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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시인'이 미국을 휘어잡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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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시인'이 미국을 휘어잡다"

[인물탐구] '첫 흑인 대통령' 오바마는 누구인가?

끝내 시인의 승리였다. 심지어 같은 흑인 친구들마저도 "아직은 때가 아니다"라며 만류했지만, 그는 미국을 휘어잡고 건국 이래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됐다.

강력한 라이벌 수준을 넘어 초기엔 당연히 민주당의 대선 후보로 여겨졌던 힐러리 클린턴도 적수가 아니었다. 높은 지지율에도 불구하고 피부색에 따른 '브래들리 효과'로 패배로 종결될지 모른다는 일각의 우려도 여유 있게 눌렀다.

미국 정치 역사를 새로 쓴 버락 후세인 오바마, 그는 누구일까? 4가지 키워드로 그의 인생을 정리해본다.

#1. '아버지'…흑인 콤플렉스 극복에서부터 빈민가 조직가로까지
▲ 오바마를 이해하기 위한 첫 번째 키워드는 '아버지'다. 유년기와 청년기에 오바마를 키운 외할아버지 스탠리 던햄은 케냐인과 미국인 사이에 태어나 자카르타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그가 '미국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준 수호천사였다. ⓒ로이터=뉴시스

오바마를 이해하기 위한 첫 번째 키워드는 '아버지'다. 그는 세 명의 아버지를 통해 역사와 정치를 배웠고 성공하고 좌절하며 오늘의 오바마가 됐다. (☞관련 기사 : 오바마, 아버지의 이름으로)

유년기와 청년기에 오바마를 키운 외할아버지 스탠리 던햄은 케냐인과 미국인 사이에 태어나 자카르타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그가 '미국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준 수호천사였다. 던햄은 오바마에게 미국의 백인 중산층 가정의 언어와 문화, 세계관을 가르쳤다.

특히 외조부는 오바마가 스스로 '흑인 콤플렉스'를 극복하도록 도와준 친절한 가정 교사였다. 그가 어린 오바마의 상처를 어루만져주지 않았더라면, 오늘의 그를 있게 한 2004년의 수려했던 민주당 전당대회 연설은 없었을지 모른다.

외조부가 오바마의 마음을 어루만지며 아버지보다 더 아버지 같은 존재가 되었다면, 친부와 계부는 그에게 삶의 이정표를 보여주었다. 그는 두 아버지를 통해 권력에 투항하거나 혹은 저항하는 지식인의 모습을 동시에 배웠다.

계부 롤로 소에토로는 오바마에게 절망 끝에 세상과 타협해버리는 전형적인 엘리트의 모습을 보여줬다. 반면 친아버지 오바마 시니어는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새 조국 케냐의 건설을 주도하며 부와 명예를 누렸지만, 종족 갈등에서 저항운동을 이끌다 몰락했다.

하지만, 명예와 원칙을 지키려 했던 친아버지는 잘 나가는 하버드 로스쿨을 나와 빈민가의 공동체 조직가로 뛰어 든 그의 삶의 든든한 지원군이었다.

#2. '흑인'…다름을 인정하는 조화를 배우다
▲ 최초의 <하버드 로 리뷰> 흑인 편집장으로 보낸 시절은 흑인이냐 백인이냐를 넘어 미국이라는 공동체에 대해 생각하게 해준 시간이었다. ⓒ로이터=뉴시스

그를 얘기할 때 피부색을 빠뜨릴 수 없다. 어린 시절 그가 어머니에게 들은 것은, 흑인이란 위대한 유산과 특별한 운명의 혜택을 받았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그는 어느 날 우연한 기회에 흑인으로 산다는 슬픔과 고통에 대해 깨달았다. (☞관련 기사 : 흑인, 위대한 유산 영광스런 짐)

그리고 그는 술과 담배, 마리화나와 함께 고등학교 시절을 보냈다. 어쩌면 그 방황의 시기는 머릿속을 끝없이 맴도는 '흑인'이라는 단어를 지우기 위한 몸부림이었는지도 모른다.

비록 대학에 들어가면서 그의 콤플렉스는 차츰 치유됐지만 그의 내면은 여전히 혼란스러웠다. 흑인으로서의 자존심을 버릴 수도 없었지만, 흑인 민족주의 역시 그의 길은 아니었다. 더욱이 그의 어머니는 백인에 대한 증오를 가르치지도 않았다.

그가 흑인 문제를 개인이 아닌 사회 구조의 문제로, 소수자 전체의 문제로 바라보는 데로 나아갈 수 있던 것은 이런 이유였다. 그리고 그는 "분노와 절망과 동정을 넘어 우리를 하나로 묶는" 공동체에 대한 염원을 키워갔다. 검은 피부색의 육체가 그로 하여금 삶의 목표와 정신의 꿈을 만들어준 셈이다.

그리고 그는 그 속에서 '조화'가 무엇인지를 몸으로 알아갔다. 특히 최초의 <하버드 로 리뷰> 흑인 편집장으로 보낸 시절은 흑인이냐 백인이냐를 넘어 미국이라는 공동체에 대해 생각하게 해준 시간이었다.

또 같은 흑인이었던 아내 미셸 오바마와의 결혼은 그로 하여금 "흑인 공동체에 더 깊이 뿌리내리 수 있게" 도와줬다. (☞관련 기사 : 미국 정가에 느닷없이 등장한 흑진주)

#3. '희망'…"예스 위 캔"
▲그를 이해하는 세 번째 키워드는 '희망'이다. 그를 일약 스타로 떠오르게 한 2004년 민주당 전당대회의 키워드도 희망이었다.ⓒ로이터=뉴시스

그를 이해하는 세 번째 키워드는 '희망'이다. 희망은 그가 가진 온갖 '악조건'을 딛고 지금의 자리까지 오게 만든 힘이었다. 그리고 오바마의 희망은 소수자로서 미국이라는 나라에 사는 참의미를 되새기는 데까지 나아갔다. 그를 일약 스타로 떠오르게 한 2004년 민주당 전당대회의 키워드도 희망이었다.

"나는 오늘 내가 물려받은 다양성에 대해 감사하고, 내 부모님들의 꿈이 내 귀여운 두 딸에게도 이어지고 있다고 생각하며 여기 서 있다. 내가 살아온 이야기는 미국이라는 나라가 품고 있는 거대한 이야기의 일부이고, 내가 먼저 살았던 이들에게 빚을 지고 있으며, 내 이야기는 미국이 아니고서는 지구상 어디에서도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연설이 끝나자 정치평론가들과 기자들은 오바마를 새로운 눈으로 보게 됐다. 벌써부터 방송에서는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 감이라는 말이 공공연히 나온다"라는 멘트가 흘러 나왔다. (☞관련 기사 : "연설은 좀 하는데 상원은 잘 몰라요")

그는 대선에서도 "예스 위 캔(Yes We Can)"을 슬로건으로 내세웠다. '희망'은 그 어떤 네거티브 공세보다 유효했다. "진보적인 미국, 보수적인 미국은 없습니다. 미합중국이 있을 뿐입니다"를 외치며 "역경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맙시다"라고 호소하는 그의 연설은 많은 미국인의 눈가를 촉촉하게 했다.

#4. '시인'…유권자의 마음을 사로잡은 일하는 시인
▲ 그의 도전은 성공했다. 그리고 그는 최초의 흑인 대통령으로 이제 또 다른 선입견에 대한 도전의 첫 발을 떼었다.ⓒ로이터=뉴시스

그의 연설이 많은 유권자의 마음을 사로잡은 표면적 이유는 그의 탁월한 연설 능력에 있는 듯 보인다. 하지만 사람들이 미처 간과하는 것이 있다. 그가 얼마나 차분히 자신의 정치적 기반을 닦고 오랜 시간에 걸쳐 오늘 대통령의 자리를 위해 준비해 왔는지를 말이다. (☞관련 기사 : "벨벳 장감을 낀 강철 주먹")

<뉴요커>의 기자 라이언 리자는 "오바마는 정치가 어떤 건지를 잘 안다"고 평가했다. "정치인 오바마는 (전당대회 연설로 그를 스타덤에 오르게 한) 2004년에 태어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리자는 "(오바마는) 시카고 정계에서 산전수전을 겪으며 정치적인 기술을 배웠다"고 말했다.

그는 세밀하게 대선 계획을 세웠다. 연방 상원에 입성한 첫 해를 조용해 보낸 오바마는 조용히 날개 짓을 시작했다. 논쟁에 휘말리는 것은 최대한 피했고, 연설을 할 기회가 있으면 오바마는 자신의 정치적 메시지를 부지런히 알렸다. 이라크 전쟁 반대, 교육과 보건, 에너지 정책, 정부의 역할 등에서 그는 일관된 메시지를 전달했다.

그리고 이 일관성은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스타 정치인 힐러리를 누른 원동력이기도 했다. "일꾼 힐러리"와 "시인 오바마" 사이에서 유권자들은 시인을 선택했다. 백인이 90%인 아이오와에서 이룬 오바마의 승리는 '희망'이 '현실'이 되는 서곡이었다. (☞관련 기사 : "선거판에선 시인이 일꾼을 이긴다")

그는 "아직 미국은 흑인 대통령을 맞을 준비가 안 됐다"며 대선 출마를 막는 흑인 친구들에게 "내 생각은 달라"라고 얘기했다.

"(미국이) 지금 준비가 안 됐다면 내가 죽을 때까지 그럴 거야. 내가 그런 선입견에 도전하겠어."

그의 도전은 성공했다. 그리고 그는 최초의 흑인 대통령으로 이제 또 다른 선입견에 대한 도전의 첫 발을 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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