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와 기업 사이에 다툼이 있었다. 이 다툼에 금융감독원이 뛰어들었다. 그리고 '비공식적'으로 압박이 들어갔다. 둘 간의 다툼을 크게 만드는 꼴이다.
17일 뒤늦게 논란이 된 외국계 증권사 JP모건과 하나금융지주 사이의 논쟁이 딱 그렇다. 싸움의 당사자가 서로에게 '과했다'며 분을 삭이지 못하는 와중에 금감원이 끼어들었다.
특히 금감원의 이런 태도는 최근 금융위기와 관련해 이명박 정부의 외국 언론, 증권사 등의 시각에 대한 노골적인 불만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다. 또 시장의 다양한 해석과 예측 가운데 한국 경제를 상당히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들에 대해 "악성 루머를 단속하겠다"며 '입막음'을 하고 있는 것과도 연관된다.
하지만 정부의 이런 개입이 바람직한 것인지는 의문이다. 시장의 투명성을 저해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건전성 우려 높다" vs "수치인용 제대로 해라"
지난 3일 JP모건이 낸 하나금융지주 3분기 실적보고서가 사건의 발단이 됐다. 보고서에서 JP모건은 "3분기 하나은행의 중소기업부문 무수익여신(NPL, Non-Performing Loan) 비율이 2분기 3.75%에서 3분기 4.76%로 높아져 자산건전성 훼손 우려가 높다"고 평가했다.
이에 따라 JP모건은 하나금융지주의 목표주가를 종전 4만 원에서 1만8000원으로 대폭 낮춰 잡았다. 이 정도의 목표주가 변동폭은 최근 경기침체를 감안하더라도 이례적이다.
무수익여신 비율은 금융기관의 전체 여신 중 비우량대출 비율이 어느 정도인지를 보여주는 통계자료다. 높을수록 은행이 원금을 받지 못할 위험이 크다고 볼 수 있다.
무수익여신 비율은 통상 정상-요주의-고정-회수의문-추정손실의 다섯 단계로 나눠 평가한다. 대출금 연체가 한 달 이상 3개월 미만일 경우 요주의, 3개월 이상 12개월 미만은 회수의문, 12개월 이상 연체가 지속될 경우 추정손실로 잡는다. 3개월 이상 연체대출 중 담보 등을 통해 회수가 가능한 금액이 있다면 그 부분은 고정비율로 평가한다. 고정이하 여신비율보다 요주의이하 여신비율을 사용한다면 당연히 비율 수치는 더 높아진다.
JP모건은 흔히 사용하는 고정이하 여신비율을 사용하지 않고 요주의이하 여신비율을 보고서에 사용했다. 보통 금융권에서는 금감원의 감시 기준인 고정이하 여신비율을 사용한다. 보고서에서 별다른 말이 없었기 때문에 쓰인 비율이 '요주의이하'가 아니라 '고정이하'라는 인상을 가질 수 있었다.
하나금융지주는 곧바로 JP모건에 보고서 정정을 요청했다. 하나금융지주에 따르면 고정이하 여신비율은 2분기 0.77%, 3분기 0.95%다. 실제 16일 JP모건은 하나금융지주의 주장을 반영한 보고서를 새로 냈다.
하지만 '자산건전성에 우려가 있다'는 기존 입장에는 변동이 없었다. 목표주가도 바꾸지 않았다. 보고서에 일부 수치상 오류가 있더라도 기존 시각은 그대로 가져간다는 뜻으로 내비쳤다.
오히려 하나금융지주의 간섭을 '감시받아야 할 자'의 지나친 훼방이라고 의식한 듯 JP모건은 지난 10일 "하나금융지주가 기업 정보를 제한해 제대로 된 분석을 하기 어렵다"며 분석을 중단한다고 알렸다. JP모건과 같이 영향력이 큰 증권사의 분석대상에서 제외됐다는 사실 자체가 악재다.
이후 주가는 내리 곤두박질쳐 11일부터 14일 사이에 39.4% 떨어졌다. 2만4000원이던 주가가 1만4550원으로 주저앉았다. JP모건 측은 "공식적으로 이번 건에 대해 얘기할 사안이 없다"라고 말했다.
금감원 '비공식' 개입…보고서도 단속 대상?
증권사 보고서가 기업 주가에 영향을 미치는 사례가 많기 때문에 양자 간 다툼은 보도만 되지 않았을 뿐이지 제법 자주 일어난다. 이번 일로 하나금융지주 주가가 급락했다 치더라도 어디까지나 두 회사 사이의 해결로 가닥이 잡힐 수도 있는 문제였다는 말이다.
그런데 금융감독원이 상황을 보고 곧바로 싸움에 끼어들면서 문제가 커질 조짐이 보인다. 이번 일을 전담하게 된 금감원 금융지주서비스국 관계자는 "이번 일의 정황을 인지하고 비공식적으로 JP모건 측에 주의조치를 줬다"며 "일단 하나금융지주 주가 하락의 직접적인 원인이 JP모건의 보고서였다는 사실은 인지하고 있다. 상황에 따라 다양한 조치가 나올 수 있다. 증권가 루머단속 대상에 포함시킬 수도 있다"고 말했다.
금융권에 따르면 두 회사의 다툼은 제법 오래 된 일이다. 하나금융지주가 기업 재무상태를 보여주는 자료를 충실히 시장에 전달하지 않는다는 불만이 전부터 있어온 가운데 하나금융지주도 'JP모건 때문에 시장에 좋지 않은 소문이 퍼진다'는 불만을 갖고 있었다는 게 금융권 관계자들의 말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금융권 관계자는 "은행권 자산건전성 우려는 3분기 들면서 공통적인 사안이었다. 다만 하나금융지주의 경우 환파생상품 손실 등의 문제로 상대적으로 조금 더 컸다"고 말했다.
그는 "요주의이하를 무수익여신 비율로 사용했다면 용어선택의 잘못은 있다"면서도 "보고서의 핵심은 어디까지나 '건전성 우려'다. 보고서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잘라 말해 둘 다 과했던 부분이 있었다는 뜻이다.
이 때문에 금감원의 개입이 지나친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금감원이 시장 내에서 해결될 문제에 지나치게 개입한다는 인상을 줄 경우 오히려 시장의 투명성을 해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미 정부 금융당국이 '증권가 루머단속' 전담부서를 만들면서 이런 불만은 공공연히 시장에서 회자되고 있다.
또 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이런 일에 금감원까지 개입한다면 기업 정보를 제대로 평가해야 할 애널리스트는 기업의 압력에 정부 압력까지 받는 꼴이 돼 더 위축될 수밖에 없다"며 "애널리스트가 필요한 정보를 적시에 공급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루머가 더 커지지 않나하는 걱정이 든다"고 했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경제학)는 "만약 JP모건이 제대로 된 설명 없이 잘못된 보고서를 냈다고 하더라도 이는 시장에서 해결할 일이며 양측이 알아서 조정해야 할 문제"라며 "금감원이 '루머단속' 운운하며 지나치게 개입하는 것은 옳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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