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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금보장 된다더니"…피눈물 흘리는 투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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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금보장 된다더니"…피눈물 흘리는 투자자

역외펀드 투자자들, 판매사 상대 집단소송 준비

7일 저녁 7시. 삼성동에 위치한 법무법인 로고스 내부에 마련된 회의실에 평범한 남녀 수십여 명이 모여들었다. 모두 초면이지만 같은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다. 이들은 지난해 거치식 역외펀드에 투자했다 엄청난 손실을 보고 있다.

"내가 증권투자를 86년부터 한 사람이에요. 투자생활 20년에 이런 사태는 정말 처음 당해봅니다. OO은행 창구에서 피델리티 차이나에 4억9000만 원을 투자했는데 지금 얼마 된 줄 아십니까? 깡통 된 건 물론이고 4600만 원을 추가로 물어내라고 은행에서 전화가 왔어요. 원금보장되는 상품이라더니 이게 말이나 됩니까? 이거 완전 국민을 우롱한 것 아닙니까? 전 국민이 수조 원의 사기를 당한 겁니다."

한 50대 남성이 울분을 토하기 시작했다. 순간 어색한 표정으로 단체 대표의 입만 바라보던 사람들이 제각기 분통을 터뜨리며 자기가 겪은 일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회의실이 요란해졌다.

역외펀드 자산규모 15조→3조원…개인발 키코 사태

역외펀드 평가손실로 빚어지는 개인투자자들의 피해는 '제2의 키코 사태'가 될 휘발성을 안고 있다. 국제 자산시장 고성장기에 가입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났기 때문이다. 지난해를 기준으로 역외펀드 자산규모는 15조 원에 달한다. 하지만 최근 금융위기가 이어지면서 자산가치는 3조 원으로 뚝 떨어졌다. 1년이 채 못돼 5분의 1로 줄어든 셈이다. '반토막'만 나도 선방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워낙에 작년에 말이 많았잖아? 원금 날아갈 일도 없고 수익도 안정적이라면서 은행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연락이 오는 거야. 주변에서도 다들 하니까 큰 맘 먹고 융자 3000만 원을 받아가지고 XX은행 지점에서 피델리티 차이나 펀드에 가입했지.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며칠 전에 은행에서 연락이 왔어. 지금 300만 원이 남았다는 거야. 그런데 지점 팀장이 뭐라는 줄 알아? '사모님, 300만 원을 저에게 맡겨주십시오. 제가 국내펀드로 3년을 굴려드리겠습니다' 이러는 거야. 순간 너무 기가 차서 숨이 턱 막히더라니까 글쎄…. 아직 가족한테 얘기도 못했어. 애 방에 컴퓨터가 있는데 혹시나 잔액 확인하다가 애가 '엄마 뭐해'하고 물어보면 어떡해? 애 아빠는 지금도 내가 친구 만나러 온 줄 알아."


고3 수험생 자녀를 둔 최미옥(48, 가명) 씨는 한숨을 푹 쉬었다. 모임이 끝나고도 그의 주위에는 같은 경험을 가진 주부들이 몰려 끝없이 울분을 토했다. 사람들을 삼삼오오 모여 은행을 원망하며, 때로는 자신의 무지를 한탄하며 끝날 것 같지 않은 얘기들을 털어놓았다.

그들 중 한 명인 김양희(46, 가명) 씨는 마이너스 통장으로 2000만 원을 구해 인근 XX은행에서 피델리티 차이나 펀드에 투자했다. 금리부담에 펀드손실, 환손실까지 다 봐 꿈을 담았던 통장은 1년 만에 '깡통계좌'가 돼 버렸다.

"내가 그 지점 수십 년 고객이라 그런지 지점 VIP팀장이 사과편지를 보냈더라고. 일단 은행에 찾아가서 멍하게 있으니 그 사람이 저녁이라도 사드리겠다는 거야. 황당하잖아. 거절하니 또 전화 와서 '사모님, 그러면 제가 술이라도 한 잔 사드리면 위로가 되겠습니까?' 이래. 정말 말이 안 나온다. 기가 차서."

한 켠에서 조용히 그들의 대화를 지켜보던 김진호(가명) 씨. 그는 예순이 넘은 어머니를 대신해 피해자 모임에 참가했다. 그의 어머니는 지난해 10월 모 은행에서 메릴린치의 자산운용 계열사 블랙록의 월드광업주 펀드에 1300만 원을 투자했다. 그저 안정적이고 수익률이 좋다는 은행직원의 권유에 수년을 적금으로 모아온 피와 같은 돈을 쏟아 부었다. 하지만 지금 그 돈은 64만 원으로 쪼그라들었다.

도대체 펀드가 왜 이렇게 어처구니없이 곤두박질 쳤나? 역외펀드니 펀드가치가 하락했다손 치더라도 최근 원화약세를 감안하면 환차익은 났어야 한다. 직접투자보다 훨씬 안전하다는 펀드 손실률이 이 정도로 심각하다는 사실은 사례를 보고도 믿기 어렵다.

문제는 투자자들 대부분은 무심결에 가입한, 혹은 '환헤지'에 대해 조금의 상식이라도 있는 사람은 환율변동위험을 제거할 목적으로 가입한 선물환계약에 있다. 이는 사실 환율변동에 따른 위험을 더 키우는 '악마와의 계약'이었다.

선물환계약은 약속된 미래에 계약 당시 미리 정해둔 환율로 원화와 달러화를 판매사와 고객이 매매하는 계약을 말한다. 대부분 판매사가 선물환계약을 펀드 계약과 동시에 맺었다. 문제는 지난해 펀드가입자 절대다수가 계약한 선물환은 환율하락(원화 강세)을 막기 위한 선물환매도로, 환율상승을 막지는 못했다는 데 있다. 오히려 지난해 가입자들이 맺은 선물환 매도계약은 환율이 오르면 오를수록 손실을 기하급수적으로 키우는 상품이다.

만약 작년 11월 달러당 1000원으로 약정환율을 정한 고객은 지금 시장환율(약 1300원)로 은행에 투자금액 1달러당 300원을 추가로 지불해야만 한다. 환율이 계속 상승한다면 이론적으로 손실은 무한대로 늘어난다.

지난해 11월 1달러를 투자한 역외펀드의 평가액이 현재 0.5달러가 됐다면 고객이 받는 돈은 현재 시장환율을 감안할 경우 (0.5*1300)-300원, 즉 350원에 불과하다. 선물환계약을 맺지 않았다면 650원을 받았을 것이다.
▲지난해 투자자들이 역외펀드에 가입하며 맺은 선물환 매도계약의 수익률 그래프. 환율이 내려간다면 수익을 내게 돼 있지만 환율이 상승할수록 손실은 기하급수적으로 커진다. 투자자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환 선도거래와 역외펀드 수익률이 결합된 파생금융상품에 투자한 것과 다름 없다. ⓒ프레시안

내 펀드는 선물계약 담보물?…"신용불량자 된다고 협박까지"

그렇다면 그냥 펀드 만기 때까지 가만히 앉아 기다리고 있으면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까? 어차피 대부분 역외펀드는 계약기간 3년 이상의 장기투자상품이니 말이다. 만약 그 사이에 펀드 수익률이 회복된다면 광고 문구처럼 '장기 투자의 결실'을 맺을 수 있지 않을까?

이것 역시 불가능하다. 판매사가 고객과 맺은 선물환계약은 대부분이 만기 1년짜리 계약이다. 매년 만기 정산금을 주고받고 재계약 여부를 다시 확인해야 한다. 이에 더해 판매사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고객에게 근질권저당설정 등을 요구해 고객의 펀드를 선물환계약의 담보물로 묶어 놨다. 만약 선물환계약에서 손실이 날 경우 고객의 펀드로 손실분을 메우기 위한 조치다. 고객 대부분은 자기도 모르게 이런 계약서에 다 사인을 해 놨다.

예전처럼 펀드 가치가 오를 때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설사 환차손이 발생하더라도 펀드의 수익분으로 환차손을 메우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펀드 가치도 폭락하고 환차손도 발생하자 판매사는 대거 선물환계약 만기일에 맞춰 고객에 만기 정산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고객이 정산에 응하지 않으면 곧바로 반대매매를 통해 고객의 펀드를 정리하고 그 잔금을 정산금으로 사용했다. 이래도 모자라는 부분은 고객에게 추가납입을 요구했다. 펀드를 더 끌고 가고 싶은 고객은 울며 겨자먹기로 중도금 납입 요구에 응할 수밖에 없었다.

깡통계좌는 물론, 투자자가 판매사에 추가로 돈을 물어줘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 이유다. 모임에 참가한 한 투자자는 "은행이 돈을 제 때 내지 않으면 신용불량자가 된다고 위협까지 했다. 악덕 사채업자와 다른 게 뭐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적합성 여부, 불완전 판매가 관건

선물환계약은 선도거래(선물거래와 달리 거래장소가 정해지지 않은 계액)의 일종으로 본질적으로 위험성이 매우 높은 파생금융상품이다. 이처럼 위험성이 높은 계약이 1년이나 되는 장기 거래기간을 두는 일은 찾아보기 힘들다. 기간이 길어질수록 환율변동 위험은 더 커지기 때문이다. 통상적으로 선물환계약은 주 단위, 혹은 월 단위로 맺어진다.

따라서 법적 소송으로 갈 경우 이처럼 위험한 계약을 일반 투자자에게 판매하는 행위가 과연 정당화될 수 있느냐, 곧 판매사가 적합성 원칙을 성실히 지켰느냐가 이번 사안의 초점이다. 적합성 원칙은 금융 전문가인 판매사가 투자자의 소득, 투자목적, 금융지식, 과거 투자경험 등을 고려해 그에 적합한 상품을 팔도록 의무화한 규칙으로 내년 2월 시행 예정된 자본시장통합법에 명문화된 사안이다.

여정구 변호사(로고스)는 "금융지식이 부족한 일반 투자자에게 역외파생상품을 이렇게 많이 팔았다는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다. 투자자들이 사실상 굉장히 위험한 파생상품 직접거래에 자기도 모르게 참가했다는 소리"라고 말했다.

불완전 판매 문제 역시 논란거리다. 판매사가 성실하게 투자자에게 이 상품의 위험성을 고지시켰는지가 관건이다. 대부분 투자자들이 주식 직접투자의 위험성을 피하기 위해 수수료를 주면서까지 펀드로 간접투자에 나서기 마련인데 선물환의 위험성을 충분히 숙지시키지 않았다는 사실이 입증된다면 판매사의 도덕적 해이가 도마에 오를 전망이다.

류영덕 변호사(로고스, 테네시주 미국 변호사)는 "미국에서는 이와 관련된 사례가 매우 많다. 펀드 판매·운용사의 과장 광고, 불완전 판매가 입증된다면 투자자가 설사 계약서에 사인을 했다 하더라도 계약서가 무효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주가 상승기가 지속되자 각 금융기관은 전국 각지에서 경쟁적으로 투자자 모집에 나섰었다.(위 사진은 특정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연합

판매사의 무지, 판매사의 무책임

판매사는 도대체 왜 이렇게 위험한 상품을 그렇게나 많이 팔았을까? 당장 안정적 수입인 판매수수료를 남기기 위해서라는 대답이 떠오른다. 위험상품인 대출 늘리기보다 펀드 판매 수수료와 선물환계약 수수료를 챙길 수 있는 역외펀드 판매 이익은 제법 쏠쏠할 터다.

그런데 일선 영업점의 경우, 영업점 직원도 역외펀드의 위험성을 제대로 숙지하지 못했다는 게 투자자들의 말이다. 은행에서 자기들이 무슨 상품을 파는지도 모르고 마구잡이로 고객 늘리기에만 혈안이 됐다는 얘기다.

지난 해 집을 사기 위해 모아뒀던 돈 1억여 원을 들여 중국, 인도, 유럽 등 다양한 국가에 투자하는 펀드에 분산투자했다 환차손으로 절반 이상 평가액이 줄어든 이문우 씨(37, 가명)는 "손실이 났다는 통보를 받고 너무 황당해 내가 직접 은행에 연락해 관련자들을 다 만나봤다. 선물환계약에 대해 제대로 설명할 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더라"며 "내가 담당 직원을 옆에 앉혀 놓고 같이 공부했다. 판매 직원도 선물환계약 내용을 알고는 미안하다며 자기 월급을 털어서라도 보전해주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이런 고백은 일선 영업점에서도 이어졌다. 한 증권사 지점 관계자는 "작년 당시에는 환율 하락이 이슈였다. 환율이 오를 때 일어날 일에 대한 설명이 부실했던 게 아마 대부분 영업점 공통사실이었을 것"이라며 "솔직히 나도 환손실이 커지면 추가입금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당시는 몰랐다"고 말했다. 그는 "새 금융상품이 나오면 영업점마다 할당량이 떨어지기 마련이다. '일단 팔아야 한다'는 압박감이 컸다"고 당시 분위기를 설명했다.

판매사는 억울한 부분이 있다고 항변한다. 시장자체가 이렇게 망가질 줄 누가 알았겠냐는 말이다. 국민은행의 관련부서 관계자는 "영업점에 교육을 제대로 안 시켰다는 말은 인정할 수 없다. 각 지점별로 선물환상품 계약에 대한 교육을 충분히 했다"며 "시장 상황이 이렇게 나빠지면 완벽한 위험 통제는 불가능하다. 우리는 선물환계약을 펀드에 같이 한 상품 판매비중이 60% 정도고 40%는 헤지를 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강정원 국민은행장도 억울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10일 <한국경제>와 인터뷰에서 "일부 직원이 선물환 거래에 따른 영향을 제대로 예상하지 못한 잘못이 있다"면서도 "추가로 고객이 납부해야 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11일 현재 <한국경제> 인터넷판에는 기사 내용이 수정돼 강 행장이 잘못을 시인한 부분은 삭제된 상태다.

뒤늦게 나선 금감원 "초보적 단계 조사 진행"

일단 문제는 이슈화되고 있다. 금융감독원도 이 부분에 점차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겉으로 드러나는 금감원의 태도는 투자자들에 기우는 듯하다.

김동원 금감원 소비자보호 본부장은 10일 MBC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비록 충분한 설명을 들었다는 자필 서명이 있다 하더라도 적합성의 원칙에 위배된다면 불완전 판매로 봐야 한다"고 밝혔다. 그 동안 금감원은 이 문제에 대해 '자필 서명이 있다면 구제받기 어려울 것'이라는 입장을 보였다.

금감원 금융지주총괄팀 관계자도 "최근 들어 워낙 급박한 사안이 많아 아직 본격적인 점검은 실시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면서도 "지점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는 인지하고 있다. 리스크관리부서가 영업점에 개입해 체계적으로 판매관리에 나선 곳도 있고 적극적으로 판매에 집중한 곳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현재 초보적 단계의 조사가 진행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울분에 찬 투자자들은 스스로의 무지함을 자책하곤 했다. 한탄만 하다 이들은 방법을 찾았다. 판매사를 상대로 집단소송을 준비 중이다.

다음 카페 '중국펀드선물환계약피해자 소송모임'을 만든 성윤기 대표는 "회원이 750명이 넘는다. 소송의사를 적극적으로 밝힌 회원만 해도 350명에 달한다. 궁극적으로 합리적 해결을 원하지만 강 행장처럼 사실관계와 다른 해명만 하고 구체적 답변을 내놓지 않는다면 소송에 임할 수밖에 없다. 구체적으로 준비 중이다"라고 말했다.

판매사의 무지, 판매사의 무책임에 대해 투자자의 복수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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