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두시간 여 진행된 전국노동자대회 내내 이 위원장을 무대 위로 올리기 위해 민주노총은 부심했지만, 이 위원장 대신 실시간 동영상이 무대 위에 올랐다. 그마저도 "추적을 피하기 위해" 2분 가량의 짧은 연설에 그쳤다.
"여러분과 지근거리에 있다"고 밝힌 이 위원장은 이날 오후 서울 대학로에서 열린 전국노동자대회 동영상 메시지를 통해 "이명박 정부의 천민 자본주의 정책을 완전히 바꾸는 날까지 민주노총이 투쟁하겠다"고 밝혔다.
긴박했던 1박 2일…촘촘했던 경찰의 눈
9일 전국노동자대회의 최대 관심사는 이석행 위원장의 등장 여부였다. 함께 조계사에서 농성을 하던 박원석 광우병 국민대책회의 상황실장 등 5명의 '촛불 수배자'가 지난 6일 동시에 검거됨에 따라 아직 체포되지 않은 이 위원장의 신변에 관심이 쏠려 있었던 것.
특히 이 위원장은 조계사에서 빠져 나온 뒤 처음으로 <프레시안>과의 인터뷰에서 "반드시 9일 노동자대회에 참석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관련 기사 : 이석행 인터뷰 "민주노총, 조직이기주의 버려야 산다)
실제 이 위원장은 이날 노동자대회 참가를 위해 애를 썼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경찰의 감시의 눈이 너무 촘촘했다. 이 위원장 검거를 위해 경찰은 이날 127개 중대 1만여 명의 병력을 대학로와 서울역 등 곳곳에 배치했다.
또 대회장으로 가는 지하철 혜화역은 모든 출구마다 100여 명의 사복 경찰이 지키고 서 있었고, 2만5000여 명이 참석한 대회장 인근 뿐 아니라 주변 상가 곳곳에도 잠복해 있는 사복 경찰을 볼 수 있었다.
끝내 이 위원장은 "혈안이 된" 경찰을 뚫지 못했다. 진영옥 수석부위원장이 대신 대회사를 한 뒤에도 민주노총은 이 위원장을 무대 위로 올리기 위해 사방으로 노력했지만, 수포로 돌아갔다.
준비된 순서가 모두 끝난 오후 5시 15분 경, 실시간 동영상을 통해 이 위원장은 "오늘 함께 하려고 수없이 움직였지만 그러지 못하고 지근거리에서 이렇게 인사하게 돼 죄송하다"고 말했다.
우문숙 대변인은 "20분이면 경찰이 위치 추적이 가능하기 때문에 연설을 길게 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이명박, 암 걸린 환자에게 독약 먹이고 있다"
민주노총에게 1년 중 가장 중요한 날이라고 할 수 있는 전국노동자대회에 위원장이 참석조차 하지 못한 것은 현재 민주노총이 겪고 있는 여러 어려움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인수위 시절 사전에 약속됐던 민주노총과의 간담회를 하루 전날 파기할만큼 민주노총의 존재감을 가볍게 보고 있다. 현 정부의 각종 정책과 관련해 "이명박 정부가 암에 걸린 환자에게 독약을 먹이는 처방으로 기어이 한국 경제를 말아먹으려 하고 있다"며 날을 세운 진영옥 수석부위원장의 비판이 청와대에 전혀 전달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전세계적으로 불어 닥치는 경제 위기 속에서 정규직 노동자 중심인 민주노총의 '대정부 투쟁'은 맥이 빠져 있다. 지도부에 대한 정부의 유례없는 탄압과 "당장 내 목숨이 위태로운데"라는 조합원의 위기감이 서로 상승 작용을 일으켜 "비정규직 철폐" 구호를 허공에서 맴돌게 한다.
현 정부가 초반부터 천명한 '비즈니스 프렌들리' 정책 아래 최저임금제와 비정규직법 등 최하층 노동자를 위한 최소한의 보호 장치마저 착착 없애거나 완화하려고 시도하고 있지만 노동계가 힘을 못 쓰고 있는 까닭이다.
얼마 전 인터뷰를 통해 "이대로라면 (민주노총의) 존재감마저 없어지지 않을까 우려된다"던 이 위원장의 말이 내내 맴돌던 노동자대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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