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줄도산 공포감에 전날 새벽 미국 증시 붕괴 여파가 겹치면서, 시장심리는 최악을 향해 치닫는 추세다. 이제 구조조정 외에는 뚜렷한 문제 해결의 단초를 찾기 어려운 상황인 만큼, 앞으로 환율이 어디까지 오를지는 장담하기 어렵다는 게 시장의 평가다.
다시 IMF 시절로…환율 1500원 장중 돌파, 코스피 950선 붕괴
20일 원-달러 환율은 전날보다 50.5원(3.49%) 폭등, 1497.0원으로 마감했다. 장중 한 때는 달러당 1517원까지 올라 지난 1998년 3월 13일(1521원) 이후 10년 8개월 만에 1500원선마저 뚫고 올라가기도 했다.
전날 하락해 7거래일 간의 상승추세에 제동이 걸리는 듯 했지만 이날은 오전부터 폭발적으로 오르기 시작했다. 환율은 자동차 산업의 불투명한 미래와 침체 진입을 확인시켜준 각종 거시지표로 새벽 미국 증시가 무너진 데 따른 우려로 개장과 동시에 1500원을 찍으며 거래를 시작했다.
이후 단기 차익실현 매물로 추정되는 달러 매도물량이 나오며 오전 10시 부근에는 다시 1470원선으로 내려왔지만 이후 차츰 상승폭을 키웠다. 결국 오후 1시 40분을 지나며 환율은 1490원선을 돌파했다.
환시장 부진에 더해 증시 급락세도 이어졌다.
이날 코스피지수는 전날보다 68.13(6.70%) 급락해 948.69를 기록, 1000선은 물론 950선마저 붕괴됐다. 코스피지수가 950선 밑으로 밀려난 것은 종가 기준으로 지난달 24일(938.75) 이후 약 3주 만에 처음이다. 코스닥지수도 8%가 넘는 하락률을 보인 끝에 전날보다 24.35 내린 273.06으로 장을 마감했다.
시장에서는 뚜렷한 주도 세력을 찾기가 어려웠다. 앞으로 방향성을 쉽게 확신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장기 전망이 불확실해지자 투자심리는 단기재료에 크게 의존하는 듯 다시금 테마를 찾는 모습도 보였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 당선자 집권 기대감으로 꾸준한 모습을 보이던 바이오테마주가 다시금 힘을 썼다. 메디포스트는 가격제한폭까지 올랐다.
외국인만이 코스피에서 1000억 원 가까운 순매도로 나섰으며 다른 세력의 순매수(도) 규모는 비교적 작았다. 다만 "앞으로 증시 투자 규모를 줄이겠다"는 입장을 언론을 통해 밝힌 연기금은 연금을 중심으로 약 400억 원 가까운 순매수를 기록했다.
▲환율이 다시 새로운 천장을 찾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제 1600선이 곧바로 뚫릴 가능성도 높다"고 말한다. ⓒ연합 |
"환율 상승기조 내년 상반기까지 이어질 수도"
이날 금융시장 심리를 꽁꽁 얼어붙게 만든 원인은 국내외에서 동시에 추락하는 실물경제 위협 때문이다.
이미 국내에서는 지난해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이던 조선업계에도 줄도산 가능성이 거론되는 가운데 금융부문에서 시작한 신용경색이 해운, 건설, 기계 등은 물론 전후방 효과가 큰 완성차업계로까지 뻗어나가는 조짐이 보이고 있다. 이미 GM대우는 부평 1, 2 공장 가동을 다음 달 중단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자동차업계의 위축 움직임은 미국의 경우 더 심각하다. '자동차의 도시' 디트로이트가 정치적 고향이나 다름없는 미트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는 "미국의 빅3(GM, 포드, 크라이슬러)를 살리기 위해서는 모두 파산시켜야 한다"는 내용의 글을 <뉴욕타임스>에 기고했다.
자동차업계에 대한 우려가 깊어가는 가운데 이미 마이너스 성장가도를 확인시켜주는 경제지표에다 소비위축까지 겹쳐지면서 새벽 미국 다우존스지수는 5년 반 만에 8000선이 무너졌다. 미국발 경기우려가 깊어지면서 일본 니케이225지수는 전날보다 6.9%가 무너져 7703.04로 마감, 지난달 29일 이후 다시 8000선에서 밀려났다.
▲시장의 신뢰가 무너진 마당이라 정부가 내놓은 어떤 유동성 대책, 기업 구제 대책도 별다른 효과를 얻지 못하고 있다. 지난 15일 오후 서울역광장에서 민주노동당과 한국진보연대 회원들이 정부 경제정책 규탄대회를 열고 있다. ⓒ뉴시스 |
소재용 하나대투증권 금융경제팀장은 "1500원선까지 내준 상황이니 정부가 앞으로 개입은 할 가능성이 높다"면서도 "추세 안정은 불가능하다. 지금과 같은 변동성 확대 국면은 적어도 내년 1분기까지 계속될 것으로 보이며 상황에 따라서는 2분기까지도 가능성을 열어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유동성 경색을 완화하기 위해 연일 시장에 대책을 쏟아내고 있지만 이것으로는 추세를 되돌리기 어렵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미 정부의 유동성공급대책이 아무런 효과가 없다는 사실이 속속 입증되는 상황이다.
결국 실물경제의 강도 높은 구조조정이 단행돼야 한다는 평가다. 그래야 신뢰회복의 밑그림을 그리기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신 팀장은 "이제는 물량 퍼붓기(유동성 공급)도 별다른 의미가 없다. 정공법을 쓸 수밖에 없다"며 "옥석 가리기, 곧 기업 구조조정이 제대로 단행돼야 할 시기"라고 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