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위원장 이석행)은 개정은 하되 사용 사유 제한 등 비정규직 노동자를 실질적으로 보호할 수 있도록 개정해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 한국노총(위원장 장석춘)은 개정 논의 자체가 부담스러운 분위기다.
이런 가운데 최근 청와대까지 기간 연장을 골자로 한 법개정 방향에 가닥을 잡으면서 비정규직법 개정 논의가 본격화될 전망이어서 법 제정 2년도 못 돼 다시 비정규직법이 뜨거운 감자로 떠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 경영계 입맛대로 비정규직법 개정에 박차
노동부가 최근 비정규직법 기간 연장을 공식 입장으로 확인한 데 이어 청와대까지 기간 연장 방침을 정리했다. 명분은 "내년 7월 대량 해고를 막기 위해서"다. 현재 100인 이상 사업장에만 적용되는 비정규직법이 내년 7월 100인 미만 사업장으로 확대 적용되면 정규직 전환 능력이 없는 중소 기업에서 대규모 비정규직 해고 사태가 발생할 것이라는 얘기다.
최근 경제 위기로 기업의 경영난이 악화되고 있다는 점도 정부 목소리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이 사태에 대한 해법으로 정부는 정규직 전환 기준이 되는 고용 기간을 2년에서 3년 또는 4년으로 늘리는 안을 내놓은 것. (☞관련 기사 : 이영희 "비정규직 사용 기간 늘려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시절부터 논란이 됐던 이 안은 끝내 정부의 공식 입장이 됐다. 이는 경영계의 요구 사항이기도 하다. 노동시장 유연성의 확대를 주장하고 있는 경영계는 표면적으로는 "아예 사용 기간 제한 자체를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실질적인 목표는 사용 기간 연장이다. 정규직 전환 의무를 피하기 위해 2년 마다 사람을 바꾸는 것보다는 4년마다 바꾸는 것이 낫다는 판단인 셈이다.
노동계, 일단 '반대'는 똑같지만…
노동계는 일단 정부안에 당연히 반대다. 민주노총은 13일 기자회견을 열고 "이명박 정부가 기어이 선전포고를 했다"며 "개악 저지 총력 투쟁"을 선언했다. 민주노총은 당장 다음주 이영희 노동부 장관과의 면담부터 시작해 국회 환노위 소속 의원 면담 등을 통해 입법, 행정부에 동시에 압박에 들어간다는 계획이다.
한국노총도 지난 12일 여주 중앙교육원에서 2500여 명의 단위노조 대표자들이 모인 가운데 "비정규직 사용 기간 연장은 오히려 비정규직을 더 확산시키는 것"이라며 반대 입장을 천명했다.
"당면한 경제 위기 속에서 정부가 지금 할 일은 건설산업에 10조 원을 투입할 것이 아니라 정규직 전환 기업에 대한 인센티브 제공 등 고용 안정을 위해 힘써야 한다"는 데 공통의 인식을 하고 있는 셈이다.
민주노총 "사용 사유 제한 등 넣어야"…한국노총 "논의 시작 자체를 막아라"
큰 틀에서는 동일한 목소리지만, 자세히 들어가면 양대 노총 사이에 입장 차가 존재한다. 민주노총은 자신들의 원하는 방향으로의 개정을 주장하는 반면, 한국노총은 일단 개정 논의가 시작되면 노동계가 별로 얻을 것이 없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
진영옥 민주노총 수석부위원장은 이날 "기간제한을 더욱 강화해 현 2년을 1년 혹은 그 미만으로 줄이고 법적 강제력을 높이기 위해 고용 의제 조항으로 바꿔야 하며 비정규직을 사용할 수 있는 사유를 제한하는 방향으로 개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를 위해 민주노총은 국회 앞 릴레이 노숙 농성 등 "이명박 정부의 존립을 위태롭게 하는 투쟁을 하겠다"고 공언했다. 이와 더불어 "경제 위기 고통을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떠넘기는"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 및 이영희 장관의 사퇴를 촉구했다.
반면 한국노총은 좀 더 현실적인 판단이다. 성명을 통해서는 "기간 연장은 비정규직보호법의 기능을 무력화시키려는 것"이라고 반발하고 있지만, 동시에 "종합적이고 신중한 접근"의 필요성과 노사정 합의의 중요성을 얘기하고 있다.
현 정부의 정책 기조와 국회 사정 등을 종합해 볼 때 개정안 발의 등 법개정 논의 자체가 시작되는 순간 노동계에 불리할 수밖에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한국노총 관계자는 "일단 시작되면 장외 투쟁 및 국회 안 투쟁도 해야겠지만, 그 전까지는 정부의 법 개정 시도 자체를 막는 것이 우선"이라고 말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