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노 인사들의 말이 똑같다. '측근 비리' 또는 '게이트'란 말을 함부로 쓰지 말라고 일갈했다. 검찰을 향해, 그리고 일부 언론을 향해 그렇게 힐난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김경수 비서관이 말했다. "게이트라면 최소한 권력의 개입이나 직권남용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것이 없지 않으냐. 정치활동과 관련 없는 기업인을 측근이라고 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주장했다.
안희정 민주당 최고위원이 말했다. "부산상고 출신들이 사회적으로 문제를 일으켰을 때 노 전 대통령 측근이라고 끼워 맞춰도 되느냐"고 반문했다.
천호선 전 청와대 홍보수석이 말했다. "선거운동을 도운 것 이상의 특별한 관계가 없는 사람에 대해 '측근' 운운하는 보도는 비리 사건에 마치 노 전 대통령이 연루된 것처럼 비치게 만들 우려가 있다"고 주장했다.
동의한다. 확정된 건 거의 없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친형 노건평 씨 이름이 나오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산상고 동창 정화삼 씨 이름이 나오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후원자였던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 이름이 나오지만 확정된 건 거의 없다. 정화삼 씨 형제가 홍기옥 세종캐피탈 사장으로부터 청탁과 함께 30억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된 것 외에는 사법부의 판단이 내려진 게 없다. 나머지는 모두가 의혹이고 정황이다.
그런 점에서 동의한다. 이번 사건을 '측근 비리' '게이트'로 몰아가려는 시도를 경계한다. 태산이 울릴 것처럼 호들갑을 떨다가 쥐 한 마리도 잡지 못한 과거의 '게이트 불발사건들'을 상기하면서 경계한다. 지금은 '측근비리의혹사건' 정도로만 이름 붙일 수 있다고 판단한다.
하지만 동의하지 못한다. 등장인물들이 '측근'이 아니니까 '측근 비리'가 아니고, 권력형 비리가 아니니까 '게이트'가 아니라는 친노 인사들의 주장에는 동의하지 못한다. 그런 주장은 옹색하다. 말장난에 불과하다.
이렇게 단언하는 근거가 있다. 다른 사람이 아니고 바로 안희정 최고위원이 던져준 근거다.
그가 그랬다. 이명박 대통령 처사촌 김옥희 씨와 한나라당 고문 유한열 씨 사건이 터졌을 때 "원칙과 상식, 법과 제도를 뛰어넘어 특수한 권력이 문제를 풀 수 있다고 믿는 순간 부패는 시작된다"고 했다.
어떨까? 안희정 최고위원의 이 지당한 말씀 앞에 '측근비리의혹사건'의 등장인물들을 도열시키면 어떻게 될까?
중요하지 않다. 그들이 기업인인지 정치인인지, 법적 권한이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분명하다. 직책, 본업과는 상관없이 그들이 '측근'으로, '특수한 권력'으로 간주된 점은 분명하다. 수없이 회자되지 않았는가. 그들이 국민 앞에 등장할 때마다 '측근' 또는 대통령과 가까운 사람으로 운위되고 보도되지 않았는가. 노무현 대통령이, 또는 친노 인사들이 그들을 '측근'으로 인정했는지 여부와는 상관없이 사회는 그들을 '특수한 권력'으로 믿지 않았는가. 바로 이런 믿음이 정화삼 씨에게 30억원을 갔다 바치는 장면을 연출했다고 볼 여지가 있는 것 아니겠는가.
지금은 목소리를 높일 때가 아니다. 친노 인사들이 나서서 방벽을 칠 때가 아니다. 수사결과를 지켜보면서 조용히 돌아봐야 할 때다.
박연차 회장의 미공개 정보 이용 주식투자 의혹, 심지어 노건평 씨의 금품수수 의혹이 어떻게 결말 날지와는 무관하게 돌아봐야 한다. '게이트' 여부와는 상관없이 돌아봐야 한다. '측근' 행세를 한 정화삼 씨 형제가 30억원을 수수한 사실 하나만으로도 돌아볼 이유는 충분하다.
민정비서관을 시켜 대통령 친인척과 측근을 단속하게 했는데도 (최소한으로 봐도) 호가호위 행태가 버젓이 빚어진 이유를 찬찬히 살펴야 한다. "특수한 권력이 문제를 풀 수 있다고 믿는" 것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데 소홀한 점은 없었는지부터 살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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