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어제(4일)와 오늘(5일), 미국과 일본에서 변화의 징후를 나는 봤다. 미국인들은 '변화'를 요구했고 예상대로 미국의 유권자들은 오바마의 선택으로 거대한 변화의 발판을 만들어냈다. 이웃나라 일본은 도쿄 시부야의 작은 게릴라성 시위에서 장차 일본 사회에 '변화'를 이끄는 폭풍의 단서를 예감할 수 있었다.
일본 도쿄 한 복판에서 지난 달 26일에 있었던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시위는 일과성으로 그치고 끝날 수 있는 것으로 보여지지 않았다. 결국 내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일본 도쿄 비정규직 시위 모습이 일주일이 지나서 유튜브에 동영상으로 올려지면서 사실의 파급은 전혀 예사롭지 않게 발전될 조짐으로 보인다.(☞동영상 보기)
일본이란 나라는 데모나 시위가 거의 없는 나라다. 도쿄 시내에서 큰 확성기를 틀어대는 극우익의 직업적 데모야 일상사로 목격하지만 '자발적 반란'이 거의 없는 일본 사회풍토에서 비정규직 노조가 빈부격차 문제의 심각성을 알리기 위해 도쿄 시내에서 조직한 시위란 크기에 관계없이 도쿄는 물론이고 일본 사회에서는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그런데 이게 드디어 일본서 터졌다.
지난 6월 도쿄 아키하바라 대로에서 길 가던 행인 7명을 숨지게 한 '묻지마 살인' 사건의 범인은 비정규직의 불안감이, 모바일 문자메시지로 해고통보를 당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범행의 동기라고 진술했고, 일파만파 일본의 사회문제로 파급됐다.
소위 공기업 민영화 등 '고이즈미 개혁'의 결과가 초래한 오늘의 일본은 전체 근로자 33%가 불안정한 비정규직이다. 빈부 양극화가 첨예한 사회 문제가 됐다. 일본의 비정규직 근로자는 작년 말 현재 1731만 명 정도, 5년 전에 비해 20%가 늘었다. 민영화, 자유화가 이끈 결과다.
한국은? 지난 3월 현재 국내 비정규직은 858만 명이다. 공직선거 유권자의 3분의 1이 비정규직이기에 '경제 살리기'를 들고 나온 이명박에게 속아 몰표를 던져줬다. 우리 사회 가장 거대한 불안한 직업군이 이명박에게 속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숫자는 많지만 정치적 의사로 집결될 수 있는 비정규직 숫자란 너무 적다, 차라리 거의 없다.
비정규직 문제가 우리 사회 최대의 문제인데도 언론과 지식인사회, 심지어 정치권에서도 세계화 흐름 속에서 비정규직 확산은 불가피하다는 식의 가짜 여론에 유포되어 의식이 마비됐다. 그래서 우리의 문제고, 내 문제지만 당장 자신에게 해당되지 않는다면 얼마든지 비껴 서있는 문제로 취급된다. 노동권과 생존권을 박탈당하면서도 감각이 마비된 것이다.
그런데 우리보다 훨씬 문제가 덜 심각해 보이는 일본에서 '비정규직 시위'가 도쿄 중심가에서 터져 나왔고 한 청년이 아소 총리의 저택 사진 피켓을 흔들면서 "아소 총리의 집을 구경하러 가자"고 외쳤다. 재벌가 출신 아소 총리의 집은 시부야 고급주택가 2400㎡의 대지에 지은 3층짜리 건물로, 땅값만 50억엔(약 650억원)이 넘는다. 시위 주변에 있던 경찰이 시위대를 가로 막았고 시위하던 청년들이 저항하자 몇명을 끌고 갔다. 경찰이 공무집행 방해 등으로 3명의 청년을 체포하면서 시위는 점점 더 커졌다. 시위대는 시부야 경찰서로 몰려갔고 "경찰은 부자들의 편인가" 하고 외쳤다.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오마바는 멕케인이나 일본 총리 아소처럼 부자가 아니다. 더구나 물려받은 재산이라곤 없다. 이제 민주주의 정치 리더십은 부당한 부자나 따분한 세습부자가 끌고 가는 걸 인정하지 않는다.
나는 결론을 내린다. 미국이나 일본이나 정작 한국이나 사회를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지금 원하는 것은 보수도 진보도 아니라 바로 '변화'다. 민주주의 실제적인 행사를 일상에서부터 실현하는 것이며, 그 변화의 주체는 시민들 자신이다.
오바마를 선택한 미국의 촛불은 횃불로 솟아올랐고 일본의 촛불은 이제부터 하나 둘 켜지기 시작했다. 안에서 타고 있는 한국의 촛불도 행동으로 다시 불타 번지리란 확연한 예감이 든다. 조만간.
(☞바로 가기 : 필자 홈페이지)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