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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원과 법원이 정권 눈치를 보면…"

[인터뷰]12년 만에 승소한 공익제보자 현준희 씨

한국은 '입 바른 소리'를 하는 사람들을 환영하는 나라가 아니다. 권력이 있는 자들을 대상으로 할 때는 더욱 그렇다. 최근 '미네르바 신드롬'도 좋은 사례다. '입 바른 소리'를 하는 미네르바라는 익명의 인터넷 경제평론가를 정부가 '악성 루머 유포자'로 몰았고, 그는 절필을 선언했다. "이제 마음 속에서 한국을 지운다"는 게 미네르바의 마지막 말이었다.

많은 이들이 '미네르바 사태'를 보고 씁쓸함을 느꼈을 테지만, 그는 유독 더하다. 12년이 지나도 크게 바뀌지 않은 현실을 재확인하는 것 같아서다.

▲ 그의 가족이 운영하는 '서울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현준희 씨. 파면당한 뒤 그는 학습지 판매, 휴대전화 영업 등 어렵게 생계를 이어갈 수 밖에 없었다. ⓒ프레시안
19일 자신이 운영하는 서울 종로구 가회동 한옥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현준희 씨는 12년을 끌어오던 재판에서 이긴 소회에 대해 "하나도 기쁘지 않다"고 밝혔다. 아직 싸움이 끝난 것도 아니고, 국가 권력은 '입 바른 소리'를 하는 자들을 억압하는 현실은 변한 게 없다.

감사원 주사였던 현 씨는 1996년 '양심선언'(공익제보)을 했다. "효산그룹 콘도사업 특혜 의혹에 대한 감사 과정에서 상관인 감사원 국장이 뚜렷한 이유 없이 감사를 중단시켰고 배후에 청와대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게 그가 폭로한 사실이었다. 김현철 씨 등 김영삼(YS) 정권 핵심이 연루된 비리 의혹은 총선을 앞둔 당시 정치 상황과 맞물려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다. 이후 국회 국정감사와 검찰 수사 과정을 통해 현 씨가 제기한 의혹의 상당 부분이 확인됐지만, 그에게 돌아온 것은 보상이 아니라 처벌이었다.

'효산콘도 특혜 의혹 사건'은?

현 씨는 1995년 효산그룹이 경기 남양주시에 콘도를 건립하기 위해 김영삼 정권 실세들과 결탁해 주무기관에 압력을 행사했다는 제보를 받았다. 그는 효산그룹의 콘도 사업허가가 법규를 위반한 것이고, 건설교통부와 경기도·남양주시 공무원들이 금품을 수수한 혐의가 있다는 사실을 감사를 통해 확인했다. 권력 내부의 커다란 비리사건으로 번질 조짐이 있는 이 사실을 그는 상부에 보고했다. 하지만 상부는 갑자기 감사를 중단시키고 그를 다른 부서로 이동시켰다. 감사 도중에 감사를 중단시키고 담당자를 인사철도 아닌 시기에 갑자기 부서 이동을 시킨 것은 일상적인 업무처리라고 보기 힘들다.

현 씨는 당시 '수상한 정황'이 이것만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자신이 보고한 내용을 자신의 상관이 정식 문서가 아니라 A4 용지에 타이핑한 비공식 문서로 상부에 보고했다고 한다. 정식 문건으로 보고할 경우 기록에 남을 것이 우려돼서 이런 편법을 썼다고 그는 주장했다.

96년 3월 '장학로 사건'이 터지면서 불똥이 감사원까지 튈 조짐이 보이자 그의 상관은 그에게 '관련 서류를 찢으라'는 명령까지 하게 된다. 감사원 상부의 압력에 못 이겨 결국 현 씨는 96년 4월 공익제보를 하게 된다.

'장학로 사건'은 장학로 청와대 부속실장이 효산그룹에서 떡값으로 6000만 원을 받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불거진 권력형 비리 사건이다. YS의 중학교 동창 김경배 씨가 효산그룹의 고문으로 있으며, YS 차남 김현철 씨의 대리인이던 박태중 씨가 효산콘도 분양권 24억 원 어치를 가지고 있었다는 등의 사실이 드러나면서 의혹은 더욱 증폭됐다. 일부 언론에선 이 사건의 배후로 김현철 씨를 지목하기도 했다.

이후 검찰은 효산그룹이 제일은행으로부터 1150억 원을 불법대출한 점을 적발해, 이철수 제일은행장과 장장손 효산그룹 회장을 구속하는 선에서 수사를 마무리 했다.

감사원은 직무상 알게된 비밀을 누설했다는 이유로 그를 파면했다. 7급으로 공직을 시작해 19년 만에 5급 승진을 눈앞에 두고 있던 시점이었다. 감사원은 더 나아가 그를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형사 고발해, 그는 두달간 옥고를 치뤘다.

명예훼손소송에서 그는 1심과 2심에서는 쉽게 이겼다. 감사원에서 20년 가까이 근무한 경험이 '쥐와 고양이의 싸움'이라고 비유할 수 있을 정도로 불리한 싸움에서 그를 이길 수 있게 했다. 96년 폭로를 하기 전 그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증거자료를 꼼꼼히 모았다.

하지만 2002년에 대법원(주심 이규홍 대법관)은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 결정을 내렸다. 95년 6월 효산그룹 관련 감사를 중단하는 과정이 정당했다는 감사원 측 주장을 인정한 것이다. 감사원 측은 감사 중단을 결정하기 전 6월 5일 내부 회의를 가졌고, 감사원장이 7일 이를 결제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현 씨는 이 회의가 날조된 것이라고 주장했고, 1,2심은 이를 인정했다. 그는 "6월 5일 회의는 분명 없었고, 설혹 이날 회의가 있다고 해도 6일이 휴일인데 정상적인 결제라인을 거쳤을 경우 하루만인 7일에 감사원장이 이를 결제한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주장했다.

"감사원은 자기 내부의 조직 문제라는 점에서 잘못을 쉽게 인정하기 힘들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법원은 다를 것이라고 믿었다. 진실과 정의를 수호하는 기관이고, 그래서 국민들이 권력을 준 기관이 아니냐. 그런데 대법원에서 결과가 뒤집어졌을 땐 정말 믿을 수가 없었다.

더구나 당시는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들이 주도해 부패방지법이 제정된 직후였다. 부패방지법 중 주요한 내용 중 하나가 공익제보자에 대한 보호다. 2002년 1월 부패방지법이 제정, 공포됐고, 그해 8월 대법원 판결이 있었다."


이 대법원 판결로 그는 6년이라는 세월을 더 '국가권력과 싸움'에 소진해야 했다. 1,2심과 달리 '재판에서 질 수도 있다'는 불안감은 그의 몸과 마음을 극도로 지치게 했다.

감사원, 법원 등 소위 사정기관에서 일하는 사람은 자신의 업무에 있어서는 '성직자'와 같은 마음을 유지해야 한다고 믿었던 그였다. 그래야만 타인의 잘못을 감시하고 처벌하는 정당성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효산콘도 사건 이후 12년간 혼자 힘으로 이들 조직과 싸우면서 그의 믿음은 무너졌다.

감사원은 정권 실세들의 눈치를 보면서 그들의 비리를 은폐하려는 일을 서슴지 않았고, 이 과정은 고스란히 감사원의 비리로 남았다. 그리고 감사원은 자신의 비리를 들춘 개인을 짓밟고 진실을 감추기 위해 거짓말을 앞세웠다. 대법원은 그런 감사원을 편들어줬다. 이제 "권력기관은 외부의 문제제기 없이는 결코 깨끗해질 수 없다"고 그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2002년 대법원 판결 이후 4년 뒤 파기환송심에서 그는 무죄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검찰이 재상고했다. 그 뒤로 2년이 지난 지난 13일 그는 드디어 대법원(재판장 전수안 대법관)에서 무죄 판결이 확정됐다.

하지만 끝이 아니다. 12년전 권력비리를 은폐하고 자신의 파면하는데 앞장섰던 이들은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았다. 세월이 오래 흐른 만큼 다 현직에서 물러났다.

"그나마 참여연대, 민변 등이 도와줘서 변호사비가 들지 않았지만, 이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엄청난 소송비도 모두 개인이 부담해야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를 부당하게 파면했던 이들은 어떤 책임도 지지 않았다. 소송 비용은 모두 감사원이 부담했다. 내게 공식적인 사과도 없었다.

공익제보를 할 경우 조직과 개인이라는 처음부터 불균형한 싸움을 시작할 수 밖에 없다. 조직 논리가 최우선인 한국은 더 그렇다. 솔직히 주변에 공익제보를 한다는 사람이 있다면 말리고 싶은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개인이 감당해야할 희생이 너무 크다."

현 씨는 곧 감사원의 파면 결정을 인정한 법원판결에 대해 재심을 신청할 계획이다. 이번 소송에서 이기면 감사원 복직이 가능해진다. 또 몇년이 걸릴 지 모를 일이다. 하지만 이제는 이길 것이란 확신이 있어 조금은 덜 고될 것이다.

감사원과 명예훼손소송을 벌였고, 지금은 그 싸움은 끝나지 않았지만, 아마 현 씨와 같은 이들이 버티고 있었다면 최근 쌀 직불금 사태, KBS 감사 등 감사원의 명예가 훼손되는 일은 훨씬 줄어들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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