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서 먹으라는 '살 빼는 약', 과연 효과가 있을까? 효과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시중 병·의원에서 비만 치료를 위해서 처방한 약의 대부분이 마약류였기 때문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청은 이런 연구 결과가 포함된 보고서를 발행해 놓고도, 해당 보고서를 '대외비'로 분류해 수개월간 공개하지 않았다.
<신동아>는 식품의약품안전청이 발행한 400쪽 분량의 '비만 치료제 소비자 행태 조사 및 효율적 사용 방안 연구'라는 '대외비' 보고서를 입수해 최근호(2008년 12월호)에서 공개했다. 이 보고서는 식품의약품안전청이 (사)소비자시민모임에 의뢰해 2007년 7월부터 2008년 5월까지 이뤄진 연구를 기반으로 작성된 것이다.
병의원 '살 빼는 약' 처방전 80% 이상 마약류
이 잡지가 공개한 보고서의 주요 내용을 보면 충격적이다. 비만 치료를 위해 병·의원에서 약을 처방받은 국민 788명의 처방전 2633건을 분석한 결과, 이 중 80.4%인 2116건에 향정신성의약품이 섞여 있었다. 이렇게 향정신성의약품 처방전을 받은 이는 788명 중에서 554명으로 71.2%나 됐다.
이뿐만이 아니다. 향정신성의약품 처방전을 받은 554명 중 여성은 536명(96.8%)으로, 대부분이 가임기인 10대 후반에서 40대 여성이었다. 이 중에는 16~20세의 미성년자도 23명(4.2%)이나 포함돼 있었다. 향정신성의약품의 대부분은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한 처방이 금지돼 있으나 이를 지키지 않은 것이다.
더구나 향정신성의약품 처방전을 받은 554명 중 37%가 한 달(30일) 이상 처방을 받았다. 3개월 이상 처방을 받은 사람도 4.7%나 되었다. 향정신성의약품은 빠르면 4주 정도만 복용해도 중독될 수 있고, 3개월 이상 먹으면 치명적인 부작용(폐동맥고혈압)이 발생할 수 있어서 식품의약품안전청, 대한비만학회 모두 30일 넘는 복용을 피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2~3가지 마약류 섞어서 4개월간 처방
보고서가 공개한 구체적인 처방 내용은 더 충격적이다. <신동아>가 인용한 보고서의 한 부분을 보자.
"다음 처방전들은 1982년생 여성이 2007년 1월부터 5월까지 처방받은 내역으로 처방전 구성상 체중 조절 목적으로 처방된 것들인데 한 제품만 처방하도록 권고되어 있는 향정신성 식욕 억제제가 중복 투약되었을 뿐만 아니라 체중 조절을 목적으로 처방한 경우 보험급여가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 급여 청구가 되어 있는 개선이 필요한 대표적인 예임."
실제로 이 여성을 상대로 한 4개월간의 처방 내용을 살펴보면, 열 차례의 처방 모두 2가지 이상의 향정신성의약품이 포함돼 있다. 14일간은 매번 향정신성의약품이 3가지나 들어 있다. 2가지 이상의 향정신성의약품 중에는 정신 상태에 영향을 주는 대표적인 약물인 항우울제가 꼭 들어 있었다.
시민단체 "식약청이 보고서 내용 삭제, 공개 막아"
식품의약품안전청은 이런 내용이 담긴 보고서를 '대외비'로 분류해 공개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일부 내용의 삭제도 요청했다.
이 보고서를 작성한 소비자시민모임 관계자는 <신동아>와의 인터뷰에서 "보고서 원안에는 세계 주요 국가의 향정신성 식욕 억제제 허가 현황이 들어가 있었는데 식품의약품안전청의 요청으로 삭제했다"며 "이 보고서도 당초 공개용으로, 대국민 홍보용으로 만들어졌는데 식품의약품안전청이 무슨 이유에서인지 대외비로 만들었다"고 증언했다.
실제로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유럽연합(EU)과 일본, 오스트레일리아 등 주요 국가는 향정신성의약품을 '살 빼는 약' 즉 식욕 억제제로 사용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주요 국가 중 향정신성의약품을 '살 빼는 약'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허가한 나라는 한국, 미국, 캐나다뿐이다.
시민단체, 뒤늦게 보고서 내용 공개할 듯
한편, 식약청의 요구로 이 보고서의 공개를 미뤄왔던 소비자시민모임은 18일 오전 이런 내용을 공개할 예정이다. 그러나 뒤늦은 보고서 공개에도 소비자의 권익을 보호하는 시민단체가 식약청의 요구를 수용해 이런 충격적인 내용의 공개를 미뤘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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