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경제 위기 상황에서 노동계가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현장에서부터 올라오는 체감 온도가 심각한 수준이기 때문이다.
정갑득 금속노조 위원장은 27일 산하 100여 개 사업장에 대한 실태 조사 결과를 토대로 "지금 대한민국 경제는 수직하강 중"이라고 말했다. 정 위원장은 "극복될 것이라고 청와대와 언론이 자꾸 얘기하는데 현장을 전혀 모르는 말"이라며 "외환위기 때처럼 노동자 몇 명 자른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라고 단언했다.
민주노총이 이날 나름의 연구를 토대로 "1% 소수 상류계층에게만 혜택이 집중되는 감세액을 공공 일자리 창출, 비정규직 정규직화, 사회안전망 강화에 사용해 내수 경제 활성화에 나서야 한다"고 경제 위기 대안을 제시한 까닭이기도 하다.
민주노총이 제시한 내수 경제 활성화를 위한 내년 예산은 총 19조 원이다. 이용식 사무총장은 "1% '강부자' 감세 정책으로 인한 세금 축소 예상액 17조5000억 원과 사회간접자본 투자 증액분 4조6000억 원을 내수 활성화 정책으로 돌리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말했다.
"현장 상황? 청와대도 잘 모르는 것 같다"
▲ 최근 구조조정 등 경제위기 대비 태스크포스(TF)팀을 만들어 적극적 대안 모색에 나서고 있는 금속노조는 거의 모든 사업장에서 휴업 등 생산물량 감소 계획을 세우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프레시안 |
금속노조의 자체 조사 결과에 따르면, 잔업 특근이 없어진 곳은 한 두 곳이 아니다. 특히 완성차에 납품하는 업체들의 경우 심각하다. GM대우에 자동차 오디오를 납품하는 대우IS는 잔업 특근이 없어졌다. 쌍용차 납품업체인 카로스넷도 생산 물량을 50% 축소했다. 한국로버트보쉬기전은 주야간 3교대로 돌아가던 공장을 2교대로 바꿨다
자동차 3차 하청 업체인 DSC도 인원 감축을 목적으로 일부 인원에 대한 대기 발령을 추진 중이다. 특히 사무직의 경우 이미 구조조정이 시작된 곳이 많다는 것이 금속노조 설명이다.
이미 상당수 기업이 부분 휴업을 시행하고 있다. 캐리어에어컨의 경우 물량 감소로 현재 5분의 3 정도가 휴업 중인데 내년 1월까지는 이 상태가 지속될 예정이다. GM대우가 지난 22일부터 내년 1월 3일까지 휴업을 함에 따라 KM&I 등 납품업체도 덩달아 휴업을 하고 있다. 정갑득 위원장은 "마산, 창원 지역을 포괄하는 경남지부의 경우 8개 사업장이 모두 휴업을 예고하고 있다"고 말했다.
건설업도 심각한 수준이다. 정부가 적극적인 건설 경기 부양책을 내놓고는 있지만 현장 노동자들은 "'올해 12월부터 내년 2월까지는 우리는 다 죽었다'는 분위기"라는 것이 남궁현 건설연맹 위원장의 말이다.
특히 건설업의 경우 체불 임금 문제가 도드라지게 늘어나고 있다. 남궁현 위원장은 "공사대금이 제 때 안 나오기 때문"이라며 "조합원이 아닌 전 직원에게 일괄 사표를 받는 회사도 있다"고 말했다.
"특권층 위한 감세 정책만 철회하면 그 돈으로 다 할 수 있다"
민주노총도 적극적인 대책 제안에 나선 것은 이런 현장의 위기감 때문이다. 비정규직의 단계적 정규직 전환, 실업급여 등 사회안전망 확충을 통해 내수를 살려야 한다는 것은 새삼스러운 요구는 아니다. 그러나 민주노총은 이날 구체적인 재정 대책까지 내놓으며 정부를 압박했다. 그 전제 조건은 "특권층 위주의 감세 정책의 즉각적인 중단"이다.
민주노총은 우선 "4년 간 18조 원을 들여 200만 명에 달하는 중소 영세 사업장의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시키는 것을 정부가 도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렇게 되면 비정규직 비율이 현재 52%에서 40% 수준으로 떨어지게 된다. 민주노총은 "OECD 평균 27.1%에 비하면 40%도 많지만, 200만 명의 고용이 안정되고 임금이 늘어나면 내수 증대 효과가 발생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민주노총은 "4년간 25조 원, 1년에 6조3000억 원을 들여 요양, 육아, 간병, 장애인 활동 보조 등 공공서비스 일자리를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노총은 "이는 저출산 고령화 사회에 대한 대비 효과도 있다"고 강조했다.
민주노총은 마지막으로 최저생계비 인상을 통한 기초생활 보장과 실업급여 지급기간을 2배로 늘리고 고용유지 지원금을 확대하는 등 사회안전망을 탄탄히 하기 위해 내년 예산 가운데 10조4000억 원을 요구했다. 이용식 사무총장은 "사회안전망을 확대하면 청년실업문제 해결 효과도 있다"고 덧붙였다.
한국노총 "10년 전처럼 모든 고통 서민에게 전가하면 투쟁 뿐"
한국노총도 기본적으로 이 같은 해법에 동감하는 분위기다. 장석춘 한국노총 위원장은 이날 서울 여의도 한국노총 회의실에서 기자 회견을 갖고 "정부는 재정지출 확대를 통한 실업대책과 일자리 창출을 최우선 정책 목표로 하는 경제 위기 극복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요구했다.
장석춘 위원장은 "경제 위기를 빙자해서 또 다시 외환위기 때와 같이 모든 고통을 서민과 노동자들에게만 떠넘겨서는 안 된다"며 "정부가 친기업적인 인식을 바꾸지 않으면 투쟁 외에는 선택할 카드가 없다"고 경고했다.
이 같은 내용을 가지고 한국노총은 오는 29일 전국노동자대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한국노총은 "국민들이 IMF 대의 악몽을 떠올리고 있는 지금, 무리한 인원감축과 비정규직 전환을 추구해 고용 불안과 사회 양극화를 심화시켰던 지난날의 시행착오를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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