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차기 대통령으로 버락 오바마 민주당 대선 후보의 당선이 확실하다. 미국 현지 언론에 따르면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도 4일(현지 시간) 오바마 후보에게 직접 전화해 축하 메시지를 전했다. 부시 대통령은 오바마 후보에게 "당신은 삶의 굉장한 여정을 이제 막 시작하게 됐으며 마음껏 즐기라"고 말했다.
겉으로는 축하를 했지만 이런 말을 하는 부시 대통령의 속은 편하지 않았을 것이다. 굳이 국내의 역대 대통령과 비교를 하자면 지난 1997년 외환 위기 와중에 김대중 당선자에게 축하 인사를 해야 했던 김영삼 전 대통령이나, 2007년 이명박 당선자에게 축하 인사를 해야 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심정과 비슷하지 않았을까?
부시 대통령은 미국의 경제를 망가뜨린 장본인으로 대공황을 초래했다는 비난을 받는 제31대 허버트 후버 대통령(1929~1933) 등과 함께 '역대 최악의 미국 대통령' 자리를 두고 경쟁하게 됐다. 거짓말로 시작한 이라크 전쟁 등에 발목이 잡힌 터에 경제까지 최악 상황으로 치닫자 지지율도 20%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사정 탓에 부시 대통령은 존 매케인 공화당 대선 후보와 공화당으로부터도 따돌림을 당하고 있다. 부시 대통령은 지난 9월 공화당 전당 대회에서 애초 첫날 연사로 나갈 예정이었으나, 매케인 후보 측의 요청으로 동영상으로 대체되는 수모를 겪었다. 매케인 후보는 아예 "부시 대통령이 손도 쓸 수 없게 모든 걸 망쳤다"며 '부시 때리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세계인의 관심이 미국에 쏠린 이날도 부시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아무도 주목하지 않은' 쓸쓸한 하루를 보냈다. 이미 지난 주 우편으로 투표(텍사스 주)를 한 터라 투표 장면 공개도 없었다. 이날은 마침 부인(로라 부시)의 62번째 생일이어서 부시 대통령의 쓸쓸함은 더 했을 터다.
부시 대통령을 더 참담하게 하는 것은 현지 언론의 냉소다. 미국의 일간지 <볼티모어 선>은 이날 "오늘 선거에서 누가 승리할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확실한 것은 부시 대통령이 패자라는 것"이라며 "이번 대선 과정에서 미국인이 부시 대통령에 신물이 나 있고, (그와는) 아주 다른 인물을 찾고 있다는 게 드러났다"고 그를 조롱했다.
부시 대통령은 퇴임 후 텍사스 주 댈러스에서 지금보다 더 쓸쓸한 말년을 보낼 예정이다. 굳이 정치, 선거 전문가의 분석을 염두에 두지 않더라도 후대의 역사가는 이번 선거에서 첫 흑인 대통령을 낳은 '1등 공신'으로 부시 대통령을 꼽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이런 쓸쓸한 퇴장을 동정하기에는 그가 지난 8년 동안 미국은 물론 전 세계에 끼친 피해가 너무 크다.
2003년 거짓말로 시작된 이라크 전쟁만 놓고 보더라도 그렇다. 이 어처구니없는 전쟁으로 미군 약 4100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라크인 사망자는 (정확한 숫자는 집계가 불가능하지만) 이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약 103만3000명이다. 그 중 대부분이 민간인이었다는 것도 꼭 기억해야 할 것이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