리 확대 효과를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있다.

하지만 국민은행지부의 설문 조사 결과, 비정규직으로 취업한 이유를 묻는 질문에 응답자 4189명 가운데 무려 47.9%가 "정규직 일자리가 없어서"라고 대답했다. "금융 업무를 배우기 위해서"라는 대답이 20.7%, "비정규직이라도 노동 조건이 좋아서"라는 대답이 19.5%였다.

"개인 사정 및 육아와 가사 등 가족 사정 때문에 비정규직으로 취직했다"는 대답은 고작 11.8%에 불과했다. 이는 비정규직 일자리를 원해서 하는 사람의 비율은 매우 적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결국 비정규직의 확산이 '싼 값'에 사람을 사용하려는 기업의 요구가 가장 크게 작용하고 있음을 재확인시켜 준 셈이다.

"'비정규직도 구조 조정은 안 된다'는 정규직의 의지 표현"

한국노총은 산하 사업장의 이 같은 결정에 고무된 표정이다. 김동만 한국노총 부위원장은 "경제 위기 시기에 850만 비정규직에게는 희망의 메시지가 되고 비정규직법 기간 연장을 시도하는 정부에는 경종을 울릴 것이라 기대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은수미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비정규직을 자기 조합원으로 받는 노조는 중소기업의 경우 종종 있지만 대규모 사업장은 드물다"며 "경제 위기에도 불구하고 정규직 스스로 '비정규직을 먼저 치면 그 다음은 우리'라는 위기감 아래 구조 조정을 비정규직과 함께 막아보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대기업 노동자들이 비정규직을 받아들임으로써 '누구든 구조 조정은 절대 안 된다'는 강한 의사 표현을 한 셈이라는 것. 은 연구위원은 "노조가 고용 조정에 동의해줬던 외환 위기 때와 달리 고용 외에 임금 등을 먼저 조정하자는 시그널로도 해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결정의 원동력에 대해 은 연구위원은 산별노조의 힘을 얘기했다. 그는 "보건의료노조와 금융노조처럼 지속적으로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노력하고 함께 연대해 왔던 경험이 중요한 결정을 가능하게 했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경제 위기가 노동자를 보수적으로 만드는 시기라는 점에서, 그 파급 효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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